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equaled Scholar RAW novel - Chapter 172
8권 11화
六章 태왕전과 조패양의 격돌
一
“향아야!”
율천세의 두 눈에 핏발이 섰다. 율지향의 눈빛은 거의 풀려 있었다. 간발의 차이였다. 그가 조금만 늦게 나타났어도 율지향은 구천을 떠돌고 있었을 것이었다. 율천세는 조패양의 만행에 분노를 금치 못했다.
“으으, 더러운 위선자 같으니. 네놈이 그러고도 무림의 대선배라 할 수 있느냐?”
한편, 삼형제의 시선은 조패양의 한쪽 손에 있는 옥패에 쏠려 있었다.
어찌 된 일인지 전후 사정을 듣지 않아도 대충 머릿속에 들어왔다. 율지향이 먼저 옥패를 발견했고, 뒤늦게 조패양이 나타나 옥패를 빼앗은 게 틀림없었다. 율지향은 빼앗기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다 결국 조패양의 살심을 자극했으리라.
“조패양, 당장 옥패를 내놓아라. 남의 것을 강탈하고도 네놈이 남협이라 할 수 있느냐?”
삼형제는 솔직히 율지향이 어찌 되든 별로 관심도 없었다.
그들에게 남매지간의 정 따위는 사치였다.
오히려 요즘 따라 그녀가 계속 자신들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았던가? 오히려 지금 죽지 않은 게 아쉽게 느껴질 정도였다.
“흐흐, 좋아! 아주 좋아.”
조패양의 눈빛에 살기가 떠올랐다.
마침 율천세를 찾아 나서려던 참이었다.
율지향의 손에 옥패가 없다면 결국 가지고 있을 사람은 율천세밖에 없었다.
“흐흐, 다들 귀찮게 찾아갈 수고를 덜게 해 줘서 고맙구나!”
율천세는 바싹 긴장했다. 조패양의 검법은 이미 무림에 정평이 나 있었다. 조금만 방심해도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었다.
“너희들은 뒤로 물러나거라.”
율천세가 품속에서 판관필을 꺼내 들었다. 그는 판관필을 거의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 아니라면 굳이 판관필을 사용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할 만큼 다양한 절기를 익히고 있기 때문이었다. 삼형제는 단 한 번도 아버지가 판관필을 사용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흐흐, 율천세! 애꿎은 목숨 버리지 말고 조용히 옥패를 넘겨라. 그럼 이번만큼은 모른 척 넘어가 주마!”
“흥, 지금 네놈의 손에 있는 것은 옥패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냐?”
“끝내 네놈이 관을 보겠다는 것이냐?”
쇄애액!
검을 언제 뽑았는지 미처 보지도 못했다.
헌데, 눈앞에서 무언가 번쩍 하며 섬광이 일더니 엄청난 검기가 밀려오는 것이 아닌가?
“헉?”
율천세는 본능적으로 판관필을 비스듬히 세워 검기를 막아 갔다.
쾅!
주르륵!
율천세의 신형이 뒤로 몇 걸음 밀려났다. 그의 팔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의 가슴팍이 갈기갈기 찢어져 있었고, 몇 줄기 혈흔이 가느다랗게 생겼다.
‘언제 찢어졌단 말인가?’
전신이 차갑게 식어지는 기분이었다.
조금만 반응이 늦었다면 온몸이 난도질되어 버렸을 것이었다.
‘무서운 쾌검이다.’
이미 예상은 했지만, 조패양의 쾌검은 생각보다 더 빨랐다.
그는 곧장 조패양의 품속으로 파고들며 판관필을 휘둘러 그의 얼굴을 향해 찍었다.
휙휙!
한 가닥의 기운이 판관필에서 흘러나오는 듯하더니, 이내 두 개로 변하고 다시 세 개로 변하며 순식간에 이십여 개로 나뉘는 것이 아닌가? 그와 동시에 허공에 무수히 많은 글자들이 생겨났다 사라졌다.
이것이 층층용비봉무필법이었다. 한 번의 호흡 만에 백팔 개의 글자를 허공에 적어야 한다. 호흡이 흐트러지면 다음 글자를 이어 가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필법이 웅장하고 초식이 천변만화해서 한번 펼쳐지면 누구도 막기 어려웠다.
율천세는 지금까지 딱 세 번을 펼쳤지만, 아직 한 번도 삼십 개의 글자를 넘긴 적이 없었다. 그 이상으로 펼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허나, 이번에는 달랐다.
