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NBA RAW novel - Chapter 13
웰컴 투 NBA 13화
#013. 정유재란 in 2017
성공적이었던 NCAA 데뷔전.
그 여파는 이튿날 통학길에 곧바로 실감할 수 있었다.
“헤이, 킴! 좋은 아침이야!”
“킴! 어제 데뷔전 잘 봤어. 환상적인 덩크더라!”
“이봐, 킴! 레베카가 이번 주 금요일에 파티를 연다는데······.”
“킴! 잠깐 사진 좀 같이 찍어 줄래?”
“킴! 여기 좀 봐 줘!”
“킴!”
세상에. 이게 뭐야.
난 여기서 빠져나가야겠어.
“흠흠. 킴, 내 생각엔 어제 덕스가 차용한 3-2 지역방어 전술은······.”
“미안! 급한 일이 있어서 이만 가 볼게!”
“이, 이봐!”
차라리 3만 명 규모 경기장이 훨씬 낫지.
이건······ 18년 동안 외노자로 살아온 내 아싸 기질이 못 견딘다.
인파를 빠져나와 간신히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큭큭. 내가 말했지? 여기서는 농구만 잘하면 사람들이 널 가만 놔두질 않을 거라고.”
“동호 형!”
미국 기준으로는 단신인 175cm에 역도 선수처럼 다부진 체격.
질 좋은 양복에 선글라스를 끼니 이제야 좀 에이전트 티가 난다.
본격적으로 이쪽 업계에 뛰어든 동호 형은 얼마 전 야구 에이전시에 사표를 제출했고, 지금은 포틀랜드의 작은 에이전시에서 관련 업무를 배우고 있었다.
“여기 내 명함이야.”
“오, 디자인이 고급지네요.”
“하하. 아직은 클라이언트 하나 없는 반편이 에이전트지만.”
앞으로 반년 뒤.
일이 순탄히 풀린다면 난 형의 첫 번째 클라이언트가 될 거다.
“그래서. 스타가 된 느낌이 어때?”
“스타는 무슨. 형도 알잖아요. 난 이런 거 별로 안 좋아하는 거.”
“큭큭. 그래도 어제오늘은 유진 시에서 네 이름이 안 들리는 곳이 없던데.”
그래. 그건 나도 방금 넘치도록 실감했다.
“그래서. 무슨 일이에요?”
“그게 말이지. 어떤 대기업이 너랑 정식으로 후원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문의를 해 왔어.”
“예? 어디서요?”
NCAA는 선수 개인의 영리활동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팀 차원에서 받는 스폰서십이나, 운동기구, 스포츠 비품 등의 비금전적인 지원 외에는 어떠한 지원도 받을 수 없는 게 NCAA 선수들의 현실이었다.
동호 형이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을 텐데······.
그러나 동호 형은 선글라스를 벗으며 자신만만한 미소를 보일 뿐이었다.
“나이키(Nike). 그것도 나이키 코리아가 아닌 본사에서 널 만나 보고 싶대.”
***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Mr. Kim. 편히 앉으시죠.”
깔끔한 정장 차림의 40대 남성이 손을 내밀었다.
필립 부크나이트.
Vice president of Global Sports Marketing.
한국 기업으로 치환하면 대충 상무 이사쯤 되는 높으신 분이다.
‘원래 같으면 내가 절대로 만날 수 없는 사람이지.’
아무리 장래가 촉망되는 운동선수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오늘의 만남이 성사될 수 있었던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요소가 작용했다.
‘하나는 내가 내년에 떡상이 예정된 코인이라는 점.’
이건 설령 내가 2라운드로 밀려나도 변함없는 이야기였다.
‘나이키는 동아시아의 농구 인기를 신장시키기 위해 꾸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나는 그 얼굴마담 역할로 최적의 선수니까.’
이건 나 혼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중국의 저우치와 왕저린.
일본의 와타나베 유타와 하치무라 루이.
한국의 나까지.
작년과 올해는 동북아 3국 유망주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미국 농구계에서 이름을 알린 해였다.
‘먼저 중국의 저우치.’
1996년생으로 나보다 2살 위.
이 선수는 2016년 드래프트 2라운드 13위로 휴스턴 로키츠에 지명된 센터다.
‘같은 해에 2라운드에 지명된 왕저린은 미국에 안 온다고 그랬지?’
반면 저우치는 내년부터 미국에서 활동한다고 하니, 아마 나와 같은 년도에 NBA 데뷔를 하게 될 거다.
저우치 역시 나이키가 후원하는 선수니, 내 입장에선 굳이 날을 세울 이유가 없긴 하지만.
한국인, 중국인 선수가 같은 해에 NBA를 데뷔한다?
