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929
930화
화장실을 조건으로 거는 박신예를 보며 황민성이 입을 열었다.
“그렇지 않아도 촬영장에 캠핑카가 따라다닐 겁니다.”
“캠핑카요?”
“배우님이 편하게 화장실도 가시고 씻을 수도 있는 캠핑카입니다. 촬영지가 산속 깊은 곳이라 차가 못 들어가면 가까운 곳에 세워서 조금만 나오시면 이용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습니다.”
황민성의 말에 박신예가 고개를 저었다.
“캠핑카는 됐어요. 그거 해 주실 거면 이동 화장실을 몇 개 더 설치해 주세요.”
“네?”
“촬영장에 여자가 저 혼자만 있지는 않을 거예요. 화장실 문제는 저만 불편한 것이 아니에요. 다른 여자 연기자나 스태프들, 그리고 매니저들까지 다 불편해요. 그러니 캠핑카는 됐고 이동 화장실이나 몇 개 더 설치해 주세요.”
다른 스태프와 연기자들을 위해서 화장실을 설치해 달라는 박신예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대신 이동 화장실이라고 해도 냄새나고 그러면 안 돼요.”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요즘 고속도로에 있는 이동식 화장실도 냄새 안 나고 깨끗합니다. 물론 사용하는 사람들이 주의를 좀 해야겠지만요.”
황민성이 웃으며 말할 때, 강진이 슬며시 끼어들었다.
“그럼…….”
강진이 말 꼬리를 흐리며 보자, 박신예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책을 보았다.
“좋은 배역 맡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신예의 말에 강진이 미소를 지으며 김소희를 보았다. 김소희는 박신예가 배역을 맡은 것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분 정말 실존 인물인가요?”
“그렇습니다.”
“정말 삶이 기구하신 분이네요.”
“그리고 강하신 분입니다.”
“그런 것 같아요. 이 어린 나이에…… 이런 일을 겪고도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았으니까요.”
박신예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저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 봤는데…….”
박신예가 고개를 저었다.
“저는 못 할 것 같아요.”
“그래서 위인이라고 하는 거겠죠.”
강진의 말에 박신예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책에 나오는 다른 인물들은요?”
“실존 인물도 있고 가상 인물도 있는데, 복실 씨는 확실히 실존 인물입니다. 소희 아가씨가 복실 씨에 대한 글을 남기신 것이 많아서 에피소드 짜기가 좋았습니다.”
“복실이라는 캐릭터가 실존 인물이었군요.”
“네.”
“그럼 전장에서 술을 구해왔다는 것도요?”
“네.”
“정말 당찬 분이네요. 먹을 것도 없는 그 전장에서 술을 구해 오다니.”
“하인으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거상이 되셨을 분입니다. 그리고 그 외에도…….”
황민성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들을 이야기해 주자, 박신예가 책을 쓰다듬었다.
“그분들도 실존 인물이셨군요.”
책을 쓰다듬던 박신예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야기가 아름답고…… 슬퍼요.”
박신예는 책을 반으로 구부리더니 휘리릭 넘겼다.
파파파팟!
책장이 빠르게 넘어가며 모서리에 있는 작은 봉오리가 피어나 꽃이 되었다.
“꽃이 피어나는 게 슬프다는 생각이 든 건 처음이에요.”
책을 쓰다듬던 박신예가 황민성을 보았다.
“아역은 누가 하는 거죠?”
“오디션을 볼 생각입니다.”
“오디션요?”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얼굴을 찾을 생각입니다.”
물론 이건 김소희의 생각이었다. 원랜 어느 정도 검증이 된 아역 배우를 캐스팅하려 했는데, 김소희가 마음에 드는 배우가 없다고 한 것이다.
그래서 오디션을 통해 아역 배우를 찾을 생각이었다. 물론 김소희가 그 자리에서 직접 보고 마음에 드는 아이를 선택할 것이다.
“그렇군요. 그럼 오디션 날 정해지면 말씀해 주세요.”
“보러 오실 겁니까?”
“제 아역이에요. 어떤 아이가 하는지 알아야 그 느낌을 제가 잘 이어받을 수 있어요.”
박신예는 책을 덮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일정 이야기는 저희 사장님하고 해 주세요.”
박신예가 몸을 돌려 나가려 하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책 가져가셔야죠.”
“그래도 되나요?”
