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36
336화
진무는 화가 났다.
괴뢰는 충분히 강했다.
어중간하게 강한 것도 아니고, 능히 한 세대를 풍미할 정도로 뛰어난 고수였다.
그런데 제 놈 살겠다고 무공 같지도 않은 무공으로 사람을 방패막이로 삼아?
성강까지 이루어 낸 실력으로 고작 한다는 짓이 이깟 잡술(雜術)이란 말인가?
파학!
가장 먼저 도착한 일환의 곡도가 진무의 옆구리를 잔인하게 베어 온다.
턱.
진무는 피하지 않고 그저 손을 뻗어 곡도의 날을 움켜잡았다.
강기가 어려 검게 물든 손, 흑수는 그 어떤 쇠붙이보다 강하다.
꽈드득.
움켜쥔 힘에 곡도의 날이 흉하게 일그러졌고, 주먹을 높이 든 진무가 일환을 잠시 내려다보았다.
좀 자고 있어라.
콰앙!
관자놀이를 거세게 후려치는 주먹이 일환을 땅바닥에 처박아 버렸다.
“이, 일환을 단 한 방에!”
맥없이 쓰러지는 일환의 모습에 괴뢰의 눈이 번쩍 뜨이며 경악성을 토한다.
멍청한 놈.
꼭두각시처럼 조종 가능하다고?
헛소리. 일환이 가진 무공을 어찌 운용하는지도 모를 것인데 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 하여 무슨 도움이 될까?
더욱이 자율성을 잃어버린 무인이 어찌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하겠는가?
그저 숫자 늘리기일 뿐이다.
쾅! 콰콰쾅!
뒤이어 진무를 공격한 마령대의 무인들 또한 대번에 땅바닥에 처박혀 정신을 잃었다.
“하지 말라면 하지 말았어야지. 네놈의 실력이 아닌 타인을 이용하는 짓 따위는…….”
“이익!”
단숨에 자신의 꼭두각시들을 제압해 버린 진무의 모습에 다급해진 괴뢰가 손을 뻗음과 동시에 반대편 손을 잡아당긴다.
황신과 아이들, 우양진.
그들 역시 다를 바가 없다.
잠시 정신을 잃는 것 정도야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너희도 좀 자라.
양진이는 아직 약하니까, 살살.
쾅, 퍼퍼퍽!
“그래, 콩을 심었는데 팥이 날 리가 없지. 아들놈이 어디서 보고 배웠겠어. 네놈들의 못된 버르장머리, 내 반드시 고쳐 줄 것이다.”
진무의 살기등등한 검은 사기가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온다.
인간 같지도 않은 그 위압감에 대경실색한 괴뢰가 급히 몸을 돌려 뛰었다.
괴물이다.
그동안 육동천의 지배자로 군림해 왔던 그의 무공이 하나도 먹히지 않았다.
그리고 검은 빛으로 번들거리는 진무의 눈동자는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섬뜩함을 느끼게 했다.
도망쳐야만 했다.
“막아라! 막아라, 이놈들아!”
명을 내림과 동시에 휘두른 은사가 호법 무인들에게 박힌다.
이 새끼가. 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구만.
찍어 먹어 보고도 몰라? 짐승이야? 왜 사람 말귀를 못 알아 처먹어!
파앙!
진무가 곧장 지면을 밟아 내달리며 가로막는 호법 무인들을 닥치는 대로 때려서 처박곤 괴뢰에게 접근한다.
“요 새끼!”
쩌어억! 콰쾅! 우지직!
달리던 그대로 차 낸 진무의 발에 고스란히 얻어맞은 괴뢰가 건물을 부수고 처박힌다.
“크으윽.”
잔해를 떨치고 일어난 괴뢰가 급히 진무의 모습을 찾는다.
“어딜 쳐다보고 있냐?”
“……!”
빠각!
어느새 측면에서 나타난 진무의 주먹에 괴뢰의 머리가 세차게 돌아가고.
