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Dragon Teacher RAW novel - Chapter 262
262화
허윤은 한숨 돌린 뒤, 도진이 빠져나가기 위한 세 가지 조건이 완성되었는지 확인해 보기 위해 동전을 던졌다.
두 개가 앞면. 하나가 뒷면.
아직 한 가지 조건을 만족하지 못했다.
소동파가 말한 세 친구가 매화, 대나무, 바위인 것처럼, 허윤이 뽑은 세 친구(三友)도 실제 사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그 세 친구는 각각 과거에 맺은 인연, 현재에 맺은 인연. 그리고 미래에 맺을 인연을 의미한다.
과거와 현재의 인연을 통해 도진은 제갈가의 포위를 통과할 수 있고, 최종적으로 미래의 인연을 통해 완전히 벗어나게 될 터였다.
“흠.”
허윤은 뒷면이 나온 동전을 집어 들었다.
과연…….
* * *
호천의 눈앞에 나타난 건 잘해야 열 살이나 되어 보이는 소녀였다.
하지만 느껴지는 존재감은 보통이 아니었다.
“누구십니까.”
“백룡회.”
호천의 눈에 의아함의 빛이 떠올랐다.
아까 그 도귀란 노인도 그렇고.
거긴 도대체 뭘 하는 곳이기에 이런 괴물 같은 자들과…… 장용, 쾌도와 같이 이상한 자들이 공존하는 건가.
호천이 물었다.
“어떤 이유로 날 막으셨소?”
“왜 그를 따라가려는 건가?”
“내 추적술에 유독 미심쩍은 반응을 보인 자가 있는데, 그게 저치요. 게다가 아까 저와 똑같은 옷을 입은 이를 만났는데, 느낌이 전혀 다르오. 아마도 그가 진짜 허 선생이겠지. 그럼 저건 누구겠소?”
그가 인상을 찌푸리면서 말을 이었다.
“이곳으로 왔다는 소문만 있고, 아직까지 자취를 드러내지 않은 자가 있소이다. 바로 흑…….”
“피붙일세.”
자기의 말을 뚝 잘라먹고 나온 그 말에 호천이 엉뚱한 얘기를 들은 듯한 눈으로 소녀를 쳐다보았다.
“무슨 의미요? 누가 누구의 피붙이인데? 그래서 저자가 흑룡이란 거요, 아니란 거요?”
당과를 문 작은 소녀가 그에 대한 대답은 않고 가만히 호천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냥 한 번 봐주면 안 되겠나.”
“장난하시오?”
호천이 슬슬 살기를 품기 시작했다.
“귀한 분이신 건 알겠소이다. 하나 내가 생면부지인 귀하의 말을 들어야 할 이유가 무엇이오?”
소녀, 낙락이 말했다.
“허 선생은 자네 부인을 구하려고 최선을 다했으니까.”
임옥운의 얘기에 호천의 얼굴이 굳었다.
“허 선생은 몇 번이나 설득하고, 최후까지 기다렸지. 하지만 그 친구는 허 선생의 말을 믿지 않았어. 아니, 믿지 않았다기보다 무림맹의 일을 우선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지.”
“만나 보신 것처럼 말씀하시오?”
“내가 자네 부인에게 조심하라 주의를 주었을 때, 그가 그렇게 말했네. 그게 자기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라고. 그게 무림맹의 뜻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얘기가 아니겠나?”
그러자 호천이 맥이 풀린 투로 눈을 감았다.
“……그럼 내 마누라가 한 얘기가 맞소.”
“자네는 은혜를 원수로 갚는 사람은 아닐 걸세.”
“허 선생이 마도와 내통한다거나 하면 얘기가 다르오.”
“그는 어떤 특별한 정의감으로 강호에 뛰어든 게 아닐세. 그저 마도에 원한이 있고, 대종사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일이 있어서일 뿐이지. 하나 지금 자네가 일을 망친다면, 그는 더 이상 강호에 남아 있지 않을 걸세.”
“…….”
