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06
206화
꾸에엑!
나는 지금 어떤 미친놈과 사투를 벌이는 중이다.
나름대로 평생을 착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했건만, 산신령도 너무하시지.
그놈은 어느 날 갑자기 나와 내 가족의 주위에 나타나, 평화롭던 우리의 일상을 완전히 박살 냈다.
그래, 처음부터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여기는 우리 거였는데. 사람이 안 오는 곳이었는데.
물론 산정(山頂) 언저리에는 신선 비슷한 놈들이 살긴 한다고 늙어 죽은 아비에게 들었다.
생명을 귀하게 여겨 함부로 살생을 하지 않는 놈들이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혹시나 몰라서 그쪽으로는 절대로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
아이들에게도 절대로 그곳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몇 번이고 주의를 주었다.
그런데 이틀 전.
귀엽고 깜찍하던 막둥이가 그날따라 볼일을 보러 멀리 갔다가 참변을 당했다.
분명히 볼일을 보러 간다고 했는데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기에 걱정되어 그 아이의 발자국을 따라간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이미 시체가 되어 불 위에 놓인 내 새끼와…….
살점을 뜯어먹고 있는 산신령?
참사를 목도하고 넋이 나가 멍하니 있던 나까지 그 산신령인지 뭔지 모를 놈에게 머리를 얻어맞고 그 자리에서 골로 갈 뻔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자식이 죽은 단장의 슬픔은 가슴에 묻는다고 했던가?
죽은 막둥이가 불쌍하지만 어쩌겠는가? 나에게는 남은 가족을 건사해야 할 의무가 있다.
우리는 찢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했다.
그런데…….
그 망할 놈이 어찌 알았는지 또 나타났다.
설마 내 새끼를 벌써 다 처먹은 거냐!
더는 도망칠 수 없다.
내 뒤에서 벌벌 떨고 있는 가족을 지켜야 한다.
그래, 평생을 틈날 때마다 어금니를 바닥에 갈아 날을 세웠던 건 오늘을 위해서였던 거다.
가족들에게 최대한 멀리 도망치라 외치고 놈을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꾸에엑!
빠각!
* * *
“이놈의 산돼지 새끼가 맷집이 왜 이렇게 좋아? 멧……돼지라서 그런가?”
진무는 모닥불을 피워 걸어 둔 멧돼지가 갑자기 깨어나 괴성을 질러 대자 얼굴을 찡그리며 대가리를 깨 버렸다.
이상하다.
분명히 죽을 정도로 때렸는데.
대가리가 단단한가?
여하튼 고개를 갸웃거리며 불 위에 걸어 둔 멧돼지를 반대로 돌려놓았다.
골고루 구워야 하니까.
금룡협에 머문 지 사흘째.
먹이를 구하고 잠을 자는 것을 제외하고 시간을 모조리 쏟아부은 덕분에 드디어 거처가 완성되었다.
바위를 옮겨서 음식을 놓을 탁자와 의자 두 개를 만들었다.
앉을 사람이라곤 나밖에 없지만, 하나는 외로우니까.
그리고 일휘로 절벽을 파내고 기거할 침상을 만들었다.
온통 바위로 만들어서 그런가, 제법 그럴듯하다.
진무는 멧돼지가 익어 가는 동안 자신이 만들어 놓은 거처를 잠시 바라보았다.
“흐음…….”
뭐가 좋을까?
거처를 만들었으니 응당 이름을 지어야 한다.
물론 발견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후에 어떤 놈이 나의 거처를 발견해서 ‘○○동’, 혹은 ‘○○처’에서 고금 제일의 고수의 흔적을 발견했다고 자랑을 하고 다닌다면 죽어서도 기분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뭐가 좋을까?
그럴싸한 이름이면 참 좋을 텐데.
무명이라는 것이 항상 남이 붙여 주었지, 직접 지어 본 적은 없다.
그럴싸한 이름을 지어 주는 놈들을 보면 참 대단하다.
음, 작명 공부라도 좀 해 볼 걸 그랬나.
한참을 고민하던 진무가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무릎을 탁 쳤다.
“옳지!”