뻐어억!
정강이가 괴뢰의 복부에 깊숙이 틀어박힌다.
주먹과 발길질이 이어질 때마다 괴뢰는 이곳저곳의 건물을 부수며 처박혔고, 오랫동안 방어진으로서 육동천을 지키던 나선의 건물들은 폐허로 변해 가고 있었다.
수십 차례 맞고 처박히기를 반복한 괴뢰는 더 이상 일어서지도 못할 지경이 되어서야 후들거리며 무릎을 꿇었다.
“뭐 해? 아직 멀었어.”
“……!”
고개를 쳐든 괴뢰를 향해 진무가 움켜쥔 주먹을 수직으로 내리꽂는다.
빠가각!
세차게 바닥에 처박혔다 튕겨 오르는 괴뢰의 머리.
“으으으…….”
신음마저 약해진 채 바닥에 쓰러진 괴뢰의 앞에 앉은 진무.
“일단 그 손.”
“……!”
진무는 괴뢰의 살집 두툼한 손을 깍지 끼듯이 잡아 올린 뒤 그대로 역방향으로 꺾었다.
뿌드드득.
못된 손, 나쁜 손.
“끄아아아!”
진무의 손에 잡혀 손가락이 모조리 뒤집어 꺾인 괴뢰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토한다.
“하나론 턱도 없다. 이놈 자식!”
우두둑!
“끄으윽!”
양손 모두를 잡아 꺾어 놓은 진무가 울먹이듯이 신음을 토하는 괴뢰의 머리카락을 꽉 움켜쥐고 들어 올린다.
자신에게 충성하는 부하들을 수단으로밖에 여기지 않는 놈에게 해 줄 말은 하나뿐이었다.
“넌, 좀 마않-이 맞아야겠다.”
투아악!
진무가 오랜만에 장단을 만들어 내며 흥겨운 구타무를 추기 시작했다.
“꾸에엑!”
돼지같이 투실한 괴뢰가 멱따는 소리를 추임새로 질러 대고, 고수(鼓手)의 북소리를 닮은 타격음이 주변에 가득하게 울려 퍼진다.
“……그, 그만.”
그만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러게 하지 말라고 할 때 관뒀어야지, 이 새끼야. 왜 사람 말을 안 듣고 그래?
갱생의 길은 멀고도 험한 법.
나 무당 제자다.
악인을 계도하는 것이야말로 도사의 소임이니, 내 오늘 제대로 너를 갱생시켜 줄 것이다.
덩덕쿵! 쿵, 두두두두!
요란한 구타음이 전역으로 퍼지고, 육동천의 무인들이 죄다 몰려 괴뢰가 인정사정없이 맞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제……발…… 그, 그마안. 육동천은…… 그대의…… 것이오.”
해가 서산에 닿을 때까지 이어지던 구타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한 괴뢰가 기어코 패배를 인정했다.
그 말에 진무의 주먹이 잠시 멈춘다.
양위(讓位)의 뜻을 밝힌 괴뢰.
모두가 괴뢰의 승복을 듣고 보았으니 이제 진무가 육동천의 주인이 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건 당연한 거고. 넌 아직 더 맞아야 하고.”
“……제……발.”
“그건 내가 결정할 일이고.”
구타는 계속되었다.
해가 완전히 지고 서산이 붉은 노을로 물들 때까지.
* * *
육동천을 무너뜨린 그 날.
진무와 괴뢰의 결투에 대한 내용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러나 그 소란은 육동천에서 두 번째로 강했던 고수 일환이 수뇌부를 모은 자리에서 단숨에 수습되었다.
괴뢰와의 싸움을 본 이후로 그 충성심이 더욱 단단해진 듯한 모습이었다.
기특한 녀석. 알아서 다 해 주니 어찌나 고마운지.
역시 내가 사람 보는 눈 하나는 타고났다. 처음 봤을 때 이미 촉이 딱 오는 게, 어?
