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dentified creature capture team RAW novel - Chapter 327
326화
‘방심했어.’
이 말밖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가 없었다.
방심한 이유를 대라면 수도 없이 많았지만, 그중에서 몇 가지만 든다면….
프로네시스가 오작동을 일으키는 바람에 관련 업무를 강신이 하거나, 주변 사람들이 나눠서 해야 했으며 스프라이트를 공략할 방법과 필요한 장비들을 준비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요정의 둥지도 계속 수색해야 했고 잇츠어스몰어스에서 나타난 둥지와 4인 가족을 구원해줄 계획까지 짜야 했다.
그리고, 일이 끝나고 요원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주기 위해 본사에 협상까지 하며 그들의 휴가를 챙겨주었으니, 다른 곳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아니, 그냥 다 핑계야.
저들이 이곳을 습격할 가능성이 작더라도 대비를 해두었어야 했다.
‘후회는 나중에 하자.’
돌이킬 수는 없었지만, 지금은 후회보다 눈앞의 상황에 집중해야 할 때였다.
‘이상 현상을 일으키는 회전목마는 나중에 해결하고….’
강신은 체력을 빼앗던 회전목마를 억지로 머릿속에서 지워냈다.
“이부장은 강책임과 김대리의 신변 보호해 주게.”
실력으로 보나 사용하는 무기로 보나, 척준신이 침입자들을 상대하는 게 옳았다.
이순자도 그런 척준신의 말에 동의했다.
“알겠어요.”
그리고 이순자는 움직이지 못하는 강신을 챙겨 김대리와 함께 이동했다.
적들에게서 주요 인물을 보호하기 유리한 위치인 뒷면이 벽으로 막힌 곳이었다.
이순자가 움직이자 침입자 중 몇 명의 신발에서 빛이 터져 나왔다.
“와플에서 사용하던 가속 신발까지, 정체를 숨길 생각이 아예 없는 건가.”
더 볼 것도 없었다.
저들이 사용하는 장비는 와플 소속이 아니면 사용하지 못하는 장비들이었으니까.
“척부장님 조심하세요.”
강신의 말에 척준신은 조금 전에 상대했던 U.M.A를 떠올렸고,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방금까지 상대한 U.M.A를 생각하면 저 정도는 식후 운동이지.”
그 말과 함께 척준신이 가장 가까이 있던 침입자를 향해 움직였다.
덩치에 비해 가벼운 발놀림이었지만 그 속도는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자신들에게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척준신을 보고, 침입자들이 주춤했다.
척준신은 그 틈을 놓칠 인물이 아니었다.
촤악!
척준신의 검이 침입자들을 무자비하게 베어냈다.
하지만 침입자들에게 큰 피해를 줄 순 없었다.
척준신의 검은 그들이 입고 있던 로브를 처참하게 찢어발겼지만, 안에 입고 있는 보호 장비를 뚫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척준신이 빠르게 뒤로 물러나자, 침입자들은 그런 척준신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집요하게 쫓았다.
그런 침입자의 움직임을 막기 위해 척준신은 쉬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움직임을 조금 늦출 뿐 큰 충격을 줄 수는 없었다.
“제…. 제가 척부장님을 돕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김대리가 조금씩 밀리는 척준신을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척준신에 대한 믿음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어디까지나 척준신의 상태가 멀쩡할 때 이야기였다.
현재 척준신의 상태는 썩 좋은 상태가 아니었다.
강신은 어째서 현장 요원들에게 휴가를 주기 위해 본사와 직접 협상했을까.
그 이유는 그들이 그간 쌓인 피로를 풀게 하려던 것이다.
작전 마지막 날, 그간 쌓여있는 피로와 강대한 U.M.A와의 전투로 인한 피로가 상당할 게 분명했다.
심지어 회전목마에게 체력까지 빼앗겼고, 장비 또한 상태가 좋지 못했다.
없는 것보단 나았지만 이가 빠진 검이 와플 요원이 입고 있는 보호 장비를 상대로 얼마나 버텨줄 것인지 미지수였다.
“아니요, 그냥 여기 있으세요.”
이순자는 그런 김대리를 말렸다.
“하지만….”
“걱정하실 것 없어요. 척부장님이 조금 지치긴 했지만, 저 정도로 고전하실 분이 아니니까요.”
