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NBA RAW novel - Chapter 10
웰컴 투 NBA 10화
#010. 시즌 개막 (2)
“그래서, 예쁘냐?”
“예?”
“그 신시아(Cynthia)라는 애. 이쁘냐고.”
“······.”
팀 훈련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
크리스 주장의 질문에, 나는 있는 힘을 다해 경멸에 찬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니, 왜 이야기가 그쪽으로 갑니까?”
“주장은 좀 조용히 해 봐요.”
“안 이쁘면 이런 이야기를 할 것도 없겠지. 솔직히 말해. 어디까지 갔어?”
“가긴 어딜 가요. 그냥 셋이서 밥 먹고 헤어졌지.”
음흉한 표정으로 내 옆구리를 찌르는 선배들.
“그 철벽남 김시온이 밥까지 먹었다? 이건 마음이 있는 게 분명하네.”
“내 보기엔 했네. 했어.”
“하긴 뭘······! 어휴. 내가 말을 말아야지.”
예전엔 내가 아재 드립을 치며 후배들을 곯려 먹는 입장이었는데.
18년 동안 어린애로 살다 보니 정신연령까지 어려진 것 같다.
“타이런이란 친구 동생이면 몇 살이야. 고등학생?”
“아뇨. 저랑 동갑이에요. 조만간 보일 겁니다.”
“응?”
중앙 광장에 구름 같은 인파가 눈에 들어온다.
“음, 뭐야?”
“무슨 공연이라도 하나?”
오리건 대학이 위치한 유진 시는 기본적으로 한적한 동네.
대학가 근처에서는 잔디밭에 편히 드러누워 독서와 담화를 즐기는 학생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중앙 광장에선 길거리 공연이 열리는 일도 흔했다.
‘힙스터(Hipster)가 많은 지역답다고 해야 하나.’
힙스터.
한국에서는 홍대병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덧씌워진 단어지만.
엄밀히 말해 힙스터 정신이란 ‘내 멋대로 살 테니 남 일에 신경 끄쇼.’란 사고방식에 가깝다.
주류 문화를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삶의 기준이 명확한 사람들.
극도로 개인주의적인 사고방식이 바로 힙스터였다.
‘쉽게 말하자면 비주류 괴짜들이지.’
자연스레 오리건에는 자유주의 히피(hippie)나 예술계 종사자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고.
길거리 공연에 대한 반응도 호의적인 편이었다.
“Talking away, I don‘t know what to say. I‘ll say it anyway.”
[입은 열었지만,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어쨌건 말할게요.]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청중 사이에서 락밴드가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간들간들한 목소리의 메인보컬.
일렉트릭 기타, 베이스, 드럼으로 구성된 4인조 팀이었다.
“Today isn‘t my day to find you.”
“Shying away.”
“I‘ll be coming for your love, okay?”
[오늘은 내가 당신을 찾을 날이 아닌가 봐요.] [부끄러움을 떨쳐 내고.] [당신의 사랑을 위해 다시 올게요. 괜찮죠?]“오.”
“그 노래네.”
A-Ha의 Take on me.
80년대를 풍미한 팝송으로, 남성 보컬의 감미로운 목소리와 현란한 신디사이저 사운드가 인상적인 명곡이었다.
[Take on me. (후렴: Take on me)] [Take me on. (후렴: Take on me)] [I‘ll be gone in a day of two.] [날 붙잡아 줘요. (날 받아 줘요)] [날 데려가 줘요. (날 받아 줘요.)] [하루 이틀 뒤에는 난 사라지고 없을 테니까요.]그리고 이어지는 그 유명한 건반 파트.
다만 신디사이저가 없기에, 해당 파트를 연주하는 건 일렉기타를 든 여성이었다.
“딴딴딴 딴 딴, 딴딴딴 딴 따단.”
나는 입속으로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쟤냐?”
“넵.”
리듬에 따라 어깨를 퉁기며 일렉기타를 연주하는 여성.
