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931
932화
2층에서 간단히 씻은 강진은 머리의 물기를 털며 1층으로 내려왔다. 그러다 강상식이 박혜원의 문제집을 앞에 두고 문제를 풀고 있는 것을 보았다.
“형이 공부 알려 주는 거예요?”
강진의 물음에 강상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천에서 서신대까지 공부하러 다닌다는데 기특하잖아.”
둘이서 이야기하다가 박혜원이 특유의 그 표정으로 부탁을 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가르칠 실력은 되는 거예요?”
강진이 웃으며 하는 말에 강상식이 눈을 찡그렸다.
“나 무시하는 거냐?”
“그렇다기보다는…… 부자들은 공부 열심히 안 할 것 같아서요.”
강진의 말에 강상식이 고개를 저었다.
“그거야 근본 없는 벼락부자들이 그러는 거고. 우리처럼 전통 있는 부자들은 자식들 공부 정말 빡세게 시켜. 쌓는 것보다 쌓은 것을 지키는 것이 더 어렵거든.”
“그건 그렇죠.”
“그래서 우리 같은 2세, 3세들은 집에서 엄청 공부시켜.”
말을 하면서 문제를 풀어 주던 강상식이 피식 웃었다.
“그런데 요즘 중학교 수학 어렵네.”
“그래요?”
“애들한테 벌써 이런 것을 가르치나 싶다. 아, 이 문제는 이렇게 풀면 돼.”
“고맙습니다.”
박혜원은 배운 걸 토대로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강진이 그것을 볼 때, 주방에서 배용수가 말했다.
“상식 형한테 김밥 다 됐다고 이야기 좀 해.”
“김밥?”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의아한 듯 강상식을 보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김밥 다 됐대?”
“네.”
“오케이! 그럼 나는 여기까지.”
강상식은 박혜원을 한 번 봤다가 강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오늘 어디 봉사 가냐?”
“갈 거면 어제 이야기했겠죠. 오늘은 주방 청소도 할 겸 직원들하고 좀 쉬려고요.”
“하긴, 매주 갈 수는 없지.”
그에 강상식이 박혜원을 보았다.
“그럼 너도 오늘은 서신대 가지 말고 이 오빠한테 공부 좀 알려 달라고 해.”
그러고는 강상식이 주방에 들어가자, 박혜원이 그를 보다가 강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돼요?”
박혜원이 초롱초롱 쳐다보자, 강진이 피식 웃었다.
“그래도 되기는 하는데…… 나한테 배워도 되겠어?”
“오빠도 서신대 나왔는데 설마하니 중학교 영수 못 가르치겠어요?”
서신대 간판을 믿는다는 말에 강진이 피식 웃었다.
“그럼 그렇게 해.”
“아싸!”
박혜원은 방긋 웃으며 말했다.
“오래 귀찮게는 안 할 거예요. 제가 모르는 부분들만 적어 왔으니 그것만 알려 주시면 갈게요.”
“천천히 가도 돼.”
둘이 이야기를 나눌 때, 강상식이 쇼핑백을 들고 나왔다.
“그런데 김밥은 왜요?”
“내 속이 안 좋으면 지나 씨도 속 안 좋을 거 아니야.”
“아…… 형수님 가져다드리게요?”
“날이 좋아서 지나 씨하고 일본에 놀러 가고 싶었는데 그건 안 될 것 같고…… 경마장에 놀러나 가야겠어.”
“경마장요? 경마하시게요?”
“경마장에 꼭 경마하러 가나. 경마 공원이라고 공원 잘 해 놨어. 그리고 거기 아는 사람도 있으니 말도 좀 구경하고. 아, 경마장 안 가 봤으면 같이 가 볼래?”
“저는…….”
말을 하던 강진이 문득 박혜원을 보았다. 박혜원은 ‘말’이라는 단어에 호기심이 들었는지 이쪽을 보고 있었다.
“경마장 가고 싶어?”
강진의 말에 박혜원이 수학책과 함께 있는 종이를 보았다. 종이에는 오늘 물어보려고 한 문제들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저는…… 이거 공부해야 하는데…….”
머뭇거리며 말하는 박혜원을 보며 강진이 웃었다.
“그럼 경마 공원 가자. 공원이면 경치 좋은 곳에 의자도 있겠지. 거기에서 내가 공부 알려 줄게.”
강진의 말에 박혜원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저 서신대 가서 할게요.”
박혜원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미안해서 그런 거면 괜찮아. 같이 가자.”
“오빠한테 이미 많이 받았어요. 호의 여기까지만 받을게요.”