놀이 기구에 체력을 뺏기고 비틀거렸던 그녀와 달리 척준신은 그저 땀을 조금 더 흘렸고 지쳤다는 한마디뿐이었다.
그리고 그때 이순자의 말을 증명하는 것처럼 전투의 양상이 바뀌기 시작했다.
핏! 핏! 핏!
이전까지 척준신이 휘둘렀던 검이 패도적이었다면, 지금의 검은 프리메이슨 소속의 키퍼인 딘이 구사했던 쾌검과 닮아 있었다.
그런 공격으로 과연 적들의 보호를 뚫어낼 수 있을까 김대리는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그는 자기 생각이 틀렸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컥….”
“큭!”
검에 베인 이들이 짧은 신음과 함께 척준신에게서 떨어졌기 때문이다.
“어…? 뭐지?”
김대리가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듯이 말하자, 강신이 그에게 설명했다.
“그전까지는 저들이 입고 있는 보호 장비의 틈을 찾고, 지금은 그 틈을 베어낸 것 같네요.”
“엥? 틈이라고요?”
김대리는 강신의 이야기를 듣고 황당하다는 눈치였다.
분명 강신의 설명은 어렵지 않은 내용이었다.
영화나 소설을 보면 갑옷이나 방어구의 취약한 관절부 같은 곳을 노리는 내용은 흔하디흔했다.
그런데도 그가 이해하지 못한 건 와플에서 입고 있는 보호 장비 때문이었다.
검에 베여 이제는 누더기가 되어버린 로브 안쪽으로 보이는 와플의 보호 장비.
현재 성신이 입고 있는 보호 장비와 비슷한 의류형이었다.
의류형 보호 장비는 각 회사에서 개발한 특수 금속 섬유로 만들어지며, 기본적으로 방탄, 방검 기능을 갖고 있었다.
그 외에도 내화성, 내식성 같은 특수한 기능이 포함된 장비도 많았다.
그렇다고 해서 의류형 장비가 무조건 좋다는 건 아니었다.
의류형 보호 장비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일상 복장과 똑같다는 것에 있었다.
그래서 성신의 현장 요원은 의류형 보호 장비를 기본 장비로 사용했다.
반면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보안 요원들은 SF영화에 나올 것 같은 아머드 보호 장비를 주로 착용했다.
의류형 보호 장비가 아무리 성능이 좋아도 그 한계는 명확했다.
성능을 아머드 보호 장비 수준까지 높이려면 매우 높은 비용이 발생해 효율도 좋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머드 보호 장비도 만능은 아니었다.
두꺼운 아머드 보호 장비 특성상 움직임이 의류형 보호 장비보다 둔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또한 원활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관절부 부분이 다른 곳에 비해 취약한 게 사실이었다.
어쨌든 의류형 보호 장비는 모든 부위가 균일한 방검 능력을 갖추고 있었으니.
“빈틈이라고 불릴만한 곳이 어디 있습니까?”
틈이라고 불릴만한 곳이 없었다.
“그건 저도 모르죠.”
방금과 전혀 다른 대답이 들려오자 김대리가 두 눈을 끔뻑이며 강신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방금 강책임님이….”
“저는 빈틈이 어딘지 모른다는 거죠. 척부장님은 그 빈틈을 찾았으니, 저렇게 저들을 쓰러트리는 거 아니겠습니까?”
척준신을 쫓던 침입자들 몸 곳곳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음…. 그건 그렇네요. 이번 일이 끝나면 직접 여쭤봐야겠어요.”
척준신이 어떻게 적을 베어냈는 지 알면, 성신이 사용하는 보호 장비를 보강할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척준신에게 덤벼드는 와플의 요원들이 늘었지만, 그들 사이에서 춤추는 척준신에게는 문제가 없었다.
“이상하네요.”
그런 상황이 계속되자, 이순자가 인상을 찌푸렸다.
“강책임도 그렇게 느끼죠.”
“네.”
이순자가 묻자 강신이 대답했다.
“에? 또 뭐가요?”
성신에게 유리하게 흘러가는 전장을 보던 김대리가 또다시 의문을 표했다.
이대로 척준신이 잘만 버텨준다면 곧 다른 현장 요원들이 되돌아올 것이다.
그러면 저들을 제압하는 건 시간문제라고 생각했으니까.
이순자는 이상하다고 느끼는 부분에 대해 말했다.
“이상하죠. 저 사람들 무기가 없어요.”
