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Mine RAW novel - Chapter 164
164화
호북성 균현에 위치한 무당산.
화산파와 함께 도문의 양대 조종으로 손꼽히며 추앙받는 무당파가 자리한 곳이다.
화산이 예로부터 개인의 수도와 더불어 구세제민에 뜻을 두고 도를 추구했다면, 무당파는 도인 개개인의 탈속과 탈각을 궁구하며 선인의 길을 모색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문파였다.
엄격한 문규 아래 제자들 대부분이 평생 동안 산을 벗어나지 않으며 수도하는 곳이다 보니 바깥세상과의 불화나 간섭이 없는 것이 무당파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무당파의 이름이 천하에 드높은 것은 이따금 세상에 나와 펼치는 무당파 도인들의 놀라운 신위 때문이었다.
현 무당파의 장문 청허자만 해도 젊은 시절엔 취선검영(聚仙劍英)이란 별호로 무명을 날렸고, 현재는 은선우사(隱仙羽士)란 이름으로 천하십강의 일좌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 청허자 만큼 대단한 도인들이 셀 수도 없이 많다고 알려진 곳이 바로 무당파였다.
그만큼 강호인들이 존경하고 두려워하는 무당파, 하지만 무수한 세월이 흘러왔음에도 그 진실한 힘이 제대로 드러난 적이 없는 곳이기도 했다.
속세와의 거리를 멀게 유지하며 살아왔기에 늘 조용하고 엄숙함이 깔린 무당파 경내.
그런데 문파의 대소사를 주관하는 자소전 안으로 격렬한 목소리들이 쏟아지는 중이었다.
“장문진인!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본산 제자들 전부를 하산시키라니요!”
“그렇습니다. 북검회가 대체 무어라고 본파 제자들을 오라 가라 한단 말입니까.”
“수십 년 동안 무당은 그들과 아무런 은원도 맺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저들을 따라야 합니까?”
반백과 초로의 노도사 몇이 목소리를 높이자 상석에 조용히 앉아 있던 늙은 도사가 조용히 입을 뗐다.
“북검회의 이름으로 본산을 추궁하는 것은 아니다.”
“?”
“자금성에 변란이 있었다.”
“!”
“거기다 속가에서 들려온 소식에 따르면 숭산이…….”
무당장문 청허자가 짙은 그늘을 지우지 못하며 말끝을 흐리자 동석하고 있는 도사들의 표정이 제 각각 변하기 시작했다.
누구는 놀라고 누구는 당혹스러워하고 또 누구는 두려워하면서도 입을 꾹 다물고 청허자의 음성이 이어지길 기다렸다.
“…숭산 소림이 멸문지화를 당했다…….”
“!”
“!”
일순간 자소전 안으로 무섭도록 서늘한 침묵이 무겁게 내리깔렸다.
자리에 앉은 채 온몸이 경직되고 부르르 떨리는 무당파의 도사들.
장문 청허자 아래로 청명, 청진, 청해, 청공, 청무, 청운의 도호를 지닌 그들은 수십 평생을 산속에서 함께 수련하며 지내온 사형제 사이였다.
굳이 더 설명 없이도 지금 사태가 얼마나 크고 두려운 일인지 한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다.
시간이 점점 더 흘렀지만 침묵은 더욱 무거워져 갔다.
“흉수는 그럼……?”
한참 만에 장로들의 맏인 청명자가 나직하게 입을 떼자 청허자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
“아직은 알 수가 없다.”
“그러면…… 짐작하시는 것이라도……?”
“검성은 그 흉수가 화산이라고 하지만…….”
청허자의 나직한 음성에 장로들 표정이 대번에 달라졌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는 표정들.
“북검회가 화산파의 손에 무너진 지 벌써 두 달이다.”
“네엣?”
“그게 무슨……?”
당황하는 장로들을 향해 청허자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화산은 사제들이 알던 과거의 화산파가 아니다. 그 힘이 천하를 아우르기 시작할 정도다.”
장로들은 또 다시 당황했다.
세상일에 관여하던 젊은 시절에만 해도 화산파는 그 명운이 다했다고 여길 정도로 완전히 기울어 가는 문파였기 때문이었다.
그 후로 속세의 소식을 차단한 채 수련에만 임해온 장로들이기에 청허자의 말에 적잖이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검회는……?”
“검성은 야합과 모략을 아는 인물이지. 그 짧은 사이 다시 세를 끌어 모은 듯하다.”
“…….”
“하지만 나는 그에게 놀아나고 싶지 않다. 다만…… 황명을 거부하는 것만은 부담스럽구나.”
청허자의 침중한 음성에 장로들 역시 하나 둘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세상사는 잊고 수도에만 전념시키고자 했거늘…… 이제 그럴 수 없게 됐다.”
청허자의 표정과 말투가 변하자 장로들 역시 눈빛이 완전히 달라졌다.
착 가라앉았던 분위기를 일소한 뒤 형형한 안광을 뿜어내기 시작한 것.
