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equaled Scholar RAW novel - Chapter 110
5권 16화
이튿날 아침.
감숙성은 발칵 뒤집혔다.
백 명이 넘는 영풍상단의 사람들이 하룻밤 사이에 몰살을 당했다. 그것도 사지가 잘리고 전신이 난도질당한 끔찍한 사건이었다.
북원의 후예들과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고 있는 감숙성이지만 민간에서 이와 같은 끔찍한 사건은 처음이었다. 백성들은 커다란 충격에 빠져 헤어나질 못했다.
난주 관아에서도 유례없이 대대적인 조사를 벌였다.
며칠 후, 난주에 있던 다섯 개 상단이 일제히 문을 닫고 폐업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난주 관아에서 그들에게 혐의를 두고 조사를 벌였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뚜렷한 혐의가 나오지 않은 채 희대의 살인극이 점점 미궁으로 빠져들 무렵, 결국 난주 관아는 증거를 조작해서 범인을 만드는 것으로 사건을 종결시키는 방법을 선택했다.
결국 다섯 개 상단이 서로 내통해서 영풍상단을 공격했던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三
천마성의 내전.
마천룡을 포함한 십여 명의 원로들이 원형 탁자를 둘러싸고 앉아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겨우 상단의 짓이라고?”
“영풍상단의 뒤에 우리가 있다는 걸 천하가 알고 있거늘, 그자들이 간이 배 밖으로 나오지 않고서야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이오?”
“성주님, 이건 분명 백안문의 짓입니다.”
“그렇습니다, 성주! 놈들은 무황의 죽음을 우리에게 덮어씌우고 있습니다.”
“검제와는 이십 년 동안 연락이 끊겼는데, 어찌 무황의 죽음 뒤에 우리가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이제 전쟁입니다. 우리도 당장 응징을 해야 합니다.”
원로들의 얼굴에는 분노가 어려 있었다. 회의는 연신 백안문에 대한 성토로 변했다. 영풍상단이 처참하게 무너진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누구라도 감정이 격화될 수밖에 없었다.
‘으음…….’
마천룡은 두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난주 관아에서 내린 결론은 한마디로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백안문의 소행이라 단정 짓는 것도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아직 확실한 물증이 없었다. 그저 심증뿐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백안문과 천마성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를 수도 있었다.
‘아우가 왜 그랬단 말인가?’
마천룡의 의문은 검제에게 향했다. 유채양이 향후 닥칠 파국을 예상하지 못했을 리 없었다. 헌데도 북리후와 양패구상을 했다면 필경 말 못할 다른 이유가 있을 터였다.
‘설마 군수 업체가?’
무림에 전쟁이 일고 피바람이 불면 가장 이득을 볼 세력은 바로 군수 업체였다. 그리고 은현장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었다.
허나, 유채양의 성정에 선후인의 협박에 굴할 리 없었다.
“성주!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전쟁을 허락해 주십시오.”
장로들이 마천룡을 재촉했다.
그들은 모두 강경파들이었다. 원래 마도의 고수들은 패도적인 기질이 강한 편이다. 그중에서도 강경파들의 성정은 특히 호전적이고 패도적이었다.
그런 그들이 이번 도발을 가만히 넘어갈 리 없었다. 이는 천마성의 기반을 뿌리째 뒤흔드는 심각한 도발이었다.
사태가 더 심각한 것은 온건파들이었다. 천마성 내에도 온건파가 있었지만, 이번 일은 그들 역시도 강경파와 같은 입장이었다.
마천룡의 고민은 점점 깊어졌다.
강경파와 온건파는 한입으로 전쟁을 외치고 있었다.
허나, 그의 입에서는 끝내 전쟁 승인이 떨어지지 않았다.
“물증이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백안문을 범인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성급한 일. 일단 증거부터 찾아야 할 것이오.”
회의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온건파는 못마땅했지만, 그래도 마천룡의 의견을 따라 주었다.
하지만, 강경파는 불만이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들은 예전부터 마천룡이 평화 노선을 추구하려는 행동을 보이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마도면 마도답게 강경하고 패도적으로 일을 처리해야 하건만, 마천룡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마치 정파의 고수 같았다. 더 이상 천하 무림을 일통하겠다는 뜻도 없어 보였고, 계집아이들처럼 우유부단하게 판단하기만 했다.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지 않소?”
“그게 무슨 소리요?”
“성주님은 너무 늙었소. 원래 사람이 늙으면 우유부단해지고, 욕심이 없어지는 법 아니오?”
“서, 설마 성주님을……?”
