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oke up, the world turned into a game! RAW novel - Chapter 120
41. 해묵은 과거는 들추고 가자. -작가의 말 추가
“오빠. 어서 오세요.”
선빈길드 1층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송해인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맞이했다.
“응. 제왕의 무덤에서 8등급, 9등급 모두 얻었다는 말은 들었어. 축하해.”
“뭘요. 다 오빠 덕분이죠.”
송해인의 말이 의례적으로 하는 말인지 아니면 그 당시 내 힌트를 눈치 채고 하는 말인지 뚜렷이 분간은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아이템들은 어차피 욕심도 안냈다. 더 대단한 10등급 아이템을 노리기 위해서는 무조건 제물이 돼야 했기에. 그래서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할아버지랑 아버지를 포함해서 위층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응. 그래.”
송해인을 따라 엘리베이터로 이동했다.
96층으로 올라가는 와중에 송해인이 입을 열었다.
“히트길드에 갔던 일은… 잘 됐나요?”
“응. 예전에 사소한 마찰이 있었었거든. 그래서 이번에 그에 대한 보상도 받았지.”
송해인의 잠깐 떨리는 말로 직감했다. 역시 알고 있었다는 것을.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송해인도 더 이상 아무 말도 안했기에 침묵 속에 96층까지 이동했다.
그리고 96층에 내리자마자 송해인의 안내로 회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마치 약 5년 전의 그날처럼.
스르륵~
송대철 회장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지원을 보면서 또 느꼈다.
약 5년 전 그날 이지원을 처음 봤을 때 느꼈던 번뜩임과 특별한 아우라를.
남들은 잠만 자는 이지원에게 더 이상 가망이 없는데 왜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관심을 쏟으며 시간을 낭비 하냐고 했지만 송대철 회장은 그게 시간 낭비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처음 본 이지원에게 비추던 후광과 당당하고 거침없는 행동들이 뇌리에 박혀 잊히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더 그랬다.
그래서 이지원이 깊은 잠에 빠진 후에도 지극정성으로 보살폈고 스스로도 3년간은 빈번하게 이지원을 지켜봤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잠만 잠에도 이지원의 근육은 한 치의 손실도 없었고 피부도 탱탱해서 당장 일어날 것만 같았기에.
‘하지만 3년이 지나니 결국 나도 변했지.’
그래서 뇌리에서 지워진 이지원이 잠에서 깨어나 선빈길드 밖으로 거의 반강제로 쫓겨났음을 알았지만 찾지 않았다.
거기에 손자인 송해창의 이지원을 향한 납치도 실패한 것을 확인하고도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았다.
이지원의 특별함을 망각해서. 그리고 거듭된 성장과 성공에 도취되어 머리가 굳어서.
그렇게 이지원은 선빈길드를 나가고 1년도 안되어 다시 돌아왔다.
고작 1년도 안 걸려 전 세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복귀하는 개선장군처럼.
“어서 오게. 지원군.”
“네. 안녕하세요. 송대철 회장님.”
대한민국 밖을 떠나도 선빈길드에 대한 이야기는 간간히 들려왔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는 항상 선빈길드를 이끄는 송대철 길드장의 이야기도 함께였다.
거대한 선빈길드를 무리 없이 이끄는 뛰어난 길드장으로.
“자. 여기에 앉도록 하지.”
송대철 회장의 안내로 송명수 부 길드장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래. 제왕의 무덤에서의 활약상은 들었네.”
“별거 아니었습니다.”
“하하. 선빈과 청룽이 몇 시간 걸려 드잡이 한 것보다 지원군 자네 혼자의 활약상이 더 뛰어난데 어찌 별거 아니겠나?”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후후. 그래. 본인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아참, 해인아 그것을 꺼내봐라.”
“네. 할아버지.”
송대철 회장의 말에 송해인이 인벤토리에서 한 가지 아이템을 꺼냈다.
“그때 자네가 제물이 됐고 6개의 랜덤상자에서 8등급과 9등급 아이템이 한 개씩 나왔네. 그리고 이게 그 8등급 아이템이고.”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8등급 아이템에 의아한 시선으로 송대철 회장을 바라봤다.
