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930
931화
정자에 놓아둔 쇼핑백에서 물통을 꺼낸 강진이 박혜원 앞에 앉았다.
“사람 온 줄도 모르네.”
강진의 목소리에 책을 보던 박혜원이 그를 보고는 웃으며 책을 놓았다.
“왔어요?”
“나 보러 온 것 같은데…… 나 여기 있는 줄은 어떻게 알았어?”
“오빠 가게 블로그 하는 분이 아침마다 여기에서 유기견들 밥 챙겨 준다고 사진 올린 거 봤어요. 그래서 여기 계실 것 같아서 왔어요.”
“그런 사진이 올라가 있어?”
“우연히 아침 산책하다가 봤는데…… 아침마다 보인다고 사진 찍어서 올려놨더라고요.”
“아하!”
강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혹시 그 사람이 이 근처에 있나 해서 말이다.
“아! 그래도 얼굴은 안 나오게 찍었으니 얼굴 팔릴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인생 나쁘게 살지는 않아서 얼굴 팔려도 상관은 없어.”
물을 마신 강진은 숨을 길게 토했다.
“후우! 그런데 너 우리 가게 정말 팬이구나. 그런 블로그도 검색해서 봐?”
“맛집 검색해서 보는 거 좋아해요. 그리고 오빠 가게 꽤 유명해요.”
“그래?”
“자기 가게인데 그런 것도 몰랐어요?”
“그런 거 검색해서 보고 그러지는 않거든.”
강진은 쇼핑백에서 수건을 꺼내 땀을 닦았다.
“그런데 이거 오빠가 놓은 거예요?”
“응.”
“이렇게 그냥 두고 운동하러 갔다가 누가 가져가면 어떡해요?”
박혜원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사람들 이런 거 안 가져가.”
“그래요?”
“나 여기에 이거 두고 몇 달 운동을 했어도 한 번도 도둑 안 맞았어.”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피식 웃었다.
“몇 달은 무슨. 이제 한 달 되어 가는구먼.”
‘그냥 그런가 보다 해.’
속으로 중얼거리는 강진을 보며 박혜원이 웃었다.
“땀나는 것 봐. 운동 열심히 하시네요?”
“살이 좀 찐 것 같아서. 근데 책 주러 온 거야?”
“네.”
“가져도 되는데…… 책을 주러 인천에서 여기까지 온 거야?”
“겸사겸사요.”
“겸사겸사?”
“책 주고 서신대 갈 거예요.”
“서신대? 거기를 왜 가?”
강진이 의아한 눈으로 보자, 박혜원이 자기 가방에서 ‘꽃 피어나다’ 책을 꺼내 내밀었다.
“대학을 왜 가겠어요. 공부하러 가죠.”
“도서관은 서신대 학생증 없으면 못 들어갈 텐데?”
“도서관에는 못 들어가도 학교는 들어갈 수 있잖아요.”
박혜원은 아까까지 보고 있던 책을 들어 보였다.
“중학교 수학 책이네?”
“암기하는 건 외우면 되는데 영어하고 수학은 혼자 하기 힘들어요. 근데 초4가 중학교 수학 책을 보는데 안 놀래요?”
박혜원의 말에 강진이 피식 웃으며 아주머니 귀신을 보았다. 사실 아주머니 귀신이 말을 안 해 줬으면 ‘네가 이걸 본다고?’하고 물었을 것이었다.
“너는 똑똑하니까.”
강진의 말에 박혜원이 피식 웃었다.
“치, 재미없어.”
“왜? 다른 사람들은 많이 놀라?”
“그럼요. 네가 이걸 본다고? 하면서 얼마나 놀라는데요.”
박혜원의 말에 강진이 작게 고개를 젓고는 물었다.
“그럼 서신대에 아는 사람 있어?”
“아는 사람 없죠.”
“그런데 왜 서신대를 가?”
“서신대 오빠나 언니들은 다 공부 잘하잖아요.”
“그건 그렇지.”
한국에서 제일 좋은 대학이 서신대다. 그러다 보니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잡아도 중, 고등학교 시절 전교에서 놀았던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서신대 언니, 오빠들한테 물어보는 거예요.”
“모르는 사람한테?”
“네.”
“그럼 착하게 생긴 학생한테 공부 물어보는 거야?”
“그럴 리가요. 저도 정해 놓은 타깃을 찾아서 물어봐요.”
“타깃?”
