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8
18화
진무 일행이 단강구 초입의 작은 현, 방천 관아에 도착한 것은 저녁이 다 되어서였다.
짐은 둘째 치고 사람을 하나씩 업고 있으니 아무리 무인이라 해도 일반인들이 내는 속도보다 조금 빠른 정도로 걸을 수밖에 없었다.
쉬어 가자고도 해 봤으나…….
“이게 다 수련의 일환이라 생각해!”
라고 일축하는 진무의 모습에 청상과 청우는 더욱 열의를 다해 걸었다.
“잠시 쉬고 있어.”
십언이흉을 인계한 진무가 관인과 함께 현청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된 청상과 청우.
“사형…….”
한참을 숨 돌리던 청우가 심각한 표정으로 청상을 불렀다.
“사숙의 행동이 옳은 것일까요?”
“…….”
“십언이흉은 두고서라도 두 명이나 그리 잔인하게…….”
“청우야.”
“예.”
“나는 되레 사숙의 모습에서 감탄했다.”
“예? 그게 무슨?”
“아까 본 이들. 누구에게나 지탄을 받는 뒷골목의 무뢰배들이었다.”
“…….”
“그들이 다시 나쁜 짓을 할 것 같더냐?”
청상의 물음에 청우가 잠시 생각을 하다 고개를 저었다.
그들이 도망칠 때의 표정을 똑똑히 보았다.
두려움, 공포.
그들의 눈동자는 완전히 기가 죽어 있었다.
아예 단강구의 반대편으로 도망간 걸 보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화적에게 가족을 모두 잃었다.”
청상이 문득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청우도 들은 적이 있었다.
청상의 가슴에 한으로 남아 있는 이야기였다.
“그들은 아무 죄도 없는 마을 사람들과 내 가족을 죽였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무참히 학살했지.”
어린 나이였다.
화적에게 가족을 잃고 고아가 되었던 것을 정동궁주 명화가 거두었다.
“당시 명화 사숙조는 화적을 토벌해 관에 넘기셨다.”
“…….”
“그 후로 어찌 된 줄 아느냐?”
“…….”
“그들이 뇌물을 써서 관을 나왔다더구나. 그리고 버젓이 다시 화적질을 한다고 들었다.”
“사형…….”
“나는 죽을 때까지 그들을 용서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렇기에 더욱 열심히 검을 익혔다.”
청우의 가슴이 답답해졌다.
“진소 사숙과 명화 사숙조는 나의 마음을 다스리라고만 하셨다. 한데 진무 사숙은 어떠하더냐?”
“…….”
“나는 그저 그분께서 남들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렇기에 옆에 붙어서 배우면 훨씬 더 강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언젠가 그 화적 놈들을 내 손으로 죽일 수 있을 때까지.”
청상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헌데, 나는 오늘 진정한 계도(啓導)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아!”
청상의 말을 들으며 청우는 낮의 일을 떠올렸다.
청상의 말을 듣고 보니 진무의 행동이 비로소 이해되기 시작했다.
계도.
타인을 깨우쳐 이끎을 뜻한다.
진무는 그들을 계도한 것이다.
목숨을 노린 그들을 단죄하고 되레 ‘죄를 지으라고’ 압박하며 더욱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필시 ‘죄를 지으면 내가 반드시 찾아가 단죄하리라.’라는 뜻을 그들의 머릿속에 각인하려 했던 것이 틀림없다.
비록 선의 뜻을 가진 무당의 계도와는 달랐으나, 훨씬 더 효과적으로 갱생의 길을 걸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스스로 지옥을 걸으며 세상에 광명을 가져다주는 사람.
청상의 눈에 비친 진무는 그런 사람이었다.
“아, 사숙께선 너무나 높으신 뜻을 품으셨군요.”
청우가 그제야 감탄하듯 말했다.
“잔인했지만 즉각적이고 확실한 힘으로 그들을 갱생시키신 것이다. 십언이흉 같은 악독한 자들을 어찌 살려 두신 건지는 모를 일이나 그 또한 깊은 뜻이 있을 터.”
청상의 눈동자가 불타오르듯이 이글거렸다.
“나는 오늘, 앞으로 사숙을 따라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분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더라도 반드시 제자가 되어야겠다. 스스로 지옥을 걸어 악인을 계도하고자 하는 그 마음을 받들어…….”
“아! 그런 줄도 모르고 저는…….”
오해다.
청상의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틀렸다.
그러나 사정을 알 리 없는 그들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이기도 했다. 진무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청상은 멋대로 열의에 타올랐고, 청우는 멋대로 감동했다.
* * *
“한 냥 더 쓰시죠.”