자랑하려고 꺼내놓은 것은 아닐 테니.
“확실하게 말하지. 나는 그때 마지막 자네의 행동이 일종의 암시였다고 생각하네. 결과적으로 그것 때문에 해인이는 5번째 상자를 선택할 수 있었고. 거기에서 9등급 아이템이 나왔네.”
“…….”
송대철 회장의 단정 짓는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9등급 아이템을 내줄 수는 없네. 변명이라 할 수 있지만 이미 위청과의 약간의 분란이 일어난 상황에 9등급까지 포기하기란… 상황이 여의치 않네.”
송대철 회장이 테이블에 놓인 아이템을 내 쪽으로 건네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8등급 아이템은 충분히 가능하지. 이게 선빈길드가 제왕의 무덤에서 자네가 떠안은 영구적인 70회의 사망 페널티에 대한 위로금일세.”
“그 페널티를 제가 감당하는 대가로 이미 상당량의 골덴링을 받았습니다.”
물론 영구적인 70회의 사망 페널티를 겪지 않았다. 하지만 송대철 회장이나 다른 자들의 오해를 정정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건 나만의 비밀이고 13억 8천만 골덴링을 받은 대가이다.
그리고 제왕의 무덤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한 피해자인척 할 수도 있다. 거기에 조금이지만 공식적으로 퇴보함으로써 상대방에게 방심을 유도할 수 있고.
그래도 살짝 아니, 많이 욕심이 나긴 했지만 이곳에 온 이유 중에 하나가 나에 대한 납치 의뢰를 한 송해창에 대한 것이 남아 있기에 선뜻 받기 애매했다.
‘또 무턱대고 받기에는 너무 가벼워 보일수도 있고.’
이게 가장 큰 이유다.
“난 자네가 우리나 청룽에게 개인당 2억이 넘는 골덴링을 받은 것은 매우 잘한 일이라 생각하네. 그 정도 페널티를 감수하는데 당연하지.”
송대철 회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지만 이것은 자네에게 주는 이유는 위로금이라는 명목 외에 자네 덕분에 9등급 아이템을 얻었고 그리고… 해창이가 자네에게 한 실수를 녀석의 할아버지로서 사죄를 구하는 의미로 주는 것일세. 꼭 받아줬으면 좋겠네.”
송대철 회장의 말에 의심이 확신으로 변했다.
물론 이미 이곳에 오기 전부터 어느 정도 확신은 하고 있었지만 당사자에게 직접 듣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이미 알고 계셨다면 제가 히트길드를 향하는 것을 알면서도 어째서 거기를 그대로 놔둔 겁니까?”
송해창의 납치 의뢰보다 이게 더 궁금했다.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지 않겠나? 거기를 정리해도 해창이는 정리할 수 없다네. 못난 녀석이지만 나의 손자이니.”
송대철 회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송대철 회장도 사람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그걸로…”
“나는 자네가 해창이를 만나줬으면 좋겠네.”
“네?”
이유가 어쨌든 여기서 끝내려했다.
히트길드에서 4700만 골덴링에 선빈길드에 8등급 아이템까지 얻었다.
이정도면 실리는 충분히 취했다. 더 이상 왈가왈부 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솔직히 송해창에게 무조건 피의 복수를 해야 한다거나 불구대천의 원한을 졌다. 라는 등의 악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별 피해도 입지 않았으니까.
그렇다고 납치 의뢰의 당사자이면서 처음에 나를 봤을 때부터 나를 경멸하듯 쳐다본 송해창과 만나달라는 말은 이해가 안 갔다.
“송해창은 저를 싫어하는 수준이 아니라 증오하는 것 같더군요. 그런데 왜 저와?”
“알고 있네. 그래도 잠시 대면이라도 해주길 바라네. 대면해서 뭘 해든 좋네. 죽이고 싶으면 몇 번이라도 죽여도 좋아. 아니면 그냥 슬쩍 보고만 나와도 좋고. 그래 줄 수 있겠나?”