“나는 괜찮은데…….”
“오빠가 정말 괜찮아하는 거 저도 알아요. 근데 제가 안 괜찮아요.”
강진이 한 번 더 권하려고 하자, 박혜원이 고개를 저었다.
“유트브 짤에 이런 것이 있더라고요.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저는 오빠가 베푸는 호의를 기분 좋게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러니 오늘의 호의는…….”
박혜원은 강상식이 들고 있는 쇼핑백을 보았다.
“저 김밥까지만 할게요.”
“김밥?”
“설마 김밥을 이 인분만 싸지는 않았을 거 아니에요?”
박혜원의 똑 부러지는 말에 주방에서 배용수가 웃었다.
“그래. 혜원이 말이 맞다. 김밥 싸는데 이 인분만 만들었겠냐. 몇 줄 더 쌌으니까 그거 챙겨 준다고 해.”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피식 웃고는 말했다.
“그래. 오늘의 호의는 여기까지 하자.”
강진은 주방으로 들어갔다. 배용수가 김밥을 썰고 있는 걸 보던 강진은 김밥을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음…… 맛있네. 근데 시금치 안 넣었어?”
“바로 먹을 거 아니면 날씨 더울 때는 시금치 조심해야지. 시금치는 금방 상하니까.”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밥이 상하면 대부분 시금치가 원인이었다. 시금치가 가장 먼저 상하니 말이다. 그리고 시금치가 빠져도 김밥 맛은 좋은 편이었다.
김밥을 하나 더 집어 본 강진이 말했다.
“그런데 계란을 채 썬 거야?”
“채보다는 그냥 얇게 썰어서 많이 넣은 거야.”
“계란 김밥이네.”
고개를 끄덕인 배용수는 김밥을 통에 담으려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은박 포일을 꺼냈다.
“거기다 담게?”
“통에 주면 다음에 가져와야 하잖아.”
“그러니 통에 담아 줘.”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그를 보다가 피식 웃고는 플라스틱 통을 꺼내 거기에 김밥을 담았다. 통에 담아야 다음에 돌려주러 다시 올 테니 말이다.
“어린애한테 이런 작업하지 말고 아가씨한테 이런 작업해라.”
“작업?”
“아가씨한테 반찬 같은 거 싸서 주면…… 그 통 다음에 돌려주러 한 번 더 오지 않겠어? 그리고 고맙다고 아가씨가 커피나 영화라도 한 번 쏠 수도 있고.”
배용수가 말한 작업의 뜻을 이제야 안 강진이 피식 웃었다.
배용수는 통에 김밥을 싸고는 다른 아주 작은 통에 깍두기를 조금 넣었다. 김치도 좋지만 아삭하게 씹으라고 말이다.
그러고는 깍두기가 들어간 통을 랩으로 조심히 감쌌다.
“왜?”
“혹시 냄새날 수도 있잖아.”
밀폐용기이긴 하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니 랩으로 한 번 더 감싼 것이다. 그것을 쇼핑백에 넣으려던 배용수는 고개를 젓더니 검은 봉투에 넣어서는 내밀었다.
“쇼핑백에 안 넣고?”
“가방 가져왔잖아. 애들은 손에 뭐 들고 다니면 잃어버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피식 웃었다.
“혜원이 성격이면 전혀 그럴 걱정은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가방 있는데 굳이 다른 곳에 넣어갈 필요는 없겠다. 손은 가벼워야지.”
강진은 봉투를 들고는 홀로 나왔다. 홀에서는 강상식과 박혜원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럼 오성화학 대표님이세요?”
“그럼 내가 거짓말을 할까?”
웃으며 강상식이 자기의 명함을 주자, 박혜원이 대단하다는 듯 그를 보았다.
“정말 대단하세요.”
“그래?”
박혜원의 반응에 강상식은 기분이 좋았다.
어른들이 이런 말을 하면 아부처럼 느껴지는데, 어린아이가 대단하다고 말하니 진심처럼 느껴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아부였다. 박혜원은 보통 어린애가 아니니 말이다.
“제 꿈이 부자가 되는 건데, 부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글쎄. 나는 태어날 때부터 부자여서.”
강상식이 농담 삼아 한 말에 박혜원이 한숨을 쉬었다.
“역시…… 부자가 되는 지름길은 수저군요.”
“수저? 하하하! 그래. 뭐 금수저라고 할 수 있지.”
“무슨…… 오성화학 대표면 다이아몬드 박힌 금수저죠.”