“아마 그대들이 생각하는 대로일 것이오.”
적청은 더 이상 야심을 숨기지 않았다. 광동적씨마가는 천마성을 떠받치는 열 개의 기둥 중 세력과 힘이 가장 강하다.
적청은 광동적씨마가의 당금 가주였고, 마천룡 다음으로 천마성의 이인자였다.
그는 오래전부터 마천룡의 그늘에 가려 이인자로 지내왔지만, 원래 야망이 크고 욕심이 많아서 평생 이인자로 머물 성격이 아니었다.
“그대들의 생각은 어떻소?”
그의 처소에는 강경파의 주축 인물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마인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눈치를 살폈다.
적청의 말은 한마디로 반란을 일으키자는 것이었다. 당연히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마천룡의 무공은 무황 북리후 다음으로 무림에서 평가받고 있었다. 더구나 그를 따르는 자들도 많아서 반란을 일으켜도 쉽게 성사되기는 어려울 것이었다.
“성주의 최근 행보는 우리도 못마땅합니다.”
“하지만, 성공 가능성이 없는 일에 운명을 맡길 수는 없는 노릇 아니오?”
“왜 성공하지 못한다는 생각들을 하시오?”
“무슨 대안이라도 있는 겁니까?”
“있지. 그것도 아주 확실한.”
후후!
적청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배신이 흐르는 밤이었다.
적청의 얼굴은 야망의 기운으로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四
“군휘는 지금 어디 있느냐?”
“그, 그게……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방 안에 계셨는데…… 어딜 가신 것이지?”
시녀들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다. 그녀들도 지금 마군휘를 찾기 위해 처소를 쥐 잡듯 돌아다니던 중이었다.
끙!
“이런 한심한 놈! 하필 이런 급박한 순간에…….”
마천룡의 입에서 절로 앓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마군휘는 지금 한 달 동안 외출을 금지당한 상태였다.
매번 여자가 화근이었다.
이번에는 단단히 주의를 주었기 때문에 방 안에서 꼼짝하지 않고 무공을 연마할 줄 알았다. 기간도 한 달밖에 되지 않았다.
허나, 마군휘는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겨우 한 달을 참지 못하고 또다시 계집질을 하러 도망친 게 틀림없었다. 아마 지금쯤이면 색주가를 휘젓고 다니든가, 반반한 계집을 찾으려고 한창 정신이 없을 것이었다.
마천룡은 크게 노했다. 자고로 핏줄일수록 더 엄하게 교육을 시켜야 했는데, 어려서부터 뛰어난 자질을 보인 탓에 너무 오냐오냐 기른 것이 화근이었다.
그는 집법당주를 소환했다.
“당장 군휘를 잡아 오시오. 내 이번엔 이놈을 그냥 두지 않을 것이오.”
“소성주께서 과연 순순히 따라오시려 하겠습니까?”
법으로 다스리려 했다면 마군휘는 목이 열 개라도 부족했을 것이었다.
“무력을 사용해도 좋소. 몸 어디 한 군데 부러져도 좋으니 무조건 끌고 오란 말이오.”
“휴! 알겠습니다.”
임표는 한숨부터 나왔다.
백안문과 전쟁을 하느니 마느니 하는 상황에서 집법당주가 한가하게 철부지를 데리러 나가야 하는 자체가 우스운 일이었다.
마천룡은 지금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강경파에 이어 온건파까지 강경하게 나오는 이상, 자신 혼자 계속 전쟁을 미루는 것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였다.
원래는 백안문으로 보내 북리자령을 만나 보게 하려고 했었다. 과연 이번 단엽표국 사건의 뒤에 백안문이 있는지 알아보려면 그것보다 더 확실한 조치도 없었다.
더구나 마군휘와 북리자령은 오 년 전 혼인 이야기가 돌던 사이이기도 했고, 북리자령이라면 마군휘의 바람기를 잠재울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번이 어쩌면 가장 적절한 시기일지도 몰랐다.
백안문은 북리후의 죽음으로 풍운에 휩싸여 있는 상태. 북리자령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도움이 필요할지 모른다.
‘무황이 그렇게 죽은 데에는 분명 보이지 않은 손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는 자신의 의제의 자질과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고 있었다. 허나, 이미 검을 꺾은 지 이십 년이나 되었고, 과연 무황 북리후를 넘어설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사실 유채양이 나선 것부터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틀림없다. 이번 일에 은현장과 선후인이 개입되었을 것이다.’
