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rior Grandpa and Grandmaster Daughter RAW novel - Chapter 474
13화 정무관의 비밀 병기 (3)
입구 근처에 있던 사부 한 명이 문을 걸어 잠갔다.
그 모습에 동구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지금 뭐 하자는 것이오? 무도인으로서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하시오.”
회룡관의 관장 장일수가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나직이 대꾸했다.
“너희들은 오늘 돌아갈 수 없다.”
“……무슨 의미요?”
그들이 뭘 하려는 것인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네 명의 사부가 유연풍을 둘러싸기 시작했으니까.
자신들을 죽임으로써 대결의 결과를 조작하려는 것이리라.
동구가 쩔뚝거리며 다가가자, 유연풍이 한 손을 내뻗으며 말했다.
“오지 마십시오.”
그의 몸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관장 장일수가 동구를 경계하고 있었기에 도와주러 오기도 어려운 처지였다.
“자, 지금부터 어디가 하남 제일의 무관인지 다시 한번 가려보지.”
“아니, 뭐 이런 미친놈들이…….”
어지간해선 화를 내지 않는 동구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동구는 절망했지만, 유연풍의 반응은 달랐다.
무미건조한 눈빛으로 양팔을 천천히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잘됐군요. 이렇게 그냥 돌아가기가 좀 아쉬웠는데.”
오히려 잘됐다는 표정이었다.
그를 둘러싼 네 명은 잠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눈빛을 교환했다.
사대 일의 싸움이었지만, 조금의 부끄러움도 없다는 반응이었다.
그리고 한 호흡이 더 지난 뒤.
불공정한 두 번째 대결이 시작되었다.
타앗-!
사방에서 네 명의 사부가 동시에 달려들었다.
곧이어 급소를 노린 그들의 손발이 막 당도하는 그때.
돌연 유연풍의 신형이 자리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
정확히는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가문의 선풍보법으로 단번에 포위를 돌파한 것이다.
유연풍은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기로 결심을 굳혔다.
그럴 가치가 없는 자들이었으니까.
좌우로 교차했던 양손이 학의 날갯짓처럼 펼쳐지며, 두 명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투퉁-!
“크윽!”
“끅!!”
비틀거리는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나머지 둘이 연이어 달려들었다.
칼처럼 꼿꼿하게 세워진 그들의 손날은 유연풍의 목과 심장을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손은 허공에서 ‘뚝’ 정지하고야 말았다.
허무하게 붙잡혀 버리고 만 것이다.
“우리 관장님을 기습한 괴한들이 당신들이었죠?”
이들의 무공과 동구의 상처들을 비교해 보니, 이제 어느 정도 확신할 수가 있었다.
그들의 손날을 움켜쥔 유연풍은 반대 방향으로 ‘확’ 꺾어 버렸다.
우드득-!!
“크아아악!”
“끄악!!”
아무리 회룡관이 하남에서 날고 기어도 무술 도장에 불과했다.
천하제일 가문의 후계자를 상대로 버티기엔 역량이 부족할 수밖에.
하지만 지켜보던 장일수는 이대로 포기할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독기를 품은 그가 벽면에 걸려 있는 언월도를 빼든 채, 벼락처럼 날아올랐다.
타앗-!
다른 사부들과는 차원이 다른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유연풍은 돌아보지 않고도 그의 기습을 알아채고 있었다.
파앙-!!
우측으로 기울어진 유연풍의 가슴 위로 날카로운 언월도의 날이 스치고 지나쳤다.
장일수는 당황하지 않고, 언월도를 회전시키며 다음 초식을 이어 나갔다.
휘리리릭-! 콰앙-!!!
언월도에 서린 도기(刀氣)가 바닥에 움푹 파고들며, 불꽃을 일으켰다.
그의 연계 공격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지만, 유연풍의 옷깃조차 스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서너 합이 더 지난 그때. 드디어 유연풍의 반격이 이어졌다.
양손에 서린 푸른 기운이 언월도를 튕겨내며, 그를 뒷걸음질 치게 했다.
콰쾅-! 콰콰쾅-!!
상황이 이쯤 되자, 장일수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어, 어째서 이 정도의 고수가 정무관 따위에…….’
지금의 현실을 믿고 싶지가 않았다.
아니,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양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묵직함이 꿈이 아니란 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장일수는 머지않아 방어가 뚫리며, 유연풍에게 접근을 허락하고야 말았다.
타앗-!
