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775
777화
강진을 따라 주방에 들어간 배용수가 물었다.
“어머니는 무슨 음식 좋아하셨는데?”
“엄마는 멸치 넣고 시원하게 끓인 김치찜을 좋아했어.”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입맛을 다셨다.
“멸치 넣고 시원하게 끓인 김치찜이라…… 그거 김치 푸욱 삶아서 물 만 밥에 올려 먹으면 아주 맛이 좋지.”
“역시 용수가 좀 아네. 우리 엄마도 그렇게 해서 먹는 거 좋아했어.”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웃었다.
“나중에 직접 만나게 되면 내가 맛있게 그거 하나 해 드려야겠다.”
“그래. 꼭 해 드려라.”
배용수는 멸치를 냄비에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멸치 넣은 김치찜은 그리 어려운 음식이 아니었다. 그저 멸치와 김치를 냄비에 넣은 후, 김치가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계속 끓이면 되는 음식이니 말이다.
배용수가 국통에 멸치 국물을 우리는 것을 멍하니 지켜보던 강진은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은 강진의 귀에 배용수가 음식을 만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타타탓! 타타탓!
파를 써는 듯 도마와 칼이 일정하게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고, 뒤이어 마늘을 찧는 소리가 들렸다.
쿵쿵쿵!
배용수가 실력을 발휘하는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고 있는 강진의 머릿속에 엄마가 음식을 할 때의 모습이 떠올랐다.
‘엄마가 음식 할 때도 주방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었지.’
잠시 후 멸치 국물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 더 있자 김치와 멸치 향이 섞여서 퍼져 나갔다.
보글보글!
붉은 국물이 끓어오르는 멸치 김치찜을 보던 배용수가 국물을 살짝 떠서는 입에 넣었다.
칼칼하면서도 멸치 향이 나는 국물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밥을 퍼 담았다.
한 그릇, 두 그릇, 세 그릇의 공깃밥을 푼 배용수가 그것을 조심히 놓고는 집게를 들었다.
집게로 김치찜을 뒤집어 맨 밑에 있는 김치를 한 포기 잡은 배용수가 젓가락으로 줄기 부분을 찔렀다.
스르륵!
부드럽게 젓가락이 파고드는 것을 보며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들고 있던 김치를 그대로 접시에 올리고 꽁지를 가위로 커팅을 한 배용수가 썰어 놓은 파란 고추와 빨간 고추를 젓가락으로 집었다.
그리고 김치찜 위에 조심히 올리려던 배용수가 돌연 손을 멈췄다.
잠시 김치찜과 고추를 보던 배용수는 고개를 저었다.
손님에게 낼 때야 예쁘게 하려고 홍고추와 풋고추로 장식을 하겠지만, 집에서 먹을 때는 그렇게 하지 않으니 말이다.
고추를 도로 내려놓은 배용수는 슬며시 고개를 돌려 강진을 보았다.
강진은 눈을 감고 있었다. 그리고…….
주르륵!
그의 눈가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음식에는 추억이 있지.’
흔히 음식을 입으로만 먹는다 생각을 하지만 음식은 눈과 귀, 코로도 먹는다.
눈으로는 음식을 보고, 귀로는 음식을 만들 때 나는 소리…… 이를테면 찌개가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소리와 고기가 자글자글 익어가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코로는 당연하게도 음식 냄새를 맡고 말이다.
지금 강진은 코와 귀로 예전 어머니가 해 준 김치찜을 추억 속에서 먹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추억 속에서 강진은 아빠와 함께 엄마가 만들고 있는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강진을 보던 배용수는 불을 살짝 줄이고는 음식을 싱크대에 차려 놓은 채 홀로 나왔다.
‘부모님하고 식사 맛있게 해.’
비록 여기가 강진의 집은 아니지만, 음식을 통해서라도 추억 여행을 했으면 하는 것이 배용수의 마음이었다.
배용수가 나가는 것도 알지 못한 채 강진은 자신만의 추억 속에서 음식을 보고 있었다.
언제인지 기억도 제대로 나지 않는, 평범했던 부모님과의 저녁 식사 시간을 추억하던 강진이 눈을 떴다.
“후우!”
자신이 울고 있었다는 것을 느낀 강진은 손으로 얼굴의 물기를 닦았다. 그러고는 싱크대 물을 틀어 가볍게 얼굴을 씻은 강진이 싱크대를 보았다.