‘그걸 양국 언론이 가만 놔둘 리 없지.’
매주 뉴스란에 어떤 국뽕으로 가득 찬 기사가 양산될지.
상상만 해도 정신이 아득해질 것 같지만, 이건 내년의 일로 미뤄 두도록 하자.
‘그다음은 와타나베 유타.’
1994년생으로 나보다 4살 위.
이 선수는 지금도 조지 워싱턴 대학에서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다.
‘나와 포지션과 신체조건이 상당히 비슷한 선수지.’
포지션은 SF/PF.
맨발 신장 6‘8“(203cm)에 윙스팬 6‘10“(208cm).
나와 마찬가지로 수비력과 3점이 강점인 선수다.
이미 일본에서는 벌써부터 라이벌로 미는 분위기인 것 같다.
‘솔직히 내 입장에서는 좀 굴욕적인데.’
아니, 사람이 참 호감이라서 나도 전생에서부터 쭉 응원해 온 선수긴 한데.
선수로서의 유형만 비슷할 뿐, 기본 체급에서 천지 차이가 난다고.
미국에서의 인지도만 봐도 그렇다.
조지 워싱턴 대학이 소속되어 있는 A10 컨퍼런스는 미드메이저라 비교적 관심도가 떨어지고, 와타나베 본인도 지명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평가되니까.
‘나중에 브루클린 넷츠에서 롤 플레이어로 쏠쏠한 활약을 하긴 하지만, 그건 6년 뒤의 이야기지.’
조지 워싱턴 대학은 A10 컨퍼런스에서도 비교적 약팀으로 분류되는 학교.
와타나베와는 아마 3월의 광란에서 만날 일이 없을 거다.
‘내가 그나마 가장 의식하고 있는 선수는 하치무라 루이.’
올해 곤자가 불독스에 데뷔한 1학년 신입생이다.
이 팀은 진짜로 3월의 광란에서 만나게 될 가능성이 있거든.
‘나이도 나와 동갑이고, 신체조건과 윙스팬, 운동능력도 거의 빼다 박았지.’
심지어 NCAA 데뷔전도 나와 같은 날짜인 11월 11일이었다.
다만 데뷔전의 성적은······.
[Rui Hachimura: 4min 33sec] [1PTS / 3REB] [0/1 FG, 0/1 3PT, 1/2 FT] [Sion Kim: 27min 59sec] [16PTS / 7REB / 2AST / 3STL / 2BLK] [6/11 FG, 2/4 3PT, 2/3 FT]다소 민망할 정도로 차이가 났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언급이 그리 많지 않았다.
흑인 혼혈이라 쉬쉬하는 분위기가 있기도 하고.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나와 달리, 일본에서 직행한 선수이기에 현재 기량을 비교하는 건 좀 부당한 짓이긴 하다.
‘······한국에서는 국뽕 유튜버들이 조회수를 달달하게 빤 모양이지만.’
아무튼.
나를 포함한 5명의 아시아계 선수들.
이들은 어떤 식으로든 NBA 무대를 한 번쯤 밟아 볼 가능성이 높았고.
동북아시아의 농구 열기는 유례없는 수준으로 달아오르고 있었다.
[금화신문] [저우치, 왕저린. 대선배 야오밍의 전설 잇는다!] [동양인 포워드가 NBA에서 살아남은 사례는 전무. 최후의 승자는 중국이 될 것.] [한국의 금시온은 거품! 머지않아 실체가 드러날 것······ 시즌이 끝날 때쯤엔 2라운드 바깥으로 내려갈 가능성 높아.] [주간 아사히] [대일본의 자랑 와타나베 유타! 루이 하치무라! 두 명의 농구 천재를 배출해 낸 자랑스러운 일본!] [세계가 놀란 일본의 유소년 양성 시스템의 비결은!?] [한국이 벌벌 떨고 중국이 눈물을 흘렸다······ 유타 와타나베의 리더십을 주목하라.] [조선스포츠] [한중일 3국의 빛나는 재능들······ 과연 누가 최종적인 승자가 될 것인가?] [1라운드 지명이 유력한 선수는 김시온뿐. 머릿수보단 내실이 중요!] [마침 2017년은 정유년······ 21세기판 정유재란 벌어지나?]그야말로 대환장 콜라보.
상황은 어느새 동북아 3국의 자존심 싸움으로 변질되어 있었다.
현재로선 드래프트 순번 레이스에서 가장 앞서 나가고 있는 한국이 그나마 심리적으로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정유재란 운운한 건 대체 어떤 미친놈인지 모르겠지만.’
톡톡.
“······?”
“흠흠. 미스터 킴? 잠시 여기에 주목해 주시겠습니까?”