그리고 손가락에 강기를 담아 벽면에 마구 휘갈기기 시작했다.
가가각! 가가가각!
강기를 따라 파인 돌이 사방으로 튀어 나가며 드러나는 하나의 이름.
양의동.
“…….”
뭔가 사람 이름 같기도 하고.
너무 무당 도사스럽기도 하고.
트드득, 트드드득!
써 놓고 보니 마음에 들지 않았던 진무가 손바닥으로 거칠게 쓸자 바위 면이 얇게 갈리며 글귀가 사라진다.
가가각! 가가각!
쓰고.
트드득, 트드득.
지우고.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아, 몰라. 안 해.
나중에 찬찬히 다시 생각해 보면 될 일이지.
썼다 지웠다 반복하는 사이에 절벽 면에 커다랗게 또 다른 구멍이 생겨버렸다.
뭐…… 찬장이 하나 생겼다 치자.
진무는 입을 삐죽거리고는 그사이 노릿하게 구워진 멧돼지의 다리 한쪽을 뜯어내었다.
한 입 베어 문 그것은 참 맛이 없다.
향신료라도 있으면 좋을 것인데.
청우가 그립고, 백표가 그립다.
맛이 없으니 많이 먹히지도 않는다.
그사이 당세령으로 인해 힘든 여정에도 객점 생활을 하고, 공동 같은 부자 도문을 돌면서 입맛이 고급스럽게 변한 모양이다.
대충 허기를 때운 진무는 탁자를 치워 놓고 그 위에 좌정했다.
이제, 양의를 익힐 시간이다.
품속에 넣어 두었던 서책을 조심스럽게 꺼내 펼쳤다.
스승이 자신을 위해 필사해 온 양의심공.
무당으로 잘 돌아가셨으려나?
먼 길에 몸이 다시 아프면 큰일인데…….
이럴 줄 알았으면 화산에서 받은 자소단이라도 줄걸.
혼자 있으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어서 괜히 정신이 사나워진다.
휙휙.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집중하자.
이런 절세의 신공을 앞에 두고 딴생각을 해서야 되겠는가?
사람의 몸은 기의 통로이다. 수백의 혈맥이 있고 그 혈을 잇는 세맥과 대맥이 존재…….
이미 한번 읽어 보았던 서문.
공동에서 얻었던 주해본의 조각과 같은 내용으로 시작된 양의심공을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
* * *
진무가 한가롭게 수련동을 만들고 본격적인 양의심공의 수련에 돌입한 그때.
무림은 그가 던져 놓은 단서로 인해 수면 아래에서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낙양의 원화정이었다.
무겁게 가라앉은 고요함이 가득한 동트기 전의 아침.
드드륵. 드르륵.
오가는 사람 하나 없는 새벽의 적막을 깨우는 수레바퀴 구르는 소리.
그 시각에 수레가 오가는 것이야 무에 특별할까?
하지만 눈길을 끌게 하는 것은 수레를 끄는 자들이 파르라니 머리를 깎은 승려라는 사실이었다.
원화정 인근에 자리한 백마사의 승려들.
선두에 선 노승이 주변을 세밀히 살피며 이동하는데.
“아니! 화청 선사가 아니십니까?”
“……!”
별안간 들려온 목소리에 원화정에 들렀던 백마사의 주지 화청이 당황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어찌하여 이 시각에 저자가?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마찬가지로 깨끗이 깎은 머리에 주름이 가득한 얼굴의 승려.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실상 그는 소림의 주력이라 불리는 나한전(羅漢殿)을 이끄는 노승 각료였다.
“아, 아니. 나한전주께서 낙양에 어쩐 일로.”
“뭘 그리 당황하십니까?”
각료가 환하게 웃으며 합장을 하고는.
“이 녀석들! 선사께 어서 인사를 여쭙지 못하겠느냐!”
뒤를 향해 호통을 치자 나머지 중들이 서둘러 달려와 다 함께 합장을 했다.
그런데 그들의 옷차림이 범상하지 않았다.
승복이 아닌 황색 무복을 입은 중들.
