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05
205화
화산 금룡협의 가장 아래.
만장단애를 떨어진 폭포가 소를 이루며 만들어 낸 포말이 옅은 안개처럼 주변의 풍경을 감춘 곳.
오랫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기에 훼손되지 않은 자연이 사방에 가득했다.
콰콰콰!
낙차로 인해 굉음에 가깝게 울려 퍼지는 폭포수 소리에 귀가 먹먹해질 정도였다.
“좋네.”
명진과 헤어져 화산파를 떠났던 진무는 화산 주변에서 양의심공을 수련할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고 있었다.
굳이 다른 지역으로 갈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다.
뭐 하러?
어차피 지금의 진무에게 필요한 것은 오로지 시간이었다.
우연찮게 찾아낸 금룡협의 바닥.
너무 시끄러워서 정신 집중이 되지 않으니 무공을 익히기에는 최악의 장소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진무는 오히려 그런 점이 좋았다.
그 시끄러움으로 인해 사람이 찾지 않을 곳이고, 짐승들조차도 보이질 않는다.
이곳이라면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양의심공을 수련할 수 있다.
주위를 감출 정도로 일어나는 폭포의 포말 또한 소소하게 마음에 들기도 하고.
바쁠 거 없다.
원하던 목표는 얻어 내었다.
양의심공을 얻느라 발에 땀 나도록 중원을 뛰어다녔지 않던가.
이젠 느긋하게, 여유 부리면서 천천히 익히기만 하면 될 일이다.
“자, 그럼 일단 기거할 장소를 하나 만들어야겠지?”
그래, 좋은 생각이다.
무림사에 전무후무한 무인이 탄생할 곳이 아니던가?
그러고 보니 이름난 무인들이 어째서 비동을 만들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이런 기분이었구나.
팔십 년 만에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
어떤 놈이 심산유곡의 절벽에 떨어져서 과거의 엄청난 고수의 비동을 발견해 기연을 얻었다든지. 공청석유가 흘러 모인 작은 웅덩이를 발견했다든지.
그딴 게 다 지금 진무가 생각한 것처럼 만들어진 장소일지도 몰랐다.
그냥 가기 뭐해서.
그 대단한 내가 여기 살다 감.
○○성 출신 아무개 다녀감.
뭐 이딴 낙서와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그런 장소는 대부분 뒈질 때 후학에게 기연을 주기 위해 만든 장소였기는 하지만.
진무는 왠지 자신도 그럴싸한 비동을 하나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벽에 글귀라도 새겨야 하나?
이럴 줄 알았으면 기관이나 진법 좀 자세히 배워 둘걸.
막 절하고 나면 기관이 작동해서 벽면에 무공 구결이 드러나고, 막 그런 장치라도 좀 만들게.
재미있겠다.
양의심공을 익히고 나면 꼭 한번 해 봐야지.
스릉.
일단 기거할 장소를 만들기 위해 진무는 일휘를 뽑아 들었다.
슛! 슈슉!
대수롭지 않게 휘둘러진 검이 바위를 매끄럽게 잘라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토굴을 만들어 내고. 수련을 할 수 있는 바위 의자도 만들고.
이게 또 하다 보니 재미있다.
설마 공동 놈들이 이런 기분 때문에 광산을 캐는 건 아니겠지?
너무 심취한 나머지 바위에 그럴싸해 보이는 작은 조각도 새겨 넣었다.
뿌듯하다.
이런 데 솜씨가 있는 줄은 몰랐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애초에 어두운 곳이라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느끼기가 힘들다.
대충 피곤하면 잠들고, 일어나면 일하고……, 깨어 있다 보면…….
뭔가 아주 중요한 것을…….
꼬르륵.
잊고 있었지, 내가.
젠장!
사람이 안 오고…… 짐승이 안 오고…….
먹을 게 없다. 하나도.
줘도 안 먹을 풀때기 빼고는. 썩을.
* * *
하남성, 낙양(洛陽).
아홉 왕조가 거쳐 온 구조고도(九朝古都).
오랫동안 왕조의 중심지로서 시간을 보내 왔던 그곳은 수많은 학자와 예인이 꽃을 피웠던 중심지였기에 여전히 많은 이들이 다양한 목적으로 다녀가는 곳이었다.
낙양에서 유명한 곳을 꼽자면 여러 군데가 있겠으나 첫째가 용문석굴이며, 둘째가 관림당, 셋째가 백마사(白馬寺)였다.