“하산을 명한다. 청명과 청진은 숭산으로 가 사건의 전모를 밝혀라.”
청허자의 목소리에 도사 둘이 자리에서 일어서 공손히 포권을 취했다.
“청해와 청공은 자금성으로, 청무와 청운은 화산으로 가 모든 일들의 실태를 낱낱이 파악하라.”
남은 도사들 역시 자리에서 일어서 청허자를 향해 공손히 포권을 취했다.
그 후 곧바로 몸을 돌려 자소전을 빠져가는 도사들.
그들 중 맏인 청명이 우뚝 멈춰선 채 청허자를 바라봤다.
“본산은…… 괜찮겠습니까?”
청명의 목소리에 서린 깊은 근심이 청허자의 안색에 또 다시 그늘을 드리우게 했다.
“소림이 화를 당했거늘…… 무엇을 자신할 수 있겠느냐. 다만 문을 걸어 잠근다고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을 알 뿐이다.”
청허자의 말에 청명 역시 고개를 끄덕인 뒤 자소전을 빠져나갔다.
밖에는 이미 행랑까지 꾸리고 길 떠날 준비를 끝낸 무당제자들이 도열해 있었다.
무당파의 일대제자들, 그들을 가로질러 장로들의 걸음이 무심하게 이어졌다.
장로들이 산문을 향해 나아가자 연이어 각기 사부로 모시는 장로들을 따라 일대제자들의 무리가 나뉘었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들떠 있는 이가 없었고 그 발걸음은 조용하고 또 숙연하기만 했다.
무당파 산문을 벗어나 좁다란 산로를 굽이쳐 한참이나 내려온 무당파 도인들이 평지가 나오자 잠시간 멈춰 섰다.
각기 방향을 달리하여 흩어지기 전 서로를 향해 포권을 취하기 시작한 것.
“짝을 지어 보내는 장문진인의 뜻을 기억해라.”
장로의 맏인 청명자의 목소리에 마주선 장로들과 제자들의 낯빛이 더욱 굳어졌다.
둘 중 하나는 살아서 임무를 마치라는 의미, 그만큼 이번 하산 길에 큰 위험이 있다는 뜻이었다.
“모두 보중하시게.”
청명자는 더 이상 군소리 없이 돌아섰다.
“보중하십시오.”
“보중하십시오.”
장로들과 제자들이 서로와 서로를 향해 포권을 취한 뒤 각기 가야할 방향을 향해 돌아섰다.
각자의 길로 흩어지기 시작하는 무당파의 도인들.
그때였다.
“으음?”
숭산이 있는 하남쪽으로 길을 잡은 청명자와 청진자가 굳은 표정으로 걸음을 멈췄다.
“사부님! 저게 대체……?”
일대제자 하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왔지만 청명자나 청진자는 대답해 줄 수가 없었다.
난생 처음 보는 광경이었기 때문이었다.
지평선 자락으로 낮게 깔린 새빨간 안개가 엄청난 속도로 밀려오고 있는 것이다.
방향을 달리했던 다른 제자들 역시 우뚝 멈춰선 채 그 기이한 광경에 긴장할 수밖에 없는 때.
뭔가 알 수 없는 불길함에 사로잡힌 청명자가 소리쳤다.
“제자들 모두 본산으로 올라가랏.”
“!”
“!”
“못 들었느냐! 어서!”
연이어 청진자의 호통에 각기 길을 달리했던 제자들이 일제히 신형을 돌린 뒤 산로로 몸을 날렸다.
잠시 뒤 그 자리에 남은 이들은 여섯 장로들뿐이었다.
서로의 눈을 쳐다보며 말도 못하게 굳어지는 그들의 표정.
모두가 한 마음으로 불길하고 두려운 감정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창!
청명자가 가장 먼저 검을 빼들었다.
차장창!
다른 이들 역시 검을 뽑은 뒤 청명자 옆으로 나란히 섰다.
그 사이에도 붉은 안개는 무당산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검을 쥔 여섯 장로들의 이마 위로 한 두 방울씩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단지 불길했던 예감의 실체를 하나 둘 확인하기 시작한 것.
“사…사형!”
“저게 대체……?”
핏빛 안개에 휘감겨 밀려드는 것들은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닌 이상한 것들이었다.
뼈마디에 살점만 너덜너덜 달라붙은 흉측한 괴인들, 머리통은 하나같이 백골이었다.
그런 것들의 숫자가 수백은 넘어 보였다.
후웅! 우웅! 우우웅!
여섯 장로들의 검에서 일제히 눈부신 빛이 뿜어졌다.
붉게 타오르는 검강을 일으킨 장로들이 결연한 눈빛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여기서 막아내지 못한다면 소림에 닥친 겁화가 무당파를 휩쓸 것임을 본능적으로 감지한 것.
바로 그 순간, 한 무리의 군마처럼 열을 맞춰 내달리던 괴인들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캬악!
슛! 슈슛!
