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25
325화
마교 본궁 예하의 십이동천. 북리도천이 교주의 위에 오르며 그 주인 자리를 자신이 가장 신임하는 열두 명의 인물들로 갈아 치웠다.
그리고 북리도천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동천 간에 전쟁을 벌여도 제재를 가하지 않고 방관했기에, 각자의 세력을 키우기 위한 그들의 경쟁은 당연할 정도로 자유롭고 빈번했다.
그 열두 세력 중 청해와 경계를 두고 있는 육동천과 칠동천.
십이동천 중 세가 가장 약했던 그들은 세력 다툼은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다른 곳보다 열악한 환경을 가진 탓에 재정이라고는 관문 수호의 명목으로 본성에서 지원하는 얼마 안 되는 자금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 년 전 칠동천주 이강백이 새파랗게 어린 무당지검에 의해 반병신이 된 이후, 기회를 잡은 육동천은 보란 듯이 칠동천을 제치고 남부의 패자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 * *
“동천주님!”
수하의 부름에 분재를 손질하고 있던 인물이 기분 좋은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다.
“……아, 자네 왔는가?”
커다란 얼굴의 중심에 자리한 이목구비가 너무나 작아 보이는 노인.
피둥피둥하게 살진 모습으로 앉은 그는 마치 커다란 공과 같아 보였다.
마교 육동천의 주인, 괴뢰.
그리고 찾아온 수하는 육동천의 수석장로 막소산이었다.
“불귀협 관문의 수장 추성균의 일보(日報)가 사흘째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확인 결과 순찰을 나간 추성균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추성균? 그런 애도 있었어?”
괴뢰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막소산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육동천의 관문이라고는 겨우 둘뿐이다. 하물며 관문의 수장은 동천주가 직접 임명했던 자리인데 이름조차 잊고 있다니.
“고목패군님의 직손입니다.”
“아!”
막소산의 말에 그제야 생각이 난 듯이 괴뢰가 고개를 주억거린다.
고목패군, 과거에 마교 장로까지 했던 인물이었으나 그 후손 중에 뛰어난 이가 없었던 탓에 가세가 기울 대로 기울어 지금은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는……. 그깟 이름 따위 기억할 리가 없다.
그를 관문 수장에 임명한 것도 그저 막소산의 의견이었을 뿐이었다.
추성균은 모르겠고, 막소산은 괴뢰에게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빠듯한 육동천의 내부 살림을 제법 그럴싸하게 꾸리기도 했고, 이번 칠동천의 일에서도 혁혁한 공을 세운 바 있었다.
적당히 탐욕스럽고, 적절히 직언도 할 줄 아는 데다 고맙게도 무공까지 좀 떨어지는 수하.
그렇기에 그에게 수석장로나 되는 자리를 선뜻 내준 것이다.
“뭐, 술이라도 한잔하러 갔나?”
“그게 아니라…….”
“놔둬, 무력대도 아니고 겨우 관문 수장이 아닌가? 잠시 연락이 안 되는 것이 무슨 큰일이라고.”
“어찌 허투루 넘어가십니까? 우리 육동천의 주 임무가 관문의 수호입니다.”
“관문 수호는 염병. 누가 그 공을 알아나 주던가?”
“…….”
틀린 말은 아니었다.
육동천주에 임명된 후 수십 년간 관문을 넘어왔다고 해 봐야 손에 꼽는다. 그것도 죄다 민초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모두가 관문 수호를 하찮은 일로 여기고 있었다.
“어쨌든 조사는 좀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막소산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포기한 듯이 말했다.
“뭘 조사씩이나…… 수십 년간 조용했던 관문에 뭔 별일이 있으려고.”
괴뢰가 대수롭지 않게 손을 휘휘 젓고는 손질하던 분재 가위를 내려놓으며 물었다.
“그보다, 약강(若羌) 쪽 칠동천 지부는 어찌 되었어?”
“……그, 별 무리 없이 넘어올 것 같습니다.”
“좋구먼. 아주 좋아. 그래야지, 암.”
이것이 최근 괴뢰가 가장 듣기 좋아하는 소식이었다.