대단히 어려운 곡도 아니고, 무슨 특별한 기교를 부리는 것도 아니었지만.
산딸기처럼 톡톡 튀는 매력과 탱크탑에 잘 어울리는 새하얀 피부, 입가에 걸린 시원시원한 웃음은 자연스레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지금까지 Pinky the Ducks였습니다! 감사합니다!”
“Thank you so much!”
공연이 끝나고.
땀에 흠뻑 젖은 신디가 이쪽을 발견하고는, 환한 웃음을 터트리며 손을 흔들었다.
“뭐야, 시온! 언제 왔어?”
“······워우.”
그 모습에 멍하니 입을 벌리는 동료들.
나 역시도 대꾸할 말을 잃고 멍청하게 손을 마주 흔들었다.
그래. 이거······
아무래도 첫눈에 반한 모양이다.
***
신시아 홈즈(Cynthia Holmes).
가까운 지인들에겐 신디(Cindy)라고 불리는 그녀는 오리건 대학에서 실용음악을 전공하고 있었다.
“그래서, 밴드 이름이 왜 핑키 더 덕스야?”
“메인보컬 별명이 핑키거든.”
“응? 그 서부극 주인공처럼 생긴 친구가?”
“큭큭. 게이야. 걔.”
집으로 돌아가는 길.
팀원들을 억지로 -약간의 폭력을 동원해서- 집에 돌려보내고.
신디와 맥주나 한잔하러 잔디밭에 앉았다.
“진짜로 구경하러 올 줄은 몰랐는데, 의외네?”
“왜? 보러 가겠다고 했잖아.”
“그 흔한 파티나 클럽 한번 안 간다며. 학교에선 게이 아니냐는 소문도 돌던데.”
“아냐, 난 그저······.”
이걸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예전의 관계가 영 좋지 않게 끝나서.”
“예전이라면······ 전 여친?”
“뭐, 비슷하지.”
전생의 아내는 해바라기 같은 사람이었다.
미국으로 진출하기 전.
화산대 1학년 시절, 난 대학 무대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선수였고, 그녀는 내 열성적인 팬이었다.
‘G리그에서 온갖 굴욕을 겪고, 한국 언론에게 조롱당할 때도.’
홀로 태평양을 넘어온 그녀는 하루가 멀다하고서 날 찾아왔고.
우린 그렇게 유럽으로 가서 몇 년을 더 동거하다가 조용히 결혼식을 올렸다.
‘그때까지는 모든 게 좋았지.’
아내와의 관계가 망가진 건 결국 내 탓이었다.
유럽 리그에서 핵심 멤버로 활약한 최초의 동양인.
얼핏 듣기에는 대단해 보이지만, 실상은 허울만 좋은 개살구에 불과했다.
‘유럽 리그의 평균 연봉은 대략 KBL의 절반 수준.’
괜히 한국 선수들이 유럽 리그에 도전하지 않는 게 아니다.
유럽 리그에서 주전으로 뛸 정도의 실력이면 한국에선 국내 최고의 슈퍼스타 대접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으니까.
그럼에도 내가 굳이 유럽에 남은 이유는 두 가지.
‘일단 미국으로 갈 때 KBL과 완전히 척을 진 게 컸고.’
언젠가 NBA에 다시 도전하기 위해선.
KBL에서 안주하며 커리어를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는 절대적인 확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은 부상과 금전적인 이유 때문에 두 번 다시는 도전하지 못했지만.’
당시의 나는 NBA에 광적으로 집착했고.
그 탓에 가정이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은 놈이었다.
‘해바라기는 햇살이 부족하면 죽어 버리거나, 새로운 햇님을 찾는다고 했던가.’
아내는 후자를 택했고.
거기서 우리들의 관계는 사실상 끝이 났다.
서로 노력했지만, 끝내 아이가 생기지 않은 것도 한몫했고.
“흐응······.”