“혼자 다니는 사람한테는 물어보면 안 돼요. 가끔 착한 오빠나 언니가 알려주는 경우가 있는데…… 대부분 바쁘다고 갈 길 가거든요.”
박혜원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혼자 갈 길 가는 사람들은 다 어디를 가는 도중일 테니까.’
“그래서 저는 남자와 여자가 같이 있는 그룹이나 커플 남자를 노려요.”
“호오!”
강진이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말했다.
“남자들이 여자친구나 같이 있는 여자들한테 좋게 보이려고 공부를 알려주겠구나.”
박혜원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학 책을 들며 눈을 초롱초롱하게 떴다.
“‘오빠, 저 이걸 모르겠어요. 죄송한데 이것 좀 알려 주시면 안 돼요?’ 이렇게요.”
박혜원의 말에 강진이 피식 웃었다.
“타깃 정말 잘 잡았네.”
강진의 말에 박혜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들하고 같이 있는 오빠들한테 하면 거의 백발백중이에요. 게다가 제가 모르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모르는 거 있냐고 더 알려주려고 해요. 그리고 얼마나 자상하고 친절하게 알려 주는데요. 학교 선생님들이 그렇게 알려주면 애들 다 시험 잘 볼걸요.”
“넌 정말…… 대단하다.”
강진의 말에 박혜원이 고개를 저었다.
“학교 선생님이나 친구들은 내가 머리가 좋아서 늘 백 점 맞는 줄 알지만, 저에게도 이런 노력이 있답니다.”
“그래. 머리 좋은 것도 노력을 해야 꽃이 피어나는 거지. 머리 좋다고 노력 안 하면 피기도 전에 시들어 버리는 거야. 확실히…… 넌 대단하다.”
고개를 끄덕인 강진은 문득 박혜원을 보았다.
“아침은 먹었어?”
“그럼요. 성장기 학생한테 아침이 얼마나 중요한데요. 저는 아무리 늦게 일어나도 아침은 꼭 먹어요.”
“맞아. 성장기에는 아침밥이 보약이지.”
박혜원의 말에 웃은 강진이 물었다.
“책은 재밌었어?”
강진의 말에 박혜원이 그의 손에 들린 책을 보았다.
“재밌었어요. 근데…….”
잠시 말을 멈춘 박혜원이 작게 고개를 저었다.
“이분 너무 안쓰러웠어요. 가족도 잃고, 나라를 위해 싸우신 거잖아요. 그리고 친언니 같은 복실 언니도, 충실한 검둥이 오빠도 죽고. 사랑하는 사람도 잃고. 자신을 가장 아껴주던 오라버니는…….”
박혜원이 한숨을 쉬었다.
“소희 아가씨가 그때 어떤 마음이었을지 생각하니까 눈물이 났어요.”
박혜원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다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 바쁘면 나하고 식당 가자. 식당 가서 오빠가 도시락…….”
도시락이라는 말을 하며 박혜원을 보던 강진이 웃으며 말을 바꿨다.
“주먹밥 만들어 줄게.”
“주먹밥요?”
“도시락 들고 다니면 무겁잖아. 비닐에다가 잘 싸서 만들어 줄 테니 점심에 그거 먹어. 가자.”
“네.”
거절하지 않고 냉큼 일어나는 박혜원과 함께 강진은 공원을 나섰다.
“아! 나도 서신대 출신인데.”
“오빠도 서신대예요?”
“응.”
“이야…… 오빠 공부 잘했구나.”
“공부를 해야 했거든.”
“왜요?”
“공부를 못하면 장학금을 못 받으니까.”
“그렇구나.”
박혜원이 고개를 끄덕이자, 강진이 문득 그녀를 보았다.
“너 연기해 볼 생각 있어?”
“연기요?”
“꽃 피어나다 드라마 되거든. 내가 보기에는 네가 소설 속 소희 아가씨 어린 시절 연기를 잘할 것 같아서.”
“에이, 연기는 아무나 하나요. 그리고 제가 무슨 드라마예요.”
“연기가 별거인가?”
잠시 멈춰 선 강진은 박혜원을 보며 양손을 모았다. 그러고는 눈빛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말했다.
“혜원이 이런 거 잘하잖아요.”
강진이 자신의 말투까지 따라하자 박혜원이 웃었다.
“그게 무슨 연기예요?”
박혜원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걸음을 다시 옮겼다.
