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l Street of the Third Empire RAW novel - Chapter (245)
미육군 참호전 교범.
사실상 처음으로 참호를 파고 들어가 마개조로 요새화시켜 기관총으로 달려오는 군인들을 갈아마시는 전투를 전쟁규모로 겪은 것은 미국이 처음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상대는 유사열강이던 스페인이었다는 사실이고, 미육군의 사상자도 몇만에 그쳤다는 사실이겠지.
델카세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전에 식민장관을 하면서 한번쯤은 조사해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프랑스군부가 했을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말이다.
“프랑스군부가 고민할 껀덕지라도 있습니까?”
델카세는 진심으로 물어봤다.
더이상 겉치레는 없다. 시간도 아깝고, 빙빙 돌려봤자 원하는 대답도 얻지 못한다. 다행히 미국대사도 똑같이 생각했는지 거침없는 대사를 술술 불어냈다.
“차후의 물자들로 딜을 보았죠.”
“예?”
“간단합니다. 프랑스군부는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얻었지만, 보급은 전적으로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니 때려죽이고 싶어도 제말은 들어야합니다.”
그렇겠지.
당장 배고픈데 아침밥 낚싯대에 걸고 협상을 시전하면 누구라도 퀭한 눈으로 고개를 미친듯이 끄덕일 것이다. 하물며 3일정도 굶은 뒤라면 짐승같은 몰골로 침까지 질질 흘리며 광기마저 엿보이리라.
프랑스군부가 아무리 자존심을 관철하는 엘랑비탈의 산실이어도, 보급이 없으면 끝장난다는건 일단 상식으로 머리에 탑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작정 듣지는 않겠죠?”
그걸 말이라고.
프랑스군부가 그따위 이유로 개같이 순종할리가 없다. 차라리 검을 뽑아 혀를 자르고 명예롭게 뒤져버리겠지. 아니면 동귀어진을 시도하던가. 개처럼 패서 뒷감당을 안할지도 모른다.
“자존심이 높은 프랑스군부를 상대로 해야한다면, 조건보다는 체면을 세워줘야합니다. 명분도 주면 금상첨화죠.”
미국대사는 손가락을 들었다.
“그래서 조건을 걸었습니다. 미육군 참호전 교범대로 정확히 따라했는데도 프랑스군이 박살난다면, 차후의 보급물자를 프랑스군부에 유리한 조건으로 납품하겠다고 말입니다.”
유리한 조건.
프랑스재무부의 장관인 델카세가 그 워딩을 놓칠리가 없다. 퀭하게 눈밑까지 내려왔던 다크서클 위로 눈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 말씀은 미육군의 참호전 교범이 틀렸을 때, 프랑스군부는 앞으로 보급걱정은 없이 싸워도 된다는 말씀이신가요?”
델카세는 자신이 들은 내용이 맞는지 재확인을 요청했고, 미국대사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다만 무료는 아니고, 차관으로 제공되는 물자들이겠지만, 프랑스군부의 부담도 줄고, 끊길 걱정도 없어지겠죠.”
사실상 우방대우를 해주겠다는 의미다.
프랑스군부가 보급걱정없이 전쟁에 임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의미. 국채를 담보물 조건을 완화해 매입해줄 것이고, 프랑스가 망할 것 같으면 미국이 대신 나서줄 가능성도 생긴다.
과연, 프랑스군부가 고민할만도 하다.
“대신.”
미국대사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미국대사관의 해병대와 육군장교들이 전선 시찰에 나가 참호전 교범에 맞춰 참호를 제대로 팠는지 일일히 체크해 볼 것이고, 맞지 않는 부분은 절대시정을 해주셔야한다는 조건입니다.”
이건 일단 무조건적으로 프랑스군부가 한번 참호전 교범을 완벽하게 따라해야한다는 말이다. 컨펌을 받고 교범대로 정확히 수행해야한다는 점은 프랑스군부를 열받게 하기엔 충분한 도발이었다.
델카세는 턱을 쓸었다.
“하지만 명분이 생기겠군요.”
“역시 프랑스재무부의 장관정도 되시면 다 아시는군요.”
미국대사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참호전 교범이 실패한다면, 차후 참전할지도 모를 미육군은 독자적인 명령권을 잃을수도 있는 명분을 프랑스군부가 쥐게 될 겁니다.”
모험이다.