“왜 그래?”
나도 모르게 상념에 빠져 있었는데.
아까부터 부루퉁하게 입술을 꾹 다문 신디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 상황에서 전 여친 이야기를 입에 담다니. 눈치가 절망적으로 없는 건지, 아니면 빙 돌려서 관심 없다는 의사 표현을 하는 건가 싶어서.”
아차차. 내가 미쳤지.
“미안해. 내가 너무 무성의했지?”
“흥. 됐거든요? 거기 맥주나 한 병 더 줘.”
톡!
병맥주를 건네는 손끝이 살짝 맞닿았다.
“사과의 표현이라기엔 뭣하지만, 대신 이거라도 받아줄래?”
“이게 뭔데?”
품속에서 두 장의 티켓을 꺼내 슬쩍 내밀었다.
“개막전 경기 티켓이야. 학교 측에 부탁해서 S석으로 얻어 왔으니까, 부디 타일러랑 같이 보러 와 줬으면 좋겠는데.”
“에이, 씁!”
“······?”
“그게 아니지. 이런 거는 똑바로 말해야지.”
아. 그런가. 근 30년 만에 썸을 타는 거라.
사내놈으로서 기본이 안 되어 있었다.
똑바로 시선을 마주치고,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응원하러 와 줘. 경기 중에 네가 보이면 엄청 힘이 될 것 같아.”
“좋아, 멍청아. 큭큭큭.”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10월의 어느 밤.
시즌 개막전이 다가오고 있었다.
***
[ESPN‘s 2016-17 NCAA Recruit Power Ranking] [Written by Wade Keller]#001. Kentucky Wildcats
Recruit : De’Aaron Fox (5th), Malik Monk (7th), Bam Adebayo (16th), Wenyen Gabriel (5star), Sacha Killeya-Jones (5star), Hamidou Diallo (5star).
[Keller’s comment]올해도 리쿠르팅 명단을 5성급으로 꽉꽉 채우는 데 성공했다. 2017년도 유망주 랭킹 5위에 빛나는 디애런 팍스, 7위 말릭 몽크, 16위 뱀 아데바요 등 전국 최고의 재능들이 한데 집결한 어벤저스 같은 팀.
#002. Duke Blue Devils
Recruit : Jayson Tatum (3rd), Harry Giles (11th), Frank Jackson (18th), Marques Bolden (5star), Javin Delaurier (4star).
[Keller’s comment]켄터키가 어벤저스라면 듀크 블루 데빌즈는 저스티스 리그쯤은 될 것이다. 2015년 또 하나의 우승을 추가한 듀크대는 NCAA 최고의 명감독, ‘코치 K’ 마이크 슈셉스키의 지도 아래에서 불과 2년 만에 다시 정상의 자리를 노리고 있다.
······
······
······
#010. Oregon Ducks
Recruit : Sion Kim (24th), Payton Prichard (4 star), M.J. Cage (4star), Karvell Bigby-Williams (4star. Transfer.).
[Keller’s comment]좋은 슛과 리딩을 겸비한 페이튼 프리차드의 영입은 오리건 덕스에게 큰 자산이 될 테지만, 올해 알트만 감독의 가장 큰 업적은 무려 6년 만에 5성 유망주인 김시온을 리크루팅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
······
······
[Pac-12 컨퍼런스 예상 순위]1. Arizona Wildcats
주요 선수 : 라우리 마카넨, 코비 시몬스, 라울 알킨스
2. Oregon Ducks
주요 선수 : 조던 벨, 딜런 브룩스 (부상), 김시온
[Keller’s Comment]작년 시즌 PAC-12 컨퍼런스 우승팀.
기존 전력을 대부분 유지하며 즉시 전력감인 신입생 김시온을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무난히 1번 시드를 차지하리라 예상되었으나, 덕스는 시즌 개막과 함께 대형 악재를 만나게 되었다.
