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60
360화
청우의 부상에서 기인한 광기 어린 포악함은 묵검대에게도, 정사의 추격대에게도 경악을 주기에 충분했다.
딱히 강기를 사방으로 뿌리며 절세의 무공으로 적들을 두려움에 떨게 한 것이 아니었다.
으드득!
후려친 손에 얻어맞은 머리가 양쪽 어깨 안으로 파고든다.
퍼억!
내지른 발길질에 척추가 꺾이고.
쫘아악!
움켜쥔 뒤 활짝 펼친 손아귀에 사지가 찢겨 나갔다.
그 원초적인 살육의 향연은 모두에게 저절로 공포를 느끼게 했다.
쏴아아.
걷는 걸음마다 피가 비처럼 쏟아지고 지난 자리마다 신음조차 뱉어 내지 못한 시신으로 채워진다.
정사 추격대를 공격하던 묵검대가 일제히 방향을 바꾸어 진무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거대한 불 앞에 달려든 나방은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는 법.
분노로 물든 진무는 이미 모든 것을 태워 없애는 불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진무의 옷깃을 채 스치기도 전에 흑수에 닿아 우그러져 제 주인의 숨을 끊는 칼들.
진무는 애초에 감정 자체가 없는 사람처럼 묵검대를 단죄했다.
고작 청우에게 상처를 입혔다는 이유로…….
그의 행동이 멈췄을 때, 정사의 추격대가 그토록 고전했던 묵검대는 모조리 참혹한 시신이 되어 있었다.
강의 고수가 만들어 낸 순수한 살육의 현장에 모두가 입을 떡하니 벌렸고, 진무는 모든 상황이 끝났음에도 목표를 찾아 눈을 희번덕이고 있었다.
“사숙!”
전투가 끝나고 피 칠갑을 한 채 우뚝 선 진무를 향해 청상과 청우가 서둘러 달려왔다.
“천주님을 뵙습니다.”
어딘가 무거운 표정의 대궁이 다가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그 외 운암과 제갈산산을 비롯한 갑무반의 무인들이 다가왔지만, 진무는 여전한 살기등등한 눈길로 청상과 청우를 훑었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얼굴을 지나 몸 곳곳에 자리한 상처까지.
청상도 청상이지만 청우의 상처가 가볍지 않았다.
개중에는 사혈을 아슬아슬하게 피한 것도 몇 있는 걸 보아 발견하는 것이 조금만 늦었어도 꼼짝없이 뒈졌으리라.
이 멍청한 놈이…….
짜아악!
대차게 뺨을 올려붙이는 소리에 모두가 몸이 움찔거릴 정도로 깜짝 놀랐다.
“누가 처맞고 돌아다니래? 어?!”
“…….”
맞은 게 아니고, 베인 건데요?
뭐가 좋은지 청우는 맞고도 히죽 웃었다.
맞은 것에 대한 충격보다는 오랜만에 만난 사숙에 대해 반가움이 더 컸다.
사숙은 여전히 무서웠지만, 변함없는 그 모습이 그리웠던 마음을 충족시켰다.
그까짓 따귀 한 대? 그게 뭐 하루 이틀인가?
이골이 안 나면 이상하다.
더구나 며칠이지만 청상보다도 진무와 오래 지냈던 청우다. 저 거친 손속에 담긴 걱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보고 싶었습니다. 사숙.”
청우가 울먹거리며 두툼한 팔을 뻗어 다가왔다.
그 모습에 진무가 손을 내밀어 청우의 몸을 멈췄다.
“……안으면 죽여 버릴 거야.”
“오랜만인데……요?”
“그래도 안 돼!”
눈을 부라리며 청우를 밀어 낸 진무가 청상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찌 된 거야? 니들이 어째서 여기 있어? 저 시커먼 새끼들은 또 뭐고?”
토낀 줄 알고 신나서 왔구만.
“아, 그게 실은…….”
청상이 굳은 표정으로 그간의 일들을 설명했다.
정사의 수뇌들이 모여 연합이 체결되던 순간부터 아이들의 행적을 뒤쫓아 온 추격대의 이야기까지.
“……흡성마공이라고?”
“예. 하오문과 개방에서 이미 확인을 마쳤습니다.”
“…….”
진무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었다.
흡성마공.
어떤 개자식이 만들어 낸 것인지는 모르지만, 사람의 기운은 물론 생기마저 흡수해 자신의 공력을 키우는 저주받은 무공.