미국에게도 프랑스에게도 모험이다. 하지만 미육군이 이정도로 강경하게 나온다? 참호전 교범에 어지간한 자신감이 없으면 나올 수 없는 자세였고, 협상이었다.
게다가 미육군의 입장에서도 나쁠 것이 없는게, 미군장교들이 숨어들어 프랑스군부를 시찰하면서 전쟁정보들을 전부 빼갈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참호전 교범이 대규모 전쟁에서 어떻게 운용되는지, 장단점에 약점, 참호의 깊이나 개량법 등 정보들을 다 취합할 수 있는 것이다.
즉, 미군 장병들의 목숨을 잃지 않고 거의 공짜로 전쟁정보를 뽑아갈 수 있었다.
“서로에게 윈윈이군요.”
모건장관이다.
델카세는 그 즉시 파악했다. 이런 딜을 요구할만란 인물은 그밖에 없거니와, 윈윈은 기본적으로 모건장관이 추구하는 협상의 기본원칙이었다.
모건장관은 본인에게만 이득이 되는 거래를 안하진 않지만, 보통 잘 하지 않는다.
모건장관의 냄새가 물씬 나는 거래조건인 것이다.
“……후.”
델카세는 순간 알수없는 강력한 거부반응을 느꼈지만,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조건임을 인정했다.
“결국 프랑스군부도, 미국군부도 원하는 것은 승리군요.”
프랑스의 승리.
프랑스군부가 미국 엿먹으라고 승리를 포기하며 독일제국군에 파리를 갖다바치는 머저리들은 결코 아니다. 프랑스군부는 한번 결정하면 노도처럼 밀어붙여 승리를 위해 밀어붙이리라.
엘랑비탈의 정신만큼은 일품이었으니.
‘아, 돌격은 할 수 없으니, 철통같은 수성이라고 해야겠군.’
아무튼 한번 계약이 성사되면 프랑스군부는 미친듯이 열심히 임할 것임은 분명했다. 미국대사의 말과 교범을 취합해보면, 참호전이라는 것은 참호가 얼마나 단단하고 구조적으로 잘 구축되었느냐에도 상당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독일군의 중포는 위협적이지만, 독일보병은 아직도 프랑스육군 보병과 마찬가지로 서로가 아직 전열보병의 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참호전이 교범대로만 작동된다면, 독일군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잠깐.’
델카세는 문득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프랑스군부가 아무리 승낙한들 장군들이나 영관급은 물론 위관급 장교들도 이 교범대로 할 것을 순응하진 못할 것이다.
일단 누군가 스타트를 끊어줘야 못이긴다는 듯 다른 장교들도 하나둘 참여할텐데, 스타트를 끊을 지휘관이 부재했다.
아니, 부재한가?
‘스타트를 끊을 지휘관이라면 있다.’
델카세는 고개를 살짝 틀어 페텡이라는 대령을 흘겨보았다.
페텡 또한 충격반 고뇌반의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마도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겠지.
‘등떠밀어 볼까.’
곰곰히 생각해보면 감히 장관에게 대들은 대령나부랭이에 불과하지 않나. 델카세가 군부장관은 아니지만, 그의 옷벗기는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매국노같은 재무장관에게 대들어서 군복을 벗긴다면 명예로울지 몰라도, 미육군 참호전 교범을 할 자신이 없는 겁쟁이라고 군복을 벗긴다면 그만큼 불명예스러운 일이 있을까.
페텡도 프랑스군인이다.
아무런 영광도 없는 불명예전역은 지옥같은 일이겠지.
사회적 살인이다.
“……”
하지만 델카세는 문득 멈췄다.
불과 몇분전 미국대사의 말이 머릿속을 스치며 떠올랐기 때문이다.
– 프랑스군부의 어느 용맹한 대령께서 조국에 대한 애국심만을 위해 프랑스 결제은행으로 쳐들어오셨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저도 조금 감명깊게 느꼈고요. 그래서 특별히 페텡 대령님의 부대를 챙겨달라고 언질하고 오는 길입니다. 보급이 부족할 일은 없으실 겁니다
‘…..아!’
델카세는 소름이 쫙 끼쳤다.
고개를 획 틀어 경악한 얼굴로 미국대사를 바라보았다. 미국대사는 결코 호의를 목적으로 저딴 소설에나 나올법한 훈훈한 대사를 던진 것이 아니었다.