“그가 없다면 종남파도, 화산파도 지금처럼 종문(宗門)을 보전하지 못하였을 거라네.”
“그를 의심하지 말란 얘기요?”
“정 궁금하거든 그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도 좋겠지.”
“그가 무심코 한 얘긴지 모르나, 내가 곧 부인과 아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 했소.”
“저런…….”
“때문에 그를 만날 때까지 살아 있을지나 모르겠소만.”
낙락이 뺨을 긁었다.
“그럼 가급적 빨리 만나 보게. 앞일을 보았으면 피할 방법도 있을 터이니.”
호천은 잠시 생각하더니 눈을 떴다.
그리곤 다시 허윤의 복장을 입은 도진을 따라가려 했다.
“그래도 가려는가?”
낙락의 물음에 호천이 답했다.
“무당파가 오고 있소이다. 나머진 허 선생에게 직접 듣겠소.”
그가 땅을 박차고 떠났다.
낙락은 그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연스럽게 모습을 감췄다.
도진은 남들 보기에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빠르게 걸었다.
“휴.”
마지막에 그 ‘사냥꾼’의 기가 느껴져서 깜짝 놀랐다.
다행히 제갈가의 포위망을 벗어나니 더는 쫓아오지 않는 듯했다.
“그나저나, 사부님 옷이 나한테도 잘 맞네.”
핏줄이고 비슷한 덩치이니 자연히 그렇겠지만, 어쩐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느 정도 시가지를 벗어나자 길에서도 더 이상 시신 같은 것들이 보이지 않았다.
하여 조금씩 마음이 안정되던 중, 갑자기 발작이 왔다.
“윽!”
식은땀이 나고 팔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잠깐 걸음을 멈추고 쉬려는데, 순간 머리 위로 몇 개의 그림자가 휙휙 날아갔다.
다행히도 지나간다 싶었는데, 그중 그림자 넷이 되돌아왔다.
그들이 도진의 옆으로 뚝뚝 떨어져 내렸다.
무당파의 도사들!
하필…… 이런 때에…….
도진은 머리가 하얘지는 것 같았다.
하필, 이 아니다.
이런 일이 생기기 때문에 점괘가 그렇게 경고한 것이다.
도진은 고개를 숙인 채 웅크렸다.
얼굴이 대춧빛으로 붉은 노인이 말했다.
“소협, 얼굴을 들어 보게. 몸이 어디 좋지 않은가 보군.”
옆의 도사들이 말했다.
“사숙님. 한시가 급합니다. 마도 놈들이 더 날뛰기 전에…….”
그러나 그들도 말을 하다가 멈추었다.
웅크린 도진의 몸에서 열이 오르기 시작해서다.
“흠?”
도사들이 의심의 눈초리로 도진을 훑기 시작했다.
대춧빛 얼굴의 노인이 손을 내밀었다.
“손목을 내어 보게. 내 한번 봐 주지.”
도진은 등줄기에 식은땀까지 흘렀다.
맥을 잡히면 내공이 드러난다.
그러나 한사코 손 내밀기를 거부한다면 의심을 살 터였다.
고개를 들 수도 없었다.
만약 사부의 얼굴을 아는 이들이라면 더 위험해지고 만다.
계속 웅크리고 최대한 발작을 억누르며 아픈 척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 아니에요. 그냥, 배가…… 아파서…….”
“우리 무당에는 좋은 약들이 많이 있네. 스스로 손을 내기 어렵다면 내가 보아 줄 테니, 너무 놀라지 말고.”
도진은 배가 아픈 것처럼 손을 감추고 있었으나, 노인의 손이 교묘하게 어깨를 짚고 팔꿈치를 누르며 도진의 팔을 풀어냈다.
아! 끝났다.
역시 시간을 너무 끌어서 기회를 잃은 것일까.
노인이 도진의 손목을 낚아채기 직전.
무당파 도사들이 긴장하며 어딘가로 고개를 돌렸다.
대춧빛 얼굴의 노인도 그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십리추종술(十里追蹤術). 무상의 그림자로구먼.”
