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Dragon Teacher RAW novel - Chapter 239
239화
“도귀?”
고우사가 의외의 이름을 들었다는 듯 ‘응?’ 하고 되물었다.
“그 도귀가, 내가 아는 도귀?”
“응. 아마 그럴걸.”
“에이, 왜 그 노괴가 아직도 안 죽고 돌아다녀. 네가 잘못 봤겠지.”
일행들도 웅성거렸다.
하나 대부분은 도귀가 누구인지 몰랐다.
그저 고우사의 반응이 평소와 달리 유난스러워서 누군가 싶었다.
“도귀가 누굽니까?”
“유명한 사람입니까?”
“아, 쟤한테 물어봐. 쟤가 무림 만물 학사 아냐.”
일행은 자연스레 안소방을 쳐다보았다.
“도귀가 누구인지 알아?”
“제가 다 아는 건 아니지만, 그분에 대해서는 좀 압니다. 흠.”
“누군데? 대체 누구기에 영감이 저래?”
“도귀는 그러니까…… 예전에 도 한 자루로 천하를 평정했다고 할 정도로 이름을 떨친 고수였습니다. 굳이 나누자면 전 전대쯤…….”
대홍랍강이 껄껄 웃었다.
“나는 전대인데, 나보다 더 오래된 사람이구먼.”
그런데 말을 하고 나선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가만? 전전대의 인물이 아직도 살아 있다면 보통 고수가 아닐 터인데?”
안소방이 얘기를 계속했다.
“맞습니다. 한때 정사마를 가리지 않고 강자를 찾아다니며 피를 뿌렸기에 도귀라고 불렸죠. 그것도 이십 대 후반에요.”
“굉장하군. 이십 대 후반이라니.”
일행들이 허윤을 바라보면서 감탄했다.
허윤이 말을 돌렸다.
“좀 전에 낙락은 노객이라고 하였잖은가.”
“그게 한참 전의 일이거든요. 지금이면 상수(上壽)가 좀 넘으셨을 겁니다.”
“허어, 나이가 벌써 백이 넘었다고? 그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라면 내가 들어 봤음직도 한데, 금시초문이네.”
“그분이 어느 순간 갑자기 도(道)에 심취하더니, 그 이후로는 사람을 해치기 싫다면서 무림의 일에서 손을 떼고 은퇴한 뒤 은거하셨다 합니다. 그게 나이 서른인가, 마흔 때던가…… 벌써 육칠십 년은 된 거죠.”
무림인으로서는 한창 전성기에 돌연 은퇴한 셈이다.
“한데 그런 분이 여긴 왜?”
“저도 잘 모릅니다만, 강호 야사에서 보면 아주 가끔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고 합니다. 경전을 옆구리에 끼고 떠돌면서 도를 설법하시는데, 분쟁이 생기면 중재도 하고 그러신대요.”
“아아, 그래서 정명도에게 부탁을 받고 우리와 상계를 중재하려는 거였군.”
“네. 다른 책의 소문에서는 무림에선 은퇴했지만 도귀로 불렸던 때와 똑같이 포기 없이 교섭을 해서,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다고도 하더군요.”
“그렇군. 어차피 우리도 적당히 풀 생각이었으니까 상관없지.”
그때, 고우사가 갑자기 생각난 듯 낙락에게 물었다.
“야, 꼬마 계집. 근데 넌 도귀를 어떻게 아냐. 본 적이라도 있어?”
낙락이 당과를 빨며 대답했다.
“없어. 근데 그냥 분위기가 그랬어.”
“아, 이 악랄한 꼬마 계집년이. 하…… 씨. 그럼 진짜 도귀도 아닌 거네.”
“도귀 맞아.”
“그걸 네가 어떻게 장담하냐니까?”
“분위기가 그래.”
“이거, 장용하고 쾌도 놈들이 물 다 흐려 놨네. 이놈이나 저년이나 죄다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 하고.”
허윤이 됐다는 듯 손을 들었다.
