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7
17화
‘이런 젠장!’
청상이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자신을 둘러싼 자들.
분명 하수다.
실력 차가 분명했다.
그런데 어깨에 상처가 생긴 이후로 자꾸만 상처가 늘어 갔다.
도무지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어서 혼란스러웠다.
이런 싸움은 처음 경험해 보는 일이었다. 그들의 공격에는 투로도 초식도 없었다.
대신에 악착스러움이 있었다.
하수의 검인데도 가슴이 시릴 정도로 서늘한 살기가 스며 있다.
캉! 카캉!
더욱이 공격이 더욱 난잡해지고 집요해져서 막는 것이 어려웠다.
핏!
“큭!”
무릎 아래가 예리하게 베어져 나가는 느낌에 청상의 몸이 비틀거렸고, 날카로운 단도가 틈을 놓치지 않고 그의 목을 향해 날아왔다.
피하기에는…….
텁!
“쯧, 좀 더 경험을 쌓게 두려 했더니.”
“사, 사숙…….”
단도는 청상의 목에 닿지 못하고 어느새 가로막은 진무의 손에 잡혀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진무의 모습에 공격했던 사내가 단도를 빼내려 용을 써 보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듯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병신 새끼, 실패했으면 바로 놨어야지.”
쩡!
비웃음과 함께 진무가 손을 움켜쥐자 단도가 작은 파열음을 내며 부서졌다.
그리고.
퍼억!
곧게 뻗은 발이 사내의 복부를 파고들었다.
“커억!”
사내의 몸이 새우처럼 꺾이고.
퍽!
진무의 주먹이 그의 목덜미를 강하게 내리쳤다.
털썩!
거센 충격에 사내가 땅바닥에 처박혀 정신을 잃었다.
“자, 한 놈은 잡았고.”
진무의 싸늘한 시선이 습격자 중 하나를 향했다. 황의를 입은 고리눈의 사내.
‘어떻게?’
일행인 척 숨어 있었던 것인데 어찌 알았을까?
그의 눈에 떠오른 당혹스러움을 진무는 놓치지 않았다.
“넌 뭐냐? 딱 봐도 칼 쓰는 게 경험 많은 낭인인데.”
“…….”
황의인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하찮기는 해도 이런 놈들과 어울릴 정도로 수준이 낮아 보이지는 않고.”
“…….”
“어떤 놈한테 청부라도 받은 모양이지?”
“무, 무슨 소리를…….”
“어, 그래. 뭐 물어본다고 바로 친절하게 대답할 거라는 기대는 안 했다. 역시 대화가 좀 필요하겠지?”
“…….”
“청우야!”
“예!”
청우가 힘차게 대답했다.
“…….”
으이구, 이럴 땐 좀 알아서 움직여 주면 좀 좋아.
“정리 좀 해라.”
“뭘요?”
한숨이 절로 나왔다.
만약 이놈들이 제법 실력 있는 놈들 같았으면 벌써 다 튀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이놈 빼고 다 패라고. 쫌!”
진무가 황의인을 가리키며 눈을 부라리자 그제야 청우가 짐을 벗어 던짐과 동시에 쏜살같이 뛰어들었다.
“제길!”
동시에 황의인이 도망치려 몸을 날렸다.
상대에게 들킨 이상 흔적을 지우고 달아나는 것이 상책이었기 때문이었다.
“누가!”
“……!”
황의인의 귓가에 들리는 목소리.
눈앞에 나타난 한 뼘 조금 넘는 크기의 발.
뻐어억!
황의인은 서너 걸음도 달아나지 못한 채 얼굴을 얻어맞고 뒷걸음질 쳤다.
턱!
멱살을 잡아 오는 손.
“도망치게 놔둔대?”
사악한 미소와 함께 휘둘러져 오는 두툼한 주먹.
퍼억!
황의인의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코뼈를 박살 내며 틀어박힌 주먹에 황의인은 정신을 잃고 축 늘어졌다.
뻐억! 뻑! 빠박!
그 사이에도 청우는 계속해서 싸우고 있었다.
