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71
271화
“뭐? 이런 미친놈을 봤나? 산서상회가 나쁜 짓을 해?”
“어디서 감히 그따위 소릴!”
“아유, 얼마나 선정을 베푸시는데요? 나라님처럼 우리를…… 아니, 나라님보다 더 챙겨 주시는 분이 그분이라오.”
“에이 퉤! 이런 망종 놈. 썩 꺼지지 못하겠느냐!”
한결같은 반응이다.
민가, 상가, 객점, 주루.
하다못해 부랑자 촌의 사람들과 길거리에서 동냥하는 거지까지도 산서상회를 두둔했다.
푸줏간 주인은 길길이 날뛰며 식칼을 들고 쫓아왔으며 빨래하던 아낙은 구정물을 뿌렸다.
“…….”
뭐, 이딴 어이없는 동네가 있단 말인가?
황신은 졸지에 악당이 된 듯해서 기분이 몹시 더러웠다.
산서성 삭주.
그곳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산서상회에 대한 믿음은 가히 하늘을 찌를 것만 같았다.
젠장, 더 알아봐야 소용없겠다.
골목 어귀를 돌아 마을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버린 황신은 진무가 머물고 있을지도 모를 객점을 찾아 이동했다.
* * *
쪼르륵.
삭주의 중심 관도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객점 이 층 창가.
진무는 물벼락 맞은 쥐새끼처럼 축축이 젖은 둘을 바라보며 술잔을 채웠다.
“그게 다야?”
진무의 물음에 황신이 볼을 빵빵하게 부풀린 채 고개를 끄덕이곤 제 몸에서 나는 냄새에 얼굴을 찡그렸다.
“넌?”
“관인들도 한결같더군요. 관부의 수장들마저 산서상회의 눈치를 보는 듯했습니다.”
“그으래?”
진무가 가만히 턱을 쓸었다.
산서가 이렇게 상계의 영향력이 이렇게 강한 곳이었던가?
과거 자신이 기억했던 산서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었다.
천중산에 터를 잡은 이후로 오랫동안 사패천의 영역이었던 산서성을 찾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당연한 일이다. 문제가 없었고, 때 되면 돈을 알아서 바치는 곳에 뭐 하러 방문한단 말인가?
하오문에서도 당시에 산서성의 변화에 대해 별다른 말이 없었다.
“산서상회라…….”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상단이 이 정도의 규모로 성장하자면 꽤 많은 세월이 흘렀을 것이고, 지금과도 같은 신뢰를 쌓자면 한두 번의 구휼(救恤)로는 턱도 없다.
민초는 원래 받을 때는 감사해도 쉽게 마음을 열고 따르지는 않는 법이기 때문이다.
지금 삭주의 사람들이 보이는 믿음은 수차례, 아니 수십 차례의 공덕을 쌓아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구휼이 필요한 재난이 매달 닥쳐올 정도로 저주받은 땅이 아닌 이상 일 년에 한 번이 고작일 터였다.
그렇다면 적어도 십수 년, 혹은 수십 년의 선정(善政)이다.
“흐음…… 역시 그렇구만?”
“예?”
“……?”
진무의 중얼거림에 황신과 소동보가 의아하게 쳐다본다.
“이상하지 않아?”
“뭐가요?”
“세상에 착한 척하는 놈은 있어도 착한 놈은 없어. 뭐, 있기는 하겠지. 가뭄에 콩 나듯이……. 근데 그게 상인은 아니야.”
“…….”
“상인이라는 놈들은 무엇보다 제 이익을 우선하는 놈들이지. 근데 그런 놈들이 이득 없는 일에 투자를 한다고?”
참으로 개소리다.
“이 새끼들 뭐 있네. 확실히 뭐가 있어.”
진무가 피식 웃고는 탁자에 양팔을 올리며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그 모습에 황신은 고개를 끄덕였고 소동보는 도통 이해되지 않는 표정을 했다.
뭐가 있다는 거지? 상인이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된다는 걸까?
“저기, 천주님?”
지난 며칠간에 생긴 변화로 소동보는 어느새 진무를 천주가 아닌 천주님이라 부르고 있었다.
“……왜?”
“지나친 비약이 아닐까요?”
“…….”
조심스럽게 제 생각을 말해 오는 소동보를 진무가 물끄러미 바라본다.
“세상에는 생각보다 착한 사람도 있고…….”
“쯧쯧, 모르는 소리.”
“……예?”
“상인은 절대로 이문이 남지 않는 투자를 하지 않아. 선정에도 반드시 이유가 있어야 한단 말이야.”
“…….”
“그리고 사람들이 좋은 평가만 한다고? 그 역시 말도 안 되지. 원래 사람이란 게 말이야. 남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고, 잘되면 속이 쓰린 게 정상이거든. 겉으론 좋아한다 해도 속으로는 손가락질하고 욕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야.”
“굳이 그렇게까지…….”
“…….”
이 자식이 그렇게 처맞고 또 개기는 건가?