박혜원의 말에 강상식이 웃으며 그녀를 보다가 말했다.
“그런데 꿈이 부자라. 부자 되려고 공부 열심히 하는 거야?”
“네.”
“요즘 세상은 공부만 잘해서는 부자 되기 어려울 텐데?”
“알아요.”
“알아?”
“요즘 세상에 공부를 잘해도…… 잘 해야 칠 급 공무원이고 못 하면 대기업 직장인이죠.”
“왜? 의사하고 판검사도 있잖아.”
“의사는 돈 잘 벌 때까지 너무 오래 걸려요.”
박혜원의 말에 강상식이 의아한 듯 그녀를 보았다.
“그래?”
“그럼요. 대학 육 년에 인턴하고 레지…… 뭐도 해야 한댔어요. 그렇게 돈 벌 나이가 되려면 서른은 넘어야 해요. 근데 서른 되면 끝인가요? 개업 안 하면 그냥 돈 많이 받는 직장인인 거죠.”
‘할아버지 호강시켜 주려면 서른은 너무 늦어.’
뒷말을 속으로 삼키며 박혜원이 입맛을 다셨다.
할아버지가 더 늙고 약해지기 전에 자신이 돈을 벌어서 호강을 시켜 주고 싶었다. 첫 월급 받으면 할아버지 내복도 사 드리고 싶고 용돈도 주고 싶었다.
그리고 집도 사서 할아버지가 편하게 지내게 하고 싶었다.
하고 싶은 게 많다 보니 박혜원은 돈을 빨리 벌고 싶고, 많이 벌고 싶었다. 그런데 의사는 시간이 너무 걸리니 패스였다.
박혜원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강상식은 멍하니 그녀를 보았다.
애하고 대화를 한다 생각을 했는데 의외로 어른스러운 말이 나오자 놀란 것이다.
“너는…… 뭔가 다르구나?”
강상식의 말에 박혜원이 웃었다.
“저는 일반 어린이가 아니랍니다.”
“그럼?”
“저는 꿈을 꾸고, 꿈을 향해 노력하는 어린이입니다.”
박혜원의 말에 강상식이 웃으며 그녀를 보다가 말했다.
“그래. 네 꿈이 꼭 이뤄졌으면 좋겠다.”
“감사합니다.”
박혜원의 말에 강상식이 웃으며 강진을 보았다.
“그럼 너는 경마장 갈 거야?”
“오늘 저는 안 되겠네요.”
“왜?”
“혜원이 서신대에 데려다준다고 했거든요.”
강진의 말에 박혜원이 급히 고개를 저었다.
“저 혼자 가도 돼요. 경마장 가세요.”
“아니야. 너하고 한 약속이 먼저이니 네 약속을 지켜야지. 그리고 나도 학교에 볼일도 있고.”
“볼 일요?”
박혜원이 보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학교에 후배들 있어. 후배들 좀 보고 오려고. 그럼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그러고는 강진이 강상식을 보았다.
“일단 경마공원 위치가 어디예요?”
“왜, 올 거야?”
“혜원이 데려다주고 오랜만에 저도 힐링 좀 하려고요. 그리고 저희 직원들도 말 좋아할 것 같고.”
“하하하! 알았어. 그럼 나는 우리 아내님에게 기분 풀라고 뇌물 주고 와야겠다.”
강상식이 웃으며 쇼핑백을 들고는 가게를 나가자, 강진이 웃었다.
‘정말 부부가 되어 가시네.’
사랑하는 사람끼리 결혼을 해도, 평생을 남으로 살아온 두 사람이니 차이는 존재할 것이다. 그 차이 때문에 다투기도 할 것이고 말이다. 그 다툼을 통해 서로의 차이를 좁혀 나가는 것이 부부였다.
아마 이번이 두 사람이 처음으로 다툰 날이니…… 앞으로는 이 일로는 거의 싸우지 않을 것이다. 뭐 때문에 화를 내는지 알게 되면 조심할 테니 말이다.
강진은 차 키를 챙기고는 박혜원을 보았다.
“가자.”
“네.”
박혜원은 가방에 공부하던 것들을 챙겨 넣고 김밥이 든 봉투도 안에 넣었다.
‘오늘 점심 굳었다.’
웃으며 짐을 챙긴 박혜원은 서둘러 강진의 뒤를 따르려다가 주방을 들여다보았다. 가기 전에 김밥을 싸준 분에게 감사 인사를 하려고 말이다.
그런데…… 주방에 아무도 없었다.
“어?”
박혜원은 의아한 눈으로 주방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