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NBA RAW novel - Chapter 184
웰컴 투 NBA 184화
#184. 전야제
April 13. 2018.
TNT Atlanta Studio.
정규 시즌이 끝나고, 플레이오프가 시작되기까지 주어지는 사흘간의 짧은 휴식기.
선수들이 지친 몸을 회복하며 전의를 가다듬는 동안.
미국의 스포츠 채널은 플레이오프 팀의 전력 분석과 결과 예측으로 시간을 보내며, 한시 빨리 플레이오프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리는 농구 팬들의 애타는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TNT의 Inside the NBA 크루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니 존슨이 진행을 이어 갔다.
“그러면 스퍼스 vs 울브스 승부 예측은 이걸로 되었고…… 다음은 마지막 4─5번 시드의 대결.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 대 뉴올리언스 펠리컨스군요.”
“아. 여기야말로 좀 팽팽한 대결이 되겠죠.”
“그래요. 솔직히 로키츠 vs 재즈, 워리어스 vs OKC 같은 대진은 결과가 너무 뻔하지 않나?”
“그건 재즈와 OKC 팬들의 공분을 살 만한 발언이로군요, 샥.”
“맞아요. 난 OKC에게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보는데.”
어니의 말에 바클리가 냉큼 동의를 표했다.
“그건 찰스 당신이 워리어스를 싫어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아니, 난 워리어스를 싫어하지 않는다니까? 난 그냥 점프슛 위주의 팀은 우승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예요.”
“워리어스는 이미 두 번이나 우승했잖아요?”
“내 말은, 이 업계에 그런 오랜 격언이 있을 만큼 점퍼 위주의 팀은 플레이오프에서 취약한 모습을 드러낼 때가 많다는 겁니다. 이 점은 다들 동의하죠?”
“흠. 동의.”
고개를 끄덕이는 샤킬 오닐.
아무리 특급 슈터를 다수 보유한 팀이라도, 3점 슛에 극단적으로 의존하는 전술은 필연적으로 기복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슛이 들어가지 않는 날은 허무하게 패배하는 경기가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정규 시즌엔 한두 경기쯤 그렇게 내줘도 괜찮아요. 어차피 82경기가 다 끝나고 나면 평균에 수렴할 테니까.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선 다르죠. 대등한 전력의 강팀에게 그런 식으로 승리를 내줬다? 그대로 탈락하는 겁니다.”
“당장 15─16 파이널에서 워리어스가 그랬잖아요? NBA 역사상 최초로 3─1 상황에서 뒤집기 역전패를 허용했죠. 그게 다 안정적으로 공격을 이끌 에이스가 없어서 그런 겁니다. 그래서 케빈 듀란트를 영입한 거고요.”
바클리와 오닐, 두 사람의 의견이 오랜만에 일치한 상황.
이는 두 사람 모두 안정적인 골밑 득점원이 농구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반면 포인트가드 출신인 케니 스미스는 그게 무슨 헛소리냐며 얼굴을 찌푸렸다.
“Come on, 찰스. 점퍼 팀이 우승할 수 없다는 말은 2000년대에나 통용되던 소리예요. 당장 올해의 1, 2위 팀인 로키츠, 워리어스가 전부 극단적인 점퍼 팀이잖아요!”
“로키츠가 점퍼 팀은 아니지. 모리 볼의 철학은 3점 or 골밑이잖아?”
“그 논리대로면 워리어스도 이젠 점퍼 팀이 아니죠. 케빈 듀란트가 있는데.”
“애초에 점프슛 팀이라는 정의부터가 애매하긴 해. 아예 3점 슛을 배제하고 우승한 팀이 있었나? 노비츠키가 우승할 때의 매버릭스도 3점의 비중이 높았고, 팀 던컨의 스퍼스도 3점 슛에 능한 슈터들을 다수 보유했지. 르브론의 팀도 마찬가지였고.”
점프슛 위주의 팀은 우승할 수 없다.
이는 한때 절대적인 법칙처럼 여겨지던 격언이었으나, 현대 농구의 전술적 발전과 슈팅 능력 상향평준화의 영향으로 이제는 해묵은 이야기 취급을 받고 있었다.