“저희 가게엔 이미 책이 많거든요.”
강진의 말에 박신예는 고개를 돌려 식탁 위에 있는 책들을 보았다. 그리고 카운터에 쌓여 있는 책들도 말이다.
“책이 안 팔리나 보네요.”
박신예의 물음에 황민성이 웃으며 말했다.
“의외로 책을 보는 분들이 많이 없네요.”
황민성의 말에 박신예가 책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책을 손에 쥐었다.
“그럼.”
박신예가 가게를 나가자 매니저가 황민성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는 웃으며 말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수고하세요.”
매니저가 서둘러 가게를 나가자, 황민성이 숨을 크게 뱉었다.
“후우! 할 거면서 사람 애 먹이네.”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애만 쓰다가 실패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죠.”
“그건 또 그러네.”
황민성이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던 김소희가 입을 열었다.
“자네는 이만 들어가 보게.”
김소희의 말에 황민성이 시계를 보고는 말했다.
“아가씨께서는 여기에 더 계실 건가요?”
“저녁 먹고 들어갈 것이네.”
“알겠습니다.”
황민성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강진을 보았다.
“형 간다.”
“벌써요?”
“애 잠들기 전에 가야 애들 얼굴이라도 한 번 보지. 늦게 들어가면 자고 있어서 얼굴을 못 봐. 형 간다.”
황민성이 가게를 나서자 강진은 그를 배웅하고는 김소희를 보았다.
“애는 잘 크죠?”
“아주 잘 크고 있네.”
아이들을 떠올리며 미소를 짓는 김소희를 보며 강진이 말했다.
“애들 생각만 하면 기분이 좋아 보이세요.”
“애들을 보고 기분이 나쁜 사람은…… 사람이 아닌 게지.”
김소희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강진을 보았다.
“음료 다시 내어 오게. 달달한 저승 걸로.”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천꿀물이면 되시겠어요?”
“초콜릿도 주게나.”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강진은 주방에 가서 서천꿀물 캔과 초콜릿을 가지고 홀로 나왔다.
“주문하신 서천꿀물과 초콜릿입니다.”
김소희는 건네받은 캔을 따서 마셨다. 만족스러운 듯 작게 고개를 끄덕인 김소희가 TV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강진이 TV를 틀어 주었다.
김소희와 제법 오랜 시간 함께하다 보니 이제는 그녀가 말을 하지 않아도 뭘 원하는지 감이 오는 것이다.
***
일요일 아침 일찍 강진은 공원을 뛰고 있었다.
“헉헉헉! 헉헉!”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공원을 뛰던 강진이 힐끗 옆을 보았다. 옆에서 배용수도 그와 박자를 맞춰 같이 뛰고 있었다.
하지만 배용수는 호흡에 변화가 없었다. 귀신이라 숨이 찰 일이 없으니 말이다.
“헉헉헉!”
거친 숨을 토하며 자신을 보는 강진을 보고 배용수가 물었다.
“왜?”
“좋겠다, 숨 안 차서.”
“그럼 죽든가.”
“헉헉헉! 그렇게 심한 말을?”
말을 하던 강진이 놀란 눈으로 배용수를 보았다.
“처녀귀신들이 총각들을 홀려서 데려간다고 하더니…… 너도 그런 거야?”
“미친놈…… 그리고 나 너처럼 총각 아니거든?”
법적으로는 총각이더라도 육체적으로는 총각이 아니니, 총각귀신이 아닌 것이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길게 숨을 토하며 멈춰 섰다.
“후우!”
숨을 고르던 강진이 배용수를 보았다.
“이야기 좀 해 봐.”
“이야기?”
“여자친구 사귄 썰 말이야. 어떤 여자였어?”
강진의 물음에 배용수가 웃었다.
“좋은 여자였지. 예쁘고 착하고 음식도 잘 하고.”
“그분도 요리사였나 보네?”
“음식 같이 배웠어.”
“이야…… 하라는 요리 공부는 안 하고 연애를 했구만.”
“요리만 하면 외롭지.”
배용수가 웃으며 걸음을 옮기자, 강진이 그 뒤를 따라갔다.
“그래서 연애는 어떻게 하게 된 거야? 네가 고백했어?”
“당연히 남자인 내가 고백했지.”