팀 공격의 핵심인 딜런 브룩스가 발 부상으로 장기 이탈하게 된 것이다.
브룩스를 대체할 김시온이 시즌 초반 얼마나 좋은 모습을 보여 주는지가 PAC-12 컨퍼런스의 향방을 가르게 될 것이다.
3. USC Trojans
주요 선수 : 디’안토니 멜튼, 조던 맥로플린
4. UCLA Bruins
주요 선수 : 론조 볼, TJ 리프, 애런 할러데이
5. Colorado Buffalos
주요 선수 : 데릭 화이트
6. Washington Huskies
주요 선수 : 마켈 펄츠, 마티스 타이불
7. ······
***
짝짝 짝짝짝!
짝짝 짝짝짝!
“Go Ducks Go! Go Ducks Go!”
“Let‘s go Oregon!”
짝짝 짝짝짝!
개막전이 시작되기 전.
12,000석 규모의 매튜 나이트 아레나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미식축구. 농구. 야구. 하키.
1년 내내 스포츠와 함께 살아가는 미국인들에게, 대학 리그가 갖는 의미는 굉장히 특별하다.
단순히 운동선수들만의 축제가 아니라.
‘스포츠의 꽃인 치어리더, 대학교의 상징이자 자존심인 마칭 밴드(음악단), 행사와 퍼포먼스를 기획하는 경영, 무대연출과 학생들 등등.’
학교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진행되는 행사가 바로 대학 스포츠다.
하다못해 일반 학생들도 기금 모으기 행사에 참여해 어떻게든 한몫을 거들 정도로.
수많은 청춘이 녹아들어 있는 이벤트.
‘그렇기에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울고 웃고, 열광하며 슬퍼하지.’
유럽 리그도 열광적인 분위기인 건 마찬가지지만.
그곳에서 난 이방인이었고.
성적이 조금만 나빠도 방출당하는 용병이었으며.
아무리 뛰어난 활약을 펼쳐도.
결국 누군가에겐 마지막까지 공놀이 좀 잘하는 원숭이 취급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걸 보면 미국은 참 신기해.’
그깟 스포츠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열광하고 내게 환호를 보내 주는지.
한국인인 내 입장에선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이젠 좀 알겠네.’
수많은 인종, 국적, 종교, 문화, 사상이 뒤섞여 살아가는 이 혼란의 도가니에서.
그 모든 편견과 갈등을 넘어서, 모두를 하나로 묶는 연대감을 부여하는 것이 바로 스포츠다.
‘이들에게 있어서 지지하는 팀의 승리와 패배란 모두 인생의 일부.’
그렇기에 강팀만 쫓아다니는 철새 팬들이 경멸을 받는 것이다.
기쁨도. 분노도. 슬픔도. 즐거움도.
스포츠의 진정한 가치란 그 모든 과정을 함께해 온 추억, 그 자체이니 말이다.
“그리고 우리 선수들은 그들에게 어떤 추억을 남길지 결정할 사람들이지.”
그것이 짜릿한 승리가 될지.
혹은 패배의 씁쓸한 맛으로 남을지의 여부는.
앞으로 40분간 유니폼을 입을 열세 명의 선수들에게 달려 있었다.
“가자, 꽥꽥이들! 준비는 됐나?”
삐익!
선수 입장을 알리는 버저 소리가 울리고.
알트만 감독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스크럼을 짠 선수들의 전의를 한껏 고양시킨다.
“제군들에게 항상 말했지. Always play for your teammates! 언제나 팀을 위해 행동해라!”
“아후! 아후!”
“궂은일을 꺼리지 말고, 끊임없이 패스를 받으러 발을 움직여라! 좋은 찬스가 왔다 싶으면, 곁에 완벽한 찬스가 온 동료가 없는지를 먼저 확인해라! Extra pass 정신! 알겠나!”
“Sir, Yes Sir!”
“좋아! 가자! 원투쓰리!”
“Win(승리)!”
그래.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