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Dragon Teacher RAW novel - Chapter 212
212화
우여곡절 끝에 정리가 끝나고 출발할 준비가 되었다.
안종과 제갈료가 허윤과 일행을 배웅하기 위해 나왔다.
안종이 웃으며 인삿말을 했다.
“세 사람. 올 때는 삼류 건달이나 다름없는 모습이었는데, 갈 땐 내게 인사까지 받게 되었군. 사람 일 참 알 수 없는 노릇이야.”
제갈료도 옆에서 말을 더했다.
“거기 두 사람은 형님을 잘 보좌하고, 특히 언행에 주의하게. 앞으로는 자네들이 잘못하면 허 회주가 욕을 먹게 될 거야.”
장용과 쾌도에게 한 말이었다.
고우사가 웃을 준비를 하며 장용과 쾌도의 반응을 살폈다.
분명히 말꼬투리를 잡고 늘어질 터였다.
이런 소리를 듣고 가만히 있을 둘이 아니었…….
“예, 나으리.”
“명심, 또 명심하겠습니다.”
허리까지 꾸벅 숙이며 공손하게 대답하는 장용과 쾌도였다.
고우사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나 으 리?”
고우사가 항의했다.
“누군 영감이고 누군 나으리냐? 이 새끼들, 왜 사람 차별해.”
장용과 쾌도가 눈을 부라렸다.
“돈 주는 분이시잖아.”
“영감이 우리 돈 줘?”
제갈료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돈을 건넸다.
“자, 정산금일세.”
“아이고, 감사합니다요.”
장용과 쾌도가 넙죽 돈을 받았다.
고우사가 눈을 가늘게 뜨고 지켜보았다.
“돈을 받았으니까 당연히 안면몰수하겠지?”
장용과 쾌도가 또 눈을 부라렸다.
“은혜도 모르는 영감탱이 같으니라고.”
“한번 물주는 영원한 물주인 거 몰라?”
제갈료가 다시 돈을 주었다.
“이건 내가 개인적으로 주는 수고비네.”
“예옙! 다음에 또 불러 주십시오.”
고우사가 감탄했다.
“이야…… 이 새끼들, 이제 보니 이거 완전 살아 있는 진법이네. 시끄럽고 흉악하니 경문(驚門), 상문(傷門) 있지. 한번 물면 안 놓는 사문(死門) 있지. 근데 또 지들 안 죽고 살아 나갈 생문(生門)은 만들어 놨지.”
장용과 쾌도는 시큰둥하게 귀를 후볐다.
소지광이 고우사를 다독였다.
“군자의 복수는 십 년을 기다려도 늦지 않습니다. 지금은 때가 아니니 참고 기다리시죠.”
“아암, 그래야지.”
희번덕.
고우사와 소지광의 눈빛이 뭔가 독기를 품고 때를 노리는 듯해서 괜히 지켜보던 안소방과 번산, 이진휘만 조마조마했다.
“자, 그럼. 이만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또 보세.”
허윤은 예의 바르게 읍을 한 뒤 마차에 올랐다.
드디어 허윤의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었다.
달그락달그락.
“흠.”
약왕은 서툰 손길로 수레의 말을 몰면서 자꾸만 주위를 둘러보았다.
“묘하군. 묘해.”
뒤에 있던 대홍랍강이 앞에서 날려 온 흙먼지를 마시곤 짜증을 부렸다.
“뭐가 그리 묘한데 아까부터 이상한 소리만 하는 게요?”
“일행에 비해 표물의 양이 적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네.”
“이게 적다니. 팔자에도 없는 짐수레를 끌고 가는데.”
수레 한 대 더 뒤에서 고우사가 소리쳐 물었다.
“뭐라고? 적어?”
“생각해 보시오. 우리 일행을. 장형은 절정 고수고, 대홍랍강과 허 선생도 그에 부족하지 않을 거요. 아니, 오히려 더하지.”
장용이 끼어들었다.