육동천은 다른 곳과 달리 무척이나 황폐한 지형을 가지고 있었고, 큰 도시라고는 나포박(羅布泊)이라 불리는, 호수 인근에 자리 잡은 하나가 전부였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본성의 지원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항상 재정이 쪼들리니 세력을 넓히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하지만 천운이 닿은 것인지 가짜 구야자 사건이 터져 생각지도 못한 날개를 달게 되었다.
지난 일 년 동안 칠동천의 두 지부를 손에 넣고 그곳의 무인들을 휘하에 들였으니 어찌 기분이 좋지 않겠는가?
남은 것은 칠동천의 주요 도시이자 나포박보다 배는 큰 약강. 그것만 얻으면 순식간에 세를 확장해 사막의 북쪽으로 뻗어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흐흐흐, 정말 마음 같아서는 이강백을 조진 무당지검이라는 놈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다니까?”
괴뢰가 턱을 괴고는 마인에 어울리는 마기를 자랑하듯 뿜어내며 웃었다.
“잘되었어. 찬찬히 토대를 다지고 사동천의 영역으로 진출하기만 하면 남부 지역은 모조리 우리 손에 떨어지는 거야. 그리되면 우리 충이가 중앙으로 진출하는 것도 문제없겠어.”
괴뢰가 흐뭇하게 웃는다.
충(充), 그의 아들이다.
육동천을 이어받게 하기 위해 온갖 영약을 먹이고 뛰어난 마공이라면 발 벗고 나서서 구해다 익히게 한.
덕분에 그의 아들 괴충은 육동천에서도 내로라하는 고수가 되었다.
지금의 발전 속도라면 권좌는 몰라도 본성 장로쯤은 너끈히 차지할 수 있으리라.
아무리 마교라 해도 늘그막에 얻은 자식이 잘되길 바라는 것은 부모로서 당연한 마음이 아니겠는가?
“교주님께서 가만 계실까요? 세 개 동천을 통합하면 언짢아하실 텐데.”
“괜찮아. 그분이 이제 늙기도 했고, 중원과 직접 부딪히지만 않으면 마교 내부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싸움 따윈 신경 쓰지 않겠다고 직접 공언까지 하지 않았나.”
“그래도…….”
“괜찮다니까. 그분의 자신감을 몰라서 그래? 아마 십이동천 모두가 통일되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양반이야. 내전이 일어나도 본인이 나서면 순식간에 정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거든.”
하긴 당연한 말이었다.
마교의 주력은 천산에 집중되어 있다.
천산의 무력이라면 십이동천을 무너뜨리는 것 따위는 일도 아닐 터였다.
“생각해 봐. 우리의 세가 커지면 자네도 좋은 거야. 수석장로 아닌가, 수석장로.”
“뭐, 그야…….”
막소산이 잠시 생각하다가 탐욕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동천을 지배하는 것은 괴뢰지만 내부를 다스리는 것은 수석장로인 자신이었으니까.
“이참에 충이에게도 명성을 쌓을 기회를 줘야겠어.”
“소공자에게요?”
“그래. 그 약강지부 일이 거의 마무리되었다고 했지?”
“뭐, 대충요.”
“거기 마을 책임자로 충이를 보내지.”
“…….”
괴뢰의 말에 막소산이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아무리 늘그막에 얻은 귀한 아들이라고 해도 과하다.
심지어 괴뢰가 지나치게 오냐오냐 기른 덕에 무공은 수준급인데 생각하는 것이 천둥벌거숭이에 지나지 않았다.
“이미 마령대주가 닷새 전에 지부장으로 임명되어 떠났습니다.”
“그래서?”
“예?”
“그게 뭔 상관이야?”
괴뢰가 가늘어진 눈매로 신경질적인 음성을 뱉어 낸다.
다른 말은 다 들어주더니 제 아들을 보내는 것에 토 다는 것이 싫은 것이다.
정말이지 한숨이 절로 나온다.
평소에는 마교에서 손에 꼽히는 강자이며 육동천을 책임지기에 충분한 실력자인데 제 아들 이야기만 나오면 팔불출보다 더하니.
