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opened my eyes, I realized that modern life RAW novel - Chapter 18
18화
2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키와 다부진 이목구비. 그리고 전형적인 무인의 체구를 가진 남자는 처음 트롤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았을 때 한 가지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다.
‘육대제자? ……아니, 칠대제자인가?’
주민석과 주연석의 실력이 10대세가의 무인이라기에는 조금 수준이 높았기 때문이다.
“분명히 숙련도는 형편없는데…… 이상하군.”
하지만 형편없는 숙련도에 비해 공격의 위력을 볼 때 확실히 탈10대세가급이라고 판단한 남자가 멋대로 주민석과 주연석을 정씨 문중의 말단인 칠대제자로 결정한 듯 말했다.
“벌써 정씨 문중이 개입할 줄은 몰랐는데……. 성가시지만 끝장을 내고 장소를 옮길 필요성이 있겠어.”
결정을 내린 남자는 신속했다. 가장 먼저 주민석에게 이동했고, 이어서 주민석을 순식간에 재기 불능으로 날려 버렸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으로 따지면 5초에, 소모된 공격 횟수로 따지면 단 일격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블러드 보일.
남자가 ‘블러드 보일’의 모습을 보고 흥미로운 눈빛을 냈다.
이번으로 두 번째 보는 장면이었지만 주변의 초목이 한 번에 바스러지는 모습은 그야말로 언제 봐도 재미있는 광경이었다.
주변의 나무나 풀 쪼가리의 생명력을 강제로 흡수해 트롤들을 강화시키는 ‘블러드 보일’은 뛰어난 효과에 비해 발동시키는 데 걸리는 준비 시간이 길다는 것이 가장 큰 단점이었는데, 이것이 단점이 되는 이유가 준비 시간 동안 술자가 무방비가 된다는 약점을 동반하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남자의 개입이 없었으면 주민석이 엘리트 트롤을 베는 것도 과언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뭐 어찌 됐든 남자가 블러드 보일을 발동시킨 지 채 10초가 지나지 않아서 전장이 일순간에 학살의 현장으로 바뀌는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볼 때였다.
‘저건…….’
남자가 무언가 신경 쓰인다는 듯 얼굴을 구겼다.
‘엘리스 녀석의…….’
낯이 익은 장면이 좌측에서 벌어졌기 때문이다. 엘리스가 사용하던 기술이 포착된 것이었다.
‘천주갑?’
사실상 강한 고집과 프라이드 때문에 이소군이 버리는 패로 사용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던 엘리스.
남자는 그러한 엘리스이기에 만약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 앙심을 품는 것도 과언은 아니라고 단언했다.
만약 엘리스가 적으로 돌아선 것이라면 현 상황에서 가장 최악인 것이다.
빠른 시간 내에 우선순위를 가른 남자가 좌측으로 신속히 이동하려고 할 때였다.
쿵.
우측 전장에서 남자의 발걸음을 멈추는 한차례의 소음이 들려왔다.
남자가 자신의 머리칼을 헝클어트리는 바람이 불어온 우측 전장을 바라봤다.
트롤 한 마리가 고깃덩이가 되어 뒤로 쓰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거대해진 트롤에게 연신 두들겨 맞는 주연석을 슬쩍 흘긴 남자가 중얼거렸다.
“정씨 문중 놈이 또 있나?”
그것도 우측 전장에는 칠대제자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강한 무인이 존재함을 감안한 남자가 고민에 다시 빠지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쿵.
남자가 찰나간 망설였을 때였다. 남은 한 마리의 트롤마저 쓰러진 우측 전장에서 하나의 기척이 빠르게 이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동이 아닌 옮겨 왔다고 생각하는 게 적합할 정도로 신속한 움직임으로 모습을 드러낸 사내를 향해 남자가 말했다.
***
최강의 눈에 거대해진 트롤에게 얻어맞고 피투성이가 되어 있는 주연석이 보였다.
당연하지만 최강의 등장과 함께 머리 잃은 세 번째 트롤은 이미 피분수를 뿜고 있었다.
최강이 주연석을 손으로 가볍게 흔들며 말했다.
“야, 너 괜찮냐?”
으으윽…….
최강이 흔들자 고통으로 신음하는 주연석의 모습을 보고 픽 웃었다.
엘리스 때도 그렇지만 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트롤 피가 아니라 얘네 피를 가져가야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나름의 재미있는 생각을 한 최강이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이미 좌측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지켜보고 있던 남자가 말했다.
“뭐 하는 놈이냐? 정씨 문중의 녀석이냐?”