아니지. 하긴 세상 얼마 안 살았으니 이해가 안 될 수도 있겠…… 잠깐만, 그러고 보니 이 녀석.
“……너 혹시 살막에만 있었냐?”
“그럴 리가요? 저도 나름 세상 경험이 많습니다.”
근데 왜 그러냐?
“진마평에도 자주 오갔고, 그 외에도 또…… 에…….”
“…….”
역시, 그렇구나.
진마평은 염병.
잘도 세상 경험이 많겠다.
고작 코딱지만 한 마적 떼들 시장에 불과한 진마평에서 보고 들은 게 뭐 얼마나 된다고.
어쩐지 턱도 안 되는 놈이 개긴다 했다.
휴, 소약벽.
자식을 잃고 남은 혈육이 금쪽같은 손주뿐이라고 해도 그렇지, 애를 이렇게 곱게 키워 놓으면 어쩌자는 말인가?
나이가 벌써 스물인데 이래서 어떻게 살막을 맡긴다고…….
진무가 한숨을 푹 쉬었다.
세상 경험이 없어 모르는 걸 팰 수도 없고. 어떻게 이해를 시킨다?
“야, 넌 황신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냐?”
“……어떤?”
“그 처맞을 때 말이야. 짜증 나지 않아?”
“그야…….”
“원래 그런 거거든. 그게 전부 시기와 질투심에서 오는 거란 말이야.”
“……그…….”
듣고 보니 그렇긴 하다.
“이런 경우 사람의 행동은 두 가지로 나누어지지. 시기와 질투를 느끼고 노력해서 내가 더 잘 되어야지! 라고 생각하거나 지독한 패배감에 뒤에서 욕만 하다가 도태되는 놈.”
“…….”
“하지만 근원적으로 시기와 질투심을 느낀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이 말이야.”
묘하게 설득이 되긴 하는데 그게 앞의 말과 무슨 연관이 있다고?
“저, 천주님?”
“뭐?”
“그 시기와 질투를 느끼는 게 어떤 연관이? 대충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의미는 알겠는데.”
“…….”
비유가 좀 이상했나?
아무리 그래도 이 새끼가 천주님 말씀하시는데 대충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야지.
“비유는 안 맞지만, 요는 사람의 본성에 관한 문제라 이 말이야. 중요한 건 이 시기와 질투라는 거지. 알아들어?”
“…….”
“어쨌든 문제가 있다는 거야. 산서상회가 아무리 선정을 베푼다고 해도 열에 한둘은 욕을 하는 게 정상이라는 거라고. 그게 사람이니까.”
뭔가 강제로 끼워 맞추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안 맞으려면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도대체 이 사람은 세상을 어떻게 살아온 거지?
머릿속이 어떻게 되어 있으면 저렇게 세상을 비판적으로 생각할 수가 있는 거지?
“좋아, 백번 양보해서 산서상회가 정말 착한 놈이라 치자. 그런데 그런 착한 놈들이 불법의 온상인 사패천과 붙어먹는다고?”
“그야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서…….”
“개소리.”
진무가 소동보를 향해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아무리 자신의 고향과 같은 사패천이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저 추구하는 바가 다를 뿐이고 조금 덜 나쁘다고 해도 사파는 사파다.
혁련무강 당시 민가에 피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는 기조를 가지고 있음에도 민초들에게 비열하다 간악하다 손가락질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의 사패천은 진무가 생각해도 정말로 나쁜 짓을 서슴지 않으며 민가에 피해를 입히고 있었다.
야금당만 해도 아예 대놓고 어린아이들을 팔아먹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민관의 신망이 고루 두터운 산서상회가 세간의 손가락질을 받는 사패천과 손을 잡는다고?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다.
그리되면 오히려 자신들이 쌓아 온 평판을 갉아먹는 짓이다.
생각이 똑바로 박힌 놈이라면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
상행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한 것이 목적이라면 차라리 관을 등에 업었어야 했다.
또한 하남성으로 진출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사패천이 아니라 숭산의 소림에 공양미를 바치는 것이 옳다.
“그리고 마지막. 현재의 사패천과 관계를 맺으러 오는 놈치고 좋은 놈 못 봤다. 그런데도 모든 민초들이 한결같이 산서상회를 추앙하고 있다고.”
“…….”
진무의 입가에 야릇한 미소가 걸린다.
모처럼 생각이 많아진다.
확신이 든 이상 굳이 이것저것 따져 볼 필요 없었다.
“신, 동보.”
“……예?”
“밤이 되면 산서상회와 관련된 상단을 하나씩 직접 몰래 털어 봐야겠다.”
“터, 털어요?”
“응? 당연한 거 아냐?”
“…….”
소동보가 눈을 끔벅거리면서 진무를 쳐다본다.
이, 이봐요.
혹시 턴다는 게 지금 도둑질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천주씩이나 되시는 분이?
아니, 그리고 왜 결론이 그렇게 갑니까?
이런저런 설명을 했으면 뭔가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아야지.