상대는 조패양이었고, 단 번에 백팔 개의 글자를 모두 그리지 않고는 승산이 없었다.
“억?”
조패양은 깜짝 놀랐다. 수많은 글자들이 거대한 그물망이 되어 그의 전신을 덮쳐오는 것이 아닌가?
율천세의 필법이 무섭다는 소문은 들어서 어느 정도 경계는 하고 있었지만, 그 변화가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주변에 있던 책장이 쓰러지고, 책들이 갈기갈기 찢어져 허공에 흩날렸다. 율천세의 필법에 따라 찢어진 종잇조각들이 마구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조패양이 미친 듯이 검을 휘둘러 수많은 글자들을 하나하나 분쇄해 나갔다.
‘아무리 쾌검의 고수라 해도 그건 미친 짓이다.’
율천세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피하지 않고 정면 승부를 펼치면 더욱 그에게 승산이 있는 싸움이기 때문이었다.
허나, 그것도 잠시.
새하얀 빛을 발하며 조패양의 검이 하늘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의 검이 미치는 곳마다 글자들이 지워지고 있었다.
율천세는 어느 순간 필법이 막혀 더 이상 글자를 적어 나갈 수 없었다. 구십 번째 글자에서 모든 방위가 차단된 것이다.
‘이, 이럴 수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인간의 힘으로 백팔 개의 글자를 막아 낼 수 있다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설사 북리후가 살아 돌아온다 해도 말이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한 가닥 검기가 글자들을 뚫고 율천세를 향해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헉?”
율천세가 황급히 판관필을 끌어당기고, 오른발을 살짝 옆으로 뒤틀었다. 그의 몸이 틀어짐과 동시에 검기가 판관필의 옆면을 강타하고 튕겨져 나갔다.
“으윽!”
판관필을 타고 엄청난 기운이 흘러들어 왔다.
율천세는 판관필을 놓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가까스로 버텨 냈다. 손바닥이 찢어져 피가 뚝뚝 떨어졌다.
그때, 조패양이 몸을 뒤집으며 독수리가 병아리 낚아채듯 빠르게 덮쳐 갔다.
휙휙!
허공에서 거센 바람이 일었다. 바닥에 넘어져 있던 책장들이 힘을 이기지 못하고 우지끈 부서져 나갔다. 그 사이 조패양은 일곱 번이나 검을 휘둘렀다.
“앗!”
율천세가 두 눈을 크게 치켜떴다.
그는 조패양이 호흡을 가다듬기 위해서는 최소한 눈을 한 번 정도는 깜빡할 수 있는 시간이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이게 웬걸?
그는 방금 전의 격돌로 채 자세를 잡기도 전인데, 조패양은 순식간에 일곱 번의 공격을 펼쳤던 것이다.
율천세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의 옷깃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여기저기 베어지고 갈라져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으음…… 이것이 오제의 무공이란 말인가?’
강해도 너무 강했다.
층층용비봉무필법을 펼치고도 오히려 부상을 입은 충격이 몇 배는 더 크게 전해지는 순간이었다.
二
“아버지!”
“조패양! 물러서라!”
삼형제는 더 이상 가만히 지켜볼 수 없었다. 그들은 상황이 불리하게 전개되자 무기를 휘두르며 싸움판에 끼어들었다.
그들은 이미 광동율가의 진전을 대부분 이어받은 고수들이었다. 그들이 가세하자 그 위세가 실로 대단했다. 싸움은 더욱 격렬하게 벌어졌다.
“흥!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조패양은 가소롭기 짝이 없었다.
그는 이리 막고 저리 공격하는데, 번개도 그보다 빠를 순 없었다.
서고에 병기가 난무하고 검광이 번쩍 거렸다.
율천세와 삼형제의 연수합공은 조패양조차 함부로 대할 수 없을 정도로 사납고 위력적이었다.
조패양은 더욱 검 끝에 힘을 주고 쾌검의 속도를 높여 갔다.
“으아악!”
한창 어지럽게 뒤엉켜 싸움을 하는데, 갑자기 삼형제 중 셋째가 비명을 지르고 뒤로 나가떨어졌다. 형제들 중에서 가장 공력이 약한 그가 가장 먼저 검기에 한쪽 팔이 어깨서부터 싹뚝 잘려져 나가고 말았다.
“셋째야!”
“으으, 아우야!”
