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23)
억지로라도 머릿속에 넣어 두어야겠어. 기초적인 상식을 모른다면 여러모로 곤란할 테니까.’ 마음 같아서는 그 정도는 알아 두라고 타박하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은 친해져야 할 때. 안 그래도 경계와 적대심이 잔뜩인 아이를 자극할 이유는 없다. “어떻게 통제하려 해도, 무림인들에겐 은원(恩怨)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 괴물 같은 감정은 이성까지 마비시켜 사람을 변화시키지. 그게 이 결과다.” 주서천이 나이에 맞지 않게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귀주는 특히 그러한 장소야. 은원의 연쇄가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이어져 있지. 누가 온다 해도 이걸 끊을 수는 없을 거란다, 천재.” “어흐흠, 천재라니. 네 의도가 어떤지 뻔하긴 한데, 기분이 나쁘지는 않네.” 제갈승계의 입꼬리가 귀밑까지 찢어졌다. ‘후후, 단순한 놈’ 주서천이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자고로 아이란 건 다루기 쉬운 법이다. “……잠깐.” 웃고 있던 제갈승계의 얼굴에 그늘이 끼었다. “설마하니 천재(凌才)를 돌려서 말한 건가. 하기야, 중부가 널 보냈다면 당연히 그 말이 맞겠지. 어차피 얕은 재주이니 그만 포기하라고……” ‘하아, 또 시작했군.’ 제갈승계는 글자를 읽을 때부터 기관지술에 관심을 보여 왔다. 그리고 주변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관지술에 더더욱 파고들었다. 세가에서의 타박은 그때부터 끊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신감의 결여로 이어졌다. 이놈의 부정적인 사고 자체가 문제다. 너무 욕을 먹다 보니 칭찬해도 전혀 믿지 않았다. 어떨 때 보면 단순하고 달래기 쉬운데, 그것도 금방 수그러들면서 온갖 부정(否定)이 튀어나왔다. “동생, 그냥 좀 받아들여라. 너도 귀가 있으니 알겠지만, 나도 화산에서 상당한 별종이야. 말하고 다니기 좋아하는 사형이 말해 줬올 텐데, 못 들었어?” “응…… 나한테 말을 거는 사람은 중부랑 너뿐인데……” 제갈승계가 동태 눈깔로 힘 없이 답했다. 원래는 제갈상이 그를 불쌍하게 여겨 가끔씩 말을 걸어 주었으나, 화산파 일행과 동행하면서 사라져 버렸다. 제갈상은 후에 화산파와의 교류를 위해서라도 연화각원들과의 대화를 무척 신경 썼다. 제갈수란은 원래 제갈승계를 싫어하진 않았으나 거의 없는 사람 취급해서 원래부터 말을 안 걸었다. 그렇다 보니 말을 거는 사람은 제갈삭과 주서천뿐. 심지어 제갈삭은 그 말이 대부분 구박뿐이었다. “비겁하게 진실을 제시하다니 ! 정정당당하게 진실이 아니라 거짓과 선동으로 승부하자!” 제갈승계가 헛소리를 했다. ‘ 전해지는 것에 의하면 심성이 많이 여리다고는 했는데 이 정도였나…… 진짜 만각이천 맞아?’ 슬슬 불안할 정도의 수준이었다. 기관지술의 능력도 직접 본 적이 없으니 조금 신경 쓰이기는 했다. ‘아니, 됐다. 믿도록 하자. 내가 믿지 않으면 이 괴짜를 누가 믿어 주겠냐.’ 주서천은 머리를 흔들어 불신을 털어 냈다. “왜 그래? 미쳤어?” 제갈승계가 그런 주서천을 보고 세 보 떨어졌다. 때리고 싶어졌다. * * * 옹안의 무인들은 대다수 중소 문파 출신들이었다. 지휘를 맡고 있는 자는 무림맹의 일류 무사였다. “어서 오십시오!” 일류 무사, 왕칠은 지원 병력이 도착하자마자 성대하게 환영해 주었다. 그만큼 그들의 존재가 기뻤다. 특히나 십사검협이라는 별호를 들었을 때,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 것까지 보였다. “그럭저럭 사정 은 듣고 왔으니 설명해 봐라.” 제갈삭이 말했다. “예!” 사도천 육백, 무림맹 사백. 무림에 대하여 모르는 자라면 전력 차이를 보고 사도천이 우세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무림에 대한 지식이 있다면 무림맹이라 말한다. 사도천, 아니 사파는 정파보다 숫자 방면으로는 압도적이라 할 정도로 우세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우세한 건 숫자 뿐이었다. 