“우리가 고의로 속인 건 아니잖소. 궁한 건 저쪽이니 필요하면 다시 올 거요. 곧 남창의 상계와 무림을 초청해서 출범식을 할 것이니, 다들 준비에 만전을 기해 주시오.”
* * *
정명충효도의 도사들은 화가 난 노인, 도귀를 보고 깜짝 놀랐다.
“신선님, 왜 그러십니까?”
“뭐가 잘못됐습니까?”
도귀가 찢은 편액을 탁자 위에 놓았다.
“글자가 잘못됐네. 백(白)이 아니라 백(百)이라 하지 않는가!”
“예? 분명히 흰백 자가 맞습니다. 저희도 함께 가서 확인했습니다. 아무렴 두 글자를 구분하지 못하겠습니까.”
사실 도귀도 뭔가 의아하긴 했다.
어려운 글자도 아니고, 이런 쉬운 걸 잘못 볼 리가 없다.
그렇다고 안개 속의 그 사람이 거짓말을 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도사들이 말했다.
“아마 그쪽에서 이름을 등록한 자가 실수했나 봅니다.”
“거기서 백(百)을 원한다면 저희가 그것으로 다시 준비하겠습니다.”
“신선님께 괜한 심려를 끼쳐 죄송할 따름입니다.”
도귀는 혹시나 허윤이 기 싸움을 건 것에 자기가 넘어간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여 심기가 불편했으나, 도사들의 잘못이 아니므로 어쩔 수 없이 삭였다.
“알겠네. 최대한 빨리 준비해 주게. 나도 다시 한번 갖춰야겠군.”
도귀는 얇은 도경을 내려놓고 두툼한 도경으로 바꿔 들었다.
* * *
“미안. 백(白)이 맞대. 그렇게 됐어.”
울컥.
낙락의 말에 도귀의 얼굴이 순간 붉으락푸르락해졌다.
하나 그는 곧 평정을 찾더니 껄껄 웃었다.
“이곳 장주가 대단하긴 대단하구려. 나 도귀를 앞에 두고 기 싸움으로 협상의 우위를 차지하려 하다니.”
“아냐. 중간에 딴 애가 몰래 바꿔치기해서 그런 거야.”
“뭐, 어찌 됐든 좋소이다. 안 그래도 이번엔 둘 다 준비해 왔소. 이 정도 성의면 회주를 만날 정도는 될 것이오.”
중재에 실패하지 않기 위한 준비성이었다.
“또한 정명도 쪽의 제안을 직접 들어 보면 흡족할 것이니, 굳이 기 싸움을 할 필요가 없다고 전해 주시오.”
낙락이 종을 꺼내 울렸다.
딸랑딸랑.
“알겠습니다, 손님. 잘 따라오세요.”
한편 허윤은 종소리를 듣고 손님이 올 거란 걸 알았다.
하여 슬슬 움직이려는데, 우연히 번산과 안소방이 나누는 얘기를 들었다.
“번 형. 도귀가 온 모양이오.”
“나도 들었다.”
“번 형은 어떻소? 도귀가 혹시 백룡회에 들어온다면?”
“글쎄. 그럴 일이 있을까? 이미 수십 년 전에 무림에서 손을 끊은 양반인데.”
“뒷산을 보시오. 천하의 수로를 주름잡던 장강용왕이 한낱 산지기가 되어 있는 거. 누가 이리될 거라 생각이나 했겠소.”
“하긴…….”
“그래서 난 좀 걱정이오. 도귀가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나이 백 살이 넘은 오래된 분 아니외까. 우리 방회는 이제 막 시작해서 인재를 끌어모아야 하는데, 너무 나이 든 분들이 먼저 윗자리를 다 차지하면 젊은 인재가 오길 꺼릴 겁니다.”
“그럴 수도 있겠군.”
“일전에 약왕 손녀도 기 빨려서 약왕이 대신 온 거 모르시오? 그때 진짜 식겁했소.”
그 얘기를 들은 허윤도 살짝 고민이 되었다.
