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24
324화
우등의 가족들은 눈앞에서 벌어진 참상에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했다.
죽음의 순간 별안간 나타나 마교인들을 단숨에 도륙한 젊은 무인들.
특히나 자신을 무진이라 밝힌 무인…….
우등의 고개가 좌측의 절벽을 향했다.
그곳에는 깡마르고 창백했던 마교인이 화석처럼 절벽 면에 몸이 대(大)자로 처박혀 죽어 있었다.
그저 단순한 손짓 한 번이었다. 휙 내저은 손에 닿지도 않았던 마교인이 저리 처박혔다.
사람이 저럴 수는 없다.
괴물, 괴물이다.
그런 뒤에 시시덕거리며 죽은 시신의 몸에서 돈을 훔치다니……. 마교도보다 더 무서운 놈들이 나타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힘없는 민초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뿐.
“살려 주십시오!”
우등과 그 식솔들은 본능처럼 납작 엎드려 살려 달라 빌었다.
“…….”
진무가 고개를 돌려 바들바들 떠는 그들을 바라본다.
“으아아앙!”
갑자기 어미의 품에 안겨 있던 젖먹이가 울기 시작했다.
“이 새끼들이! 살기 안 풀어? 애가 울잖아!”
“…….”
진무가 버럭 짜증을 내자 모종의 대결을 통해 형과 아우를 정한 황신과 아이들이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저어, 천주님?
살기는 천주님만 둘둘 말고 있는데요?
하지만 입이 있어도 말할 수 없는 일도 있음을 잘 알기에 셋은 열심히 기운을 가라앉히는 척을 했다.
“이 새끼들이 하여간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어.”
진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젖먹이를 안고 있는 여인에게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거, 좀 달래지. 너무 놀라서 우는 게 계속되면 경기한다고.”
“…….”
괴물이 아이를 걱정했다.
향란은 의아했으나 혹여 심기를 건드릴까 싶어 속히 몸을 돌려 아이에게 젖을 물렸다.
살려면 입이라도 막아야 할 것만 같았기에…….
“그…… 벌건 대낮에…… 보는 눈도 많은데…… 크흠흠.”
여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진무가 살짝 붉어진 얼굴로 급히 고개를 돌렸다.
“에이, 천주님. 뭘 부끄러워하세요? 저만큼 성스러운 광경이 어디 있다고…… 저건 어미가 자식의…….”
각출이 피식 웃으며 자신도 모르게 지껄이자 황신과 소동보가 급히 그의 곁에서 한 발짝 떨어진다.
빠악!
역시…… 입이 매를 버는 법이다.
대갈통을 처맞고 바닥에 처박혀 바들거리는 각출을 진무가 가볍게 째려봤다.
이 자식이 감히 누굴 변태 취급이야? 나도 알아 이 새끼야.
“크흠흠……. 거, 안 죽일 테니 그만 일어들 나지.”
“…….”
진무의 말에 우등이 슬쩍 고개를 들어 눈치를 살폈지만, 겁에 질려 있었기 때문인지 일어나진 못했다.
사실 진무 일행이 신강의 경계를 넘는 것에 대해 황신과 아이들 사이에서도 갑론을박이 있었다.
위험하니 은밀하게 들어가자는 소동보, 놈들을 죽여 옷을 빼앗고 마교도인 척 위장하자는 각출, 진무 앞에서 혹시나 평소처럼 욕을 할까 봐서 아무 말도 못 하는 황신.
하지만 진무는 딱 잘라 거절했다.
숨어? 위장? 그딴 건 약한 놈들이나 하는 짓이다.
어차피 이제부터 내 땅이 될 곳인데 뭐하러 숨어들어 온단 말인가? 입구로 들어왔다. 당당하게 한 발짝씩 걸어서.
그러다 불안한 표정으로 협로로 먼저 들어가는 우등의 가족들을 발견했고, 관문을 지키던 마교 놈들이 그들을 노리는 것을 보고 황신과 소동보에게 처리하라 했을 뿐이다.
각출까지 더해지니 협로의 좌우에 숨어 있던 놈들을 처리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쯧쯧, 관문을 지킨다는 놈들이 저 허접한 셋에게 당하다니……. 북리도천 이빨도 다 빠졌나 보네. 마교도 많이 약해졌어.
어쨌든 당당히 그 입구부터 조지고 들어온 진무였다.
“그런데, 당신들 한 가족으로 보이는데…… 신강에는 어쩐 일이지? 잘못하면 일가족이 떼죽임당할 수도 있었어.”
“그, 그것이…….”
진무가 물었지만, 이미 잔뜩 쫄아 있는 우등은 입이 떨어지지 않는지 쉽게 답하지 못했다.
“쯧, 귀찮게…….”
진무는 엎드린 우등의 곁으로 다가가 손을 올리고 선기를 운용했다.
청량함이 감도는 선기가 주변의 사악함을 몰아내고 그들의 몸을 감싸 흐르니 겁에 질린 표정이 이내 편안하게 변한다.
“자, 이제 말해 보지. 어찌 통행이 금지된 신강으로 왔는지.”