나한전의 무술 교두이자 소림을 수호하는 사대금강(四大金剛)과 함께 최정예 무인이라 칭송받고 있는 십팔나한(十八羅漢)이었다.
‘이런 시팔!’
하필이면 나한전의 교두들이 전부 기어 나왔단 말인가?
화청은 속으로 쌍욕을 집어삼키며 웃는 체를 했다.
“나한전의 교두들께서 어찌?”
“허허, 교두들뿐입니까? 죄다 하산을 했지요.”
“예?”
“저기 보이지 않으십니까?”
각료가 웃으며 손가락질하자 원화정의 외곽에 몸을 숨기고 있었던 승려들 일부가 언뜻언뜻 보였다.
대충 훑어봐도 그 수가 적지 않았다.
“배, 백팔나한들이 전부?”
“허허, 그리되었습니다.”
“……아니, 속세에는 관심이 없는 소림이 어찌 쟁쟁한 백팔나한들을 모두 동원해 하산했단 말입니까?”
“저희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정무맹의 양소방 시주가 정식으로 요청을 해 와서요.”
“……정무맹이요?”
“예. 들으셨지요? 그 궁이라는 자들 말입니다.”
“…….”
화청의 안색이 살짝 굳어졌고, 각료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저런, 모르셨나 봅니다.”
“…….”
“하긴 백마사는 무예보다는 불법에 더 비중이 크니 소식이 느릴 만도 하십니다.”
화청 선사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각료가 가까이 다가와 누가 듣기라도 하듯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근자에 ‘궁’이라는 무도한 무리들이 정무맹의 영역에서 암약하고 있습니다. 곤륜의 소식에 따르면 그들이 사패천과 마교에도 발을 뻗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 그래요?”
“암요. 한데 이번에 그들이 겁도 없이 전장에 손을 댄 모양입니다.”
“…….”
“관이 연결되어 있어 조사하기가 껄끄러웠는데, 이번에 무당지검으로 인해서 그 배후가 드러났지 뭡니까?”
“무당지검이요?”
“예. 무당지검에 대해서도 듣지 못하셨습니까?”
“아, 아니요. 무당에 걸출한 인재가 나왔다는 것은 들었습니다만.”
“허허, 아주 종횡무진입니다. 홀로 무림을 뒤집어 놓았지요.”
“…….”
“어찌 되었든, 그가 관부와의 마찰을 무릅쓰고 동림전장을 조사해서 놈들의 배후를 찾아내었다지 뭡니까?”
“그럼 혹시? 원화정을 포위하고 계신 것이?”
“예. 원화정이 배후랍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원화정은 태조국구(太祖國舅)가 세운 사당입니다.”
화청이 살짝 흥분한 목소리로 외치자 각료가 고개를 끄덕였다.
“왜 모르겠습니까? 허니 이리 멀리 떨어져서 포위만 하고 있지요.”
원화정(原花庭).
그곳은 화청의 말대로 태조의 국구(國舅: 황제의 장인) 곽자흥이 세운 사당이었다.
사당이야 어디에나 있겠으나 그 안에 모시고 있는 이가 황실의 치부와도 같은 인물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하지만 세운 이가 곽자흥이었기에 황실에서도 손대지 못했고, 그저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통제만 하고 있었다.
항간에 원화정에 속하면 죽어서 귀신이 되어도 못 나온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였다.
황실의 직접적인 통제를 받는 원화정이니 무림에서도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멀리 떨어져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는 죄가 되지 않았다.
‘어찌 이리도 발 빠르게 움직였단 말인가? 무당지검이라는 놈이 어찌 알고. 설마 동림전장의 황금을 털어 간 것도?’
화청의 머릿속이 복잡한 생각들로 어지러워졌다.
동림전장이 털렸다고는 하나 정무맹에서 원화정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은 한참 후일 것이라 예상했다.
관부의 조사가 시작된 것도 최근 아닌가. 아무리 빠르게 잡아도 그 이후가 되어야 마땅했다.
이제 겨우 원화정 내부에 남은 ‘궁’의 흔적을 지우고 각 전장에서 올라온 돈을 수거한 참인데.
도대체 세작들은 뭘 하느라 이러한 움직임조차 보고하지 못했단 말인가?