“그건 점퍼 팀이 아니죠. 매버릭스는 점퍼만 쏘는 팀이 아니었어요. 스퍼스는 팀 던컨이 페인트존을 지배하는 팀이었고. 르브론도 돌파 위주의 선수잖아요?”
“그러니까 찰스의 결론은 그거네요? 가 아니라, .”
“그렇죠. 3점만큼이나 확실한 2점도 중요하다는 소립니다.”
쾅!
테이블을 두드리는 오닐.
“바로 그거지! 그러니까 이 몸이 쓰리핏을 달성한 거라고. 내가 지금 현역이었다면 매 경기 80점은 집어 넣었을걸?”
“어휴. 또 시작이군요.”
“그 말에도 어폐가 있죠. 당장 워리어스는 페인트존을 공략하는 슬래셔나 빅맨 없이도 컷인과 3점 위주의 플레이로 우승을 차지하지 않았습니까? 이젠 빅맨의 시대가 가고 엘리트 가드의 시대가 온 거예요. 최근 MVP가 어떤 포지션이었습니까?”
“파이널 MVP는 죄다 스윙맨이었는데?”
“빅맨이라니까! 앤서니 데이비스! 마크 가솔! 조엘 엠비드!”
떠들썩해지는 스튜디오.
하필 케니 스미스, 찰스 바클리, 샤킬 오닐의 현역 시절 포지션이 가드, 포워드, 센터로 각자 달랐으니.
어떤 포지션이 새로운 시대의 중심이 될 것인지의 논쟁은 도무지 가라앉을 줄 몰랐다.
선수 출신 패널들의 말다툼을 즐겁게 감상하던 어니 존슨이 말했다.
“그렇게 보면 블레이저스는 우승과는 거리가 있는 팀이네요? 현대 농구에 어울리지 않는 정통 7풋 빅맨. 그리고 두 명의 언더사이즈 가드를 보유한 팀이니 말입니다.”
“어라? 그러네요? 찰스가 싫어하는 점퍼 팀이 딱 블레이저스 아닙니까?”
“No! 그건 아니죠.”
그러나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블레이저스는 점퍼 팀이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면 점퍼 팀이었죠.”
“왜 과거형이죠?”
“이제는 시온 킴이 있으니까요.”
“킴도 3점 슛 기반의 슈터 아닙니까?”
“그게 착각이란 겁니다. 킴은 3점을 미끼로 다양한 플레이를 펼치는 만능형 포워드지, 점퍼에 극단적으로 의존하는 선수가 아니에요. 점프 슛을 많이 쏜다고 해서 디르크 노비츠키를 퓨어 슈터라고 부르진 않잖아요?”
골밑과 미드레인지를 주도적으로 공략할 수 있는 올스타급 포워드의 가세.
이는 팀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을 수 있는 변수였다.
바클리는 바로 그 점을 지적하고 있었다.
“반면 펠리컨즈는 앤서니 데이비스와 드마커스 커즌스의 부상을 메꾸기 위해서 영입된 니콜라 미로티치의 트윈 타워를 운용하는 팀이죠. 사실 이 팀도 최근 유행하는 트렌드와는 거리가 있는 팀입니다.”
“투 가드와 투 빅의 대결인가요…… 재밌군요.”
어니 존슨이 패널들에게 승패 예측을 물었다.
“그러면 각자의 승부 예측을 한번 들어 볼까요? 케니?”
“음…… Blazers in 6.”
“오! 역시 가드 출신이라 블레이저스의 편을 드는 건가요?”
“그런 이유는 아니지만, 릴라드, 맥컬럼, 킴이라면 펠리컨즈의 트윈 타워를 효과적으로 공략할 거라고 봅니다. 현대 농구에 투 빅은 안 맞아요.”
“투 언더사이즈 가드는 잘 맞고?”
“그러니까 6차전까지 갈 거라고 예상한 겁니다.”
“알겠습니다. 다음은 찰스?”
고심 끝에 화이트보드에 숫자를 적는 찰스 바클리.
하얀 보드에는 Pelicans in 7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쪽의 예상은 펠리컨스의 7차전 승리로군요?”