“허, 도사님께서 돈독이 오르셨나. 정해진 게 열 냥이라니까요.”
찰거머리처럼 들러붙는 진무로 인해 관인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밖에 못 보셨소? 애들이 다쳤어! 막, 여기 칼도 맞고, 옷도 다 잘라져서…….”
“거참. 하나는 맞는데, 하나는 얼굴이 뭉개져서 확실치도 않고…….”
“어허, 무당의 도사가 거짓말이라도 한단 말이오?”
“아, 그게 아니라.”
“힘들게 잡았다니까요.”
“허 정말…… 알았소, 알았소. 일단 이건 좀 놓고…….”
“아! 하핫. 나도 모르게 그만.”
웃으며 물러나는 진무의 모습에 관인이 벗겨질 듯 아슬아슬하게 걸린 바지춤을 올려 매고 비뚤어진 관모를 바로 했다.
“여기 있소.”
관인이 한숨을 푹푹 쉬며 은전 하나를 더 꺼내자 진무가 재빠르게 채어 전낭에 넣었다.
“허헛, 복 받으실 게요.”
“거참, 희한한 도사구만. 내 관인 생활 십수 년에 그대 같은 사람은 처음 보오.”
관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진무가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했다.
그리고 돌아서려다.
“아! 참.”
“예?”
“혹시 말이오. 이팔룡이라고 아시오?”
“이팔룡? 그 팔룡파의?”
“그렇소.”
“알다 뿐인가! 그놈 자식 미꾸라지처럼 잘도 빠져 다녀서…….”
“얼마요?”
“……?”
너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나?
관인이 멀뚱히 진무를 쳐다보았다.
“그 이팔룡 현상금이 있을 거 아니오.”
“아, 이십 냥이오.”
“이십!”
진무가 생기 어린 눈망울을 초롱초롱 빛냈다.
분명 비열하고 악독한 놈임에 틀림없었다.
필시 그러하리라.
그리고 무척이나 기특하지만.
‘일단은 내 배부터 불러야지. 미안하다, 팔룡아.’
진무는 마음속으로 한 번 본 적도 없는 이팔룡에게 사과했다.
“설마? 그놈을 잡아 주실 생각이오?”
“봐서.”
“아서시오. 우리도 몇 번 잡으려 했으나 원체 무공이 뛰어난 놈이기도 하고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숨어 다니는 통에.”
무공이 뛰어나?
말도 안 된다.
지금의 단강구가 제갈세가의 영역임을 모르는 자는 없다.
사패천이 싸우자고 들지 않는 이상 제갈세가가 버티는 단강구에서 세력을 넓힐 리 없다.
즉, 아무리 강하다고 해 봐야 이십 냥짜리 뒷골목 불량배일 뿐이다.
그리고, 그깟 놈들 숨어 있는 장소야 뻔하지.
도박장, 야시장, 홍등가.
쭉 훑다 보면 안 잡힐 수가 없다.
서둘러 보고 싶다. 물어봐야 할 것도 있고, 겸사겸사 부수입도 좀 챙기고.
진무가 음흉하게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저런, 저런…… 저러다 칼 맞지, 쯧쯧. 무당파가 현상금 사냥이라. 그러고 보니 근래에 단강구에서 도사들은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데…….”
관인이 진무가 나간 문 쪽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거참, 어쨌든 도사치고는 별스럽구만그래.”
* * *
의아하게 바라보는 관인을 뒤로하고 전낭 두둑이 현상금을 챙긴 진무가 밖으로 나오자 청상과 청우가 날 듯이 달려왔다.
“사숙!”
“어?”
이 자식들 눈빛이 왜 이래?
그 사이에 뭔 일이라도 있었나?
“존경합니다. 사숙!”
“…….”
청우의 말에 진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말은 하지 않았으나 청상의 표정도 청우와 다르지 않았다.
이것들이 정신이 좀 이상해졌나?
하긴 좀 고생하긴 했지.
진무는 짐이며 사람을 업고 두 시진은 족히 걸어온 둘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필시 힘들고 지치고 배고파서 헛소리를 하는 중이리라.
뭐 고생한 것도 있고, 밤도 늦었으니 청양상단으로 가기 전에 배나 채울까?
“자, 가자.”
“예? 또 어딜?”
“밥. 저녁 먹어야지.”
“아!”
“오늘은 특별히! 외유를 나온 첫날이니 제대로 요리된 고기를 먹게 해 주마!”
“오오! 고기!”
청우가 순식간에 환장하는 표정이 되어 눈을 빛냈다.
이 고기에 미친 도사 놈.
“가즈아!”
“우오오!”