형제들은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형제들은 상처 입은 맹수처럼 길길이 날뛰었다. 그들은 다시 한 번 뒤엉켜 싸우기 시작했다. 허나, 너무 흥분한 나머지 그 위력이 줄어들어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모든 절기를 동원해 미친 듯이 공격을 퍼부었지만, 조패양의 옷자락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율천세는 막내아들이 중상을 입었지만, 더욱 정신을 차리고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여기서 흥분하면 모두 끝장이다.’
그의 아들들이 가세를 하자 조패양의 공격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고, 처음보다는 반격할 수 있는 기회를 여러 번 잡을 수 있었다.
율천세는 판관필에 내력을 쏟았다.
웅웅!
허공에서 바람소리가 무섭게 일었다. 글자들이 허공에 그려지고, 그물망처럼 조패양의 전신을 덮쳐 가기 시작했다.
조패양은 이미 한 번 파훼한 적이 있었지만, 오히려 아까보다 더 여유가 없었다. 좌우에서 첫째와 둘째가 율천세의 공격에 보조를 맞춰 공격을 가해 왔던 것이다. 그의 입장에서는 한없이 거추장스러웠다.
그는 일단 눈앞에서 걸리적거리는 형제들부터 제거하려 했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율천세가 몸을 던지듯 공격을 해서 쉽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조패양이 뒤로 몸을 날려 층층용비봉무필법을 피하고 손바닥을 뒤집었다.
순간 그의 손바닥 위에서 검이 빙글 회전을 하더니 푹 하고 둘째의 옆구리를 찔렀다.
“케엑!”
갑자기 둘째의 입에서 외마디 비명이 터졌다.
그가 몇 번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의 옆구리에 구멍이 뚫리고, 검붉은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런 그를 조패양이 뒤따랐다.
“위험하다!”
율천세가 깜짝 놀라 필법의 기세를 돌려 둘째를 보호했다.
하지만, 갑자기 첫째의 입에서 둔탁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으윽!”
그는 다리를 절뚝거렸다.
조패양의 검이 허벅지 깊숙이까지 찌른 탓에 첫째는 몇 번 비틀거리다 그만 중심을 잃고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조패양은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걸리적거리는 자들 세 명을 모두 치워 버렸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꽤 많이 흐른 뒤였다.
그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렇게 치열하게 싸워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집중했던 것이다.
“흐흐, 율천세! 실망이구나! 겨우 이 정도 실력을 믿고 본좌의 자리를 탐냈느냐?”
“퉤! 더러운 위선자! 오늘 우리를 모두 죽여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네놈은 백안문의 반쪽밖에 얻지 못할 테니까.”
태왕전은 팔전의 수좌였다.
오늘 일이 알려지면 팔전은 조패양에게 반기를 들게 뻔했다.
“흥! 그까짓 팔전 따위, 누가 두려워할 줄 아느냐?”
조패양은 코웃음 쳤다.
팔전이 반기를 들어도 옥패만 있다면 저절로 해결될 일이었다. 오히려 율천세를 비롯한 광동율가를 누명을 뒤집어씌워 배신자로 만들면 그만이었다.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마! 순순히 옥패를 내놓으면 네놈들의 목숨을 살려 줄 수도 있다.”
“옥패는 네놈이 가졌으면서 무슨 헛소리냐?”
“흐흐, 욕심이 화를 부른다고 했다. 곧 죽을 마당에 누굴 위해 옥패를 지키겠다는 것이냐?”
“우드득! 뭔지 모르겠지만, 네놈이 옥패를 찾는 걸 보니 그나마 위안이 되는구나!”
율천세는 조용히 판관필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어찌 된 일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조패양이 옥패를 찾는 걸 보면 손에 쥐고 있는 게 잘못된 것인지도 몰랐다.
그럼,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아서 팔전에 소식을 알려야 했다.
‘태왕전을 건드린 이상, 죽어서도 네놈을 용서치 않겠다.’
한번 원한을 맺으면 반드시 피를 봐야 직성이 풀리는 호전적인 성격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조패양이 차갑게 조소했다.
옥패의 행방을 모른다는 율천세의 말이 왠지 거짓말 같지 않아 보였다. 어찌 된 일인지 황당할 노릇이었다. 허나,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상황은 되돌릴 수 없었다.
“흐흐, 네놈과 자식들은 다시는 살아서는 팔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의 눈에 살기가 아른거릴 때였다.
갑자기 그의 눈빛이 홱 변했다. 그건 율천세 역시 마찬가지였다. 율천세가 서고의 문을 벌컥 열어젖히고 밖으로 나가자 팔전의 고수들이 무장을 한 채 도열해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