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974
975화
할머니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강진은 배용수를 보았다. 배용수는 어느새 주위에서 잔가지를 모아다가 간이 아궁이에 넣고는 불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무거운 이야기에서 화제를 돌리려고 강진이 배용수에게 말을 걸었다.
“불 피우게?”
“돼랑이가 감자 가져오면 그거나 좀 삶아 먹게.”
“감자라…… 소금 살짝 쳐서 먹으며 맛있겠다.”
강진의 말에 이혜미가 다가와 말했다.
“저는 소금보다 설탕이 좋던데.”
“설탕도 좋죠. 아니면 감자 으깨서 설탕 넣어 먹을까요?”
“으깨지 않아도 괜찮아요. 껍질 까서 먹는 재미가 있으니까.”
이혜미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부드럽게 감자 으깨서 먹어도 좋은데, 뜨거운 감자 호호 불면서 까먹는 것도 좋죠.”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아궁이를 보다가 말했다.
“그럼 일단 솥부터 좀 씻어야겠다.”
“같이 하자.”
“아니야. 너는 나무 모아.”
그러고는 강진이 할머니들을 보았다.
“제가 감자 삶아 드릴게요.”
“아주 맛있겠네.”
“우리 산에서 나는 감자가 맛이 좋아.”
할머니들이 웃으며 하는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궁이에 있던 가마솥을 들었다.
“끄응!”
무쇠 가마솥인 만큼 상당히 무거워 절로 신음이 나왔다. 그 모습에 할머니들하고 있던 황민성이 다가왔다.
“강진이 힘 세네.”
“‘이 정도쯤이야!’라고 하고 싶지만…… 좀 들어 주시죠.”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웃으며 가마솥 한쪽을 들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가마솥을 한쪽씩 잡고 물가로 걸어갔다.
“이거 무겁네.”
“무쇠니까요.”
“그런데 굳이 이렇게 할 필요 있어? 푸드 트럭에 다 있잖아.”
가마솥 말고 푸드 트럭 냄비와 가스를 쓰면 되지 않느냐는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이런 도시 사람 같으니.”
“응?”
“이런 곳에 왔으면 장작으로 불도 때우고 가마솥에 음식도 해야 재미가 있는 거죠. 그리고…… 이렇게 해 먹으면 더 맛도 있어요.”
“그래?”
“그럼요.”
강진은 바가지로 물을 떠서 가마솥에 부었다.
촤아악! 촤아악!
그러고는 주위에 있는 지푸라기와 흙을 쥐어서는 가마솥에 대고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걸로 씻어?”
“원래 이렇게 하는 거예요.”
지푸라기와 흙으로 가마솥을 박박 문지른 강진이 마지막으로 물을 부었다. 그렇게 하자 가마솥이 깨끗해졌다.
가마솥을 닦는 강진을 보던 황민성이 마을을 둘러보았다.
“정말 인적도 없고…… 귀신들만 사는 마을이구나.”
“그러니 전쟁이 났을 때도 몰랐던 거죠.”
“전쟁의 아픔이구나.”
황민성의 말에 강진도 마을을 보았다. 마을의 집들은 거의 다 허물어진 낡은 폐가들이었다.
할머니들이 지내는 집과 만복의 장난감들이 있던 집만 그나마 형태가 유지된 상태였다.
신수 형제들과 강진이 꾸준히 와서 보수를 하고 낡은 것을 치웠으니 말이다. 그래도 버려진 마을이라는 건 확실했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며 마을을 볼 때, 돼랑이가 식구들과 함께 달려왔다. 그들은 주위를 보다가 강진을 발견하더니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입을 벌려서는 감자들을 뱉어냈다.
후두둑! 후두둑!
돼랑이가 감자를 뱉어내자, 다른 새끼들도 감자를 뱉어냈다. 그에 강진이 웃으며 황민성을 보았다.
“애들 먹을 것 좀 주세요.”
꾸잇!
강진의 말에 돼랑이가 황민성에게 가서는 꼬리를 흔들었다. 그 모습에 황민성이 웃으며 그 머리를 쓰다듬었다.
“누가 보면 덩치 큰 개인 줄 알겠다.”
꼬리를 흔드는 것에 웃은 황민성이 강진을 보았다. 강진은 돼랑이 식구들이 물고 온 감자들을 물에 넣고는 씻기 시작했다.