사파의 무공 중 대표적인 특징을 꼽자면, 그건 연공의 속도가 빠른 대신 일정 구간에 오르면 나타나는 벽을 뛰어넘기가 무척 힘들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파에는 하수가 많을지언정, 중수나 고수의 숫자가 정파보다 적은 편이었다. 즉 양이 많다고 한들 질이 떨어지다 보니 숫자의 차이가 있다 해도 승패를 단언하기가 힘들었다. “지금 옹안에 사도천의 고수가 와 있소?” 구풍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백여 명 정도면 밀릴 정도로의 전력 차이는 아니다. 패배하기는커녕 잘만 하면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지원까지 요청한 건, 숫자뿐만 아니라 다른 이유로도 불리하다는 뜻이었다. “예 세 명입니다.” 왕칠의 답변에 구풍도 제갈삭의 얼굴도 굳었다. “아, 그렇지만 초절정의 고수는 한 명도 없습니다. 안심하십시오.” 고수라고 칭해지려면 적어도 절정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초절정의 경지까지 고수라 부른다. 그 이상의 경지, 특히 초절정 중에서 상위 백 명은 따로 호칭이 붙곤 했다. 이에 제갈삭은 십년감수했다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화를 내면서 소리를 버럭버럭 질렀다. “그것부터 말해라!” 세 명의 고수 중에서 초절정의 경지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문제가 된다. 구풍도 승패를 장담할 수가 없다. 그러나 전부 절정의 경지일 경우, 성가실지는 몰라도 어떻게든 처리할 수는 있었다. 방해만 받지 않는다면 세 명 전부 상대할 수 있었다. “좋아, 일단 전황부터 살피고 어떻게 할지를……” 제갈삭이 군사로서 작전을 수립하려 했다. “급보입니다!” 그러나 전령의 외침으로 인해서 멈추게 된다. “무슨 일인가?” “인근에서 사도천과의 재격돌, 광견삼두(狂犬三頭)가 선두에 서서 날뛰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삼두라고 정말 머리가 세 개인 건 아니다. 광견삼두라 하여, 의형제를 맺고 온갖 패악질을 저지르고 다니는 미친개 삼형제가 있다. 셋 다 절정의 고수다. “아무래도 한가하게 있을 수는 없을 것 같군.” 구풍이 한숨을 내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꿀꺽.” 장홍이 침을 삼켰다. 긴장으로 잔뜩 굳은 얼굴이었다. 장서은도 별반 다를 것은 없었다. 설사 화산의 제자라고 해도, 처음으로 겪는 실전은 누구나 긴장하는 법이었다. “둘을 잘 부탁하겠소.” 구풍이 개양에서부터 동행한 무림맹 출신 일류 무사들에게 부탁했다. “예, 대협.” “저희에게만 맡겨 주십시오” 그들은 개양을 떠나기 전, 구풍을 대신하여 신도균에게서 연화각원을 호위하라는 임무를 받았다. 덕분에 구풍도 조금은 안심할 수 있었다. “둘?” 주서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미리 말하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구풍이 막사를 나가기 전, 주서천에게 사과했다. “마음 같아서는 너도 데리고 나가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가 않다. 개양에서 함께 온 무사들이 둘은 몰라도 세 명까지는 힘들 것 같다고 하더구나.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막내인 널 여기에 두고 갈 수밖에 없단다.” 굳이 억지를 부리면서까지 주서천을 전장에 데리고 나갈 이유가 없으니, 섭섭하게 생각해도 어쩔 수 없었다. ‘음, 나름 기대했는데 조금 아쉬운 걸.’ 그동안 열심히 수련해 온 무공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연화각에서는 낙소월이 몰래 찾아올 때, 간간이 비무를 했으나 제 실력을 보인 게 아니었다. 마침 전장에 참여할 기회도 생겼고, 싸우다 보면 난장판이 되니 몰래 빠져나가서 싸울 생각이었다. 당연하지만 장홍이나 장서은처럼 두려움에 의한 긴장 따위는 없었다. 주서천도 전란의 시대 때 영웅들만큼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싸우면서 살아남았다. 실전을 쌓은 경험만큼은 구풍, 아니 화산파 내에서도 주서천과 비교할 사람이 별로 없다. 괜히 전란의 시대라 불린 게 아니다. 그만큼 싸움이 많았다. “네 안전을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니, 너무 야속하다고 생각하지 말거라. 