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NBA RAW novel - Chapter 9
웰컴 투 NBA 9화
#009. 시즌 개막 (1)
연습 경기가 끝난 뒤.
딜런 브룩스는 한참이나 좌절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젠장. 젠장······!”
1학년 애송이에게 발렸다.
그것도 완벽하게.
[Sion Kim – 26min 15sec] [14PTS, 5REB, 2AST] [FG 5/8(62.5%), 3P 2/3(66.6%), FT 2/2(100%)] [Dillon Brooks – 30min 49sec] [15PTS, 3REB, 1AST] [FG 6/14(42.9%), 3P 1/3(33.3%), FT 2/4(50%)]최종 득점은 브룩스가 1점 더 많지만.
브룩스의 득점은 대부분 속공 상황이나 후보 선수를 상대로 기록한 것.
그는 김시온을 상대로 1대1에서 한 번도 제대로 된 공격을 성공시키지 못했다.
“딜런······.”
조던 벨은 그런 동료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3학년 동기인 두 사람은 작년 드래프트에 참가할 수도 있었지만, 한 번 더 3월의 광란에 도전하기 위해 대학에 남았다.
그것이 순수하게 전국제패의 꿈 때문이건.
1년을 더 준비해 내년 드래프트 순위를 높이기 위한 전략이건 상관없이.
“말 걸지 마.”
“딜런.”
“말 걸지 말라고 새끼야!”
최소 백만 달러가 넘는 연봉과 NBA 슈퍼스타의 삶을 1년 이상 포기하고.
어쩌면 심각한 부상을 입어 미래가 송두리째 날아갈지도 모르는 리스크를 감수하기로 한 이유가.
‘적어도 에이스에서 벤치 멤버로 밀려나기 위해서는 아니었던 게 분명하지.’
김시온은 아직도 코트에 주저앉아 있는 브룩스에게로 다가가 허리를 굽혔다.
“이봐. 지금 뭘 하려는······ 끄악!”
“역시 부상이네요. 그것도 꽤 오래됐죠? 이거.”
농구화의 앞코 부위를 슬쩍 누르자, 떠나갈 듯 비명을 내지르는 브룩스.
시온은 브룩스의 발 상태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경험상 눈치채고 있었다.
“이봐, 딜런. 너······.”
“감독님! 여기 좀 와 보세요!”
팀원들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발 부상으로 작년 시즌을 통째로 날린 에니스에 이어 공격의 중심인 브룩스까지.
지긋지긋한 부상의 악령은 올해도 계속해서 오리건 덕스를 괴롭히는 중이었다.
짧은 검진이 끝난 뒤.
“좀 어떤가?”
알트만 감독의 질문에 메디컬 스태프는 고개를 작게 내저었다.
“물론 정밀 검진을 해 봐야 확실히 알겠지만, 아무래도 수술은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재활 기간은?”
“짧으면 3개월, 길면 6개월 정도입니다. 수술을 일찍 받았으면 좀 나았겠지만······.”
치료를 늦추느라 더 악화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김시온의 영입으로 입지가 불안해진 탓에 지금까지 부상을 숨기고 있었던 것.
“됐어. 가만 놔두면 알아서 낫는다.”
“낫기는 멍청아! 지금 수술을 받아야 전국대회 개막에 맞춰서 돌아오지!”
벌컥 화를 내는 조던 벨.
알트만 감독도 말을 보탰다.
“조던의 말이 옳다, 딜런. 부상이 있으면 곧바로 팀에 알렸어야지. 아니면 나는 지금껏 네게 그 정도 신뢰도 얻지 못했던 건가?”
“그건······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코칭스태프와의 원활한 소통은 프로로서 기본이다. 그리고 mr.브룩스. mr.킴.”
알트만 감독이 호랑이 같은 고리눈을 뜨며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선발 라인업 조정은 감독인 내 권한이다. 너희들끼리 딱지치기하듯 결정할 문제가 아니야. 내 말 알아듣겠나?”
“옙. 죄송합니다!”
깔끔하게 상황을 정리하는 알트만 감독.
팀원들 사이에서도 미친개 소리를 들으며 경원시되는 브룩스를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바로 알트만 감독이었다.
“그리고 어차피 자네가 벤치로 갈 일은 없을 걸세.”
“예?”
김시온은 브룩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그는 브룩스의 주전 자리를 빼앗을 생각이 없었다.
핵심 식스맨(Six Man).
