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rus Tekbon RAW novel - Chapter 138
138화
얼마나 이렇게 있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가장 힘든 것은 기준형님이었을 것이다. 그들과 얼굴을 마주보고, 총까지 겨눠지고 있으니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보희야, 현운아. 우리들 그냥 마을에서 나가게 해주면 안되겠니?”
기준형님이 차분하지만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죽거리던 김현운도 이때만큼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그런 고요함도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아… 거참 맘 약해지게…”
김현운의 목소리가 기준형님 너머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위험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강하게 때렸다.
“형님!”
다급한 마음에 현관에서 몸을 피하며, 기준형님을 잡아 당겼다.
쾅!
그 순간 우뢰와 같은 총소리가 들렸다. 평상시 듣던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에 소름이 돋았다. 들고 있던 탄통을 놓고 잡은 기준형님의 팔이 내 손을 빠져나갔다.
마치 슬로 모션처럼 기준형님의 몸이 떠올랐다가, 뒤로 저만치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너무 놀란 나머지 반사적으로 내 몸부터 살폈다. 그리고 아무 이상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안심이 됐다. 그리고 이내 지선이와 진숙누님도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왜 그랬어? 왜? 너 정말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어? 이러지 않기로 했잖아!!!”
현관 밖에서 이보희의 절규하는 듯 한 외침이 들려왔다. 반면, 숙소 안은 차라리 조용했다. 남은 셋은 얼떨떨한 때문인지 일순간 입을 닫고 두 눈만을 동그랗게 뜨고서 주변을 살폈다.
물론 누구도 그 충격이 진숙누님보다 클 수는 없었다. 그녀는 한동안 멍하니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기준형님을 바라봤다. 그러더니 천천히 기준형님에게로 다가갔다. 기준형님이 누워있는 바닥은 이미 피로 흥건했고, 그의 복부 쪽은 갈기갈기 찢겨져있었다. 다행이라면 얼굴은 비교적 온전하다는 사실이었다.
‘젠장. 끝인가? 여기서 벗어 날 수 있을까? 이젠 어떻게 해야 하지?’
온갖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그리고 이 와중에도 이보희와 김현운은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왜 그랬나고!!! 너 이렇지 않았잖아!!! 너, 현석아저씨 보내고 이상해졌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저 사람들이 우릴 배신하려는 거잖아. 저 사람들이 배신하고 여길 떠나면 우리가 위험해 질수도 있단 말이야. 알아들어?”
저 둘도 지금 상태가 이상한 것이 우리도 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너무 우리에게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 현재 우리는 기준형님이 메고 있던 소총 하나를 가지고 있었고, 나와 지선이가 각각 권총을 가지고 있었다.
진숙누님은 총을 다뤄 본 경험이 전무했기 때문에 또 기웅이도 총을 가지고 있어야 했기 때문에 작은 손도끼 하나를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우선 지금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선 화력을 확보해야 했기에 자연스럽게 기준형님의 시체로 눈이 갔다.
“헛! 누님!”
뜻밖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기준형님을 끌어 안고 흐느끼던 진숙누님이 조용히 그가 메고 있던 소총을 끌러서는 현관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방아쇠에 걸려있는 손가락이 당겨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투다다다다다다!!!
소총이 불을 뿜었다. 하지만 정확한 조준을 한 것도 아니었고, 반동 때문에 총구는 춤을 췄다.
“니들이 뭔데?!!! 죽어버려!!! 이 괴물 자식들아!!!”
진숙누님이 절규했지만, 총소리에 파묻혀 그리 크게 들리진 않았다.
고개를 밖으로 슬쩍 내밀어 상황을 살폈다. 언쟁을 벌이던 둘은 총에 맞은 것인지, 몸을 피한 것인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도 진숙누님은 멈출 줄을 몰랐다.
틱!
출발하기 전 꽉 채워놨던 탄장이 순식간에 바닥을 보였다. 하지만 진숙누님은 그것을 인지하지도 못하는지 여전히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밖을 향해서 총을 쏘는 시늉을 했다.
‘젠장. 완전히 정신줄을 놔 버린 모양이네.’
다시 한번 슬쩍 고개를 내밀어 밖을 살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어딘가에 몸을 숨겼던 김현운이 다시 몸을 내밀어 총을 겨누고 있었다.