자세를 낮추며 파고든 유연풍은 장일수의 가슴을 향해 주먹을 연달아 내질렀다.
퍼퍼퍼퍼퍽-!!
“크헉!”
이어서 유연풍의 오른발이 솟구쳐 오르며 그의 ‘턱’을 후려쳤다.
쩌억-!
관장 장일수는 이미 항거할 수 없는 상태였지만, 아직 유연풍에겐 마지막 동작이 남아 있었다.
바닥에서 짧게 떠오른 그의 신형이 폭풍처럼 회전했다.
휘리리릭-!!
회전력을 머금은 유연풍의 뒷발이 장일수의 안면에 둔기처럼 틀어박혔다.
콰아앙-!!!
아이들의 동작을 보고 배운 정무관의 기술이었다.
언월도를 놓친 장일수는 삼 장을 튕겨 날아가 볼품없이 널브러졌다.
털썩-!
쓰러진 자리는 공교롭게도 동구의 코앞이었다.
유연풍이 의도한 것이다. 그에게 처분을 맡기기 위해.
다른 사부들은 도와줄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멀찍이서 머뭇거리고만 있을 뿐이었다.
“…….”
정적 속에서 동구의 고개가 천천히 아래로 향했다.
앞니가 빠진 관장 장일수가 안면을 떨며 다급히 말했다.
“……우, 우리가 졌소. 무관을 닫고, 하남에서 떠나겠소이다.”
“이렇게 끝내기엔 우리가 너무 멀리 온 것 같소만.”
장일수는 자존심도 잊은 채, 목숨을 구걸하기 시작했다.
“한, 한 번만 살려주시오, 동 관장. 내가 실수했소이다.”
동구는 그를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내려다보더니, 이내 시선을 돌려버렸다.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역겨웠기 때문이다.
“다시는 정무관의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마시오.”
“내, 내 명예를 걸고 약속하리다.”
동구는 한숨을 내쉬고는 유연풍을 향해 눈짓을 보냈다.
이제 이곳에서 나가자는 의미였다.
유연풍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다가왔다.
“왜 그냥 봐주시는 거예요?”
분명 그를 죽이리라 예상하고, 앞으로 보내준 것이거늘.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세상에는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존재하는 법.
동구도 그중에 한 명이었다.
“나는 무림인이 아니라 무도인이다. 승부가 났으니, 그것으로 충분해.”
이대로 그냥 돌아가기엔 왠지 찝찝했지만, 자신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관장님.”
말을 마친 유연풍은 앞발에 내공을 실어 잠겨 있던 문짝을 박살 내버렸다.
콰아앙-!!
문 앞에 회룡관의 제자들이 바글바글 몰려와 있었다.
아마도 승패의 결과가 궁금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내부의 광경을 보게 된 그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마치 헛것을 보고 있다는 듯, 눈을 비비는 자들도 한둘이 아니었다.
“비켜줄래요? 걸리적거리니까.”
잠시간의 정적이 흐른 뒤.
갑자기 회룡관의 앞마당에 숨 막히는 살기가 휘몰아쳤다.
관장과 사부들의 처참한 모습에 제자들이 분노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촌놈 새끼들이 감히.”
“둘 다 오늘 죽을 줄 알아라.”
그러나 그들의 패기는 유연풍의 손짓 한 번에 단번에 사그라져 버렸다.
쏴아아악-!!
그동안 감춰 왔던 기세를 뿜어내자, 제자들의 표정이 돌변하며 창백하게 질려갔다.
“헉!”
“……끄윽.”
“숨, 숨이 안 쉬어져.”
공포에 질린 그들은 꽃게처럼 좌우로 옆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누구든 한 마디만 더 해보시죠. 나도 참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
유연풍은 한 마디를 더 남겨놓는 것을 잊지 않았다.
“오늘 이후로 정무관 근처에서 눈에 띄면 가만두지 않겠습니다.”
유연풍과 동구가 회룡관을 유유히 벗어날 때까지, 아무도 입을 여는 자가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제자들이 본관으로 앞다투어 뛰쳐 들어갔다.
“관, 관장님!”
“사부님들, 이게 어떻게 된 것입니까?”
“저 자식들이 도대체 무슨 짓을…….”
두 눈이 충혈된 장일수가 악귀처럼 일그러진 얼굴로 소리쳤다.
“너희들은 나가 있거라!!”
“…….”