주전과 동등한 출전 시간을 보장받는 벤치 에이스로 활동하기로 처음부터 합의가 된 상태였으니까.
– 우리 팀은 이미 시스템적으로 완성되어 있네. 하지만 그렇기에 한계도 분명하지.
오리건 덕스의 강점과 한계.
리쿠르팅 당시에 알트만 감독과 나눈 이야기였다.
‘주전 가드진이 죄다 슛 퍼스트 마인드인 선수뿐이라, 결정적인 클러치 국면에서 게임 조립을 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것.’
주전 포인트 가드인 에니스는 리딩에 장점이 없고, 주전으로 나오기엔 기량이 조금 아쉬운 선수.
때문에 원래는 신입생인 프리차드에게 차츰 리딩을 맡기려고 했지만.
내가 오리건에 온다면 굳이 그럴 이유가 없었다.
– 특급 식스맨에는 보통 두 타입이 있지. 혹시 자네도 들어 본 적 있나?
– 루 윌리엄스 vs 안드레 이궈달라. 맞나요?
– 정확하네. 나는 케빈 맥헤일을 예시로 들려 했네만, 자네에겐 조금 옛날 선수인지도 모르겠군.
전자는 벤치 에이스 타입.
이런 유형의 선수들은 득점력은 좋지만 수비 약점이 심각하거나 팀원과의 연계가 나빠서, 주전 라인업보단 벤치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선수들이었다.
‘전체적으로 득점력이 떨어지는 벤치 멤버들의 공격을 이끄는 역할이지.’
반면 후자는 다재다능한 살림꾼 타입이었다.
– 내 생각에 자네의 최대 장점은 그 다재다능함일세. 코트에 슈팅을 보강해야 하면 슈터가, 리딩을 봐야 할 사람이 필요하면 패서가, 에이스를 막아야 할 상황엔 에이스 스토퍼가 되어 줄 수 있지.
– 과찬이시네요.
– 진심으로 하는 말일세. 자네는 제2의 이궈달라로 성장할 수 있어.
경기의 흐름이 넘어갈 위기에 투입되어 팀의 약점을 메우고, 전술적 유연성을 더해 주는 식스맨.
알트만 감독이 김시온에게 제시한 청사진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말했잖아요. 선배의 자리를 뺏을 생각은 없다고.”
“너······.”
미묘한 얼굴이 된 브룩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니까 얼른 재활이나 마치고 오십쇼. 3월의 광란, 이번에는 우승해야 할 거 아니에요?”
NCAA Division I men‘s basketball tournament.
3월의 광란(March Madness).
‘전국대회.’
전국제패.
그 마성의 단어가 갖는 무게는 어느 정도인가.
어떤 선수들에겐 그저 NBA로 가는 길에 놓인 중간 기점에 불과하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선수 생활의 정점이자, 일생에서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영광의 무대였다.
“흥.”
덥썩!
브룩스는 건방진 후배가 내민 손을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문에 얼굴을 들이민 채로 그런 브룩스를 바라보는 농구부원들.
“알았다. 너희들, 내가 돌아올 때까지 연패나 당하고 있지 말라고.”
브룩스 자기 딴에는 격려랍시고 한 말이었으나.
“우우우우!”
“아주 지랄을 한다. 지랄을 해요.”
“너 없이도 1위 할 거야, 임마. 치어리더 역할이나 똑바로 해라.”
“주장, 저 괘씸한 자식, 확 밟아 버리죠?”
“그럴까?”
일제히 쏟아지는 야유.
그리고 또 서로를 붙들고 티격태격하는 3학년 콤비의 모습.
“하핫. 참.”
김시온은 그 모습에 헛웃음을 터트렸다.
아무래도 이 학교.
1년간 심심할 일은 없을 듯했다.
***
“Mr. 킴, 안으로 들어오세요.”
“네. 교수님.”
나는 지도 교수의 안내에 따라 강의실에 발을 들여놓았다.
“헤이, 션. 왔냐.”
“시-온, 그게 그렇게 어려워요?”
안에는 이미 조던 벨, 딜런 브룩스를 비롯한 팀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NCAA의 악명 높은 특징이 바로 체육 특기생들에게 높은 학업 수준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운동만 잘하면 되는 한국과는 좀 다르지.’
모든 체육 특기생들은 반드시 학업과 운동을 병행해야 하며.