‘너 재무장관에게 대들어서 목이 위태롭지? 우리가 물자는 풍족하게 지원해줄테니, 니가 총대 매라.’
미국대사.
저 소름끼치는 새끼.
저놈은 처음부터 참호전을 맡길 총대로 페텡을 점찍고 이곳으로 쳐들어온 것이다.
“미친…..”
“예? 무슨 말씀이라도 하셨습니까?”
선량한 얼굴.
순진무구한척 갸웃하는 저 고개. 델카세는 순간 역겨워 저 볼싸대기를 후려치고 싶었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자신의 폭력성을 잠재웠다.
저놈은 저래봬도 미국의 전권대사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델카세가 대충 옆을 흘겨보니, 페텡도 자신의 처지를 깨달았는지 눈을 부릅뜨고 미국대사를 뜷어져라 노려보고 있었다.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듯 세차게 떨린다.
사실상 외통수에 걸렸으니 페텡은 참호전 교범대로 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좀 불쌍해보이는군.’
미국대사가 페텡에게 ‘물자를 충분히 제공한다’는 의미란 무엇일까. 페텡은 이미 재무장관에게 찍혔고, 참호전 교범을 실험할 실험체도 필요하니. 단순히 미국대사는 페텡보고 먼저 총대매고 나가라는 의미였댜.
용기를 위한 포상 그딴 숭고한 보상 따위가 아니라. 그냥 실험체로 등떠밀은 것이다.
‘물자를 풍족하게 받는만큼, 타부대와는 사이가 나빠질수밖이 없다.’
나는 굶는데 쟤네는 풍족하게 먹으면, 누구라도 저놈이 빼돌린다고 생각한다. 그 누구라도 말이다.
만약 페텡이 참호전 교범대로 승리하지 못하면, 보급받지 못한 다른 장군들에게 욕은 두배로 먹겠지.
눈엣가시가 되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잘못하면 책임을 뒤집어 씌워지고, 횡령배임까지 뒤집어쓴채, 불명예 전역을 당할지도 모른다.
승리한 독일군의 군홧발은 파리를 향해 진군할테니 말이다.
‘승리하지 못하면 사회적 죽음 뿐.’
이쯤되면 델카세도 페텡이 조금 불쌍해보였다.
외통수를 당한 페텡은 오직 승리만이 선택지로 남은 극악한 상황에 떨어졌다.
‘치밀하다.’
심지어 엘랑비탈을 거부한 몇안되는 지휘관 중 한명이다. 미국대사는 각을 잰 것이다. 페텡정도로 엘랑비탈에 부정적인 인물이라면, 현실을 직시하는 인물이라면, 참호전의 가치를 알아봐줄 것이라고 말이다.
한마디로 참호전대로 따라줄 몇안되는 지휘관이 페텡이었고, 미국대사는 절대로 이것을 의도했을 것이다.
3번이상 겹치면 우연이라 말하지 않으니까.
페텡은 애써 굳은 표정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싶어보였지만, 미안하게도 그의 안색은 이미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음? 제 얼굴에 무엇이라도 묻었는지요?”
속에 구렁이 천마리를 욱여넣은 미국대사는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누가보면 호의로 가득한 호인이었지만, 당한 입장에선 이만한 악마도 없었다.
페텡은 이미 포기한 듯, 하얗게 질린 얼굴로 애써 태연한 척 앉아있었다.
하지만 델카세들은 몰랐다.
이 모든 일들은 미국대사의 독자적인 행보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미국대사도 구렁이를 키우는 정치인이었지만, 그 뒤에는 더 무시무시한 놈이 있었다.
매시간 미국대사와 직접 전보를 주고받는 한 재무장관의 존재가 있었다.
델카세가 그 존재의 정체를 알았다면 당장에라도 혼절했으리라.
그시각.
워싱턴D.C.
재무부 청사의 장관실에선 작은 웃음소리가 세어나오고 있었다.
***
“…….”
먹구름이 피어오르는 전장.
페텡은 멍하니 전장을 바라보았다.
마른강 인근, 전장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참호선들이 이중삼중으로 쳐져있고, 물자로 올라온 철조망들 또한 이중삼중으로 깔려져있었다.
쿠르릉….
곳곳에 머리를 내밀고 있는 육중한 기관총들은 총구에서 실밥같은 연기를 뽑아내고 있었다.