딱! 쾅! 퍼벅!
“…….”
계속…….
“청상아.”
“예. 사숙.”
“……해 지겠다.”
파팍!
역시 눈치는 청상이 훨씬 빠르다. 청상이 끼어들자 순식간에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신을 잃어버린 둘을 제외하고 습격자들 태반이 진무의 앞에 일렬로 무릎이 꿇려졌다.
“자, 이제 대화를 좀 해 볼까?”
진무의 미소에도 습격자들은 여전히 대가리를 꼿꼿하게 들고 있었다.
청상과 청우가 자신들보다 훨씬 고수인 것을 알고 있었기에 대놓고 반항을 하지는 않았으나.
“니들, 혹시 우리가 도사라서 막, 말로만 대충 물어보고, 어? 막, 좀만 입 다물고 버티면 적당히 훈계질 좀 하다 관아에 넘길 거고, 응?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지?”
“…….”
그들의 생각은 적어도 그러했다.
원래 도사라는 족속들이 그렇지 않은가. 잔인하지가 못했다.
끽해야 몇 대만 참으면…….
“그렇지, 맞아. 아마 뒤에 있는 애들이라면 그럴 거야. 아니, 저 순진해 빠진 놈들이라면 그러고도 남지. 근데.”
진무가 한 사내에게 천천히 다가가 부드럽게 팔을 잡았다.
친절히 웃으면서…….
우두둑!
“끄아아악!”
괴성을 내지르며 고통스러워하는 사내의 모습에 모두가 눈을 부릅뜨고 고개를 세차게 돌렸다.
역으로 꺾인 팔.
피가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고 뼈가 허옇게 드러나 있었다.
“사, 사숙!”
청상과 청우마저 그 잔인한 모습에 놀란 표정이었다.
하지만 진무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괴성을 질러 대는 사내의 발을 움켜쥐고 무릎을 밟았다.
“귀찮게 말이야.”
어디까지나 미소를 잃지 않고…….
우두둑!
“끄아아아악!”
마찬가지로 역으로 꺾인 다리.
결국, 사내는 격통을 이기지 못해 눈을 허옇게 뒤집고 혼절해 버렸다.
“사, 사숙!”
청우는 얼어붙은 채 눈만 끔벅거렸고 청상은 놀라서 짐에서 응급처치에 필요한 것들을 마구잡이로 꺼냈다.
“굳이 내가 열 명이 넘는 니들을 관에 넘길 필요 있을까? 니들 실력이면 딱히 현상금이 걸려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생기는 것도 없는데.”
진무는 새하얀 이빨이 보일 정도로 미소를 지었다.
“익숙하잖아. 이런 거. 칼 밥 먹다 보면 이런저런 일로 다치기도 하고, 이런저런 곳에서 비명횡사하는 일도 종종, 왕왕, 비일비재하지. 안 그래?”
진무가 그 옆에 앉아 있는 이를 향해 최대한 상냥하게 웃어 주었다.
“……!”
오히려 그것이 훨씬 더 잔인해 보였다.
잔뜩 돋은 소름은 가라앉을 생각을 하지 않았고, 있는 대로 쪼그라든 심장은 원래의 모습이 어땠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뭐 이런 도사 놈이 있단 말인가?
“이, 이런 잔인한!”
“뭐? 잔인? 웃기는 놈이네. 먼저 죽이려 한 주제에…….”
진무가 싱글거리며 그의 뒷머리를 틀어쥐고 힘껏 움켜쥔 주먹을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자, 잠깐…….”
“어, 어. 움직이지 마. 목 부러져.”
퍽! 퍽퍽퍽!
경쾌하다.
고르고 일정했다.
코뼈가 부서지고 피가 튄다.
그 사이로 진무의 미소와 함께 날카로운 송곳니가 시리도록 빛났다.
온통 터져 나온 핏물이 입을 가득 채워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정신을 잃고 진무의 손에서 놓여난 그의 얼굴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함몰되어 있었다.
“아, 새로 받은 도복인데…….”