“라존 론도와 즈루 할러데이. 이 둘의 영향력을 간과해선 안 되죠. 펠리컨즈의 백코트 듀오의 수비력은 단연코 리그 최고입니다. 가드진의 공격과 수비가 서로 호각이라면, AD의 활약으로 펠리컨즈가 승리할 거라고 봐요.”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샥?”
“흠…….”
잠시 고심하던 오닐은 펜을 집어 들었다.
“Blazers/Pelicans in 4?”
어느 쪽이 이기던 4대0로 승리하리라는 게 오닐의 예측이었다.
“이건 또 뭐야?”
“에이. 이건 반칙이지.”
“컴온, 샥. 이런 식으로 예상하는 건 반칙 아닌가요?”
일제히 얼굴을 찌푸리는 세 사람.
그러나 오닐은 꿋꿋하게 자신의 의견을 고집했다.
“이건 가위바위보 놀이 같은 겁니다. 두 팀 다 장단점이 너무 확실해서, 가위바위보 중에서 한 가지 패밖에 내지 못하는 팀들이 맞붙는 꼴이죠. 한 팀은 바위밖에. 다른 팀은 가위밖에 내지 못하는 겁니다.”
“1차전의 구도가 시리즈 내내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누가 바위고, 누가 가위죠?”
“그건 붙어 봐야 알겠지. 내가 어떻게 압니까?”
두 손을 능청스레 들어 보인 오닐이 말했다.
“어쨌건 난 확신합니다. 1차전에서 승리한 팀이 상대를 시리즈 내내 압도할 거예요. 빠르면 4차전. 길어 봐야 5차전이면 승부가 갈리겠죠.”
세 명의 전문가가 내놓은 예상.
그중에 정답이 있을지는 아직 누구도 모를 일이었다.
* * *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누리는 짧은 휴식.
나는 오랜만에 가족과 저녁 식사를 하며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달그락. 달그락.
반찬을 깨작거리는 내 모습에, 시우가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다.
“형, 화났어?”
“아니.”
형은 지금 우울하단다.
그것도 굉장히.
내 모습을 보고는 얼굴을 찌푸리시는 어머니.
“얘는 왜 밥상 앞에 앉아서 혼자 죽상을 쓰고 있니? 반찬이 마음에 안 들어?”
“아뇨. 별거 아니에요. 자, 빨리 먹죠.”
나는 번개처럼 식사를 끝마치고 베란다로 자리를 옮겼다.
뚝뚝 떨어지는 안개비가 마음을 어지럽혔다.
“하. X팔.”
돌고 돌아 결국은 다시 펠리컨즈라니.
이게 운명의 장난이란 건가?
‘블레이저스와 펠리컨즈. 객관적인 전력은 호각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나는 미래를 알고 있다.
펠리컨즈의 충격적인 4─0 스윕 승리.
‘릴라드는 즈루 할러데이의 애완견이란 조롱을 받을 정도로 시리즈 내내 철저히 봉쇄당하고, 너키치와 아미누는 AD 앞에서 허수아비 신세가 되지.’
맥컬럼이 홀로 분투했지만 대세를 바꾸지는 못했고.
결국 블레이저스는 4─0 스윕이라는 굴욕적인 참패를 경험하게 된다.
혼자서 머리를 벅벅 긁고 있는데.
어느새 조용히 다가온 아버지께서 내가 즐겨 마시는 탄산수 병을 건네주셨다.
“소식 들었니? 큰아버지가 한국에서 응원하러 온다더구나.”
“아, 진짜요?”
“그래. 한국에서 특별 예능 프로그램까지 편성했다더라.”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보니, 김장호가 간다!라는 타이틀의 프로그램이었다.
조연호 기자와 최연서 아나운서도 출연하네.
“이거 영광이네요. 원래는 월드컵 때나 편성되는 특별 프로그램 아니에요?”
“NBA 플레이오프에 한국 선수가 출전하는 건 역사상 최초니 특별 편성할 만도 하겠지. 요즘은 네가 시청률 보증 수표기도 하고.”
한국에서 응원단까지 오는데, 하필 1라운드가 펠리컨즈라…….
이거 답답하게 됐네.
내 얼굴이 어두워지자, 아버지께서 조심스레 입을 여신다.
“……상대가 많이 센 팀이냐?”