이상한 부탁을 하는 송대철 회장의 눈을 잠시 바라봤다.
“알겠습니다.”
“고맙네.”
솔직히 좀 궁금하기도 했다.
어째서 그런 행동을 한 건지. 그리고 왜 혼자서 그렇게 망가졌는지.
회귀 전의 송해창을 아는 나로서는 지금의 송해창과는 전혀 매치가 안 된다.
송대철 회장이 건네준 8등급 아이템은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송해인을 따라 송해창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이지원이 송해창에게 이동하고 몇 명 남지 않은 회장실.
“아버지 어째서 지원군과 해창이를…”
송명수 부 길드장은 이해가지 않는 상황에 의문을 담아 물었다.
“그게 해창이를 살릴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네?”
“그동안 나 스스로 자만에 빠져 이지원의 특별함을 몰라봤었다. 하지만 너도 기억하겠지. 지원군을 처음 만났던 그때를.”
송대철 회장의 말에 송명수 부 길드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이 대변화 따위는 자신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고 오히려 기회로 여기던 모습과 우리가 알지 못했던 것을 알고 있던 선구자 같은 모습들. 결국 이제와 인정하자면 내가 아니, 우리 선빈이 이렇게 성장하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것 지원군이다.”
선빈길드가 이렇게 성장하게 된 배경에는 남들보다 빠르게 약 8개월 정도를 던전에서 사냥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들보다 압도적으로 빠르게 레벨을 올려 앞으로 치고 나아갔다.
거기에 상당량의 골덴링을 모아 탐색 스킬을 배워 다른 자들이 우왕좌왕할 때 대한민국을 넘어 일본, 중국과 유럽, 미국까지 온갖 던전을 최초로 발견했다.
그걸로 인해 수뇌부는 남들보다 우월한 스탯포인트를 획득했고 던전 찾기 점수를 모아 8등급 이상의 아이템들을 상당수 획득했다.
결국 이 선순환의 꼭짓점에 있는 것은 이지원이었다. 그가 시작점이었다.
“우리 모두 이지원을 포기했을 때 이지원은 스스로 증명했다. 1년도 안 걸려 전 세계에 이지원 이라는 이름을 각인시켰다. 고작 1년도 안 걸려서 말이야.”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원군은…”
“그래. 혼자지. 그것 때문에 지원군을 낮게 보는 시선이 아직도 있고. 하지만 지원군은 개인이, 혼자가 얼마나 강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증명했다. 이집트에서, 마카오에서 그리고 이번 제왕의 무덤에서 말이야.”
송대철 회장은 앞에 놓은 차를 한 모금 들이키고 이어 말했다.
“정상적으로 활동을 시작한지 이제 겨우 1년차야. 앞으로 어디까지 성장할지 미지수고. 아직도 개인보다 단체 혹은 길드의 힘을 우세하게 보는 자들은 큰코다치게 되겠지. 지원군에게 말이야. 그러니 기다려보자. 남이 갖고 있지 않은 특별함을 갖고 있는 지원군을.”
“네. 알겠습니다.”
송명수 부 길드장도 수긍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송해인을 따라 선빈길드 사옥 지하 3층까지 이동했다.
그리고 큰 철문 앞까지 이동했다.
“이 안에 제 오빠가 있어요. 지원오빠에게 납치 의뢰를 한 제 오빠가요.”
송해인이 처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도 지원오빠가 무언가를 해주길 바라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이것 하나만 알아주세요. 해창오빠가 지원오빠를 증오하는 이유는 저에 대한 열등감과 할아버지의 관심 그리고 많은 자들의 기대감에 부흥하지 못한다는 좌절감에서 시작됐다는 것을요.”
“그런데 왜 나를?”
결국 혈연과 지연 문제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해창오빠는 그 좌절감을 나와 할아버지가 관심을 갖던 지원오빠에게 풀었어요. 항상 잠만 자기에 그래도 자기나 낫다. 그 자리에서 도태되어 있는 지원오빠 보다 그나마 한발자국씩 앞서 나가는 자신이 우월하다 여긴 거죠. 하지만 지원오빠가 잠에서 깨고 하나씩 활약상이 들려오면서 4년간의 경쟁 아닌 경쟁이 단숨에 역전되자 그 좌절감이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온 거고요.”