피가 튀었네.
처음으로 진무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 순간 모두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미친놈이다.
미친 도사 놈이다.
사람 둘을 순식간에 걸레짝으로 만들어 놓고 웃다가 제 옷에 피가 튄 것에 얼굴을 찌푸리다니.
“마, 말하겠습니다.”
“…….”
다음이 자신의 차례가 될 것을 직감한 세 번째 사내가 사색이 된 표정으로 목이 터져라 외쳤다.
“뭘?”
“예?”
“딱히 듣고 싶지 않은데?”
“…….”
하늘이 노래지는 것만 같았다.
뭐가 됐든 말해야 했다.
저 또라이 새끼 손에 걸리면 병신이 되거나 죽는다.
분명 자신이 아는 내용 중에 저놈의 관심을 끌 만한 것이 있을 것이다.
세 번째 사내는 그렇게 생각했고, 나머지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그때부터 너도나도 마치 방언이 터진 것처럼 머릿속에 있는 모든 기억을 토하듯이 외치기 시작했다.
자신의 목소리가 더 잘 들리게.
“그만!”
“…….”
“시끄러워서 알아들을 수가 없네.”
진무가 눈살을 찌푸리자 모두가 미리 짠 것처럼 입을 닫았다.
“너!”
“예! 팔룡파 소속! 마흔두 살 곽청길!”
“말해 봐.”
“예! 팔룡파는 단강구 뒷골목에 있는 불량 조직으로, 서남쪽 포목 거리에서 보호비를 받고 있습니다. 두목은 이팔룡!”
말인즉슨.
이놈들은 단강구 뒷골목에서 방귀깨나 뀌는 녀석들인데, 상인들을 위협해서 보호비 명목으로 갈취를 일삼던 와중에 두목이 오늘따라 무당산 인근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나이 어린 도사 세 놈을 잡아 오라고 했단다.
이 정도 실력을 가진 도사라고는 듣지도,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라 했다.
자신들은 그저 애새끼 셋만 잡아 오면 된다고 쉽게만 생각한 것이다.
더욱이 진무에게 처맞고 뻗은 둘의 이름은 십언이흉(十堰二凶).
단강구 뒷골목에서는 제법 알려진 고수였기에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 여긴 것이다.
즉, 진무 일행이 그곳을 지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왜?
딱히 도사 셋을 잡아갈 이유가 없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무당파의 도사였다.
아무리 세가 약해졌어도 무당파다. 그들이 건드리기에는 먹이가 너무 크다.
잘못하다가는 입이 찢어지는 건 물론 사돈에 팔촌까지 털려 나갈 수 있는 일이었다.
웬만한 사파의 주력도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물었다는 것은 일단 앞뒤 구분이 없을 정도로 간이 크다는 뜻이고.
그 간을 빼놓을 정도로 청부 금액이 크단 말이겠지.
“좋아. 괜찮군. 넌 저쪽에 가서 찌그러져 있어.”
“감사합니다! 대협! 아니 도인, 도사님!”
곽청길은 당장이라도 울 듯한 표정으로 절을 올리며 잽싸게 물러났다.
그리고 진무의 시선이 닿자 네 번째 사내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곧바로 입을 열었다.
“팔룡파 서른두 살! 왕덕삼! 삼남 이녀 중 둘째! 홍등가 앵앵이의 기둥서방입니다!”
“…….”
어떻게든 살아 보려 곽청길보다 많은 내용을 쏟아 내었다.
범굴에 물려 가도 정신만 차리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곽청길, 이 개새끼.
좀 나눠 먹지. 팔룡파에 대해서 전부 말하는 바람에…… 그래도 뭐라도 말하자.
왕덕삼은 굳이 안 해도 될 자신의 삶에 대해서 늘어놓기 시작했다.
“거기까지.”
“예? 아, 아닙니다. 아직 할 말이 많습니다. 제발…….”
왕덕삼은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통사정을 했다.
“닥치고. 지금부턴 묻는 말에 대답해.”
“예!”