안 그래도 이미 육칠팔구가 거의 백룡회를 틀어쥐고 있는데, 거기에 백 살 도귀까지 들어온다면?
그러고 보니 일전에 오주에서 여기까지 올 때도 그렇고, 배를 탔을 때도 번산과 안소방만 죽어라 고생하고 노인네들은 뒤에서 잔소리만 해 댔다.
‘잔소리하는 이와 뒤치다꺼리하는 이의 비율이 맞아야 하는데, 하기야 지금은 너무 편중되어 있긴 하지.’
심지어 도귀는 무림의 일에는 끼어들지 않고 은퇴한 지 오래된 인물인 만큼 또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몰랐다.
인재 영입은 중요하지만, 그 때문에 젊은이들이 주눅 든다면 그것도 좋은 일은 아닐 터였다.
“으음. 이게 생각보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구나. 물론 무림을 은퇴했다 하니 그분이 백룡회에 들어온다는 보장도 없지만.”
도귀는 짙은 안개 속에서 낙락의 뒤를 쫓았다.
진법이 발동된 게 아닌데도 영향이 있는지 시야가 상당히 흐렸다.
“응?”
그때, 도귀가 문득 안개 속에서 누군가의 시선을 깨닫고 고개를 돌렸다.
“누구신가?”
시선이 잠시 도귀에게 머물렀다가 사라졌다.
앞서가던 낙락이 멈춰 서서 말했다.
“신경 쓰지 말게. 뒷산 사는 사람인데, 가끔 산책하느라 나오곤 해. 그럼, 계속 따라오세요.”
그냥 ‘뒷산 사는 사람’ 치고는 존재감이 굉장히 강했다.
도귀는 의아해하면서도 결국은 장원의 대문에 이르렀다.
길을 안내하던 낙락은 어느 순간 벌써 사라졌다.
그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해가 잘 안 드는 장원은 군데군데 거미줄이 있고 일부는 무너지기까지 해 무척이나 을씨년스러웠다.
“정녕 이런 곳에 사람이 산단 말인가?”
휘이익.
불어오는 바람은 귀기가 담겨서 뼈까지 시렸다.
“허어.”
그동안 곳곳을 다녔지만, 음기보다 귀기가 더 짙은 곳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한쪽에서는 누군가가 밭까지 일구고 있었다.
“흐흐흐. 으흐흐흐.”
혼자서 웃으며 괭이질을 하는데,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그가 도귀를 보고는 손을 멈추었다.
“노선배께서 도귀라 불리는 분이십니까? 강호의 동도들은 저를 약왕이라 불러 주고 있습니다.”
도귀는 갑자기 웃음을 머금고 흡족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약왕? 호오, 자네가 약왕이었군. 들어 본 적이 있네. 사실 굉장히 놀랐어. 설마하니 이런 곳에서 날 알아보는 이가 있을 줄 몰랐네.”
허윤 일행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저분이 도귀인가?”
“와…… 저분 나이가 상수라니, 믿기질 않네.”
“정말 신선처럼 보이기도 하고.”
기분이 좋아진 도귀가 껄껄 웃었다.
“희한하구먼. 어찌 나를 다 알아본단 말인가.”
일행들이 수군거렸다.
“야, 뭐 해. 가서 손님 맞이해야지.”
“누가 하는데요?”
“몰라. 아직 직책이고 뭐고 안 정해졌잖아. 그럼 그냥 막내가 해야지.”
결국 안소방이 나와서 도귀를 맞이했다.
“회주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그래도 나름 명문가의 자손인지라 예법이 깍듯했다.
“고맙네.”
도귀는 매우 만족해하며 장원 가장 안쪽으로 안내를 받았다.
보통 조상을 모시거나 나이 든 웃어른들이 기거하는 조사당에 허윤의 방이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나이가 어린 사람이 조사당에 사는 것도 이상한데, 방에서도 뭔가 묘한 불편함이 느껴졌다.
“흐음?”