마교에서조차 그 위험성을 우려하여 금지하고 세상에 나오지 않은 지가 오래된 그것이다.
그런데 그걸 익혔어? 그걸 익히기 위해 그렇게 많은 아이를 납치했다고?
“애들은…… 납치되었던 애들은 그럼 모조리 죽었다는 이야기냐?”
“다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대부분은 그리된 것 같습니다.”
“…….”
진무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욕설도, 노성도 지르지 않았다. 다만 칙칙하게 가라앉은 눈빛이 지금 그가 느끼는 분노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차라리 아까처럼 바깥으로 드러냈을 때가 나았다. 그때는 그 잔학함에 공포를 느꼈을지언정 자의로 몸을 움직일 수는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의 몸에서 스멀스멀 새어 나오는 스산하기 짝이 없는 한기에 주위에 몰려들었던 이들이 저도 모르게 흠칫하는 표정으로 물러나고 있지 않은가.
“…….”
한참의 침묵 가운데 진무가 멍하니 어디랄 것 없는 허공을 응시했다.
중원의 곳곳에서 궁의 놈들이 납치해 간 아이들.
제대로 꽃을 피워 보지도 못한 봉오리, 아니 아예 자라 보지 못한 새싹들이다.
행방만 찾아내면 어떻게든 구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저 어디론가 팔려 가 힘겨운 노예 생활이나 하고 있을 것이라 여겼다.
자신도 비슷한 경험을 했던 적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무림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그 아이들이 제 욕심을 채우려는 개자식에게 희생되었단다.
“하오문과 개방에서는 그가 모종의 대법을 이루기 위해 아이들만을 납치한 것으로 추측…….”
청상은 문득 말을 멈추고 진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침묵으로 일관하던 진무가 웃고 있었다.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종류의 것이었다.
누군가를 구타하기 전에 보이던 것처럼 무시무시한 미소도 아니고, 진정 즐거울 때의 해맑은 미소도 아니다.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질식할 것만 같은 그 섬뜩한 미소에 청상이 말문을 잃고 나서도 긴 침묵이 이어진 끝에, 진무가 담담하게 물었다.
“……검혜가 남았다고? 너희를 구하기 위해서?”
“예.”
억양조차 느껴지지 않는 단조로운 어조에 청상이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길 안내를 자처하던 은위단도 죽었고?”
“…….”
진무의 말에 대궁이 무릎을 꿇어 죄를 청했다.
“천주님을 뵐 면목이 없습니다. 벌을 내려 주십시오. 제가 모자란 탓에 그들을 살리지 못했습니다.”
“…….”
진무가 말없이 대궁을 내려다보다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일어나.”
“천주님.”
“감상적인 소리 하지 마라, 대궁.”
“……?”
“죽음, 그게 뭐.”
“…….”
“우린 무림인이다. 칼 들고 무림에 뛰어든 이상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각오는 하고 있어야 해.”
“…….”
“누구라도 전장에서 죽을 수 있다. 나는 살고 적은 무조건 죽는 그런 이상적인 상황 따위는 없어. 죽음은 언제나 우리의 곁을 맴도는 운명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 벌을 내려 달라고?”
진무가 대궁을 향해 조소를 머금었다.
“니가 죽으라고 시킨 것도 아니면서 건방 떨지 마라. 하지만 뭐…… 복수 정도는 해 줄 수 있겠지.”
나지막한 힐책에 듣고 있던 모두가 입을 다문다.
대궁과 대화가 끝나기를 기다려 검혜를 구해 달라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사정하고 싶었던 제갈산산이 힘없이 어깨를 늘어뜨렸다.
진무의 말대로 그 또한 검혜의 운명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건 검혜나 은위단의 죽음이 아닌 민초다. 죽어 간 아이들이야.”
“…….”
“무림인에겐 자신의 목적을 위해 서로를 죽고 죽이는 것이 당연하지만 아무 관계도 없는 민초들은 아니야. 그건 그들의 운명이 아니니까.”
“…….”
“이건 내 의지와는 관계없다. 반드시 깨어지지 말아야 하는 금기인 거지.”
진무가 입가에 맺힌 미소가 얼굴 전체로 퍼진다.
“그들은 그런 금기를 어긴 거야.”
천천히 몸을 일으킨 진무가 청상을 바라보았다.
“검혜가 막아선 것이 애들을 잡아먹었다는 그 망할 개새끼의 수하쯤 되는 노인이랬지?”