“부족한 사람이 하나 있는데.”
약왕이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무력으로든 명성으로든, 아마 이만한 이들이 한데 모이긴 쉽지 않을 거요. 대개 표두들은 일류 수준이니까.”
“그렇지. 흘흘, 원래 나 같은 절정 고수들은 푼돈 벌자고 이런 귀찮은 짓 안 하지.”
“그러니까 나 같으면 이왕 표물을 보낼 때 표사와 쟁자수를 좀 더 붙여서 수레를 왕창 보내겠소. 그럼 허 선생도 돈을 더 많이 받아 좋을 테고 말이오.”
“듣고 보니 그도 그렇구만. 가뜩이나 표행이 어렵다면서.”
이쯤 되니 고우사도 의심이 들었다.
“가만. 그럼 이 표물이 아주 귀한 것들인가?”
대홍랍강이 소지광을 소리쳐 불렀다.
“어이, 막내! 거기 마차에서 편하게 앉아 있는 표행주에게 표물의 값어치가 어느 정도인지 좀 물어보게.”
“알겠습니다.”
소지광이 허윤에게 물었다.
“허 회주. 수상한 점이 있는데, 우리 몸값은 제대로 받았나?”
이 정도 인물들을 부리면서 인건비를 제대로 안 받았을 리가 없었다.
다만 만일 값을 제대로 받았다면, 표물이 그만큼 비싼 물건이거나 혹은 단순 표행이 아니라 다른 용도의 비용이 추가되었을 거란 의미일 터였다.
허윤은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소지광이 인상을 썼다.
그러곤 손을 들어 신호를 보낸 후 마차를 세웠다.
다들 마차로 우르르 몰려왔다.
고우사가 허윤에게 물었다.
“무슨 수작이야?”
“표물은 맞소. 중요품도 맞소. 그리고 몸값도 포함해서 잘 받았소.”
“그게 마부 품삯만큼 더 받았다는 의미는 아닌 것 같은데.”
“적당히 소란을 피우면서 가 달란 부탁을 받았소.”
대부분이 강호 경험이 많은지라 바로 그 의미를 깨달았다.
“아, 귀찮게.”
“아무리 돈이 좋아도 그렇지, 이 늙은이들을 혹사시키나 그래.”
허윤이 달랬다.
“돈 때문만은 아니고, 백도맹 차원에서 부탁한 일이라 어쩔 수 없었소이다. 우리가 조금 고생하면 다른 사람들이 편해지니 그 또한 좋은 것 아니겠소이까.”
장용과 쾌도, 낙락은 별로 관심이 없다는 양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지, 불평도 많아.”
“형님께서 일일이 아랫것들하고 상의를 해야 하나.”
고우사와 대홍랍강, 약왕은 저마다 한마디씩 불평하면서 수레로 돌아갔다.
“어쩐지 회주랑 군사가 같이 나와서 배웅을 하더라니.”
“이거 분명 능구렁이 머리에서 나왔겠구만.”
그 모습을 보고 이진휘와 안소방, 번산은 약간 긴장했다.
번산이 다시 마차를 몰기 시작한 소지광에게 물었다.
“지금 한 얘기가 무슨 뜻입니까?”
소지광이 곰방대를 물고 뻐끔거리며 답했다.
“미끼라고.”
“네?”
“아마 우리가 떠나면서 동네방네 다 소문을 냈을 거다. 귀중품을 싣고 은밀하게 강서성까지 가는 표물이 있다, 뭐 그런 식으로.”
“그럼 산적들이 죄다 우릴 노릴 거 아닙니까.”
“그렇겠지. 우린 아주 귀찮아질 거고, 오주의 다른 표행들은 상대적으로 안전해질 수 있고.”
번산이 떨떠름하게 허윤을 돌아보았다.
허윤도 입맛을 쩝 다시며 중얼거렸다.
“아직 도적 떼 한번 만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빨리 눈치챌 줄은 몰랐네. 역시 연륜이란 건 무시할 수 없는 거야.”