“그보다는 상성이 너무 안 좋아요.”
“부산 자이언츠와 백성 라이온즈 같은 느낌이니?”
“아뇨? 자이언츠는 다른 9개 팀에게 공평하게 약하잖아요.”
“그건 그렇지.”
아니, 거기서 납득하시면 안 됩니다.
나는 아버지께서 이해하시기 쉽게 설명을 바꿨다.
“음. 축구로 비유하자면 수비 라인을 높이는 강팀이 역습에 능한 팀에게 약한 거랑 비슷해요. 객관적인 전력은 저희가 살짝 우세한데, 전술상 카운터를 맞는다는 느낌?”
“약점을 제대로 찔린다는 뜻이구나.”
“그렇죠.”
실제로 우리는 올해 뉴올리언스에게 굉장히 약한 모습을 보여 줬다.
승리를 거둔 것도 경기 도중에 앤서니 데이비스가 부상으로 이탈했거나, 커즌스가 결장했기 때문이었고.
펠리컨즈는 드마커스 커즌스가 시즌아웃되며 전력이 크게 약화되었지만.
원 역사대로 시카고 불스에서 외곽 슛이 뛰어난 파워포워드, 니콜라 미로티치를 영입하며 막판에 전력 보강에 성공했다.
‘내가 일으킨 나비효과로 펠리컨즈의 로스터가 달라졌으니, 미로티치의 트레이드도 실패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미로티치를 데려오는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결국 사소한 변화만이 있을 뿐, 역사의 큰 지류는 바뀌지 않는다는 것일까?
“음. 이 애비는 내 경험담밖에 들려줄 수 없지만 말이다.”
아버지께선 조심스레 자신의 현역 시절 이야기를 풀어 놓으셨다.
“물론 수비 라인을 높이면 센터백 입장에선 굉장히 부담스럽지. 수비수의 사소한 실책 한 번에 다 이긴 게임을 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렇겠죠.”
“그런데 말이다. 사실 수비수가 정말로 스트레스를 받는 건 라인을 내렸을 때란다.”
“예?”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수비 라인을 내리면 수비하기 쉽지 않나?
그러나 아버지는 그게 축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의 오해라며 손을 내저으셨다.
“당연히 라인을 내리는 편이 훨씬 부담스럽지. 상대가 경기 내내 공을 점유하며 어떻게든 골을 넣겠다고 계속 중거리 슛을 때려대는데.”
“아, 그건 그렇겠네요.”
결국 역습 전술을 펼치는 팀도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라는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아빠 말은, 너무 쫄지 말라는 소리야. 너희가 상대를 부담스러워하는 것 이상으로 상대도 너희를 두려워하고 있을 테니까.”
“상대도 우리를 부담스러워 한다…….”
“쓰읍. 아빠가 제대로 예시를 든 건지 모르겠구나. 농구와 축구는 아무래도 차이점이 많을 텐데.”
입맛을 다시는 아버지.
나는 그런 아버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뇨. 큰 도움이 되었어요. 감사해요, 아버지.”
“그래.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이고.”
씩 웃으며 미닫이문을 여는 아버지.
“이 아빤 추워서 먼저 들어간다. 너도 슬슬 들어오고. 그러다 감기 걸린다.”
“예엡. 좋은 밤 되십쇼.”
“그래.”
다시 정적이 찾아온 베란다에서.
나는 주먹을 불끈 쥐며 각오를 다졌다.
그래.
어차피 목표는 우승.
빠르던 늦던 전부 꺾어야 할 팀이다.
‘역사의 큰 지류는 바뀌지 않는다?’
개소리지.
내 존재가 역사의 복원력 따윈 없다는 명백한 증거 아닌가.
펠리컨즈가 블레이저스의 상성이라고?
당시의 블레이저스엔 내가 없었다.
“내가 바꿔 놓으면 될 일이야.”
털썩!
나는 소파에 앉아 TV 리모컨을 조작했다.
조나단 코치의 상세한 해설 코멘트가 담긴 펠리컨스의 전력분석 영상이 재생된다.
“이 상황에서 AD는 드랍백을 펼치는데, 왼쪽으로…….”
플레이오프을 앞두고.
마지막 전야(前夜)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