“……알겠습니다. 지시하신 대로 마령대주를 불러들이고 소공자를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불러들이긴 뭘 불러들여? 충이의 경험이 일천하니 마령대주에게 나를 대하듯이 보필하라고 해.”
“…….”
마령대주 일환, 그는 이미 강의 경지를 바라보고 있는 무인이었다.
육동천에서 두 번째로 강한 고수에게 천둥벌거숭이의 뒤치다꺼리를 하라니. 아무리 충성심이 강한 그라고 해도 심기가 편할 리 없었다.
하지만 어찌할 것인가?
그들이 익힌 마공의 특성상 상위의 마기에 지배당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고, 힘이 지배하는 마교에서 윗사람의 명을 거역하는 것에 대한 징벌은 죽음밖에 없음인데.
“알겠습니다. 그리 전하겠습니다.”
“그래.”
“관문에 조사단을 파견하는 일은?”
“그건 자네가 알아서 하게.”
“알겠습니다. 하면 동천주님의 직인을 찍어 인근에 위치한 탑목지부에 명을 내리겠습니다.”
“맘대로 하게.”
“……예.”
막소산은 한숨처럼 답을 내뱉고 물러났다.
육동천의 세가 넓어져 자신의 지위가 오르는 것은 두 손 들어 반길 일이었으나 천주라는 자의 관심사는 결국 능력도 되지 않는 제 아들을 요직으로 보내는 것에 집중되어 있지 않은가.
뭐, 상관없다.
엄연히 강자존이 지배하는 세계다.
부모가 뒷받침을 아무리 잘해 준다 해도 제 능력이 안 되면 언젠가 싸늘한 칼날 아래 목숨을 잃을 것이고, 능력이 된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다.
자고로 마교 무사들에게 최고의 덕목은 더 강한 무인의 수하가 되는 것이니까.
자신은 자신의 일만 잘하면 되는 일이다. 세 개 동천을 총괄하는 수석장로라……. 이러니저러니 해도 구미가 당기는 일이었다.
* * *
걷는다.
쉼 없이 걷고 또 걸었다.
지평선 끝까지 닿고 또 닿았는데 보이는 것은 누런 황무지와 돌뿐이었다.
호기롭게 나선 걸음은 이내 터벅거리는 걸음으로 변했고, 입술은 어느덧 메마르고 갈라져 피가 배어 나왔다.
벌써 천 리.
낮에는 살갗을 태우는 열기와 모래바람과 싸우고, 밤이면 찾아오는 혹한에 떨며 닷새를 걸어왔다.
무공을 익히지 못한 우등 일가가 있기에 달리지도 못했다.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적적인 일이었다.
일곱 살짜리 꼬마는 황신이 업었고 젖먹이는 소동보가 품 안에 안았다.
각출은…… 황신과 소동보의 짐을 넘겨받았다. 더럽다는 이유로.
망할, 물을 만나면 반드시 씻고 말리라. 옷도 새 옷으로 갈아입…… 빨아서 입을까?
“뭐 해? 빨리 안 걸어? 이런 무공 모르는 애보다 못한 놈들 같으니라고.”
와중에 진무가 쌩쌩한 모습으로 짜증을 부렸다.
어떻게 저렇게 멀쩡할 수가 있지?
원래 사람도 아니었지만, 솔직히 이 정도면 자신들 몰래 물을 처마시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천주님…… 조금만…… 조금만 쉬었다 가시죠…….”
해갈을 위해 자신의 몸에서 나던 땀을 핥아 먹던 각출이 애달프게 간청했다.
더러운 놈. 그만 핥아라. 짜다.
진무가 언짢은 눈빛으로 째려보자 에라 모르겠다 싶어진 각출이 목숨을 내거는 심정으로 시선을 마주 부딪쳐 왔다.
오호, 이 새끼 봐라?
때릴 테면 때려 보라 이건가?
순간 치미는 화를 극한의 인내력을 발휘해 억누른 진무가 온화한 표정으로 각출을 달랬다.
“……각출아, 얘야. 조금만 힘내거라. 이제 거의 다 왔다. 저 지평선에 이르면 싱그러운 수풀과 몸을 적셔 줄 시원한 물이 있을 것이야.”
“천주님…….”