“…….”
“그리고 그 망할 개새끼는 지금 이동천의 본성에 있고.”
이미 들어서 안 사실을, 진무는 하나하나 되짚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미소가 짙어질수록 진무의 콧등에 잡힌 주름골이 깊어지고, 이내 입술이 벌어져 꽉 다문 이빨이 모습을 드러냈다.
“망할 궁. 아주 사사건건 내게 죽여 달라 소리치는구나.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일들을 쉬지 않고 저지르면서.”
자신이 점찍었던 양의심공을 노리는 것을 시작으로 피땀 흘려 세운 사패천을 노리는가 하면, 민가에 패악을 끼치고 아이들을 납치해 짐승의 먹잇감으로 던져 주었다.
“좋아. 전쟁을 원한다면 그렇게 해 줘야지. 짐승이 되어 달라면 그리 되어 주면 될 일이야.”
“…….”
청상은 차마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분명 자신이 알던 사숙이 맞는데 지금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이제까지 진무는 무섭기는 했어도 두렵지는 않았다.
분명 웃고 있음인데 마치 닿으면 손이 베일 듯이 날카로운 칼처럼 섬뜩하게 느껴졌다.
“양진아.”
“예, 스승님.”
“이들을 사동천으로 안내해 줘라.”
“…….”
“그리고 나의 명령을 전해라. 사동천의 모든 무인들은 명을 받는 즉시 삼동천을 지나 이동천을 친다.”
“알겠습니다. 스승님께서는?”
“나?”
양진의 물음에 진무가 천천히 한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일단 손님부터 받아야지. 그 후엔 인간이기를 포기한 짐승과 그 수하들을 찾아가서 모조리 모가지를 꺾어 버릴 것이다.”
“…….”
전쟁의 선포.
그런데 손님? 무슨 소리지?
순간적으로 진무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양진이 되물으려는 찰나였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인가?”
진무의 시선이 닿았던 곳.
뒷짐을 진 노인이 찌푸린 얼굴로 숲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
검혜와의 싸움 이후 몸을 추스르느라 뒤늦게 도착한 이궁주 노국태.
그의 이름이나 얼굴을 모르는 진무는 그저 바라만 볼 뿐이었고, 정사의 추격대들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검을 세웠다.
“이거 원. 묵검대가 그리 약한 아이들이 아닌데. 족히 백 명 가까이 되는 숫자가 중원의 애송이들에게 모조리 전멸당하다니. 독에라도 당한 게야?”
노국태가 사방에 널브러진 묵검대의 시체들을 바라보며 언짢음을 드러내었다.
“스승님!”
그의 등장과 함께 잔뜩 긴장하고 있던 제갈산산이 노국태의 뒤를 따르는 묵검대의 무인의 손에 짐짝처럼 들린 여인을 알아보고 외쳤다.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만신창이가 되어 버린 모습이나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아직 죽지 않았으니 놀랄 것 없다, 아이야. 소궁주님께 가면 시간문제기는 하겠지만.”
짐짓 친절하게 웃는 노국태를 바라보던 진무가 제갈산산의 어깨를 잡고 뒤로 물리며 앞으로 나섰다.
“야.”
“…….”
묵검대의 시신을 살피느라 정신이 팔려 있던 노국태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이제껏 한 글자로 불려 본 적이 없는 그다. 반말을 들어 본 적은 더더욱 없었다.
더군다나 이제까지 살려고 쫓기던 놈들 아닌가?
“허, 이런 천둥벌거…….”
헛웃음을 터트리며 진무에게 시선을 돌린 노국태는 순간 입을 다물었다.
격전을 치렀음이 분명한 무인들 사이에서 유달리 피를 뒤집어쓴 채 형형한 안광을 내뿜는 사내.
머리칼은 온통 피를 머금고 늘어져 얼굴의 반 이상을 덮어 가리고, 드러난 손발이며 몸까지 어느 한 군데 붉게 물들지 않은 곳이 없다.
복색 자체는 약초나 캐며 살아가는 심마니 같은데, 저래서야 푸줏간 백정이 무색하지 않은가.
게다가 그의 몸에서 은은하게 느껴지는 가공할 기운…… 검혜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하기사, 무림에는 무인이 넘쳐 나고 고수라는 놈들 중엔 별나게 구는 것들 천지니.
도살에 미친 악귀 하나쯤 있다 해서 새삼 놀라울 일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