“허…”
송해인의 말에 허탈한 웃음을 내비쳤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유였기 때문에.
끼이익~
그 말과 함께 자리를 떠나는 송해인을 뒤로하고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안에서 송해창을 볼 수 있었다.
머리는 산발을 하고 두 눈은 퀭해있는 정상적인 몰골로 볼 수 없는 송해창을.
“크크크. 날 죽이러 왔나보지? 복수를 하고 싶어서 말이야.”
입으로 거침없이 내 뱉는 말과 달리 퀭한 두 눈에는 불안감, 두려움이 여실히 드러났다.
“죽여! 죽여 보라고. 하지만 난 선빈길드의 직계야. 네가 몇 번이나 죽여도 금방 복구가 가능해!”
겁먹은 개가 더 요란스럽다고 송해창이 딱 그랬다.
저벅저벅.
송해창에게 더욱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럴수록 송해창의 두 눈과 몸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그리고 손이 맞닿을 정도까지 다가서고 자리에 멈춰 섰다.
“아니. 안 죽여. 왜냐하면 너는 그럴 가치도 없거든.”
내 단호한 말에 송해창의 두 눈 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회귀 전과 후를 비교해서 분명 다른 점은 있다. 예를 들어 원래 등장했던 몬스터가 바뀌고 다른 몬스터가 등장하는 곳들이 있었다.
하지만 바뀌지 않은 점을 꼽으라면 역시 사람이다.
피의 군주는 여전히 강했었고 신화길드의 신-로티오메는 피의 군주의 계략에 속아 멸망 직전까지 갔었다.
마카오 산투안 길드의 토포인과 왕후이도 여전한 사기꾼이었고 제왕의 무덤에서 제대로 대면한 청룽길드의 위청도 그랬다.
내가 개입하기 전까지 회귀 전의 한가락 하던 자들은 똑같이 한가락 했다.
하지만 유일하게 송해창만 달랐다. 송해창만 유일하게 저 밑바닥으로 추락했다.
회귀 전의 송해창을 지지하고 좋아했다.
물론 송해창이 자신의 영역권 안의 일반인과 바리움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보호하기위해서 힘을 쏟고 관심을 보인 것은 사실이다.
노동력 착취도 선빈길드의 힘으로 억제시키고 일반인이든 바리움이든 먹고 사는 데는 문제가 없도록 유지했다.
그리고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했다. 그것도 못하는 곳이 수두룩했으니까.
“너도 날 무시하는 거냐!”
그전과 다르게 두 눈에 두려움보다 분노를 담아 송해창이 내뱉었다.
“응. 무시하는 것 맞아. 무시할만하면 무시해도 되는 것 아냐?”
“이… 개새끼가!”
내 말에 송해창이 순식간에 한손검을 뽑아 내 가슴을 향해 베어왔다.
하지만 그 공격이 너무나 형편없었다.
딱 봐도 피로도가 극에 달한 상황. 그런 상황에 펼쳐진 공격은 하등 위협이 되지 않았다.
퍽!
“크흑!”
송해창이 휘두른 검보다 내 오른발이 송해창의 복부를 타격하는 게 더 빨랐다.
그리고 송해창은 그 단순한 공격을 피하지도 막지도 못한 채 그대로 얻어맞아 뒤로 3바퀴나 굴렀다.
“어째서 너만 이렇게 엉망이 된 거지?”
켁. 켁.
3바퀴나 구르고 자리에서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하고 연신 기침만 토해내는 송해창이 전혀 이해가 안됐다.
상황? 조건? 모든 것이 그 누구보다 송해창은 우월하다.
특히 지금의 선빈길드의 위세를 떠올리면 마음먹으면 못할 것이 없는 게 송해창일 것이다. 이렇게 밑바닥으로 추락할 이유 자체가 없다.
“내가! 내가 무슨!”
“무슨은 뭐가 무슨이겠어. 바로 너의 모습이지.”