그걸 보던 황민성이 작게 입맛을 다셨다. 돼지 입속에 있다가 나온 것이라 조금 꺼림칙했다. 그런데 강진이 태연히 씻는 것을 보니…….
‘하긴. 산삼도 애들이 캐서 온다는데 어차피 그것도 애들 입속에서 나온 거겠지.’
황민성이 고개를 젓고는 돼랑이 등에 올라탔다.
“자,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꾸잇!
돼랑이가 서둘러 뛰어가자, 새끼들도 그 뒤를 따라갔다.
금세 음식 봉투 앞에 도착한 황민성이 이걸 어디에 둬야 하나 생각을 할 때, 돼랑이가 어디선가 솥을 하나 물고 왔다.
척 봐도 엄청 무거울 듯한 솥을 물고 온 돼랑이가 그것을 바닥에 툭 던졌다.
쿵!
생긴 것만큼 묵직한 소리를 내며 떨어진 솥을 보던 황민성이 돼랑이를 향해 말했다.
“근데 이거 더러운데 씻어야 하지 않아?”
꾸잇! 꾸잇!
황민성의 말에 돼랑이가 고개를 저으며 발로 솥을 쳤다. 마치 어서 음식이나 담으라는 듯 말이다.
그 모습에 황민성이 피식 웃으며 가지고 온 봉투들을 열어 음식들을 부었다.
‘하긴, 흙 속에 있는 것도 파먹는 애들인데…….’
황민성이 붓는 것은 과일도 있고 닭고기도 있었다. 거기에 사료도 있었고 말이다.
비닐들을 뜯어 식재들을 붓자, 돼랑이와 돼순이가 솥에 머리를 박고 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황민성은 조금 떨어져 있는 새끼들을 보았다.
주르륵! 주르륵!
새끼들은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돼랑이와 돼순이가 먹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너희들은 같이 안 먹어?”
황민성의 말에도 새끼들은 멍하니 부부를 볼 뿐이었다. 그에 황민성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 나뭇가지를 주워 온 배용수가 말했다.
“애들 어릴 때는 돼랑이하고 돼순이가 밥을 나중에 먹었어요.”
황민성이 보자, 배용수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딱 저런 자세로 애들 밥 먹는 거 보다가 애들이 밥을 다 먹으면 그제야 밥을 먹었어요.”
배용수가 애들을 가리키자, 황민성도 애들을 잠시 보다가 돼랑이를 보았다.
“이제는 애들이 커서 어른부터 먹는 거구나.”
“그런 셈이죠.”
배용수의 말에 황민성이 신기한 듯 돼랑이 가족들을 보다가 봉투에서 사과를 몇 개 꺼내서 새끼들에게 보여 주었다.
“받아먹을 수 있지?”
꾸잇!
던지기만 하라는 듯 우는 새끼들의 모습에 황민성이 사과를 하나씩 던져 주었다.
덥석! 아그작! 덥석! 아그작!
새끼들은 사과를 받자마자 단숨에 통째로 씹어 먹었다. 황민성이 그것을 보며 웃자, 배용수가 말했다.
“형, 불 피워 본 적 있으세요?”
“불?”
“아궁이 불요.”
“없는데?”
“한 번 해 보실래요?”
“그러지 뭐.”
황민성의 말에 배용수가 푸드 트럭에서 가스 점화기와 신문지를 가지고 왔다.
“얇은 것들부터 불을 붙이고 좀 큰 것들 올리면 불 잘 붙어요.”
“알았다.”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점화기와 신문지를 보다가 아궁이를 보았다. 아궁이에 불을 붙여 보는 것은 정말 처음이었다.
도시에서만 살았다 보니 이런 걸 해 볼 일이 없었다. 하지만 딱히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불 정도야.’
신문지를 둘둘 말은 황민성이 잔가지들을 아궁이 안에 집어넣었다.
툭! 툭!
조금 두껍거나 긴 잔가지들을 부러뜨려서 넣은 황민성이 조금 두꺼운 나무들을 그 위에 올렸다.
‘이제 불 좀 붙으면 더 넣든가 하면 되겠지.’
황민성은 신문지에 불을 붙여서는 잔가지 밑으로 조심히 넣었다.
잔가지 밑에서 신문지가 화르르 타오르자, 황민성이 주위를 보다가 주변에 흩어져 있는 마른 풀과 아주 작은 나뭇조각들을 모아서는 휙휙 하고 다 던져 넣었다.
“형 불 잘 붙이셨네요.”