마치 먹잇감을 발견한 것인 양 앞 서 내달리던 괴인들이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연달아 메뚜기 떼가 뛰는 것처럼 시꺼먼 그림자들이 여섯 장로들을 향해 미친 듯이 날아들었다.
슈슈슛슈슈슈슛!
절정의 경공술을 익힌 무인들도 흉내 내지 못할 만큼 엄청난 거리를 단번에 펄쩍 뛰어 쏟아져 내리는 것.
캬악!
가장 먼저 떠오른 백골이 흉측한 이빨을 드러낸 채 청명자의 목줄기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마치 맹수와도 같은 움직임!
슈앙!
뎅강!
청명자의 붉은 빛 검강이 머리통만 백골인 그것의 목을 단번에 잘라냈다.
“!”
순간 청명자의 눈이 부릅떠졌다.
터턱!
온통 짓물러진 살점으로 가득한 괴인의 손이 청명자의 양 어깨를 짚어온 것.
꽈득!
“윽!”
일순간 엄청난 악력에 어깨가 뜯겨져 나갈 것 같은 고통이 밀려들었다.
휘리릭! 서거걱!
다급하게 검을 팽이처럼 휘돌려 괴인의 두 팔을 잘라냈지만, 어깨에 달라붙은 팔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마치 거머리가 피를 빨 듯 꿈쩍도 않고 어깨를 파고드는 그 힘에 청명자의 얼굴이 말도 못하게 일그러져갔다.
하지만 바로 옆에 선 장로들은 그를 도울 수가 없었다.
슈슛! 슈슈슈슛!
캬악! 캬캬캬캬캭!
새까맣게 뒤덮어 오는 흉측한 괴물들을 향해 검을 내지르기에도 바빴던 것이다.
“큭!”
“크윽!”
“으으으!”
청명자가 당한 것을 코앞에서 지켜봤지만 다른 장로들 역시 다를 것 없는 상황에 처했다.
완전히 조각내지 않은 한 잘린 팔다리가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것.
더구나 계속해서 밀려드는 괴인들의 숫자는 끝도 없는 상황.
다리가 잡아 뜯기고, 허벅지의 살점이 뭉텅뭉텅 뜯겨나갔다.
고절한 공력으로 버텨내지 못했다면 온몸이 벌써 갈가리 찢기고도 남았을 일.
하지만 그들 장로들의 눈빛은 이미 아득한 절망으로 물든 뒤였다.
아무리 자르고 베어도 물리칠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모두 도망치라고 알리게!”
청명자가 필사적으로 소리쳤지만 그저 공허한 외침일 뿐이었다.
이미 누구 하나 몸을 뺄 수도 없는 상황, 괴인들의 잘린 팔 다리들이 뼈다귀가 쌓인 것처럼 장로들의 하체를 뒤덮고 있었다.
그러고도 상체만을 움직여 필사적으로 검을 휘두르는 것인 전부인 장로들을 비로소 확인한 것.
“으으……!”
청명자 역시 밀려드는 고통과 더불어 전의를 상실한 신음을 내뱉었다.
벌써 잡아 뜯겨 나간 것은 어깨쪽 살점만이 아니었다.
팔 다리 여기저기 새하얀 뼈마디가 드러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온몸은 피투성이였고 괴물 같은 것들은 여전히 끝도 없이 밀려들고 있었다.
챙강!
검을 쥔 손아귀에 힘이 풀리며 청명자의 두 무릎이 털썩하고 주저앉았다.
찔끔 눈을 감아 버린 청명자의 귓가로 예의 그 소름끼치는 소리가 전해져왔다.
캬얏! 캬캬캬캿!
기다렸다는 듯 청명자를 뒤덮어오는 괴인들의 입에서 뿜어지는 소리.
그때.
쭝!
퍼퍼퍼퍼퍼퍽!
무언가 끈적끈적한 것들이 사정없이 얼굴에 튀는 것을 느낀 청명자가 눈을 부릅떴다.
쭝!
퍼퍼퍼퍼퍼퍽!
시꺼먼 번개 같은 것이 번쩍하면서 수십 기의 괴인들이 폭발하듯 연쇄적으로 터져 나갔다.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변한 청명자의 시선.
시꺼먼 번개를 뿌리며 괴인들을 박살내는 것은 분명 자그마한 손도끼였다.
연이어!
후우웅! 후웅! 후우우웅!
엄청난 파공음을 내며 거대한 도끼 한 자루가 핏빛 안개 가운데로 내리 꽂혔다.
쿠콰콰쾅쾅!
핏빛 안개가 속절없이 흩어지며 거대한 버섯구름 모양의 먼지가 하늘로 끝도 없이 치솟았다.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위력이었다.
화탄 수천 개를 한꺼번에 폭발하면 그럴까 싶을 정도의 광경.
그 무렵 하늘에서 앳된 청년 하나가 천천히 떨어져 내렸다.
청년의 양손으로 손도끼와 대부가 저절로 날아와 붙잡혔다.
청년의 눈이 아직도 자욱한 먼지구름 쪽을 향했다.
“씁새! 너 정체가 대체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