널 무시하는 게 아니란다.” “알고 있습니다, 사백.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쩔 수 없는 걸요.” 주서천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열두 살인데도 정말 다 컸구나. 네 스승이 제자는 정말 잘 뒀다. 아, 그리고 제갈세가의 막내도 남게 됐으니, 형인 네가 잘 돌봐 주거라. 부탁하마.” “예, 사백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건승을 기원하겠습니다.” * * * 옹안에서 반나절 정도 걸으면 개안이라는 곳이 나온다. 작은 촌락들이 드문드문 모여 있는 지역이었다. 이 개안은 무림맹과 사도천의 접경지로, 하루에도 수차례 싸움이 일어나는 곳이었다. 옹안에서 출발한 지원 병력은 최대한 빨리 전진하여 개안에 도착했다. “와아아아!” “십사검협이다!” 구풍이 나타나자마자 무림맹 측 무사들이 고막이 터져 나갈 정도로 환호성을 내뱉었다. 그만큼 십사검협의 이름은 듬직했다. 기세등등했던 사도천의 무사들이 주춤거렸다. 구풍은 앞장서서 십사수매화검법을 펼쳤다. 초절정 고수의 검답게 보통이 아니었다. 그가 지나가는 곳마다 사도천의 무사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피를 흩뿌렸다. “하하, 별거 아니군!” 제갈삭은 중앙에서 그걸 지켜보면서 웃었다. 굳이 계획을 짤 필요도 없었다. 십사검협 그리고 개양에서 온 지원 병력 이 화끈한 무위를 자랑했다. “……오라버니.” 제갈수란이 전장에 시선을 고정한 채 제갈상을 불렀다. “그래.” 제갈상이 눈을 가늘게 떴다. 제갈수란이 용건을 말하기도 전, 제갈상이 먼저 말을 꺼냈다. “적어.” 제갈상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난전이라서 정확하게는 알아보기 힘들지만…… 사도천 병력이 백에서 백오십 정도가 적다.” 제갈상이 몸을 천천히 돌려 뒤를 살폈다. 그가 바라보는 시선의 방향은 옹안에 있을 진지였다. “숙부 아무래도 저희가 함정에 빠진 것 같습니다. 백에서 백오십 정도 적의 전력이 비어요.” “하하하, 뭔 소리를 하느냐. 네가 출진한 지 별로 되지 않아 착각을 한 모양이구나. 그것보다 저기 앞을 봐라. 사도천이 맥도 못 추리고 죽어 나가는 걸 말이다!” “ ……” 제갈상의 얼굴이 암담해졌다. 제갈삭, 그리고 옹안군은 이미 승리에 취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하늘까지 솟아오른 사기에 몸을 던져, 사도천의 무사들에게 함성을 내질렀다. 第十三章영웅배로(英雄背唯) 홋날 천재 남매라 불리게 될 두 사람의 예상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그 불안감은 현실이 됐다. 옹건의 무사들은 광견삼두의 출전으로 빠져나가 있는 상태다. 남아 있는 건 부상자와 아녀자. 그리고 비록 실력과 숫자는 적으나 그들을 지키는 하수들 몇몇이 있었다. “저, 저게 뭐야!” 망루 위에 서 있던 무사가 경악했다. 그러자 반대편에 서 있던 무사가 뭔 일 있나 하고 시선을 옮겼다. “악! 사도천이다!” 내력을 시각에 집중해야 겨우 볼 수 있는 거리에서 사도천 무리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적게는 백 명 많게는 백오십 명 정도였다. 무사들은 그들을 보고 광견삼두의 출전이 양동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 그러나 늦어도 너무 늦었다. “어, 어떻게 하지?” 지휘권을 가지고 있을 만한 사람은 전부 출전했다. 이 중에서 제일 강해 봤자 이류무사, 그것도 이제 막 오른 사람일 뿐이다. 부상자들 중에선 높은 무위의 무사도 있었지만, 의식도 제대로 찾지 못했다. “도, 도망쳐야 해 ” 경상자들까지 포함해서, 그럭저럭 움직일 수 있는 무사들을 합쳐 봤자 삼십여 명 정도다. 그것도 제일 강한 사람이 이류 무사다. 이 전력 가지곤 절대 저 백 명에게 이길 수 없었다. “부상자들이랑 아녀자들은 어쩌고?” 누군가가 물었다. 그 말에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그, 그건……” 놔두고 가자, 라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그 말을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