그리고 영은당을 맡은 무영이란 놈은 뭘 하고 자빠져 있었기에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방치했단 말인가?
“비단 소림뿐이 아닙니다. 인근에 개방의 전력과 용봉관의 무인들이 포진해 있습니다. 그 외에도 제갈과 무당, 화산과 종남에서도 정예 무인들이 출발하였으니 곧 도착할 것이구요.”
각료의 설명에 화청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모조리 금시초문이었다.
대관절 이게 다 어찌 된 것인가?
소림의 백팔나한만 해도 엄청난 전력인데 인근 정무맹에 속한 거파 세 곳과 제갈까지 오다니.
“아, 아니 그리 많이 동원되었습니까?”
“전부는 아닙니다. 주력 무인들만 오고 있지요. 그래도 다 모이면 오백은 족히 될 것입니다.”
각료의 설명에 화청은 속이 타들어 가는 것을 느꼈다.
오백.
말이 오백이지 각 파의 정예다.
갑무반의 무인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각 파에서 소림처럼 적어도 백여 명 이상을 보냈다는 소리였다.
화청이 자신의 뒤를 따르고 있는 수레를 은밀하게 힐끗거렸다.
두 대의 수레.
그 안에 실린 궤짝에는 사해와 동림을 제외한 전장에서 올라온 황금 오십 관이 실려 있었다.
“얼마 전 관에 치부책 때문에 사달이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소문입니다만, 그 치부책도 무당지검이 전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뭐, 뭐요?”
화청이 놀람에 소리를 질렀다가 제 실수를 깨닫고 헛기침을 하며 표정을 숨긴다.
“응? 어찌 그리……. 하긴, 놀랄 만도 하지요. 무당지검이 실로 큰일을 해냈습니다.”
“그, 그렇군요.”
화청이 얼버무리자 각료가 피식 웃고는 다시 물었다.
“한데 선사께선 원화정에 무슨 일 때문에 들어갔다 오십니까?”
“…….”
각료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물어 왔지만, 화청은 알 수 없는 섬뜩함을 느꼈다.
각료의 눈빛에 스민 것.
의심이다.
그는 지금 자신을 의심하고 있었다.
화청은 각료와 능히 자웅을 겨뤄 볼 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으나 상황이 좋지 않았다.
수레에 실린 황금은 반드시 전달해야 했고, 자신과 몇 되지 않는 백마사의 제자들로는 소림의 백팔나한을 상대할 수 없었다.
벗어나야 한다.
서둘러 돌아가 정무맹이 이미 원화정을 포위하고 있음을 알려야만 했다.
대놓고 원화정을 조사할 수는 없을 것이니, 아직은 백마사와의 연관성을 알 수는 없을 것이다.
목 아래까지 조여 왔지만 아직까지는 시간이 있다.
“원화정에서 제(祭)를 청하였기에 불공을 드리러 온 것입니다.”
“아, 그래요?”
각료가 화청의 뒤를 따르는 마차를 힐끗거렸다.
백마사가 원화정에 제를 올리는 것은 그다지 이상할 일도 아니었다.
언제나 그래 왔으니까.
“제기(祭器)들이 제법 많습니다?”
“제기뿐 아니라 원화정에서 시주받은 물건까지 함께인지라.”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어서 돌아가십시오. 웬만하면 돌아가셔서 문을 걸어 잠그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혹여 낙양에서 큰 싸움이 벌어질지도 모르니까요.”
“예. 말씀 감사합니다. 하면.”
화청이 급히 합장해 인사를 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멀어지는 화청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각료의 눈동자에는 어딘가 모르게 씁쓸함이 떠올라 있었다.
“전주님.”
“…….”
각료가 떠난 뒤, 소림승이 아닌 자들이 그의 곁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창룡의를 입은 갑무반의 무인들.
“허허, 제갈 시주의 말이 맞았구려.”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음…….”
제갈산산의 말에 각료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
어째서 불가의 성지인 백마사가 불의한 무리와 결탁하여 무림을 어지럽힌단 말인가.
“아미타불…….”
각료가 어지러운 마음을 담아 불호를 뇌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