남자의 물음을 들은 최강이 말했다.
“그러는 넌 정체가 뭐냐?”
꿈틀.
최강의 말에 관자놀이에 힘줄을 세우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대화를 할 만한 자세가 안 되어 있구나, 애송아.”
“그래 보여?”
남자가 좌측 전장을 힐끔 살폈다.
“신경 쓰이는 일이 있으니 시간 끌 마음 없다. 말장난한 벌로 일단 좀 맞아라.”
“뭐, 할 수 있으면 해 보든가.”
최강의 눈에 억지웃음 지은 남자가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최강이 현대에 와서 본 움직임 중에 가장 빠른 움직임이었다.
‘짜식, 덩치랑은 안 맞게 제법 빠르네…….’
최강의 후위에서 불쑥 나타난 남자가 주먹을 휘둘렀다. 최강의 잔상을 가르고 허무하게 바닥을 내리치는 남자의 주먹이 보였다.
쿠구구궁.
주먹이 박힌 곳을 기점으로 거미줄처럼 바닥이 갈라졌다.
기분이 상한 듯 얼굴을 구긴 남자가 저 멀리에서 홀연히 나타난 최강을 보며 말했다.
“도망치지 마라!”
마치 도망치지 않으면 이길 수 있다는 듯이 말하는 남자를 향해 최강이 선심 쓰듯 말했다.
“원한다면.”
최강이 들어오라는 듯 손바닥을 까딱였다. 남자가 최강에게 달려들었다.
마치 황소처럼 최강에게 달려드는 남자의 주먹에 붉은 기운의 내공이 서리서리 맺히는 모습이 보였다.
최강은 좀 전에 바닥을 찍었을 때의 일격보다 수십 배는 강하다는 것을 눈으로만 봐도 직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강의 대처는 간단했다. 그저 주먹으로 맞대응하는 것이었다.
허공에서 두 사람의 주먹이 맞부딪쳤다.
콰앙…….
두 주먹이 마주 닿은 아래 지면에 일렬로 금이 가며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쩍쩍 벌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얼굴이 왜 그래? 부탁한 대로 안 피했는데?”
최강의 말에 번뜩 놀란 남자가 뒤로 물러났다. 최강의 주먹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묵직했기 때문이다.
‘뭐지? 그렇게 강력한 주먹 같아 보이지는 않았는데…….’
최강의 주먹은 겉보기에는 빠르기만 한 주먹이었다. 물론 그마저도 자신이 보기에는 눈으로 보고 피하고 상대하기 충분한 주먹이라고 생각했고 말이다. 하지만 실상 부딪쳐 보니 전혀 아니었다.
“야.”
최강의 말에 복잡한 생각을 이어 가던 남자가 눈을 마주쳤다.
“왜 뒤로 내빼냐? 쫄았냐?”
“쫄긴 무슨……?!”
남자가 자신의 답을 듣지도 않고 신속하게 움직이는 최강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최강이 주먹을 휘두를 것이라는 것을 확신한 남자가 방금 전 최강과 수 교환을 한 오른 주먹을 휘두르려 할 때였다.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부러졌다고……?’
남자가 부러져 있는 자신의 팔의 통증에 주춤하는 사이였다. 남자의 품으로 파고든 최강이 일격을 때려 박았다.
“커억…….”
피를 게워 내며 무릎 꿇은 남자를 최강이 내려 보며 말했다.
“너 어디 소속이지?”
무릎 꿇은 남자가 최강의 물음에 대한 대답 대신 왼쪽 주먹으로 답했다.
휙.
가볍게 고개를 틀어 피한 최강이 이어지는 연달은 주먹을 가볍게 피해 내고는 주먹을 내질렀다.
커헉…….
“자꾸 일어나지 마. 다음번엔 세 대다.”
눈 깜짝할 사이에 두 방의 주먹을 남자의 배에 때려 박은 최강이 다시 한번 말했다.
“묻겠다. 정체가 뭐냐?”
최강의 질문에 답하기보다 웅크린 남자는 지금 다른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 있었다.
자세도 잡지 않은 주먹 두 방에 의식을 놓아 버릴 뻔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체가 뭐지? 일대제자 수준이 아니다. 이 정도면…….’
최강이 말했다.
“뭐…… 좋아. 말하기 싫으면 말고. 그럼 우리보다 먼저 왔던 토벌대는 어떻게 됐냐?”
“토벌대?”
남자가 반발심에 최대한 약 오르도록 말했다.
“아아아, 그놈들?”