싱크대에는 밥과 김치찜이 담긴 접시가 있었다.
오늘 사 온 검은색 도자기 접시에 담긴 김치찜과 도자기 공기에 담겨 있는 밥을 보던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이러니 내가 안 예뻐할 수가 있나.”
웃으며 밥그릇을 보던 강진이 공깃밥을 하나 들었다. 도자기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것에 강진이 미소를 지으며 옆에 놓인 밥그릇 두 개를 보았다.
밥그릇을 보던 강진은 잠시 있다가 입을 열었다.
“이문성, 이문성, 이문성. 임수영, 임수영, 임수영.”
두 사람의 이름을 세 번씩 부른 강진은 주위를 보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에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제가 돈 많이 벌어 저승 가면 두 분에게 못한 효도 거기서 많이 해드릴게요.”
웃으며 말한 강진은 김치를 젓가락으로 찔러 찢었다.
스르륵! 스르륵!
부드럽게 갈라지는 김치를 보며 미소를 지은 강진이 그것을 밥 위에 올려서는 크게 한 입 넣었다.
주르르륵!
김치가 머금은 멸치 육수가 입가를 타고 흐르는 것에 강진이 입을 닦고는 미소를 지었다.
엄마와의 추억을 생각하면서 먹어서 그런지 맛이 어머니가 해 준 것과 비슷한 것 같았다.
“용수가 음식을 잘해. 나중에 만나면 맛있는 거 많이 해 달라고 해. 나하고 형제 같이 친한 녀석이니…… 아빠가 용돈도 좀 쥐여 주고.”
작게 중얼거린 강진이 웃으며 물에 밥을 말았다.
돼지고기가 들어간 김치찜의 김치는 따뜻한 밥에 올려 먹어야 맛있지만, 멸치를 넣어서 만든 김치찜의 김치는 물 만 밥에 올려 먹으면 더 맛있었다.
‘무조림도 해 달라고 할걸.’
고등어에 무 넣고 양념해서 푸욱 끓이면 그것도 정말 맛있으니 말이다.
주객전도라고 고등어무조림은 고등어가 메인인데, 고등어보다 무가 더 맛있었다. 그래서 엄마한테 고등어보다 무를 더 많이 넣어서 해 달라고 했었던 강진이었다.
“용수가 아니더라도 엄마 아빠 살아 있으면…… 내가 맛있는 거 많이 해 줄 텐데.”
미소를 지으며 물 만 밥에 김치를 올려 입에 넣던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지금쯤이면 환생하셨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밥을 먹던 강진은 피식 웃으며 쟁반에 김치찜과 밥을 올리고는 홀로 가지고 나왔다.
홀에서는 직원들이 조용히 주방 쪽을 보고 있었다. 걱정이 담겨 있는 직원들의 시선에 강진이 피식 웃었다.
“식사들 하시죠.”
강진이 애써 웃으며 식탁에 김치찜과 밥을 놓는 것에 배용수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식사들 합시다.”
“내가 해야 정말 맛있는데 용수가 해서 딱히 맛은 없을 거예요.”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놀라 그를 보았다.
“왜? 맛이 없었어?”
“나는 맛있는데…… 내 손맛이 안 들어갔다는 말이야.”
사람인 자신에게는 정말 맛있었지만, 귀신들의 입에는 조금 밍밍할 것이었다.
귀신도 사람처럼 사람이 만든 음식을 먹고 맛을 느끼지만, 저승식당 주인 손맛이라는 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았으니 말이다.
강진의 말에 이혜미가 웃으며 말을 했다.
“왜요. 용수 씨 밥도 요즘 얼마나 맛있는데요.”
이혜미와 여자 귀신들이 자리에 앉자 배용수도 의자를 하나 가져다가 놓으며 말을 했다.
“강진이 손맛에는 못 따라가도 요즘 내 손맛도 괜찮지.”
“맞아요.”
이혜미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용수 손맛이야 저도 잘 알죠.”
“그런 의미가 아니라 정말 손맛이 많이 좋아졌어요.”
“손맛요?”
강진이 의아한 듯 그녀를 보았다.
“용수 손맛이 저승식당 사장 손맛하고 비슷해졌다는 건가요?”
강진의 물음에 이혜미가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에요. 근데…… 좀 더 맛있어졌어요.”
“그래요?”