그제야 김대리는 와플 요원들을 자세히 살폈다.
이순자의 말대로 그들은 딱히 무기를 소지하고 있지 않았다.
“아…. 뭔가 위화감이 들더니만 무기 없이 우리를 상대하려고 한 건가?”
“아니요, 그런 것보다는 뭔가 있어요.”
강신은 적들이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뿐만 아니라, 자신이 느낀 이상한 점을 이야기했다.
“이쪽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도 이상하죠.”
전투가 시작된 지 조금 시간이 흐른 상태였다.
강신과 일행들이 이렇게 한가로이 대화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와플 요원 중 누구도 강신 쪽으로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제가 저쪽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보복이 목적이면 최우선 목표는 바로 저일 테니까요.”
“그렇죠.”
와플의 일을 계속 방해하는 건 척준신이 아니라 강신이었다.
목표가 강신이라면 척준신의 발을 잡아두고 강신을 공격해야 했다.
심지어 그 목표가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라는 걸 고려하면, 눈이 뒤집혀 달려들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실상 그들은 강신에게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자세히 보니까, 저 사람들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이 아닌 것 같네요.”
이순자가 와플 요원들을 자세히 관찰하고 말했다.
와플 요원들로 추정되는 침입자들의 움직임은 장비의 성능을 믿고, 그저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것처럼 보였다.
전문적으로 전투를 배웠다고는 상상할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때마침, 먼저 이동했던 현장 요원들이 통신을 보내왔다.
-현장 요원 도착했습니다. 바로 진입해도 되겠습니까?
그들은 숙련자답게 신중하게 움직였다.
“1팀만 진입하고, 3팀은 그곳에서 대기.”
-알겠습니다.
이미 척준신이 혼자서 적들을 압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모든 요원을 동원할 필요는 없다고 이순자는 판단했다.
-1팀 진입.
통신과 함께 현장 요원 1팀이 판타지 파크 내부로 들어왔다.
휴가를 방해받았기 때문일까.
그들의 성난 황소처럼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을 멀리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강신과 일행들은 저들이 꾸미는 게 뭔지 몰랐지만, 어찌 되었든 상황은 곧 마무리되리라 생각했다.
1팀 요원들이 척준신이 있는 지점까지 금방 도착했다.
“보호 장비를 입고 있으니, 제압을 중점으로 움직여!”
금방 제압되리라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척준신에게 맥없이 당했던 이들은 어디서 그런 힘이 생겼는지 격렬하게 반항했다.
죽음을 불사하기라도 한 것일까.
그들의 기세에 현장 요원들이 당황스러워할 정도였다.
꽤 오래 버티긴 했지만 그렇다고 결과가 달라지는 일은 없었다.
결국, 모든 침입자는 현장 요원들에게 제압되어 포박됐다.
“후우…. 휴가 출발하기 전에 이게 무슨 일이야.”
침입자의 보호 장비를 벗기는 현장 요원이 투덜댔다.
모든 침입자가 제압되자, 이순자가 강신을 데리고 척준신에게 다가갔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 무슨, 어서 침입자들 인계하고 남은 일을….”
척준신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쇄에엑!
“위험해!”
퍽!
“컥!”
어디선가 강신을 향해 날아온 탄환.
척준신이 움직였지만, 아무리 대단한 무력을 가진 척준신이라도 한번 발사된 탄환을 막을 순 없었다.
그리고 아주 근소한 차이로 거대한 굉음이 들려왔다.
콰앙-!
얼핏 들으면 폭발 소리로 착각할 정도로 큰 발포음이었다.
다행히 강신이 입고 있는 보호 장비는 갑작스러운 습격에도 강신의 몸을 보호해 주었다.
“쿨럭, 쿨럭.”
하지만 복부에 박힌 탄환의 충격을 모두 해소해 주지는 못했는지, 강한 충격때문에 강신은 기침과 헛구역질을 해댔다.
“강책임!”
척준신이 빠르게 자신의 몸으로 강신을 보호했다.
그리고 옆에서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이순자가 즉시 현장 요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탄의 탄착보다 발포음이 늦었어. 가까운 곳에 저격수가 있다! 방향은 남서쪽! 대기 중인 3팀 요원들은 저격수를 잡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포박되어 있던 침입자들이 강신과 일행들의 다급한 모습을 보고, 미소지으며 말했다.
“종말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