불안이 한결 가라앉은 우등이 조금씩 말을 꺼냈다.
“실은…….”
진무는 팔짱을 끼고 우등의 긴 이야기를 경청했다.
우등의 가족. 그들은 청해 북쪽의 작은 화전민촌에 살고 있었다.
외부와 단절되다시피 해 교류라고는 한동네 사는 사람들이 전부라 무척이나 평화로운 곳이었다.
하지만 얼마 전 갑자기 화적 떼가 쳐들어와 마을이 쑥대밭이 되었다.
그들은 다짜고짜 집에 불을 지르고 식량과 재물을 약탈해 간 것도 모자라 매달 일정량의 상납까지 요구했다.
그들에게 반항하던 이들은 모두가 목숨을 잃어야 했다.
도망칠 수도 없었다. 멋모르고 도망친 몇몇 사람들은 며칠이 지나지 않아 마을 어귀에 시신인 채로 걸렸으니까.
우등은 말 한 마리를 훔쳐 가족들과 함께 필사의 탈출을 감행했고, 화적 떼가 뒤쫓아 올 수 없는 신강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관? 변방의 대지에서 일어난 화전민의 어려움 따윈 그들에게 일말의 흥밋거리조차 되지 못했다.
청해를 지킨다는 곤륜?
그 먼 곳까지 가기 전에 잡혀 죽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허, 그래서 목숨을 걸고 신강으로 왔다고?”
진무의 말에 우등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매한가지니까요……. 신강이 소문이 흉흉하긴 하지만, 그래도 혹시나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교에 대해 민초들이 아는 것은 그저 나도는 풍문이 전부일 테니……. 눈앞에서 사람을 죽여 대는 녹림도보다는 나으리라 생각했을지도.
“흠…… 근데 화적 떼가 왜?”
고개를 갸웃거리는 진무를 향해 소동보가 조심스럽게 답한다.
“천주님, 감숙에서 쫓겨난 녹림 놈들이 아닐까요?”
“…….”
아! 그럴지도 모르겠다.
현재의 사패천은 과거의 기조대로 적절한 보호비를 받는 것을 제외하고 무림과 무관한 민가에 피해를 끼치는 놈들은 엄히 다스린다 공표한 상태였다.
이미 적생에 의해 대대적인 청소 작업이 시작되었고, 녹림도 당연히 그 대상에 포함되어 있었다.
우등 일가는 녹림을 청소하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피해를 입은 것이다.
결국 나 때문에 연쇄적으로 일어난 일이니…….
하지 말라는 짓을 굳이 하려는 망할 새끼들이 꼭 있다.
관짝에 들어가고 나서야 자신이 잘못한 것을 깨닫는 놈들.
별수 있나, 원한다면 향냄새 찐하게 맡게 해 줄 수밖에.
얼굴을 찡그리고 일어난 진무가 황신을 부른다.
“신!”
“예, 천주님.”
“적생한테 연통을 보내라.”
“……?”
“청해고 나발이고 사패천에 소속된 모든 문파에 명을 내리라고 해. 지금부터 정사의 영역 가리지 않고 녹림 새끼들 싹 쓸어 버리라고.”
“알겠습니다.”
황신이 급히 고개를 숙이고 서신을 작성해 전서구를 날린다.
푸드덕거리며 날아오르는 전서구의 모습에 진무가 고개를 끄덕인다.
저걸로 되었다. 쓸어 버린다고 깨끗이 없어질 놈들은 아니지만 아마 한동안은 잠잠할 테지.
“자, 그럼 다들 짐 들어.”
“……예?”
황신과 아이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 짐? 설마 우등 가족의 짐을 말하는 건가? 그걸 왜? 자신들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사람들인데?
“뭐 하냐?”
“아, 그…… 알겠습니다.”
뭐가 어찌 되었건 진무의 명령은 그냥 따르는 것이 좋다.
아까의 각출이처럼 되지 않으려면…….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떠올린 황신과 아이들이 우등 일가의 짐을 빼앗듯이 받아 들었다.
“어, 어찌?”
우등이 황망한 표정으로 쳐다봤지만, 진무는 딱히 그에게 설명하지 않았다.
뭐가 어찌 되었든 자신의 명으로 발생한 일이니까 끝까지 책임진다.
우등의 가족들을 신강으로 안전하게 데려가서 정착해 살 곳을 마련해 주는 것.
피해를 입은 모두를 도와줄 순 없으나 눈에 보인 것은 모른 체하지 않는 것, 그것이 진무가 책임을 지는 방법이다.
“자, 출발!”
경쾌한 구호와 함께 앞서 걷는 진무를 선두로 노예, 아니 부하 오륙칠 호가 우등 일가를 둘러싸며 뒤따르기 시작했다.
이 순간 황제보다 안전한 호위를 두게 되었음을 모르는 우등 일가는 그저 괴물들 틈바구니가 두렵기만 했다.
* * *
일월마교는 오랫동안 신강을 지배했다.
빛의 이면에 어둠이 항상 자리하는 것처럼 마교 또한 중원 무림과 그 역사를 함께해 온 것이다.