그러고 보니 벽에 걸린 족자가 눈에 들어왔다.
구멍이 난 곳에 피가 흐른 듯한 자국이 있었다.
그리고 벽 한가운데에는 오래된 핏자국이 더덕더덕한, 실로 기괴한 조각상 같은 게 있었다.
“허어, 어찌 이런 귀물들을 끼고 사는가. 내 도력도 낮지 않거늘, 이 방에서는 좀처럼 산 사람의 기운을 찾기가 어렵네.”
“제겐 필요한 물건인데 다들 싫어해서 어쩔 수 없이 구석에 있는 방에 모아 놨습니다. 아, 제가 회주 허윤입니다.”
“나는 사준이라는 사람일세.”
“도귀 어르신이지요?”
“강호에서 날 아는 이를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자네 식견이 대단하군. 강호에서 난 소문이 헛된 게 아니었네.”
“과찬이십니다. 그래서, 오신 용건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정명도와 상계가 자네와 화해를 원하고 있네.”
“알겠습니다.”
“그간의 안 좋았던 감정을 모두 잊고…….”
“그러지요. 하실 말씀은 그게 끝이십니까?”
“……준비한 게 있네만.”
“아유, 뭐 됐습니다. 일전에 그들에게 면박을 줬으니 그걸로 퉁 치죠.”
“…….”
“자, 자. 그럼 방에 계속 계시기도 불편할 텐데, 얼른 일어서셔도 됩니다. 잘 알아들었다고 전해 주십시오.”
“아, 그, 그래. 그럼 그리 전하겠네.”
허윤이 공손하게 읍을 하자 도귀는 얼떨결에 방에서 나왔다.
그랬다가 방 앞에서 잠시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이건 아닌 듯했다.
하여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껄껄껄. 이것 참. 그대로 돌아갔으면 내가 또 당할 뻔했구먼. 내 인정하지. 자네란 사람의 수완이 보통이 아니로군.”
“예?”
“나를 두 번이나 물러나게 하였으니, 이제 됐잖은가. 인정하겠네. 그러니 자네가 진짜로 원하는 바를 얘기해 보게.”
“아까 그게 답니다만.”
“아니, 그럴 리가 없지. 내가 누군지 알면서도 이리 대하는 것은 달리 속내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허윤이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도귀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했다.
“그럼 그렇지. 좋아. 내가 먼저 가진 패를 솔직히 모두 꺼내놓겠네.”
도귀는 허윤이 대답하기도 전에 먼저 말을 이었다.
“상계에서 일만 금을 받아 왔고, 정명교에서는 차후 자네 일에 적극적인 협조를 하기로 약조했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것.”
도귀가 내민 것은 연판장이었다.
“자네를 남창 상인 협회의 협회장으로 추대하겠다는 모든 상인의 서명일세. 즉, 남창 상계의 최고 우두머리가 되는 걸세. 그러면 서안에서 온 상인들을 자네 뜻에 따라 협회로 받아들여도 되고, 어쨌든 화합의 의미로는 아주 좋은 제안일 걸세.”
“아, 예. 근데 돈 일만 금만 빼고 나머지는 됐습니다.”
도귀가 목소리를 낮추며 은근하게 말했다.
“이보게. 내가 누군지 안다면서. 그런데 내게 이걸 다시 가져가라 하면 내 체면이 어찌 되겠는가.”
“어르신이 누군지는 압니다. 은퇴한 전 전대의 고수가 아니십니까?”
“은퇴라니, 게다가 전 전대는 또 무엇인가. 사실 나는……!”
도귀가 약간의 울분을 토해 내려다가 다시 표정을 돌리고 껄껄 웃더니,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야 원, 자네는 사람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화법에도 능숙하군그래. 좋아. 내가 졌네. 자네같이 재밌는 친구도 오랜만이야. 그럼 이제 자네가 정말 원하는 바를 얘기해 봐. 이를테면, 나 도귀가 필요하다든지…….”
허윤의 표정이 떨떠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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