* * *
“어딜 가느냐!”
“우리는 녹림의 협객들이시다. 이 산을 지나려면 통행세를 바쳐야 한다는 걸 알고 온 것이렷다?”
“팔다리 없는 병신 되기 싫으면 네놈들이 숨긴 황금을 전부 내놓고 썩 꺼져라!”
오주를 출발하고 겨우 한나절 만이었다.
“황금? 이럴 줄 알았어.”
“벌써 소문 다 났네.”
“딱 봐도 삼류로구먼.”
“소문을 어떻게 냈기에 피라미까지 다 들러붙나.”
스무 명이나 되는 산적들이 피딱지가 덕지덕지 붙은 칼을 휘둘러 대며 다가왔다.
“이놈들! 무슨 헛소리야!”
하지만 마차에서도, 수레에서도 아무도 내리는 이가 없었다.
서로 눈치만 보았다.
고우사가 코웃음을 치며 말 위에서 드러눕듯 자세를 취했다.
“난 내 수레만 지키면 되니까 알아서 해.”
약왕도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수레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 나이에 저런 핏덩이들과 어울릴 수는 없다네.”
장용이 투덜댔다.
“육칠팔구는 밥만 축내지, 도움이 안 돼.”
어차피 시킬 게 뻔하니 안소방이 알아서 먼저 나섰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예전 같으면 청랑조인 데다 회주의 손자라 갑의 위치를 점하려 했을 텐데, 여기서는 번산보다도 나이가 어려서 어차피 그가 나서야 할 터였다.
그렇다고 꼭 나이순으로 대접을 받는 것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소지광은 안소방이 얼마나 실력이 늘었는지 모르기에 걱정스러운 투로 말했다.
“허 회주. 안소방 혼자 되겠나? 원래 실력이 좋은 편이긴 해도, 숫자가 너무 많아.”
대답은 장용이 했다.
“쯧쯧. 영감은 여전히 무식하네. 싸움을 머릿수로 하나. 잘 봐.”
장용이 머리를 찰랑거리며 떡하니 가슴을 펴고 산적들을 향해 외쳤다.
“녹림십팔채 소속이면 좋은 말로 할 때 돈만 놓고 가고, 잡졸이면 있는 돈 다 내놓고 가라!”
산적들이 어리둥절했다.
“뭐야. 뭐가 다른 거야.”
“둘 다 돈 내놓으란 소리 아냐?”
“인마, 방금 이 어르신들께서 녹림이라고 얘기했는데 귓구멍이 처막혔어? 엉?”
그 와중에, 허윤은 장용의 말을 예전에 들어 본 듯한 기억이 났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처음 만나서 동행할 때 산적을 만나 했던 대사와 거의 같았다.
― 녹림십팔채 소속이면 소속 산채를 대고, 잡졸이면 좋은 말로 할 때 가진 것 다 놓고 꺼져라!
지금은 녹림이라고 해도 돈을 내놓으라니, 그때보다 요구가 더 높아진 셈이었다.
소지광은 의아했다.
“청우산의 산채는 녹림 소속이 아닐 텐데?”
산적 중 가장 몸집이 큰 거한이 대도를 들고 말했다.
“제법 잘 아는군. 하지만 우리 청우산채도 얼마 전에 녹림의 형제가 되었다. 아마 형제의 수가 어마어마하게 늘었을 거다. 그러니 너희들이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을 알겠지?”
장용이 진지하게 생각하다가 답했다.
“너희들이 내놓은 돈을 수거해 간다?”
“미친 새낀가.”
“녹림 소속이면 돈만 내놓기로 해 놓고, 약속을 지키지 않겠다는 거냐?”
“우리가 언제 그런 약속을 했어, 이 또라이 같은 새끼야. 뭘 처먹었는지 머릿결은 또 곱네? 네가 새색시야? 머리에는 뭔 동백유를 처발랐는지 번드르르 해 가지고. 확 머리 가죽을 벗겨서 뒷간에 걸어 놓을까 보다. 쌍놈 새끼.”