비참한 꼴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제자들이 다시 나가고 나서야, 장일수가 사부들의 부축을 받으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어서 그가 이를 뿌드득 갈며 말했다.
“……채비해라.”
“어, 어딜 말입니까?”
“지금 당장 흑랑회로 갈 것이다.”
흑랑회(黑狼會).
돈만 쥐여주면 무슨 일이든지 다 하는 무시무시한 세력으로, 무림의 음지를 지배하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을 움직이는 대가는 무척 비싸며, 수법이 악랄한 것으로도 유명했다.
“관장님. 그들과 엮인 곳은 대부분 끝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럼 이렇게 끝내자고?”
“저희도 분하긴 하지만…….”
그는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장일수에게 목을 붙잡혔다.
꽈득-!
“그 새끼들만 죽일 수 있으면, 나는 지금 내 영혼도 팔 수 있어.”
“큭…….”
“어차피 우린 이제 더 잃을 게 없다. 알아들었어?”
“알, 알겠습니다.”
* * *
한편 회룡관을 벗어난 동구와 유연풍은 함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나저나 설이한테 무공을 배웠다더니, 참 대단하더구나. 정말 다친 데는 없는 거지?”
“저는 괜찮습니다. 그것보다 분하지도 않으세요? 이렇게 끝내고 돌아올 줄은 몰랐습니다.”
“나도 성인군자는 아니야. 어찌 화가 안 나겠어? 참는 거지.”
“그럼 왜 그렇게 쉽게 용서하신 겁니까? 제가 비록 강호 경험은 적지만, 마무리는 확실하게 하라고 음괴님께 배웠습니다.”
침묵을 지키던 동구가 먼 하늘을 바라보며, 크게 호흡을 내쉬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무관은 무림의 영역에 포함된 세력이 아니거든. 정당한 싸움이라도 무림인들끼리의 혈투처럼 살인이 허용되지 않아.”
“그럼 관에서 개입할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렇겠지. 그러니까 그들도 우리한테 함부로 보복하진 못해.”
유연풍은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정말 괜찮은 거 맞죠?”
“그렇다니까. 게다가 아까 네 경고를 받았으니, 감히 허튼 생각을 하지 못할 거야.”
“그럼 다행이긴 한데…….”
“괜찮으니, 어서 가봐. 한시라도 빨리 설이를 찾아야 한다며?”
그렇지 않아도 단전에서 느껴지는 이물감이 내내 신경이 쓰이고 있었다.
비록 지금은 고통이 없었지만, 언제든 발작을 일으킬 수 있을 터.
늦기 전에 조금이라도 빨리 조카를 만날 방법을 찾아서 움직여야 했다.
“그럼 개봉에서 볼일을 마친 후 다시 들르겠습니다, 관장님.”
“그래, 몸조심하고. 또 보자고.”
유연풍은 허리 숙여 포권을 건넨 후 경공을 펼쳐 옆길로 나아갔다.
개봉성이 있는 방향이었다.
‘조카님의 지인들을 찾아서 말만 전하고 와야겠다.’
개봉부의 지인들과 귀두대 출신의 관원들. 그리고 흑야방 정도가 있었다.
그들에게 음괴를 보거든 곧바로 동가장으로 와달라고 말해둘 작정이었다.
타탓-!
유연풍의 경공이 점차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두 시진을 달렸을 때, 돌연 그의 경공이 ‘뚝’ 멈춰 세워졌다.
왠지 모르게 발걸음이 계속 무거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조카님께서는 작은 불씨도 무조건 밟아서 꺼놔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었지.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불길해.’
독기가 서려 있던 관장의 두 눈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절대 패배를 시인하는 눈빛이 아니었다.
비록 모든 것이 낯선 강호에서 경험 하나 없었지만, 직감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던 중 문득 아버지가 동구 관장에 대해 평가했던 말이 떠올랐다.
‘기억났다. 아버지께서는 관장님이 순박하고 착한 성품을 가지고 있지만, 매사에 구멍이 많아서 문제라고 말씀하셨어. 그래서 별명이 동그란 구멍이라고…….’
물론 별명은 과거 유설이 지어 준 것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유연풍은 이내 정무관이 있는 방향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가족들의 가르침을 믿는 것으로 결정한 것이다.
비록 조카와의 재회가 며칠 더 늦어질 수는 있겠지만, 동가장에서 기다릴 작정이었다.
‘기다려라, 얘들아. 연풍 사부가 돌아간다!’
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