“그래서?”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야. 다른 연인처럼 연애하고 데이트하고 싸우고 오해하고…… 뭐 그러다가 헤어졌지.”
“왜 싸웠는데?”
“모르겠다. 지금은 이유도 기억이 안 나.”
배용수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런 건 물어보지 말고 그냥 직접 만나 봐. 백 번 듣느니 한 명 사귀는 것이 연애에는 더 좋다.”
“내 처지에?”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웃었다.
“늘 이야기하지만, 네 처지가 어때서.”
“알잖아.”
“누가 만나서 결혼하래? 연애만 해.”
“연애만?”
“결혼을 전제로 선을 본 남녀도 헤어지는 판에 무슨 연애 때 그런 고민을 하고 만나냐? 일단 가볍게 인연 닿는 분 있으면 밀어내지 말고 만나 봐. 네가 귀신 보는 것 가지고 여자 못 만나네, 여자 힘들게 하네 같은 우는소리 하지 말고.”
강진이 입맛을 다시자, 배용수가 말을 이었다.
“나는 귀신을 보고 귀신 상대를 해서 일반 여자는 못 만난다고 생각하지 말고 일단 만나보고…… 이 여자다 싶을 때 저승식당에 한 번 모셔.”
“저승식당에?”
“정말 결혼하고 싶은 여자면 말을 하기는 해야 하잖아. 그리고 저승식당에서 우리를 봐야 귀신도 별거 아니구나 싶을 거야.”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저승식당 시간에 보면 사람하고 똑같으니까.”
“내 말이. 그리고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면…… 좀 놀라기는 해도 우리의 존재도 이해해 줄 거야.”
“그래 주려나?”
“반응 안 좋으면 이야기 안 하면 되는 거고. 그냥 연애만 하는 거면 굳이 말을 할 이유도 없으니까. 사귀다가 진지해지면 그때 말을 해. 일단 만나기부터 하고.”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맛을 다셨다.
“그런데…… 여자는 어디에서 만나는 거냐?”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웃었다.
“여자 만나고 싶으면 형들한테 소개팅 시켜 달라고 해. 너 해 달라고 하면 혁이 형, 민성 형, 상식 형까지 여기저기 알아봐 줄걸?”
“그런 소개팅 말고 자만추로 말이야.”
“자만추 추구하다가 평생 혼자 산다. 그리고 매일 식당에만 있는데 네가 어디서 자만추를 하냐? 자만추 할 거면 식당에서 해야 하는데…… 손님하고 연애할 거야?”
“안 될 것도 없지. 우리 가게 오는 손님 중에 미인들 많잖아.”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잠시 생각을 하다가 피식 웃었다.
“하긴…… 그건 또 그러네.”
점심시간에 오는 손님들 대부분은 인근의 직장인들이라 능력 있는 미인들이 많았다. 그리고 나이대도 강진과 비슷하니 연애하기에는 식당에 오는 여자 손님들이 좋았다.
“연애도 연애지만 소중한 손님들이니까 잘 대접해 드려야지.”
이야기를 나누며 걸음을 옮기던 강진은 문득 한쪽을 보았다. 박혜원이 정자 기둥에 등을 기댄 채 책을 보고 있었다.
“혜원이네?”
“그러네? 그런데 쟤가 왜 여기 있어?”
배용수가 의아한 듯 박혜원을 보다가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에 강진도 뒤따라갔다.
강진이 다가오는 것에 박혜원 어머니 귀신이 급히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귀신이 인사하자 강진도 고개를 숙였다.
“혜원이 강진이 보러 온 거예요?”
배용수의 물음에 어머니 귀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책 다 봐서 돌려준다고 나왔어요.”
“인천에서요?”
“네.”
“그래도 일요일에 와서 다행이네요.”
배용수의 말에 어머니 귀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은 할아버지 생일상 차려주려고 한 거고, 우리 애 학교 빠지거나 하지 않아요. 아파도 학교에 가서 아픈걸요.”
어머니 귀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배용수가 힐끗 박혜원을 보았다.
“그런데 얘는 사람 오는 줄도 모르네요?”
강진이 말을 걸지 않기는 했지만, 인기척이 느껴질 텐데 고개도 들지 않으니 말이다.
“한 번 집중하면 작은 소리들은 잘 못 들어요.”
“집중력이 좋네.”
배용수의 중얼거림에 강진이 웃으며 박혜원 옆으로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