백마사는 중원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로 숭산의 소림과 더불어 불문의 성지인 곳이었다.
백마사의 뒤쪽에 위치한 요사채(寮舍寨). 불문에 이름을 올린 승려들이 기거하는 곳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언젠가부터 백마사의 요사채에는 승려들이 아닌 요사스러운 기운을 뿌리는 여인들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승복이 아닌 무복을 입고 머리칼을 기른, 비구니가 아닌 여인들.
면사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저마다 칼을 찬 여인들은 다름 아닌 내궁 소속 분봉대의 무인이었다.
그들이 지키는 요사채의 내부.
회강(會講)을 할 때 사용하는 강당 내부에 불상을 모신 단을 중심으로 한쪽에는 파르라니 머리를 깎은 노승들과 또 한쪽에는 밖을 지키는 이들과 같은 차림의 여인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바라보는 불상의 앞쪽으로 태사의에 앉아 있는 여인, 종려군.
쾅!
종려군이 내려친 주먹에 팔걸이가 거칠게 부서졌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녀는 능비화가 들고 온 보고서의 내용에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영은당의 무영이 보낸 전서였다.
사흘 전 동림전장이 털렸으며, 그로 인해 서안부의 관리들에 대한 대대적인 감찰 조사가 시작되어 도찰원의 관리들이 긴급하게 파견되었다는 것.
모든 것이 동림전장에서 발견된 치부책 때문이라고 했다.
당위가 호남성의 사해전장을 들쑤신다는 보고 때문에 분봉대의 전력을 모조리 집중해 꼬리를 잘랐건만, 왜 생각지도 않은 동림전장에서 이런 사고가 터진단 말인가?
“몽야!”
종려군의 부름에 한쪽에 도열해 있던 여인 중 하나가 재빨리 중앙으로 뛰어나와 엎드리며 고개를 조아렸다.
분봉대 칠 조장 몽야.
동림전장을 책임지고 있던 여인이었다.
“네년은 치부책이 만들어지는 동안 무엇을 했더냐!”
“그, 그것이.”
몽야는 어찌 말해야 할지 몰라 고개를 조아린 채 눈동자를 열심히 굴려 대었다.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총관으로 앉힌 놈이 그런 것을 만들어 두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푸욱!
몽야의 변명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그녀의 목 뒤를 뚫고 바닥에 박혀 버린 검.
검을 타고 흐른 피가 바닥을 서서히 적시는 동안 시립해 있는 이들 중 누구 하나 표정이 바뀌지 않았다.
“멍청한 것 같으니…….”
손짓 한 번으로 검을 움직여 몽야를 죽여 버린 종려군이 신경질적으로 욕설을 뱉었다.
“그같이 간단한 일조차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다니.”
나지막하게 뇌까리는 종려군의 눈에 차가운 한기가 어린다.
“치워라. 꼴도 보기 싫다.”
“예!”
명령에 반문은 없었다.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분봉대의 무인들이 몽야의 시신을 거두어 밖으로 나갔다.
“망할…….”
깊이 일그러진 종려군의 미간은 펴질 줄을 몰랐다.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조사가 시작되었다면 동림전장 하나로 문제로 끝날 상황이 아니었다.
도찰원, 그 굶주린 들개 같은 놈들에게 이 정도의 먹잇감을 던져 주었으니 얼마나 눈이 뒤집혀서 달려들겠는가.
만약 조사가 확대되어 중원 전역으로 퍼져 나가면 그간 연을 맺어 온 관과의 관계가 틀어짐은 물론, 내궁이 준비해 온 계략이 모조리 무너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벌써부터 관인들이 발을 빼고 있지 않던가?
그녀가 중원 오대전장을 집어삼킨 것은 돈줄을 묶어 놓기 위함이었다.
돈줄을 묶으면 상계가 타격을 입을 것이고, 이로 인해 그들과 연계된 무림 문파들 사이에 이권을 놓고 분쟁이 생긴다.
먹이가 풍부하면 모를까, 굶기 시작하면 동족끼리도 잡아먹는 것이 짐승의 습성이었다.
종려군은 그것을 노리고 있었다.
대의명분?
그것도 배부를 때나 한가하게 주절거릴 수 있는 소리다.
정파니 사파니 구분되어 있다고 해도 어차피 무인의 습성은 버리지 못한다. 칼 하나를 차고 남의 돈으로 위세나 떠는 족속들에 불과하니까.