강진이 솥을 들고 오는 것에 황민성이 웃었다.
“불붙이는 것이 뭐 어렵나.”
“어렵죠.”
“그래?”
“전 처음 불붙일 때 잘 안 붙더라고요.”
“그래? 나는 용수가 가져다준 것들로 하니 금방 되던데?”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아궁이 안을 한 번 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용수가 형 처음이라고 잔가지들을 많이 가져왔나 보네요.”
강진이 아궁이에 솥을 올리려 하자, 황민성이 그것을 도왔다.
간이 아궁이에 솥을 올린 황민성이 솥 안을 보았다. 안에는 감자들이 있었다.
“물은?”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형 이것만 해도 엄청 낑낑대고 들고 왔는데 물까지 담으면 저 못 들어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웃었다.
‘하긴, 빈 솥도 무거운데 거기에 물까지 들어가면 못 들겠네.’
“그럼 물은 담아야겠네.”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푸드 트럭에서 물통을 들고 나왔다.
“물도 저기서 뜨는 거야?”
“네.”
“근데 저 물 먹어도 되는 거야?”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라 깨끗해요.”
강진은 시냇물을 손으로 떠서는 마셨다.
“뭐 떠다니던데?”
“정수기 물 같을 수는 없죠. 나뭇잎도 떠 있고 먼지도 있고 그런 거죠.”
그러고는 강진이 바가지로 물을 떠서 내밀었다. 그에 황민성이 바가지를 받아서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가져다 대고는 마셨다.
그 모습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형이 은근히 귀하게 자라셨나 봐요.”
“응?”
“보기에는 흙탕물도 벌컥벌컥 마실 것 같은데 말이에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웃으며 바가지에 남은 물을 버렸다.
촤아악!
시냇물 위로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을 보며 황민성이 말했다.
“정말 마셔야 하면 흙탕물 아니라 더한 것도 마시겠지만 그럴 일이 있나. 그리고 형이 은근 도시 체질이거든. 도시 외에는 살아 본 적이 거의 없어.”
“그랬군요.”
말을 하던 황민성이 문득 강진을 보았다.
“두식이 옆에 귀신 붙은 거 알지.”
“알죠.”
“그 애 승천했다.”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았다.
“승천요?”
“얼마 전에 나한테 고맙다고, 우리 형님 바르게 잘 사시는 거 보니 너무 기쁘다고 하더니 가더라.”
“가셨구나.”
“나중에 두식이 데리고 그 수현이 집에 한 번 가려고 했었는데…… 그전에 갔네. 집에 인사나 하고 가지.”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갈 수 있을 때 가는 것이 가장 좋죠.”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래도 두식이가 인복이 있어. 죽어서도 형님으로 모시는 동생도 있고 말이야.”
“부러우세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나무를 주워 오는 배용수를 보았다.
“부럽기는. 나도 동생들이 이렇게 있는데.”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거기에 산 동생들도 둘이나 더 있잖아요.”
“맞지.”
황민성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때, 잔가지를 놓던 배용수가 강진에게 소리를 질렀다.
“불 켜 놓고 거기서 뭐해! 감자 타! 빨리 물 받아 와!”
배용수의 외침에 강진이 “이크!” 하고는 급히 바가지로 물을 떠서 통에 담기 시작했다. 가마솥에 넣어 둔 감자가 타기 전에 서둘러 물을 담아 가야 했다.
뜨거운 감자를 양손으로 쪼개자 하얀 속살이 드러나며 뜨거운 김이 올라왔다.
화아악!
“으 뜨거!”
양쪽으로 쪼개진 감자를 후후 부는 황민성을 보며 강진이 말했다.
“형 소금 넣어 드세요.”
강진이 굵은소금을 감자에 톡톡 올리자, 황민성이 감자를 입에 넣었다.
“하아! 후우!”
길게 숨을 내뱉으며 입안의 열기를 뺀 황민성이 웃었다.
“맛있다.”
황민성의 말에 강진도 감자를 쪼개 소금을 올리고는 입에 넣었다.
감자의 고소한 맛과 굵은소금의 짠맛이 같이 느껴지는 것이 묘하게 맛이 좋았다.
‘맛있네.’
강진은 주위에서 같이 감자를 먹고 있는 할머니 귀신과 한끼식당 식구들을 보았다. 별거 아닌 찐 감자지만, 이렇게 모여서 먹으니 맛이 더 좋은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