호천이 곧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오랜만입니다, 대홍도인.”
“안쪽 상황은 어떠한가?”
“제갈가에서 광한성모와 이화궁의 잔당들의 퇴로를 차단했습니다. 이제 무당파에서 오셨으니 더 이상 피해가 늘지 않겠군요.”
“우리가 늦어서 미안하네. 한데…….”
말하려던 도중, 호천이 웅크리고 있는 도진을 힐끗 보고 대홍도인에게 한발 먼저 물었다.
“누굽니까?”
“음? 모르는 자인가?”
“제가 찾던 인물은 아닙니다. 저는 대인의 기를 느끼고 온 겁니다.”
“아아, 그랬군. 요즘 마공을 익힌 자들이 돌아다닌다 하여, 혹시나 이자가 그런 이 중 하나인가 의심스러워 보려 하였지.”
“그랬군요. 참. 흑룡에 대해서 들으셨습니까?”
도진은 가슴이 덜컥했다.
“알지. 그자도 이곳으로 왔다던데.”
“지금 제가 찾는 중입니다. 때문에 제갈가를 돕지 못하고 있으니, 번거롭겠지만 대인께서 수고를 해 주셔야겠습니다.”
“알겠네. 나중에 또 보지.”
대홍도인은 자신의 품에서 작은 환단을 꺼내 도진의 품에 넣어 주었다.
“이거면 배앓이가 좀 나아질 걸세.”
“고, 고맙습니다…….”
이내 대홍도인이 발돋움을 해 뛰어오르고, 무당파 도사들이 그런 그를 따라 떠났다.
도진은 겨우 안도했다.
마기와 귀기를 억누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만일 조금이라도 새어 나왔다면 무당파 도사들은 절대 그냥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 이 사람은…….
도진이 땀을 뻘뻘 흘리며 호천을 쳐다보았다.
억누르려 했지만, 이제는 얼굴에 핏줄까지 부풀어 올라 있었다.
그나마 무당파가 있을 때 그러지 않았던 게 다행이다.
호천이 도진을 가만히 보더니 말했다.
“가라.”
도진은 왜냐고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저 호천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재빨리 걸음을 옮겨 자리를 떴다.
호천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똑 닮았군. 그런데…… 아들을 찾는다지 않았나?”
대홍도인은 날듯이 달리고 있다가, 잠시 손바닥 안에 들린 것을 보았다.
도진의 품에 환단을 넣을 때, 안에 뭔가 감추고 있는 듯하여 슬쩍 하나를 빼낸 것이다.
그런데, 당과였다.
‘태도가 영 찜찜하여 혹시나 싶어 확인해 봤거늘……. 내가 너무 예민했나?’
천하의 흑룡이 품속에 당과를 넣고 간다는 것도 어울리지 않고, 목소리도 겨우 약관이나 되었을까 싶을 정도로 젊었다.
무엇보다 그가 흑룡이라면 호천이 모를 리 없었다.
그의 십리추종술은 대홍도인의 감보다 훨씬 뛰어나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점이 있었다면, 누구보다 마도를 증오하고 있을 호천이 그냥 넘겼을 리 없었다.
‘무기는커녕 마기도 느껴지지 않던 친구인데…… 괜히 미안하게 되었군.’
대홍도인은 약간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속도를 높였다.
* * *
빙그르르르.
다시 한번 내던진 마지막 동전이 돌다가 엎어졌다.
앞면.
그제야 허윤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도진이 무사히 탈출한 것이다.
“자,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허윤은 진작 두풍으로 광한성모를 죽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도진이 탈출할 기회가 생기지 않는다.
하여 여태 얼굴을 보여 주지 않고 멀리에서 광한성모에게 자잘한 피해만 주었다.
하나 이제 도진도 무사히 탈출했으니, 마무리를 해야 할 때다.
광한성모는 도진의 얼굴을 안다.
그때 도귀가 도와줘서 겨우 살았다고 했으니까.
때문에 죽지 않고 사로잡히게 되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살인멸구.