청우는 기괴한 함성을 지르며 냉큼 진무의 뒤를 따랐다.
그 모습에 청상이 피식 웃었다.
청우도 청우지만 진무는 참, 기묘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얼마 안 가 도착한 곳은 방천현 중심에서 별로 떨어지지 않은 한 객점이었다.
해월각(海月閣).
마을 밖에 위치하고 있는 허름한 객점.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 객점을 지어 놓고는 ‘바다에 뜬 달’이라니. 희망 사항인가?
마을 중앙에 위치한 객점을 마다하고 진무가 그곳을 선택한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방천현에서 청양상단이 있다는 단강구 중심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으나, 밤이 늦어 쉬어 갈 생각을 하던 중 때마침 해월각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된 것이다.
맛은 좀 떨어지는 편이지만.
‘고기 무제한!’
먹고 지칠 때까지 고기를 준단다.
싸고! 많고! 맛은…….
아무려면 어떤가.
산돼지를 불에 구워 줘도 맛있다고 처먹는 놈들이었다.
어쩔 수 없이 야숙을 할 때나 먹는 음식을 그리 귀하고 맛있게 먹는 놈들이었다.
그저 요리 구색만 갖춰도 천하일미(天下一味)라 할 것이 분명했다.
“여기!”
진무 일행이 객점 안으로 들어가 점원을 불렀다.
“어서 오십시오!”
모처럼의 도사다 보니 객점 안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한동안 단강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무당파의 도인들이었다.
속세와 연을 끊고 산중에 올라 금욕적인 생활을 하는 도사는 언제 보아도 신비롭기 그지없었다.
하나 횡액이라도 당한 것인지 한 사람은 옷이 갈가리 찢어지고 몸의 곳곳에 피딱지가 가득했다.
허, 저 도사들이 대체 무슨 일을 당하였길래…….
“여기가 고기를 무제한으로 준다는 곳이 맞나?”
응? 고기?
고기라는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의아하게 변했다.
“맞기는 한데 무당의 도사분들께서 어찌?”
“그렇군.”
점원의 되물음에 진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청우의 입가에는 침이 쉴 새 없이 흐르고 있었다. 안 그런 척하고 있으나 청상도 마찬가지로 기대감에 잔뜩 부푼 눈빛이었다.
내 오늘 니들에게 ‘맛’을 알려 주리라.
“고기! 푸짐하게! 쉬지 말고!”
“예?…… 아, 예.”
진무의 말에 점원이 눈을 끔벅이다가 마지못해 뛰어갔다.
그리고.
저런 호랑말코 같은 도사 놈들!
어린 도사 놈들이 고기나 처먹다니!
금욕 따위는 개나 줘 버리는 도사의 한마디에 사람들이 눈을 찡그리고 쳐다보았다.
하지만 진무가 누구던가?
“여기! 술도 한 병!”
사람들의 시선 따위 생각해 본 적 없다.
음식이 나오고 청우가 한 젓가락 떠서 조심스럽게 맛을 보았다.
“오오오!”
생전 겪어 보지 못한 맛에 황홀한 감탄사를 터트린 청우가 마구잡이로 입에 쑤셔 넣기 시작했다.
청상도 지지 않으려 애썼고 진무는 그들을 기특하게 바라보며 술잔을 채웠다.
자식들, 아주 향신료 맛에 뻑 가는구나.
“흑흑, 사숙. 이게 정녕 고기란 말입니까?”
“맛있네요. 맛있어요.”
청우와 청상의 반응에 진무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많이 먹거라, 내 새끼들.
무제한이니라!
“쯧쯧, 무당이 망해 간다더니.”
저런 소리 따윈 신경도 쓰지 말고.
“어린 도사 놈들이 저따위니 볼 장 다 봤구만그래.”
“아무리 그래도 무당인데……. 저놈들 혹시 사칭 아닐까?”
“에이 퉤! 모처럼 먹어 볼까 했더니 입맛만 버렸구만! 가세!”
남들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홀로 처먹거라!
사람들이 진무 일행을 보며 욕설을 내뱉는 사이에 그들을 은밀히 주시하는 눈동자가 있었다.
“대사부님, 저놈들이 도련님께서 말씀하신 놈들 아닙니까?”
“음. 팔룡파가 실패한 모양이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와 본 걸음이거늘. 쯧쯧.”
뱁새의 눈을 가진 사내가 혀를 차며 일어나자 그 일행이 그의 뒤를 따라 객점을 빠져나갔다.
“추상.”
“예.”
“이팔룡을 찾아 어찌 된 일인지 자세히 알아보라. 나는 지금 즉시 장주님께 돌아가겠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