어쨌거나 곧바로 일환을 중심으로 한 육동천 수뇌부 회의가 열리게 되었다.
* * *
“주군, 일환입니다.”
장시간의 회의에 지친 일환이 진무가 기거하게 된 괴뢰의 거처를 찾아왔다.
“오래도 했네.”
“예. 즉위식을 여는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즉위식은 무슨.”
심드렁한 진무의 대답에 일환이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고개를 저었다.
“칠동천과의 전쟁이 끝난 지금, 동천주의 자리를 비워 두면 불안감이 가중되어 분열이 생길 수도 있는 일입니다. 거추장스러우실 터이나…….”
“뭐, 알았어. 참석하지.”
“예.”
진무의 대답에 일환이 빙긋이 웃었다.
“자, 그럼 그건 됐고. 이리 와서 앉아 봐.”
“……예?”
“우리도 지금 회의 중이거든.”
“무슨?”
“육동천은 이제 우리의 미래를 향해 나아갈 기반이야. 당연히 탄탄하게 다져 놔야지.”
“…….”
“난 고작 힘으로 제압하는 정도가 아니라 함께 죽음을 각오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충성이 필요하거든.”
하긴, 십이동천을 통일하고 권좌에 도전하자면…….
일환이 자리에 앉자 진무가 회의를 이어 간다.
“동보.”
“예, 천주님!”
진무의 부름에 소동보가 자세를 꼿꼿하게 하고 바닥에 신강의 지형도를 펼친다.
대체 저런 지도는 어디서 구했단 말인가? 와중에 상세하기까지?
“지금부터 십이동천 정벌 계획에 대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
원래 황신과 함께 준비한 내용이었으나 혹여 황신이 욕이라도 담을까 싶어 소동보가 보고를 전담했다.
십이동천.
천산을 제외하고 신강을 열둘로 나눈 곳.
“먼저 일동천입니다. 이곳은 마교 서열 십사 위인 금마영이 천주로 있는 곳이며 위치는…….”
“…….”
귀를 기울이고 있던 일환의 눈이 점점 커지고 입은 목젖이 보일 정도로 벌어진다.
십이동천 전체에 대한 세력 구성에 각 무인들에 대한 정보, 특산물, 재정 상태까지.
일환조차 알지 못하는 방대한 정보가 소동보의 입을 통해 줄줄 흘러나왔다.
개인 전령, 호위, 제…… 지나가다 주운 개방 거지면서.
대체 언제 이런 걸 다 알아낸 거지?
“……일단 전쟁에 앞서 육동천을 완전히 포섭하려면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만 합니다.”
“그게 뭐지?”
“저희가 차지한 육동천과 칠동천은 심각할 정도로 재정 부족을 겪고 있습니다.”
“돈이 없단 이야기야?”
“예.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입니다.”
하긴. 아닐 리가 없다.
이미 육동천과 칠동천의 영역에서 며칠을 보냈다.
태반이 사막인 곳이었고, 돈이 나올 구멍이라고는 대도시 두 곳과 조그만 유목민 마을 몇 곳이 전부였다.
세금이 제대로 걷힐 리가 없다.
하여간 어디를 가나 돈, 돈, 그놈의 돈이 문제지.
어찌하여 걸리는 곳마다 이렇게 가난하단 말인가? 망할 하늘 놈 같으니라고.
“육동천은 사방이 사막인지라 다른 동천과의 교역도 거의 없습니다. 해서 관문을 지키는 대가로 본성에서 받는 지원금, 도시의 양민들이 바치는 세금과 때때로 이루어지는 대규모의 수탈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망할 놈들…… 불쌍한 사람들의 돈을 뜯어서 살고 있었구만?”
진무가 슬쩍 째려보자 일환이 머쓱한 표정으로 시선을 피한다.
“흠, 어쨌든 원체 폐쇄적인 곳이라 교역이 없단 말이지? 중원과의 교역도 금지되어 있을 것이고.”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뭐?”