아무리 운동을 잘해도 평균 수준의 학점을 유지하지 못하면 경기에 출전할 수 없었다.
‘물론 어지간하면 통과할 수 있도록 학교 측이 알아서 난이도를 조정하지만.’
학점을 따기 쉬운 과목을 수강하게 한다거나.
학업 성적이 우수한 일반 학생을 1대1 과외 선생으로 붙여 주는 등등.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주는 편이다.
‘NCAA는 대학교 입장에서도 돈이 되거든.’
에이스가 출전 정지를 당해 팀이 광탈이라도 했다간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 될 테니까.
엄격한 인상의 지도 교수가 입을 열었다.
“Mr. 프리차드.”
“네, 넵!”
바짝 쫄아서 손을 드는 페이튼.
“GPA 3.8으로 농구부 1위로군요. 아주 훌륭합니다. 계속 이렇게만 해 주세요.”
“감, 감사합니다!”
오오!
웅성거리는 팀원들.
4.0 만점에 3.8이면 운동부에선 거의 아인슈타인의 재림이나 다름없었다.
“반면에 Mr. 벨! Mr. 브룩스!”
“네?”
“여러분은 다른 학생을 튜터로 붙이도록 하겠습니다. 기존의 과외 선생으론 안 되겠어요.”
“예에?”
“Why?!”
“이유는 여러분이 더 잘 아실 텐데요.”
다시 말하지만.
NCAA가 요구하는 학점은 고작 2.3.
딱 최저선만 충족하면 문제가 없는 레벨이었다.
“바꿔 말하면 선배들은 그 최저 레벨도 아슬아슬하단 소리고요.”
“어쭈, 이 자식이 죽으려고.”
“요즘 아주 건방져져서······ 너 이리 와!”
“켁켁, 항복! 항복!”
비겁하게 2대1로 서브미션을 걸다니.
“다음은 미스터 킴.”
자신만만하게 중간 성적표를 건네받았다.
후후.
이래 봬도 인생 2회차인 몸.
저런 빡통들과는 다르게 내 성적은 충분히 안정권······.
“2.48. 당신도 낙제 위기입니다.”
“아니, 왜요!!!”
“푸하하하핫!!!”
배꼽을 잡고 쓰러지는 부원들.
황급히 성적표를 살펴보니, 수학 성적은 우수하지만 고전문학과 역사 과목이 문제였다.
“나보다 낮잖아!!”
“그렇게 잘난 척을 하더니!!”
부들부들.
아니, 애초에 내가 미국 역사를 왜 배워야 하는 거야.
이 빌어먹을 양키들에게 유구한 반만년 한국 역사의 참맛을 보여 줘야 하는데.
들어는 봤냐. 태정태세문단세······.
“아무래도 과외 선생을 붙이는 게 좋겠군요.”
“넵.”
처음엔 괜찮다고 사양했지만, 성적이 이 꼴이 난 이상 괜한 고집을 부리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대신 한 가지 요청이 있습니다.”
“예. 말해 보세요.”
“가능하면 과외 선생은 남학생으로 붙여 주십쇼.”
“남자?”
내 요청에, 새로운 놀림거리를 찾은 선배 놈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뭐야, 킴. 그쪽 취향이었어?”
“어쩐지 여친을 안 만들더라니······.”
“킴, 우린 네 다양성을 존중하지만, 앞으로 샤워실은 가능하면 따로 썼으면 좋겠어.”
쾅!
“닥쳐요들 좀! 당신들 과외 선생이 자꾸 바뀌는 거, 툭하면 선생이랑 놀아나서 그런 거잖아!”
“어쩔 수 없다고. 이 섹슈얼 초콜릿을 거부할 여자가 어디 있어야지.”
우람한 팔뚝 근육에 키스하는 조던 벨.
옆에는 브룩스가 골반을 앞뒤로 퉁기는 저질 댄스를 추고 있었다.
······죽일까?
러시아에서 배운 삼보로 그냥 확 도륙을······.
“흠흠. 조만간 적당한 과외 선생을 물색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넵.”
“부디 잘 좀 부탁합니다. 미식축구부만 해도 힘든데 농구부까지 이러면, 나 너무 힘들어요.”
“죄송합니다······.”
***
일주일 뒤.
새로 배정된 과외 선생과 만나기 위해 대학교 인근의 커피숍으로 향했다.