돈줄이 막히면 이권을 놓고 다툴 것이다. 그것은 결국 분쟁을 만들 것이고, 분쟁은 허울 좋은 명분으로 결속된 정무맹에 막대한 타격을 입힌다.
그리되면 굳이 정무맹과 싸울 이유가 없는 것이다.
스스로 자멸할 테니까.
그리고 반드시 그리되어야만 했다.
궁의 전력은 중원삼패에 비해 아직 약하다.
비록 대궁주의 무위가 입신에 이르러 있고, 소궁주가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으나 그들만으로는 중원 전부와 상대할 수는 없었다.
노국태의 일궁, 송여방의 이궁, 그리고 좌천된 상관평을 대신해 종려군이 맡은 삼궁.
그들이 삼패에 숨어들어 분란을 만드는 이유는 중원 무림의 힘을 줄이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들의 힘이 궁의 전력에 미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지금껏 궁이 꿈꿔 왔던 파멸의 시대가 오는 것이다.
그런데 삼궁을 맡은 이후, 정무맹의 힘을 줄이기 위해 세운 계획이 시작부터 어그러지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모처럼 세운 계획이 아깝게 되었으나 이미 틀어진 일을 되돌리려 한다면 괜히 덜미를 잡힐 수도 있었다.
당위의 방해로 인해 사해전장의 자금을 확보하지 못했으나, 죽은 몽야의 보고에 따르면 조사가 시작되기 전에 동림전장의 돈이 원화정으로 출발했다고 한다.
동림전장에 비해 턱없이 적은 양이지만 나머지 세 곳 전장에서도 출발했다 했으니 그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일단은 그것으로 상계를 뒤흔든다.
꼬리는 끊어 버리면 그만이다.
관부나 정무맹에서 조사를 한다고 해도 결국 다다를 수 있는 곳은 원화정까지였다.
돈을 확보하는 즉시 원화정과의 관계를 흔적도 없이 지운다.
추가 조사?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그들이 모든 시선을 원화정으로 끌어들인 데는 이유가 있었다.
원화정은 황실의 치부와도 같은 곳.
도찰원조차도 함부로 조사할 수 없다. 아니 입 밖에도 꺼낼 수가 없으리라.
잘못하다가는 황제의 진노를 정면으로 받게 될 수 있는 일이기에 그러했다.
그런 와중에 무림인이야 오죽할까?
“비화.”
“예, 궁주님.”
“지금 즉시 동림전장을 조사하고 있는 영은당에 전해라. 치부책을 만든 놈을 찾아내 죽이고, 우리와 관련된 선을 모조리 자르라고.”
“알겠습니다.”
분봉대주 능비화가 공손히 답하고 물러난다.
“화청!”
“예.”
종려군의 부름에 백마사의 노승이 대답했다.
오랫동안 상하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처럼 자세가 공손하기 짝이 없었다.
“놈들이 원화정까지 치고 들어오기 전에 전장에서 들어오는 돈을 확보하고, 우리와 관련한 연결 고리를 모조리 지워라.”
“알겠습니다.”
“좋다. 이것으로 모든 회의를 마친다. 사방에 개방의 눈과 귀가 있으니 모두 행동에 만전을…….”
종려군이 종회를 명하려는 그때.
“궁주님!”
밖에서 분봉대의 무인 적화가 급히 뛰어 들어와 무릎을 꿇었다.
“무엇이냐?”
“영은당의 추가 전서구입니다.”
“…….”
종려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회의가 끝나기도 전에 난입할 정도라면 지급이라는 뜻. 거기다 이번에도 영은당이다. 강한 불안감이 그녀의 온 신경을 자극했다.
분봉대주 능비화가 재빨리 전서구를 받아 올렸다.
“…….”
전서구를 받은 종려군의 표정이 쉴 새 없이 변한다.
와자작!
채 다 읽지도 않은 전서구를 거칠게 구겨 버린 종려군의 얼굴이 순식간에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전서구에 쓰인 내용 때문이다.
황금 사십 관.
동림전장에서 은밀하게 출발했던 황금이 사라져?
영은당이 찾은 것은 죽어 버린 호위 무인들의 시신과 빈 마차뿐이라고?
쾅!
“이! 어떤 개 같은 놈들이!”
거칠게 뱉어진 노성과 함께 종려군의 분노가 살기로 변해 줄기줄기 뿜어졌다.
“비화!”
“예.”
“분봉대를 이끌고 황금 사십 관을 찾아와라! 어떤 개자식들이 털어 갔는지 반드시 찾아 찢어 죽이고 자금을 회수해 와!”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