윤형 철조망들은 핏물에 절여져 붉은 혈액이 철사끝으로 뚝뚝 떨어져 웅덩이를 만들었다.
그 위로는 독일군복을 입은 보병시체들이 산처럼 쌓여있었다.
“…..어?”
참호에서 살짝 고개를 든 병사들은 믿을 수 없는 현실에 흙을 뒤집어쓰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입을 쩍 벌렸다.
지휘해야할 장교들조차 얼이 빠진채 두 팔을 축 늘여트렸다.
이럴리가 없다.
미육군의 참호전 교리가 이토록 효과적일리가 없다. 그렇게 스스로를 세뇌해온 군인들은 정반대의 현실을 차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자아가 붕괴되는 듯했다.
덤덤한 것은 이미 스페인군을 갈아버린 전적이 있는 미국대사관에서 파견된 미군장교들 뿐이었다.
하지만 그들도 내심 감탄하고 있었다.
설마 정예독일군을 상대로도 분쇄기처럼 작동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결국 독일군도 사람이다.
기관총의 세례앞에선 모든 것이 평등하다.
오늘의 전장은 앞으로의 전쟁의 분수령이 될 것이다. 이견은 없었다.
“맙소사.”
펼쳐놓은 3중 철조망은 난이도가 극악했다.
대부분 독일군은 첫번째 철조망조차 넘지 못했다.
첫번째 철조망을 넘은 독일군은 소수.
두번째 철조망을 넘은 독일군은 극소수.
세번째 철조망을 넘은 독일군은 손에 꼽을 정도.
운좋게 겨우 3중 철조망을 넘었어도, 결국 프랑스군이 주둔한 첫번째 참호선까지 다다른 독일군은…..
0명.
없었다.
이는 학살이다.
그 누구도 이것이 학살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순 없었다.
전선에 페텡만 있는 것도 아니다. 이미 몇겹의 참호선은 마른강 유역 주위로 길게 이어져있었고, 오늘 공세를 시작한 독일군 보병사단급 전력이 전멸했을 가능성이 높다.
독일군도, 프랑스군도 참호전에 면역이 없었으니.
프랑스군 장교가 어지간한 머저리가 아니라면 말이다.
헉헉.
프랑스군 전령 하나가 헐떡이며 페텡 대령에게 달려왔다. 충격이 가득한 얼굴 밑으론 끓어오르는 희열이 보였다.
그럴 수밖에.
인생이 걸린 페텡은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참호를 파고, 그 누구보다도 더 열성적이고 모범적으로 참호를 팠다.
누구의 예상대로 페텡은 프랑스군 내부에서도 제법 유연한 사고를 가진 영관급 장교였다.
자존심 다 내던지고, 미육군과 미해병대 장교들에게 질릴정도로 질문을 던지고, 공책이 마모될때까지 필기하고 참호를 연구했다.
그 결과, 페텡의 노력으로 참호의 효과는 더 극명하게 나타났다.
“…..돌격한 독일보병은 전멸하였고, 프랑스군의 사상자는 중포 포격에 맞은 소수를 제외하곤 무사합니다. 중포도 포병대가 제거했습니다.”
그들은 독일군의 중포를 어떻게 제거했을까.
단순했다.
보급은 썩어넘쳤고, 있는대로 포탄을 쏟아부으니, 상대가 먼저 포탄물량이 떨어졌다.
돌격한 전열보병이 작살났으니, 독일군 포병대는 그대로 노출되었다.
“저희의 승리입니다!”
승리(Victory).
그것도 완벽한 승리였다.
“……”
그날, 프랑스사령부로 경악스러운 승전보가 날아들었다. 하지만 자존심 높은 프랑스군부의 그 누구도 솔직하게 승전보를 즐길 수 없었다.
자신들이 이류열강이라 깔보던 미군이 옳았음이 증명된 순간이었으니까.
그들의 자존심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젠장.”
이로써 증명되었다.
결국 프랑스군은 미군보다 전쟁을 못했음이 만천하에 말이다.
프랑스장성들은 견딜 수 없는 수치심에 당장 혀깨물고 죽고 싶어졌다.
손의 핏줄, 힘줄이 터질듯 부풀었다.
이윽고 탁자가 부서질정도로 강하게 주먹을 내리쳤다.
쾅-!!!
“젠자앙!!!”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