토닥이는 진무의 손길에 각출이 아련한 눈빛으로 진무를 바라본다.
저 지평선에…… 끝이 있기는 한가요?
“저들을 보거라. 내공 한 줌 없는 저들도 버티며 걷고 있잖니. 저 소년은 또 어떻고. 하니 조금만 더 힘을 내거라.”
진무를 따라 고개를 돌린 각출의 시야에 우등과 그의 가족들이 들어왔다.
힘들어하면서도 꿋꿋하게 걷는 모습.
그래, 애보다 못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가자, 가. 조금만 더 힘을 내자.
다짐하듯 입술을 꾹 말아 무는 각출의 모습을 진무가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장하다, 이 녀석.
그래, 힘들겠지. 인내력이 한계에 달하겠지.
하지만 걱정 말거라.
내 너를 가르치기로 한 이상 어찌 그냥 두고 보겠느냐?
나의 구타로 향후 너의 타구봉법은 물론 인내력까지 길러 줄 것이다.
진무가 터벅거리며 다시 걷기 시작한 각출을 바라보며 힘껏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땅바닥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걷던 황신이 갑자기 머리를 쳐들고 귀를 쫑긋거렸다.
“천주님!”
“……?”
“물소리! 물소리입니다!”
갑자기 생기가 넘치기 시작한 황신의 눈빛과 목소리.
다들 저게 하도 지쳐서 돌아 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표정이었지만, 진무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다른 이도 아니고 개보다 귀가 밝은 황신이다. 잘못 들었을 리가 없다.
“방향은!”
진무의 외침에 재빨리 정신을 집중하는 황신의 귀에 미세하게 잡히는 물소리가 점점 더 확연하게 들려왔다.
“북서쪽! 북서쪽이 확실합니다.”
황신의 말에 모두가 북서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휘이이잉!
하지만 보이는 것이라고는 하늘과 경계를 나눈 누런 빛의 지평선뿐.
저기에 뭐가 있다고…….
모두가 실망한 표정으로 황신을 쳐다봤다.
하지만 진무는 오랜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사람의 눈이 지평선을 보는 곳까지의 거리는 대략 십 리에서 이십 리 사이. 그들이 사는 대지가 평평하다 알려진 세상에서 어찌 그 끝이 보이지 않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분명 그러했다.
아니 잠깐, 그러면 지금 저게 최대 이십 리 밖의 물소리를 들었다는 건데.
“사람들의 목소리도 들립니다.”
“…….”
무서운 놈.
역시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설명하기 힘든 기현상이 이렇게 많다니.
어쨌든 이제 곧 물을 만난다는 뜻이니 다행스러운 일이기는 했다.
무공을 익힌 자신들은 몰라도 우등의 가족들은 당장에 쓰러져도 이상할 것이 없을 만큼 지친 상태였으니까.
“황신!”
“예!”
“일단 가서 물 좀 떠 와. 우린 계속 가고 있겠다.”
“알겠습니다!”
이십 리 정도면 그리 멀지 않다.
황신이라면 일각 내로 왕복 가능한 거리였고, 혹여 길이 어긋난다 해도 소리로 찾을 수 있을 테니까.
명을 받고 소년을 내려놓은 황신이 물통으로 쓸 만한 것들을 들고 곧장 내달리기 시작했다.
“자, 힘을 내자. 얼마 가지 않으면 물을 만날 것이다. 아마 마을도 있을 거야. 도착하면 마음껏 씻고 배불리 먹게 해 주마!”
진무의 응원에 소동보만이 희망찬 표정을 지었다.
북서쪽의 누런 지평선을 바라보는 나머지 일행들의 눈에는 그저 진무와 황신이 미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은 것이다.
“자, 서둘러! 쉴 시간이 없다!”
“…….”
그래도 황신을 대신해 소년을 안아 든 진무의 열띤 응원에 힘입어 일행이 조금씩 힘을 내기 시작했다.
“…….”
일각이 지나고…… 이각이 지나고…….
아까의 힘을 잃고 다시금 느려지는 일행의 속도에 진무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이 새끼 이거 왜 안 와?
어쩐지 너무 멀리 있는 소리를 들었다 했더니……. 바람 소리를 착각한 거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