마천룡이 은현장의 진정한 힘을 알게 된 것이 그리 오래지 않았다. 그전에는 강호를 일통하고 북리후를 넘어서기 위해 계속 팽창을 부르짖었다. 사사건건 백안문과 마찰을 일으키고 끊임없이 경쟁을 했던 것도 강호를 일통하겠다는 야망 때문이었다.
하지만, 천마성과 백안문의 경쟁과 긴장 뒤에 은현장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부터 그는 자신이 한낱 꼭두각시였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한때는 힘으로 은현장을 밀어 버릴 생각까지도 했다.
허나, 은현장의 힘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열 배는 더 강했다. 더구나 천마성의 강경파들 대부분이 알게 모르게 은현장과 연관이 되어 있었다.
은현장과 전쟁을 벌이면 그들 모두 자신에게 칼을 들이밀지도 몰랐다. 결국 은현장과의 전쟁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북리후와 평화 협정을 맺는 것이었지만, 끝내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마천룡은 그제야 자신이 천하무림제일 고수를 자처하면서도 자신의 의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은현장이 사라지지 않는 한 백안문과 천마성은 영원히 그들의 꼭두각시놀음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도 이는 엄연한 현실이었다.
북리후가 죽은 건 어쩌면 천마성과 끊임없이 평화 협정을 시도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그들의 칼이 다음으로 자신을 향하는 건 필연적인 일.
그래서 마군휘에게 자신의 사후를 대비시킬 생각이었다. 북리자령과의 혼인은 그 연장선상이었다.
하지만, 마군휘는 차마 자신과 천마성의 미래를 걸 수 없을 정도로 난봉꾼에 철부지 애송이였다.
‘앞으로 천마성과 강호 무림이 어떻게 흘러갈지 심히 걱정이로구나!’
마천룡의 탄식에 당장이라도 천장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 것 같았다.
五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난주에서 천 리나 떨어진 주천에 자리한 단엽표국이 멸문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백여 명의 식솔들과 표사들은 전멸했고, 심지어는 개미 새끼 한 마리 남지 않았다. 시체는 심하게 난도질당해 표국은 온통 피바다로 변했다.
영풍상단과 단엽표국의 멸문으로 인해 감숙성의 인심은 흉흉하게 변했다.
백성들은 공포에 벌벌 떨어야 했다.
해가 떨어지면 곧바로 집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질 않았다.
거리는 사람의 발길이 뚝 끊어지게 되었고, 자연스레 객잔이나 기녀원 등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형편이 좋지 못한 조그만 가게들은 폐업을 하거나 파산했고, 규모가 큰 가게들도 일꾼들을 줄이면서 부피를 축소해 나갔다.
희대의 살인극은 난주를 시작으로 하여 감숙성 전체로 퍼져 나갔고, 상업적인 기반까지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일반 백성들은 단순히 음지의 세력 싸움에 불과하다 생각했지만, 무림에 조금이라도 발을 들여놓은 사람들은 단엽표국의 멸문 뒤에 천마성이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단엽표국은 백안문의 지단 중 하나였고, 난주의 자금책을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천마성에서 복수한 것일 거야.”
“누가 아니래? 이것으로 영풍상단을 궤멸시킨 자들이 백안문이라는 것이 밝혀진 셈이지.”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이대로 전쟁이 나는 걸까?”
“백안문과 천마성은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 아닌가? 전쟁은 필연적인 일이겠지.”
“이거 정말 큰일이로군. 백안문과 천마성이 싸우면 강호 무림은 어떻게 되는 거야?”
“수많은 사람들이 죽겠지.”
“어쩌면 사혈방이 중간에서 이득을 볼 수도 있고.”
“쯧쯧, 재수 없는 놈은 모진 놈 옆에 있다 날벼락 맞는다고, 당분간 몸을 사리는 게 좋겠네. 괜히 발 한번 잘못 들였다가는 골로 가는 수가 있겠어.”
언제 폭발할지 모를 일촉즉발의 상황.
강호 무림은 그야말로 거대한 화약고처럼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우려는 끝내 현실이 되었다. 백안문과 천마성의 지단이 인접한 곳에서는 크고 작은 전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그들은 서로 복수를 다짐하며 공격을 시작했고, 수많은 사상자가 속출했다. 복수는 복수를 불렀고, 살인은 더 큰 살인을 불러왔다. 이미 본단의 통제가 먹히지 않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무림은 그렇게 점점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백안문과 천마성은 지난 백 년 넘게 끊임없이 반목과 대치를 해 왔지만, 지금처럼 관계가 악화된 적은 없었다. 이제 백안문과 천마성의 전쟁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숙명처럼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