회귀 전의 송해창의 모습과 완연히 다른 모습에 오히려 신기했다.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아이스 계열 마법사가 한손검을 사용하는 근접 계열이란 것도 이해가 안 갔다.
“씨팔! 너 따위가 뭘 안다고 훈계질이야!”
“아니, 난 훈계 같은 것을 할 생각이 없어. 오히려 널 만날 생각도 없었고. 하지만 송대철 회장의 부탁에 한번 와본거야.”
“뭐?”
“말 그대로야. 너에게 관심을 쏟을 시간도 난 아까워. 난 누구보다 강해지고 싶거든. 이 엿같은 세상에 내 주장을 펼치기 위해서는 많이 바쁘니까.”
“이… 이!”
방금 내 말에 그제야 송해창의 두 눈에 시퍼런 안광이 비쳤다. 분노도 좌절도, 두려움도 아닌 회귀 전의 송해창의 그 눈빛이.
“그래서 나는 송해창 네 얼굴만 슬쩍 보고 나갈 생각이었어. 네가 스스로를 파괴하고 추락하는 것? 오히려 나야 고맙지. 선빈길드를 등에 업은 강력한 경쟁자가 스스로 사라져 준다는데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냐?”
“입 닥쳐라!”
“아니 그건 너도 알고 있는 것 아냐? 설마 선빈길드의 모두가 너를 한없이 걱정하고 빨리 제정신을 차리기만을 바랄 거라고 생각해? 그건 절대 아니지. 오히려 너에게 가려져있던 자들에게는 이게 기회일거라고.”
“씨팔! 입 닥치라고!”
송해창이 또다시 한손검을 들고 나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분노가 더해졌다고 전과 확연히 다른 능력을 보이는 것은 소설 속에서만 가능하다.
퍽!
“크흐!”
다시 한 번 송해창의 복부를 걷어찼다.
처음에는 진짜 송해창에게 한 말대로 그대로 바로 나갈 생각이었다.
송해창을 내가 챙겨야할 이유도 없고 그럴 당위성도 없다.
하지만 직접 대면한 송해창의 몰골을 보고 생각이 살짝 변했다.
연민? 동정? 확실히 그런 것도 조금 생겼다.
거의 유일하게 회귀 전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송해창을 보면서 여러 감정이 교차해서 나타난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혹시나 나 때문인 건가? 하는 그런 생각이.
그래서 처음의 결정과 달리 송해창을 몰아붙였다.
물론 그게 송해창의 좌절감, 한없이 추락한 자존감을 다시 되살려 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다.
경쟁자로 여겼다던 나만이 할 수 있는 방법.
송해창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꺼져! 꺼지라고!”
“나는 송해창 네가 뭐가 그렇게 불안하고 억울한지 모르겠어. 약한 것이 억울해? 동생보다 능력이 뒤떨어지는 게 억울해? 모두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게 억울해?”
“입 닥치고 꺼지라고!”
퍽!
또다시 달려드는 송해창을 걷어찼다.
송해창의 지금 모습을 완벽하게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만사 포기한 듯 한 지금의 송해창의 모습이 회귀 전의 나의 모습도 일부분 겹쳐보였기에.
“안되면 바꾸라고 멍청아. 탱커가 안 되면 바꾸고! 근접이 안 되면 바꿔! 길은 많고 여건도 뛰어난데 뭐 하러 안 되는 길에 얽매 이냐고.”
전 세계에서 알아주는 아이스 계열 마법사로 그 찬란한 재능을 뽐낸 주제에 시답잖은 한손검을 들고 지랄하는 모습에 송해창에게 외쳤다.
“씨팔!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이지 마라!”
“심판자의 철퇴.”
[심판자의 철퇴를 사용하였습니다.다음 첫 공격은 무조건 치명타 공격이 됩니다.
-1레벨 : 3600초 쿨타임
고정 대미지 5만 추가. 사용자의 물리공격력의 300%의 추가 대미지를 입히고 그 공격에 치명타 대미지 500% 증가]
또다시 한손검을 들고 달려드는 송해창의 머리통에 심판자의 철퇴를 사용해 그대로 꽂았다.