내가 남자 선생을 요청한 건 그쪽 취향이 있어서가 아니라, 정말로 과외를 맡은 여학생과 선수 사이에서 추문이 일어나는 일이 잦기 때문이었다.
일정 범위 내에서 각자 연봉을 협상하는 2라운더와 달리, 1라운드는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순번에 따라서 루키 스케일이라는 고정된 연봉을 받는다.
‘물론 1픽은 580만 달러, 30픽은 110만 달러로 천지 차이가 나지만.’
꼴찌인 30픽만 해도 연봉이 백만 달러가 넘는다.
19~24살의 나이에 백만장자가 되는 것.
당연히 1라운드 지명이 유력한 선수들은 대학 생활 내내 수많은 유혹에 시달리고는 했다.
‘아예 여지를 주지 않는 게 마음이 편하지.’
나 같은 경우엔 동양인이라 뭐만 하면 눈에 띄니까.
특히나 행실에 신경을 써야 한다.
‘밤중에 여자 만나는 사진이라도 찍혀 봐.’
한국 뉴스 포털에서 온갖 조리돌림을 당할 거다.
NCAA에 적응하려고 국대 선발을 거부했다더니, 속 편하게 외국인 여자나 만나고 다니냐는 비아냥부터 시작해서······.
부르르!
생각만 해도 무섭네.
‘그래. 어차피 1년 뒤에는 다른 주에서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데.’
여자는 무슨 여자냐.
띠링!
딱 봐도 공부벌레 타입인 게 분명한, 다소 이국적인 외모의 남자가 커피숍으로 들어온다.
‘크으. 그래. 저거지.’
뿔테안경과 체크무늬 셔츠, 베이지색 면바지.
저 믿음과 신뢰의 조합을 봐라.
120%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는 관상.
얼마나 모범적이냐.
“네가 킴이지? 반가워. 앞으로 네 지도를 맡을 타이런 홈즈라고 해.”
“3학년 선배시네요. 잘 부탁해요.”
“으응. 보통 운동부 과외는 고학년에게 맡기니까.”
타이런은 확실히 좋은 튜터였다.
지도 교수 말로는 여러 외국인 학생을 가르친 경험이 있는 학생이라더니, 과연 그 말대로였다.
특이한 건 연갈색 머리카락과 이국적인 이목구비를 제외하면 외모가 묘하게 친숙하게 느껴진다는 점이었다.
“저,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혹시 혼혈이세요?”
“응. 아버지는 독일계 미국인. 어머니는 한국 분이셔.”
“어쩐지. 왠지 친숙하더라고요.”
“하하. 그래서 날 네게 붙여 줬는지도 모르지.”
수업이 끝나고.
“고생하셨어요.”
“그래. 수요일 이 시간에 또 보자.”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계속 소파에 앉아 있는 타이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집에 안 가세요?”
“아, 난 운전면허가 없어서, 차를 기다려야 해.”
“······미국에 살면서 운전을 할 줄 모른다고요?”
“응.”
당당한 즉답.
이렇게 나오면 할 말이 없는데.
“정 아니면 제가 데려다 드려도 되는데요.”
“괜찮아. 가족이 데리러 올 거야.”
“예?”
부르릉!
커피숍 앞에 커다란 픽업트럭이 멈춰 섰다.
끼익!
전장 550cm, 전고 180cm의 육중한 차체에 선정적인 새빨간 도색.
탱크를 연상시키는 견고한 프레임과 우람한 배기관이 인상적인, 미국인들의 국민 자동차.
포드 F-150 랩터였다.
“어······.”
덜컹!
하얀 민소매 탱크탑에 검정 가죽바지를 입은 여자가 성큼성큼 걸어 들어온다.
쇄골까지 내려오는 중단발에 시원시원한 이목구비.
성깔 좀 있어 보이는 눈매가 인상적이었다.
“신디! 신시아(Cynthia)! 여기야!”
“Oppa! 내가 바빠서 못 나온다고 했잖아!”
대뜸 타이런을 끌어당기는 여자애.
퍽!
“크헙!”
······난 봤다.
방금, 허그를 한 것처럼 보였지만 분명히 짧게 끊어 치는 바디 블로였다.
순식간에 집중되는 사람들의 시선.
그럼에도 전혀 아랑곳없이 타이런을 질질 끌고 나간 여자는, 커피숍 문밖으로 쏙 고개를 내밀더니 내게 턱짓했다.
“뭐 해요? 사람들 보는데 쪽팔리게. 빨리 나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