크크크큭.
“전부 죽였는데?”
최강이 인상 쓰더니 남자의 면상을 한 대 후렸다.
대포알처럼 쭈욱 날아간 남자가 바스러지기 직전의 나무에 등을 박았다. 나무가 다 탄 연탄처럼 남자와 함께 무너져 내렸다.
비틀비틀 힘겹게 일어난 남자가 말했다.
“그놈들이 뭐라고 묻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네놈은 오늘 실수했다.”
최강이 남자의 몸이 초록색 빛으로 휩싸이는 모습을 보고 인상 썼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신속하게 움직인 최강이 엘리트 트롤의 머리통을 날려 버렸다.
사체가 되어 쓰러진 엘리트 트롤을 보고 남자가 말했다.
“이미 늦었다.”
최강이 말짱해진 남자를 보고 여유롭게 말했다.
“이제 와서 상처를 회복하면 어쩔 건데?”
“회복?”
남자가 최강을 비웃듯이 말했다.
“애초에 그딴 건 상관없었다.”
품에서 내단을 하나 꺼낸 남자가 그것을 복용하는 모습이 보였다. 엘리스의 것과 마찬가지로 붉은 기운이 넘치는 내단이었다.
잠시 후 내단을 복용한 남자의 주위로 핏빛 기운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주변을 붉은빛으로 물들일 만큼 강력한 기운을 뿜어내는 수준에 다다른 남자가 마침내 허리춤의 검을 뽑아 들었다.
“네놈이 피하면 뒤의 놈들도 다 죽는다.”
최강이 남자가 치켜든 검에 기운이 얽혀서 소용돌이치는 것을 바라봤다. 본 적이 있는 준비 자세였다.
여유롭게 웃은 최강이 말했다. 모르는 기술이면 모를까 피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피할 마음도 없었거든?”
최강이 엘리스 때와 마찬가지로 자세를 잡았다. 때마침 남자의 검이 내리쳐졌다.
“뒈져라!”
최강이 응수하듯 주변을 삼키며 접근하는 붉은 기운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고려 좌군 첫 번째 주먹.”
쿵.
한차례 둔중한 충돌음이 들렸다.
잠시 후 주변을 난자하며 전방으로 쏘아지던 붉은 기운과 맞닿은 자신의 주먹을 바라본 최강이 중얼거렸다.
“천지 가르기.”
최강의 말이 신호가 되듯 일순간에 붉은빛이 소멸하는 것은 물론이고 동시에 경사진 산의 후면이 평탄한 구릉지로 변하는 모습이 보였다. 입이 쩍 벌어질 만한 장면이었다.
더 이상 산이 아닌 평탄한 구릉지에 초라한 모습으로 서 있는 남자가 느리게 입꼬리를 올리다 말고 갑자기 한차례 비틀거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푸우우우우.
남자의 상의가 찢겨 나가더니 전신에서 피가 솟구쳤다.
털썩.
피투성이가 되어 무릎 꿇은 남자가 뒤로 힘없이 주저앉는 모습이 보였다.
***
산 입구에서 나미사는 한 시간째 고민에 빠져 있었다.
‘뭐였지……?’
-죽고 싶지 않으면 오지 마.
30분 전 토벌대를 따라서 산을 오르려던 찰나에 피부를 타고 한 사람의 음성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혼자서 생각하던 나미사가 옆에서 우직하게 대기 중이던 하야토를 향해 말했다.
“하야토.”
“예.”
하야토의 절도 있는 대답을 들으며 나미사가 질문했다.
“주씨세가와 류씨세가가 맞죠?”
“확실합니다.”
“그 외의 인물이 끼어 있을 가능성은요?”
“…….”
잠시 생각하던 하야토가 말했다.
“다른 인물이라 하심은?”
나미사가 망설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씨 문중이라거나…… 조씨 문중이라거나…….”
나미사의 말을 들은 하야토가 그답지 않은 답을 내놓았다.
“모르겠습니다.”
하야토의 말에 나미사가 산 입구를 다시 바라봤다. 하야토가 말했다.
“하지만 움직이길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면 애초에 10대세가를 앞잡이로 세워 두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무척이나 일리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뭐지, 이 불안감은…….’
나미사가 자신의 몸에 순간적으로 돌았던 오싹함을 떠올렸을 때였다.
쿵.
한차례 굉음이 들리더니 돌풍이 산 아래까지 들이닥쳤다.
나미사가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치켜든 다음 순간이었다.
나미사의 눈에 산 정상이 사라지는 광경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