말려야 했다. 정의감 넘치는 살수 소동보는 좀 더 정상적인 방향으로 움직이기 위해 망할 천주를 설득하려 했다.
“아니, 의혹이 가면 좀 더 정보를 모아서…….”
“오래 걸려. 귀찮아.”
“…….”
“뭐, 제일 빠른 건 직접 찾아가서 줘 패는 거지만 관이랑 사이가 좋다는데 부딪히면 우리만 손해 볼 거 아냐. 일단 털어 보고,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를 확보한 다음에 싸워야지. 이건 전술의 기본이라고, 기본.”
전술은 잘 모르겠지만 뭔가 의혹, 정리, 결론의 과정이 단숨에 연결되는 느낌이긴 했다.
“천주님, 아무리 그래도 혼자만의 생각으로 그렇게 결론을 내리시는 것은…….”
“…….”
진무가 소동보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놀고 있네. 멋대로 정리해서 결론 내리는 건 니가 최고거든?
그리고 내가 너랑 같냐?
이 몸께선 모든 것을 고려해서 확신을 내린 거라고.
“황신! 호랑이 잡으러 가자. 복면 준비해.”
진무의 명령에 황신이 일언반구 없이 열의 넘치는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소동보는 둘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미친 천주에 미친 수하.
아, 할머니께선 어찌하여 나를 이런 놈들 곁에 보내셨단 말인가?
* * *
밤이 찾아온 삭주의 중심 관도에 위치한 작은 방물점.
행인들이 많이 오가지 않는 곳이라 그런지 주인으로 보이는 자가 꾸벅거리며 졸고 있었다.
인적이 드물던 그곳에 화려한 경장을 갖춘 여인이 장신구를 구경하려는지 방물점 안으로 들어섰다.
주변에 사람이 없음을 확인한 여인은 낮은 목소리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대주님.”
“…….”
“누군가 삭주에서 저희 측 정보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산서상회의 평판에 대해서 물어보았다는군요.”
여인의 보고에 꾸벅거리며 조는 것처럼 보였던 방물점 주인이 눈살을 찌푸린다.
“어떤 자들이냐?”
“곱상한 외모를 가진 놈과 명문의 자제처럼 단정한 모습을 가진 놈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찾았나?”
“소식을 듣고 삭주를 모조리 뒤졌지만 종적을 찾지 못했습니다.”
“…….”
그녀의 말에 대주라는 자의 얼굴이 심각하게 일그러진다.
대주, 노순청.
그는 산서상회에서 삭주로 파견된 집행단 삼 대주로 일궁에 소속된 자였다.
그들의 역할은 산서상회의 영역 내에 있는 곳을 확인하고 감시하는 것.
하지만 얼마 되지 않는 그들의 수로 모든 곳을 감시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생각해 낸 방법이 주민들을 이용한 감시 체계였다.
산서상회에 대해 반감을 품은 것으로 보이는 자들을 신고하면 포상금을 지급한다.
물론 신고당한 이는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가 어느 날 처참한 사체로 발견되는 것이다.
관에서는 제대로 된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이는 사람들에게 산서상회에 대한 깊은 두려움을 가지게 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감시하게 되었다.
찾아온 여인은 노순청의 수하로 삭주의 소문들을 수집하는 벽하라는 무인이었다.
“종적을 찾지 못했다라…….”
노순청은 가게 밖을 멍하니 응시하며 벽하의 말을 되뇌었다.
“혹, 하오문과의 연관성은?”
“그것까진 아직 모르겠습니다.”
“음…….”
노순청이 짧은 신음성을 뱉는다.
안 그래도 근래 사패천의 반란 세력이 날이 갈수록 규모를 키워 가는 중에 하오문까지 합류했으니 정보 차단에 심혈을 기울이라는 궁주의 명령이 내려온 참이었다.
더욱이 일궁주의 호위이자 전령 중 한 사람인 범정이 은밀한 임무를 위해 휘하의 무인들과 함께 삭주에 와 있는 상태였다. 괜한 꼬투리를 잡혀 좋을 것이 없었다.
“벽하.”
“예.”
“혹시 모르니 범정 님께 이 같은 사실을 미리 알려라.”
“범정 님께 말입니까?”
“그래.”
“알겠습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삭주에 파견 나가 있는 집행대의 무인들을 모조리 동원해서라도 놈들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
“알겠습니다. 추가로 삭주 지역에 은밀하게 경계령을 내리고 상단의 경계를 두 배로 늘리라 하겠습니다.”
“좋은 생각이다. 궁주님께서 심기가 불편하신 와중이다. 절대로 불미스러운 일이 있어서는 안 되느니.”
“예!”
벽하가 조심스럽게 물러나고 주위가 다시 조용해진다.
“흠…….”
명은 내렸으되 무언가 불안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필이면 범정이 와 있는 와중에 쥐새끼가 숨어든단 말인가?
아무래도 수하들에게 맡겨 두는 것으로는 안심이 되지 않았다.
“오늘은 가게 문을 일찍 닫아야겠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