‘젠장! 오늘 아주 골로 갈 모양이네.’
쾅!
다시 한번 밖에서 엄청난 총성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절규하고 있던 진숙누님의 몸이 붕 떠올랐다. 그리고는 기준형님 근처로 날아가 널부러졌다. 그녀의 얼굴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어있었다.
소총을 회수하기 위해서 진숙누님이 널부러진 곳으로 막 몸을 옮기려던 찰나,탕!
내가 신경 쓰지 못하는 사이, 언제 내 근처로 온 것인지 지선이가 작은 창문을 통해 권총을 겨누고 있었다. 그리고 그 권총에서는 작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지선이를 확 잡아 앉힌 나는 다시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밖을 내다 봤다.
이보희는 보이지 않고, 김현운은 여전히 이곳을 향해서 총을 겨누고 있었다. 하나 다른점이 있다면 그의 이마 한 가운데 검붉은 점이 찍혀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찐득한 무언가가 삐죽이 흘러내리는 듯 했고, 이내 그의 몸은 허물어졌다.
“잘했어, 지선아.”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재빨리 진숙누님에게로 다가가 소총을 회수해 왔다.
인원이 절반으로 줄었다. 우리도 넷에서 둘로, 저쪽도 둘에서 하나로 줄었다.
“으악!!! 왜! 왜!!! 도대체 다들 왜 이러는 거야!!! 그냥 예전처럼 지내면 되는 거잖아!!!”
이보희도 아직 저쪽에 있는지 그녀의 절규가 처절하게 들려왔다. 그렇다고 지금 여기서 멈출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끝까지 가보는 수 밖에.
나와 지선이는 총구를 밖으로 향한 채로 주시하고 있었지만 이보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녀의 외마디 비명만이 계속해서 들릴 뿐이었다. 그리고 그 비명소리를 들을 때 마다 소름이 돋았다.
그렇게 이상한 대치상황이 몇 분간 계속되었다. 이보희는 목이 쉰 것인지 쇳소리가 섞인 비명을 계속해서 질러댔다. 그러나 그나마도 이내 조용해 졌다.
일대에 기분 나쁜 적막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이후였다. 마을에서 안에서는 듣지 못했던 소리가 적막을 깨트렸다.
“크르르륵.”
“으으으…”
좀비였다. 소리로 판단했을 때, 가까운 거리까지 온 것은 아니었다. 주변이 시끄러웠거나, 좀비들의 수가 작았다면 들리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정도로 낮은 울림 정도였다.
“오빠. 어쩌지?”
“젠장! 어떻게든 여길 뚫고 나가야 될 것 같은데… 고립되면 정말 끝장일거야.”
말은 쉽게 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하지만 계속 시간을 끌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기웅이 쪽으로 가자. 여기 더 있으면 정말 빼도 박도 못 할 것 같아.”
갑작스럽게 벌어진 오늘 일들에 한편으로는 어이가 없었다.
“후~ 나도 모르겠다. 진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야. 젠장.”
혼자 머릿속으로 푸념을 한다는 것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와 버렸다.
“오빠. 오빠라면 어떻게든 해낼 거야. 오빠만 믿을게.”
지선이가 옆으로 다가와서는 살짝 떨리고 있는 내 손을 꼭 붙잡았다.
‘가만… 이보희가 괴성을 지르고 난리를 친 이후에 좀비들이 몰려들었어. 단순히, 이젠 앞뒤 젤 필요가 없어서 일수도 있지만, 현석형님처럼 이성을 잃은 게 아닐까? 그렇다면… 방법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지선이가 내 손을 잡는 순간, 거짓말처럼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서, 우선 실탄부터 챙겼다. 탄통을 통째로 옮기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에 탄통 안에 넣어 놨던 탄창만 챙겼다. 그리고 나서 지선이를 이끌고 숙소의 뒷문으로 향했다.
뒷문 쪽으로 나와서 담장을 넘고, 생각지 않았던 방향에서 이보희를 칠 생각이었다.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일반좀비들이 이곳까지 오지 않은 지금 이보희를 제거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보희가 일반좀비들과 뭉친다면, 그나마 있던 한 가닥 희망도 날아가 버릴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것은 이보희가 이성을 잃었던지, 그렇지 않던지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