누군가를 의도적으로 죽일 생각을 하니, 아무리 상대가 악인이라 한들 입맛이 썼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허윤은 곧 광한성모를 만나기 위해 움직였다.
광한성모는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탈출로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제갈가의 포위가 워낙 두꺼워서 쉽게 뚫고 지나가기 어려웠다.
포위망이 약한 곳을 찾아 여러 곳을 돌며 두드리다 보니 슬슬 기운이 달리기 시작했다.
‘이 내가?’
멀쩡할 때에야 몇 날 며칠을 싸워도 지치지 않겠지만, 이미 부상이 너무 컸다.
‘내가 여기서 죽는다고?’
점쟁이 놈에게 속지만 않았으면, 막말을 하는 이상한 놈들만 아니었으면 이런 꼴이 되진 않았을 텐데!
분노한 광한성모는 자신을 쫓아오는 무리 중에서 가장 약해 보이는 쪽으로 몸을 틀었다.
저들 중에 몇 명을 붙잡아 방패로 써서 제갈가의 포위망에 던져 넣고 달아날 생각이었다.
하여 일단 수를 줄이려고 가장 앞에 있던 젊은 무인의 머리를 소수로 후려쳤다.
젊은 무인이 급하게 칼로 막았다.
떠엉!
“뭐야?”
광한성모가 당황해서 다시 내려쳤다.
떵!
또 막혔다.
광한성모가 거푸 힘주어 쳤다.
터텅! 텅!
“크윽!”
번산은 광한성모의 내공을 버티지 못하고 엉덩방아를 찧었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그의 칼만은 멀쩡했다.
어지간한 보검도 이 정도면 깨져야 정상인데, 왜 멀쩡한가?
이미 제갈가의 보검도 몇 개나 분질렀거늘?
내가 너무 지쳤나?
광한성모는 얼떨떨해하며 주저앉은 자의 칼을 보았다.
겉보기에는 그냥 투박한 칼인데, 왠지 모르게 느낌이 범상치가 않았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여긴 왜 이렇게 보검, 보물을 든 놈들이 많아!
그러는 와중에도 시간이 끌려서 제갈가의 고수들이 달려왔다.
광한성모가 다른 방향으로 몸을 날려 달아났다.
담장을 밟고 지붕을 뛰어넘어 골목을 도는데, 길을 막고 있는 자가 있었다.
어째 복장과 얼굴이 익숙했다.
처음에 점쟁이가 백룡회주라고 말해서 헷갈렸던 그 청년이다.
분명 잘못 짚었는데, 이상하게도 대종사의 피를 받은 게 느껴졌던!
“잘 만났다. 네놈 때문에 얼마나 꼬였는지 아느냐! 그냥 죽여 주마.”
광한성모가 이를 박박 갈면서 청년을 향해 달려들었다.
별다른 무공도 익히지 않아서 그때도 도귀라는 노인만 아니었으면 잡고도 남았다.
한데 광한성모는 청년과의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아까와 얼굴이 좀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아까는 정말 흔하디흔한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그러면서도 살갗이 곱고 매끄러워서 어쩐지 비범한 느낌을 주었다.
분명 같은 옷을 입고 있는데.
광한성모는 불길한 느낌이 들어 걸음을 멈췄다.
“네놈은 누구냐! 아까 그놈과는 무슨 관계냐!”
“혈안…….”
청년이 검지와 중지를 내미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가 멈칫거렸다.
그러더니 갑자기 웃었다.
“하하하하!”
광한성모가 울컥했다.
아까 눈을 찔려서 당한 것도 굉장히 자존심이 상했는데, 지금 이놈이 그걸 하려다가 말고 비웃는 것 같았다.
“이노오오옴!”
광한성모는 한쪽만 남은 소수에 잔뜩 내공을 모아 벼락처럼 청년의 머리를 내려찍어 갔다.
소수가 청년의 머리에 닿기 전에, 청년의 발이 시야의 밖에서 올라와 광한성모의 턱을 후려쳤다.
천근신퇴공 광소타.
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