“…….”
장용은 모처럼 대답을 바로 하지 못했다.
고우사가 뒤에서 낄낄거렸다.
“욕 한번 걸쭉하게 하는 놈들이로구나. 어이, 장가야. 뭐 하냐? 벙어리 됐냐?”
장용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랜만이라 그런가. 이다음에 내가 뭐라고 하는지 까먹었네.”
쾌도가 대신 욕을 하려 했다.
“이 새끼들, 확 팔다리를 찢어서…….”
그런데 그도 말을 하다가 말고 갑자기 고민했다.
“어? 옛날에 찢은 다음에, 어떻게 한다고 했더라? 접어서 갠다고 했나, 찢어진 데를 꿰맨다고 했나.”
장용과 쾌도가 오랜만에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고우사와 소지광 등이 의아해할 정도였다.
하나 허윤은 둘이 왜 그런지 알 것 같았다.
그동안 장용과 쾌도도 나름 명문세가와 대문파 사람들과 어울린 시간이 길었다.
상스러운 욕에 익숙지 않게 된 것이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장용과 쾌도도 고민하느라 나서지 않는 꼴이 되었다.
대홍랍강이 혀를 차며 나섰다.
“내가 좀 도와주지. 저 어리숙한 놈들 뼈마디를 분질러서 간만에 포대에 밥 좀 먹여야겠어.”
허윤이 주의를 주었다.
“조심하시오.”
고우사가 끄덕였다.
“조심해야지. 새 출발 하는데 시작부터 핏물 뒤집어쓰면 재수 없거든. 개업식에 똥물 뿌리는 거나 똑같지.”
점술가들은 그런 부분에 민감하다.
허윤이 멈칫했다.
대홍랍강은 다시 돌아와 앉았다.
“난 피 안 보고는 못 해.”
안소방도 당황했다.
암만 실력이 좋아졌어도 스무 명이나 되는 산적을 상대로 피를 안 보고 상대해야 한다면 어렵다.
보다 못한 번산이 몸을 일으켰다.
“내가 도와주지.”
거한이 화를 내며 대도를 치켜들었다.
“꼭 피를 봐야 정신을 차릴 놈들이구나! 쳐라!”
뒤에서 약왕이 말했다.
“어지간한 상처쯤 흉터 하나 없이 아물게 해 줄 테니, 걱정 말게들.”
안소방이 검을 넣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싸움이 시작됐다.
산적들은 심하게 당해 대부분이 다리를 질질 끌며 달아났다.
피를 보지 않고 어떻게 제압하나 고민하던 안소방과 번산이 죄다 다리를 부러뜨린 것이다.
혈도를 점해서 제압할 수 있으면 더 좋았겠으나, 날붙이를 휘두르는 다수를 상대로 그 둘이 할 수 있는 건 그게 최선이었다.
“헉헉…….”
다행히 안소방은 전보다 훨씬 실력이 늘었고, 번산도 운남에서 실전을 여러 번 겪어 크게 다치진 않았다.
조금 베이거나 멍이 들고, 옷이 엉망이 된 정도였다.
“이 약을 바르게. 우리 성숙곡에서 판매하는 고약이지. 원래 상당한 고가인데, 자네들에게만 그냥 주는 걸세.”
“고맙습니다…….”
허윤도 둘을 불렀다.
“이리 오게.”
허윤은 차례로 그 둘의 머리에 자기 머리를 대고 파문으로 ‘벌모세수’를 해 주었다.
혈도가 깨끗해지면서 기의 순환이 좋아져 피로가 금세 풀렸다.
안소방이야 익숙하지만, 번산은 처음이라 굉장히 놀랐다.
“이거, 몸이 굉장히 가뿐해지는데요?”
고우사가 쿡쿡 웃었다.
“그거 열심히 받아 둬. 이제 시작이야. 강서까지 아직 멀었다.”
안소방과 번산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