“연기가 별거냐. 내가 아닌 다른 것을 흉내 내면 그게 연기지. 그리고 소설 속 어린 소희 아가씨는 당차고 남을 생각하는 사람이잖아. 그건 너하고 어울리니 연기가 아닌 네 감정을 표현하면 될 거야.”
“제가요?”
“왜, 아닌 것 같아?”
“저는 딱히 남을 생각하지 않는데요?”
박혜원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너 그날 가져간 음식 네가 먹으려고 싸 간 거야?”
“그건…… 아니에요.”
“그럼 남을 생각하는 거지. 남을 위해 음식을 가져온 거니까.”
“그런가?”
이야기를 나누며 가게를 향해 걸음을 옮기던 강진이 배용수를 보았다. 그 시선에 배용수가 한 걸음 먼저 나서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혹시라도 귀신들이 홀에서 핸드폰을 하고 있을까 싶어 배용수가 먼저 들어간 것이다.
배용수가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강진은 살짝 걸음을 늦췄다. 그래야 직원들이 정리할 시간을 벌 수 있으니 말이다.
느린 걸음으로 가게 앞에 도착할 때쯤 배용수가 밖으로 나왔다.
“정리됐어. 그리고 안에 상식 형 와 있어.”
‘상식 형이?’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의아한 눈으로 그를 보다가 가게 문을 열었다.
띠링!
풍경 소리와 함께 안으로 들어간 강진은 밥을 먹고 있는 강상식을 볼 수 있었다.
“형 왜 여기서 아침을 먹어요?”
강진의 물음에 강상식이 입맛을 다셨다.
“네 형수하고 싸웠다.”
“형수님하고 싸워요?”
“응.”
“왜요?”
강진이 보자, 강상식이 국에 만 밥을 후루룩 먹으며 말했다.
“형수하고 일본에 가자고 했거든.”
“일본요?”
“일본에 내가 정말 좋아하는 초밥집이 있거든.”
강상식의 말에 강진이 피식 웃었다.
“초밥 먹으러 일본 가자고 하신 거예요?”
“응.”
“역시 부자들은 생각이 다르기는 하네요.”
“뭐가?”
“혁이 형은 형수님하고 우동 먹으러 일본 갔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형은 초밥 먹으러 일본을 가잖아요.”
“우동 잘하는 집은 한국에도 많은데 뭐하러 일본까지 가? 한국에 정말 맛있는 우동 집 몇 곳 아는데 혁 형한테 알려 줘야겠네.”
“매형이 잘하는 곳을 몰라서 일본까지 가서 드시겠어요? 그냥 좋아하는 사람하고 같이 일본에 가서 우동 먹고 오는 그런 재미…….”
강진의 말에 강상식이 식탁을 손으로 쳤다.
“빙고! 정답!”
“네?”
“내 말이 바로 그거야. 내가 초밥이 정말 먹고 싶어서 일본을 가려고 했겠어? 같이 비행기도 타고 초밥도 먹고, 인근 좋은 온천 있으니 거기서 피로도 풀자는 거였지. 그런데 그 사람은 돈이 썩어 나는 것도 아닌데 무슨 일본까지 가서 초밥을 먹느냐고…… 내 마음도 몰라주고 말이야.”
툴툴거리는 강상식을 보고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아침도 못 얻어먹고 나온 거예요?”
“못 얻어먹기는. 너희 형수가 그럴 사람이냐? 아침 중요하다고 늘 차려 주는 여자야.”
“그런데요?”
강진의 말에 강상식이 입맛을 다셨다.
“밥상 차려 주고 같이 먹었는데 분위기가…….”
그는 긴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저었다.
“속이 안 좋아서 여기 온 거야.”
“그래도 같이 있으셔야죠.”
“먹고 다시 들어가야지.”
이야기를 하던 강상식은 박혜원을 보았다.
“안녕.”
강상식이 웃으며 손을 들자, 박혜원이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그런 박혜원을 흐뭇한 얼굴로 보던 강상식은 강진을 보았다.
“그런데 누구야?”
“손님이에요. 아! 아니지. 동생이에요.”
돈을 내고 밥을 먹은 것이 아니니 손님은 아니고 동생이었다.
“저 씻고 내려올게요. 드시고 싶은 거 있으면 용수한테 달라고 하세요. 혜원이도 저기 잠깐 앉아 있어.”
“난 이거면 됐어.”
강상식이 국에 만 밥과 김치를 보며 하는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2층으로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