“알아본 바로는 중원과의 교역 자체를 통제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래?”
진무가 답을 요구하듯이 일환을 쳐다본다.
“마, 맞습니다.”
“근데 왜 관문에 들어온 사람들을 죽이려 했던 것이지?”
“그건…… 중원의 세작을 일일이 걸러 내기가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뭐야, 조사하기 귀찮아서 이제껏 모두 죽였단 이야기야?”
“예.”
“하여간 적잖이 미친놈들이구만.”
진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어 소동보의 말이 계속된다.
“오래전에는 교역하는 상단이 있었던 같은데 중원과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점차 사라진 모양입니다.”
“하긴, 그렇겠지. 상단을 보호하기 위해 마교의 무인들을 호위로 딸려 보냈다가는 영역을 침범했다며 칼부터 들이밀 터고, 그렇다고 상인들만 넘어갔다가는 보호도 받지 못한 채 녹림이나 수적의 습격을 받았을 것이니.”
“예. 그런 인식이 굳어지면서 교역 자체가 단절된 것 같습니다.”
“그랬군.”
진무도 마교의 사정에는 밝지 않았기에 세부적인 일들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다른 동천은 어때?”
“나름 자체적으로 다른 지역과 활발하게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곳은 육동천과 칠동천뿐입니다.”
대충 이해가 됐다.
사방이 사막인 육동천과 칠동천으로서는 다른 동천과의 거래가 쉽지 않았고, 상대적으로 가까운 중원과는 뿌리 깊은 원한으로 인해 교역 자체가 막혀 버렸으니.
“재정적인 문제만 해결되면 육동천의 복종을 받아 내는 것은 어렵지 않을 듯합니다.”
“이제껏 가난하게 살아온 놈들에게 돈맛을 좀 보여 주면 된다?”
“예.”
“그럼 어떻게 한다? 대충 지형을 봤을 때 다른 동천과 교역을 하기엔 거리가 멀고, 딱히 교역이 금지된 게 아니니 비교적 가까운 거리의 중원과 교역을 하는 것이 가장 편한데, 그러자면 상계를 움직여야 하고…… 상계를…….”
어? 잠깐, 이거 봐라?
순간 진무의 비열한 뇌가 빠르게 회전한다.
무림, 관, 민가와 여러 가지 이해관계로 묶인 상계.
중원의 수많은 상단은 남들보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각자의 영역에서 별별 방법을 써 가며 서로 경쟁한다.
때문에 하루아침에 망하는 상단도, 새롭게 장사를 시작하는 상단도 부지기수였다.
포화 상태나 다름없는 그곳에서 영역을 확장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
와중에 교역이 단절되었던 신강과 거래를 튼다면?
이거 완전 노다진데?
잘하면 독점 거래 아냐?
가늘어졌던 눈이 둥글게 휘어 웃음을 만든다.
신강, 누구도 발을 들이지 않은 상계의 청정 구역.
이거 잘하면 마교뿐 아니라 상계까지 통째로 먹을 수 있겠다.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마교 먹고 상계 먹고.
망할 놈의 하늘이 가난한 곳만 점지해 준다 했더니 이건 뭐, 완전 약속된 기회의 땅이잖아?
하늘 이 녀석, 고맙다!
“황신. 유장에게 서신을 보내라. 내가 좀 보잔다고 해.”
“유장이라면…… 아! 알겠습니다.”
진무의 말뜻을 깨달은 황신이 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일환.”
“……예?”
“며칠 이따 관문에 나가서 사람 하나 데려와야겠다.”
“그야 어렵진 않은데…… 어찌하시려고?”
명령이니 대답은 했으나 영 미심쩍은 표정을 짓는 일환을 향해 진무는 자신감 넘치는 눈빛을 보낸다.
일환아, 마교에서 얻은 나의 첫 부하야. 나만 믿고 따라오너라.
들어는 봤니? 산서상회라고.
그게 내 거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