“아! 죄송합니다. 잠깐 구경에 정신이 팔려서.”
이런, 대화 중인 걸 잊고 있었네.
“건물 내부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역시 나이키 본사는 뭐가 달라도 다르네요.”
“후후. 앞으로 자주 뵙게 될 텐데요. 농구화는 잘 신고 계신가요?”
“네.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신 덕분에요. 아, 그래도 다른 모델도 시험해 보고 싶습니다.”
“후후. 돌아가는 길에 마음껏 가져가셔도 됩니다.”
내가 주로 신는 농구화는 Lebron-13.
쿠션이 좋고 발목이 높아 체격이 크고 인사이드-퍼리미터를 오가야 하는 내게 잘 맞는 신발이지만, 접지력이 좀 아쉬워서 다른 모델도 시험해 볼 생각이었다.
‘염라 영감님 덕에 부상 걱정을 할 필요는 없지만.’
내게 잘 맞는 농구화를 찾는 것도 꽤 중요한 일이니까.
그러고 보니, 내가 여기 와 있는 두 번째 이유를 아직 말 안 했던가?
그건 나이키와 오리건 대학이 사실상 한 몸이라서 그렇다.
‘나이키의 창업주이자 선대 회장.’
필 나이트(Philip Knight)가 바로 오리건 대학 출신.
바로 내 직속 선배님이시다.
‘그것도 부모님 대부터 오리건 포틀랜드에서 자란 토박이 중의 토박이이자, 애향심, 애교심이 강해 매년 오리건 대학에 어마어마한 액수를 후원하는 사람이지.’
– 오리건 대학의 젊은 영건들에게 어떠한 지원도 아끼지 말라.
선대 회장님이 남기신 지시 덕분에.
오리건 대학의 운동선수들은 나이키의 최첨단 제품과 신상 슈즈를 미리 신고 시합에 나설 수 있었다.
‘애초에 본인의 은사인 오리건 대학의 육상부 코치와 동문들의 도움을 받아 창립한 회사가 바로 나이키의 전신인 블루리본 스포츠니까.’
때문에 나이키 본사는 바로 이 오리건 포틀랜드에 위치해 있었다.
전 세계에 마수를 뻗은 악의 제국(Evil Empire)의 심장부.
그게 바로 이 오리건 대학인 셈.
‘필 나이트가 은하를 지배하는 펠퍼틴 황제라면, 그 직속 후배인 나는 시스의 파다완 정도는 되지 않을까.’
아시아 시장을 정복하기 위한 침략군의 선봉장 정도의 위치겠지.
오늘 나이키가 날 부른 것도 그 계획의 일환.
NCAA 소속인 선수는 영리활동을 할 수 없어 지금 당장 광고를 찍거나 협업 관계를 발표할 수는 없지만.
나이키는 벌써부터 내년 드래프트 이후의 활동 계획을 논의하고 싶어 했다.
‘나이키의 얼굴마담 역할.’
그래서 그게 싫으냐고 묻는다면······.
아뇨. 그럴 리가요.
‘제발 절 마소처럼 부려 먹어 주십쇼.’
전생에 일평생을 아웃사이더로 살아 본 사람으로서 말하는 건데, 주류에는 편승할 수 있을 때 냉큼 올라타는 게 좋다.
‘메이저는 메이저인 이유가 있는 법이거든.’
특히 나이키가 미국 농구계에 갖는 영향력은 말로 다 형용할 수가 없을 정도다.
이 특혜를 걷어차는 멍청이가 있을 리가.
덕분에 난 나이키의 시범 제품군 중 2020년대 초반에나 상용화될 최첨단 훈련 장치를 몇 개 받아 올 수 있었다.
‘나이키는 테스트 표본이 늘어서 좋고, 나는 그동안 장비가 없어서 못 하던 트레이닝을 할 수 있어서 좋고.’
이게 바로 상부상조 아닐까.
향이 좋은 커피와 함께 이것저것 논의를 마치고 난 후.
“그럼 다음에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심심하면 언제든지 놀러 오세요. 홍보 직원들이 반갑게 맞이해 줄 겁니다.”
“아, 그리고 신발 말인데요.”
“예. 일정 금액 한도 안에선 원하는 대로 가져가도 좋습니다.”
오, 그렇단 말이지?
“그러면 하는 김에 제 부모님이랑 동생 것도 좀······.”
“······.”
“이번에 미국에 오시거든요.”
“······.”
살짝 싸한 표정이 된 부크나이트 씨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뭐 어쩌라고.’
이럴 때 알뜰하게 챙겨야지.
난 아직 땡전 한 푼 없는 대학생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