강진이 의아한 듯 보자, 이혜미가 김치찜을 집으며 말을 했다.
“용수 씨 손맛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건 저희가 현신을 하는 저승식당 영업시간밖에 없죠. 그때는 정말 진짜 맛있는 운암정 숙수님 음식을 먹어 볼 수 있어요.”
이혜미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진이 먹어봐도 배용수의 음식은 정말 맛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 최고의 한식집에서 수련을 했고, 한국 최고의 요리사 밑에서 음식을 배웠으니 말이다.
강진이 보자 이혜미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용수 씨 음식이 저희 현신해서 먹을 때와 비슷한 맛이 나더라고요.”
“귀신인 상태로 먹어도요?”
강진의 물음에 이혜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완전히 같지는 않은데…….”
잠시 말을 멈춘 이혜미가 생각을 하자 강선영이 웃으며 말을 했다.
“살짝 탄산 빠진 사이다라고 생각을 하면 돼요.”
“아! 그래요?”
어떤 느낌인지 얼추 감이 오는 답에 강진이 보자, 강선영이 말을 이었다.
“예전에는 따라 놓고 한 시간 정도 지난 사이다였으면, 지금은 따라 놓고 일 좀 하다가 먹을 때의 사이다 맛이에요.”
강선영의 말에 이혜미가 웃었다.
“언니 설명 참 잘한다.”
그러고는 이혜미가 강진을 보았다.
“언니 말대로예요.”
이혜미의 말에 강진이 배용수를 보았다.
“귀신일 때 귀신들 먹이려고 하는 음식하고, 현신해서 하는 음식하고 좀 다르게 해?”
“그럴 리가 있나? 계란 프라이 하나를 해도 늘 하던 대로 최선을 다해서 만들지.”
“그럼…….”
강진은 배용수를 보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천장을 바라보았다.
“저승식당이 너를 인정했나 보다.”
“무슨 소리야?”
배용수의 물음에 강진은 여전히 천장을 보며 말을 했다.
“너 저쪽에 저승식당 사장만 볼 수 있는 문 알지.”
강진이 주방 쪽을 보며 하는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돌려 주방 옆에 있는 통로를 보았다.
뒷문으로 향하는 통로에는 강진의 눈에만 보이는, 열리지 않는 문이 있었다.
“너만 볼 수 있으니 나는 모르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태문 어른 기억해?”
“당연히 기억하지.”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강진이 말을 이었다.
“그때 어르신이 저 문은 저승식당이 식당 사장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하셨어. 내가 죽기 전에 저 문이 열리고 저승식당이 그동안 수고했고 고마웠다면서 선물을 준다고 하셨지.”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으스스하다는 듯 팔뚝을 문지르며 주방 쪽을 보았다.
“저 문 안 열리기를 바라야겠다. 저 문 열리면 너 죽는다는 말이잖아.”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피식 웃으며 말을 했다.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몰라서 무서운 거지. 나는 안 무섭다.”
“저승이 어떤 곳인지 알아서?”
“그런 것도 있고…… 저승에 내가 좋아하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눈을 찡그리며 그를 보았다.
“야.”
“응?”
“그런 말 또 하면 나 가게 나간다.”
정색을 하는 배용수의 모습에 강진이 급히 말을 했다.
“알았다. 미안하다. 다시는 그런 말 안 할게.”
강진의 사과에도 배용수는 여전히 표정을 풀지 않은 채 말을 했다.
“넌 저승에 대해 이미 알고, 귀신들과 친해서 죽으나 사나 별다른 차이를 못 느낄 수 있어. 죽으면 그냥 저승 가서 우리 다시 보게 될 거라 생각을 할 테니까.”
잠시 말을 멈춘 배용수가 강진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너를 아끼는 사람이 저승에만 있는 건 아니야. 여기에도 민성 형이나 강혜 누나처럼 너를 좋아하고 아끼는 분들이 있어. 그러니 죽는 것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지 마.”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미안하다. 말실수…… 아니, 말을 잘못했다.”
이건 진심이었다. 자신이 말을 잘못했다. 배용수의 말대로 이곳에는 자신을 아끼는 사람들이 있는데 죽어도 상관이 없다는 듯 말을 했으니 말이다.
가진 것을 모두 털어도 담배 한 대 가볍게 피울 시간조차 살 수 없는 것 또한 삶이었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