“어떤 놈이 청부한 거야?”
“예? 그, 그건…….”
“몰라?”
“…….”
왕덕삼뿐만 아니라 다른 놈들도 사색이 되었다.
모른다는 이야기다.
“몰라?”
“살려 주십시오. 정말 모릅니다. 진짭니다. 제발요.”
“흠…….”
진무는 잠시 고민하다가 몇 가지를 더 물어보았지만 하나같이 쓸데없는 대답일 뿐 정작 아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결국, 팔룡파 두목이라는 이팔룡을 직접 찾아가 보는 수밖에 없었다.
“좋아. 그럼 저 새끼들 유명하냐?”
진무가 십언이흉을 가리켰다.
“예! 단강구 뒷골목에서는 손에 꼽습니다. 듣기로는 섬서에서 제법 이름난 무인을 죽이고 단강구에 숨어 산다고 했습니다.”
“얼마짜리지?”
“예?”
“걸린 현상금 정돈 있을 거 아냐?”
“은 열 냥쯤 될 겁니다.”
“…….”
제길…… 어쩐지.
단강이흉도 아니고 촌구석인 십언이흉이니.
그래도 두 놈 합해서 은 스무 냥이다. 진허가 쓰라고 준 용돈보다 훨씬 많다.
일단 챙기고.
“니들은 뭐 가진 거 없냐?”
“…….”
저건 또 무슨 말인가?
잠시 고민하던 팔룡파 식구들은 속옷에 감춰 두었던 비상금까지 탈탈 털어서 진무에게 바쳤다.
“사, 사숙.”
그걸 보고 있던 청상과 청우는 아연실색을 금치 못했다.
잔인한 방법으로 그들의 몸을 상하게 한 것도 모자라 불량배들에게서 돈을 뜯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도사가 해서는 안 될 짓이었지만 이미 진무가 흐뭇하게 받아 챙기고 있었다.
“좋아. 그럼 가 봐.”
“예?”
“꺼지라고. 대신 이팔룡이한테는 말하지 말고. 만약에 내가 찾아갔을 때 이팔룡이 못 찾으면 니들은 전부…….”
진무가 슬쩍 고개를 돌리자 모두의 시선이 따라갔다.
팔다리가 역으로 꺾였으나 청상이 겨우 응급 처치를 해서 사람 꼴로 돌려놓은 사내.
얼굴이 함몰되었으나 청상이 필사적으로 응급 처치를 해서 숨은 붙여 놓은 또 한 명의 사내.
꿀꺽.
마른침이 절로 넘어갔다.
“앞으론 절대로 나쁜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 이 길로 바로 도망쳐서 다른 곳에 가서 착하게 살겠습니다!”
모두가 한목소리로 외쳤다.
“응? 아, 그럴 필요 없어. 계속 그냥 뒷골목에서 살아. 보호비도 받고, 남들 괴롭히고.”
“아, 아닙니다. 절대로 그러지 않겠습니다. 제 이름! 아니 아비의 이름을 걸고 약속합니다.”
“이런 쌍! 그냥 나쁜 짓 하면서 살라니까!”
“……!”
진무가 눈을 부라리자 모두가 딸꾹질을 하며 입을 다물어 버렸다.
“쯧, 가 봐. 저기 다친 놈들 데리고.”
“예? 예!”
진무의 허락에 눈치를 살피던 사내들이 잽싸게 부상자들을 들쳐 메고 자신이 달릴 수 있는 최고의 속력으로 도망쳤다.
아마 그들은 더 이상 단강구로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자, 그럼 가 볼까?”
“…….”
폭풍 같은 시간이 지나갔건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진무의 모습에 청우와 청상은 도무지 적응하지 못했다.
“야, 뭘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어?”
“예?”
“업어.”
“…….”
십언이흉이라는 자들.
청상과 청우는 그들을 한 명씩 나누어 업었다.
물론 청우가 두 개의 짐을 든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짐에 사람까지 업은 모습이 고되어 보이기는 했으나…… 멍청하긴 해도 힘이 좋으니까 상관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