하지만 마교는 중원의 문파들과는 조금 다른 지배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피의 율법과 강자존.
오직 그 두 가지만으로 역사를 이어 온 곳이 바로 마교였다.
마교에도 소교주라는 직책이 존재하기는 했으나, 그저 대리인의 의미일 뿐 승계의 의미는 아니었다. 애초에 적통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교의 권좌는 대대로 가장 강한 무인에게만 허락된 자리.
누구나 권좌에 도전할 수 있고, 도전한 이들 중 가장 강한 자가 교주가 된다. 패배는 곧 죽음이다. 이 절대적인 원칙에 예외란 없었다.
북리도천이 지난 사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던 것은 누구도 그를 뛰어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모든 힘을 가진 북리도천마저도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딱 하나 있었다.
* * *
하나의 불길이 외롭게 흔들리는 단 앞에 주름 가득한 노파가 앉아 있었다.
내내 눈을 감고 있는 그녀는 무슨 고민 때문인지 어두운 안색을 하고 있었다.
“어찌 죽을상인가?”
그녀에게 다가온 마교의 지배자, 북리도천이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옆에 앉는다.
“오셨습니까, 교주님.”
노파가 조심스럽게 자리를 비켜나며 앉은 채로 절을 올린다.
“오는 소리를 들어 놓고 모른 척은……. 그런데 어찌 그런 표정인가? 자네의 미친 신께서 야단이라도 치시던가?”
북리도천이 피식 웃으며 건네는 말에도 노파의 걱정스러운 얼굴은 펴질 줄 몰랐다.
노파는 마교에서 유일하게 북리도천이 어려워하는 사람이자 비밀 없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여인이었다.
천산신녀(天山神女).
북리도천이 마교의 힘을 상징한다면 그녀는 마교의 혼(魂)과 같은 존재였다.
“말해 보게. 자네의 그런 표정은 꽤 오랜만이니.”
“…….”
북리도천의 말에 그녀의 주름진 눈이 조금씩 뜨인다.
“차라도 한잔하시겠습니까?”
“차는 무슨…….”
별 웃긴 소리를 다 듣겠다는 듯 코웃음을 침에도 천산신녀는 시비에게 손짓한다.
사박, 사박, 사박.
바닥에 늘어진 치맛단 끌리는 소리와 함께 고운 외모를 가진 여인이 다기를 들고 조심스레 다가온다.
쪼르륵.
공손히 차를 내린 뒤 뒷걸음질로 물러나려는 여인을 천산신녀가 제지했다.
“너도 앉거라. 들어야 하니.”
“…….”
천산신녀의 말에 북리도천의 얼굴이 내내 감돌던 장난기를 걷어 내고 원래의 근엄함을 머금는다.
차를 내온 여인은 소향, 노파가 후계로 키운 아이다.
새로이 천산신녀의 이름을 이어 가야 할 존재였고, 교주와 함께 삶을 공유하는 존재였다.
그녀가 함께 들어야 할 이야기라면 하나밖에 없었다.
“허, 심각한 줄 알았더니 재미있는 일이었구먼.”
“…….”
북리도천의 말에 천산신녀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졌다. 그의 말에 담긴 의미를 잘 알기에.
“망할 신이 내 기도를 들어준 모양이군. 이제야 답을 내린 것을 보면.”
“…….”
북리도천의 허허로운 어조에 천산신녀가 고개를 저었다.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
“그저 환영만을 보여 주었을 뿐이지요.”
천산신녀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화르륵.
상아로 만든 작은 받침대 위에 놓인 금잔 안에서 피어오르는 푸른 불꽃, 마교의 존속과 함께하며 단 한 번도 꺼지지 않았던 성화(聖火), 청염(靑炎).
“남과 북에서 이전에 없던 무언가가 짙은 붉음으로 다가옵니다.”
“위험인가?”
“아마도…… 그러곤 권좌에 누군가 앉았으나…….”
“알 수는 없었다?”
“…….”
북리도천의 물음에 노파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허허, 뭐가 문제인가?”
“……교주.”
“어차피 끝날 생이야. 한참이나 고여 있었으니 이제는 흘러야지. 더는 욕심도 없어. 자네도 오래 해 먹었으니 이제 이 아이에게 소임을 맡기고 쉴 때도 되었지 않은가?”
“…….”
“다만 내 자리를 노리는 놈이 죽은 혁련무강 그놈처럼 지독스레 강한 녀석이면 좋겠군. 그렇지 않으면 넘겨주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니…….”
천산신녀는 빙그레 미소를 짓곤 일어나 몸을 돌려 나가는 북리도천의 등을 깊은 한숨과 함께 응시했다.
때때로 마교에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찾아왔던 계시.
하지만 명확하지 않았다.
사람의 눈으로 바라보는 성화의 일렁임이니만큼 착각을 하는 일도 왕왕 있었으니까.
다만 확실한 것은 마교에 또 한 번 혈풍이 불어오리라는 것이었다.
북리도천의 치세 동안 한 번도 없었던 거센 혈풍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