“컥!”
그리고 당연히 용빼는 재주가 있을리 만무한 송해창은 그 한방에 사망했다.
송해창을 몇 번이고 수십 번이고 죽여도 선빈길드가 충분히 감당할 만하기에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곧 연기로 사라지는 송해창의 시신을 바라보며 뒤쪽으로 몇 발자국 이동해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미 이곳에 송해창의 부활 위치 지정을 했다는 것을 전해 들었기에 기다렸다. 송해창이 다시 부활하기를.
“이게 뭐하는 건지 모르겠네.”
쓸쓸한 독백과 함께.
3시간 후.
부활하는 송해창과 시선이 마주쳤다.
처음에 마주했던 시선과는 확연히 달랐다.
송해창의 두 눈에는 독기와 날카로움이 그대로 배어나왔다.
“너 따위 고아새끼가 내 심정을 알아?”
두 눈에 독기와 날카로움이 배어나왔지만 행동은 그전과 달랐다. 생각 없이 무작정 달려들지 않았다.
“훗. 고아새끼면 어때? 지금의 나에게 고아라고 손가락질 하는 자가 있을 것 같아? 내 앞에서 두 눈 부릅뜨고 모욕을 내뱉는 자가 있을 것 같아? 과연 송대철 회장이나 송명수 부 길드장도 나에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으드득!”
내 말에 송해창이 분한지 이를 갈았다.
“어리광 부리지마라. 포기 한다고? 해. 하지만 포기 한다고 편해질 것 같아? 남들은 다 앞서 나가는데 뒤쳐진다는 게 적응이 될 것 같아?”
회귀 전의 내 경험담이기에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내가 어리광을 부렸다고?”
“어리광이 아니면 헛똑똑이 이거나, 아주 멍청하거나 둘 중에 하나 아냐?”
“나는! 최선을 다했어. 모든 노력을 쏟아 부었어. 하지만 재능이 그걸 뒷받침 하지 않았고.”
“그러니까 바꾸라고. 이 멍청아. 다른 자들은 환경에, 여건에 발이 묶여 그대로 나가야 하지만 너는 뭐든지 할 수 있잖아. 축복받은 환경에 살면서 괜히 안 되는 것에 목매지 말라고!”
“…….”
그나마 초췌한 몰골 중에서 날카롭게 빛나는 안광을 뽐내는 송해창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나라면… 아이스 계열 마법사가 좋겠군.”
“???”
“물론 내 생각이지만 말이야. 심판자의 철퇴.”
[심판자의 철퇴를 사용하였…]“그리고 이건 제정신 좀 차리라는 의미다. 나를 납치하려한 죗값이기도 하고.”
쾅!
멍청한 표정을 짓는 송해창에게 다시 한 번 생명력 약탈자를 내질렀다.
“후… 괜한 오지랖을 벌인 건가?”
이럴 생각도 의도도 전혀 없었다. 하지만 송해창의 모습에 괜히 화가 났다.
회귀 전의 모습을 아는 나로서 송해창은 저런 모습을 취해서는 안 된다.
‘회귀 전에 받았던 도움과 고마운 마음은 이걸로 끝이다.’
물론 이걸로 송해창이 아이스 계열 마법사로 다시 시작한다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내 할 몫은 다했다.
혹시나 나 때문에 송해창이 저렇게 된 것 아닌지 하는 불안감을 해소하기에는 충분했다.
이대로 더 망가져도 나와는 더 이상 상관없다.
그렇게 후련하게 철문 밖으로 빠져나왔다.
송해창에게 이지원은 경쟁 상대였다. 그리고 위안을 얻는 상대였다.
자격지심을 가진 송해인과 부담감을 느끼는 할아버지가 온갖 관심을 쏟는 대상이었기에.
그렇게 송해창에게 이지원이란 존재는 점점 더 크게 파고들었다.
애증의 대상으로 혹은 위안의 대상으로.
그리고 그런 존재의 직설적인 말에 송해창을 감싼 곪을 대로 곪은 고름들의 알맹이가 뚝뚝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