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the Machine God RAW novel - Chapter 117
기계신과 함께 – 117
“응?”
“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로 쏠렸다.
“그게 그렇잖아. 타이탄 조종하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어? 심한 사람은 반년을 연습해서야 저걸 탈 수 있었어.”
“맞아.”
“그렇지.”
“내가 반년이 걸렸어.”
사람들이 저마다 동조했다.
의문을 제기했던 사내가 말을 이었다.
“근데 그걸 타자마자 조종했다고? 일단 이것부터가 도무지 믿기지 않아. 하지만 저 사람이 오래전부터 타이탄을 타왔던 자라면 그 실력을 이해할 수가 있지! 그런데 오래전부터 타이탄을 저토록 잘 조종했던 자가 있다면 우리나라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을까?”
“그래······.”
“듣고 보니······.”
의심에 열기가 더해지기 시작했다.
“차라리 저 사람이 저 제국에서 우리나라에 파견된 첩자라면, 그것이 오히려 믿을 법한 말이지 않을까?”
사람들이 의심의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는 사람들을 쏘아보았다.
시간을, 끌어야 했다.
“어제.”
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강렬한 악센트를 심어 말하기 시작했다.
“제국 개자식들이 저희 마을을 유린했습니다. 그놈들의 손에 마을의 형제 자매들, 어르신들, 그리고 아이들이 죽고 납치당해 끌려갔습니다. 근데 제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었는 줄 아십니까? 바라만 보는 거였습니다.”
나는 이를 으득, 갈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뭐라도 하고 싶어 미칠 것 같았지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놈들은 타이탄을 타고 있었거든요!”
나는 나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을 노려보았다.
마치 ‘너희가 범인이다!’라는 것처럼.
“죽을 것 같았습니다. 어제도 검은 타이탄들이 마을을 쳐들어와 건물을 파괴하고 사람들을 납치해 갔습니다. 근데 이 개새끼들이 제 이웃이 납치하려 그러지 않습니까!”
나는 마치 피눈물이 날 것처럼 눈을 부릅떴다.
피눈물은 안 났지만 눈이 아파서 눈물은 찔끔 났다.
그 눈물을 보고 살짝 표정이 풀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런데 맙소사, 근처에 마침 기사님이 버리고 도망간 저 타이탄이 보이더군요. 비록 양팔이 잘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타이탄이었지만, 저는 이웃을 지키기 위해 탔습니다. 이게 제가 타이탄을 타게 된 경위입니다. 저 양팔이 잘리고 아무도 안 탈 것 같은 타이탄을요!”
내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다들 조금 표정이 풀어지며 미안한 표정이 되었다.
“저는 평소에 병사와 기사님들을 존경하고 국가에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기회가 왔을 때, 제가 타이탄을 다룰 수 있다는 재능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나라에 도움이 되고자 싸운 겁니다. 그런데 그런 저를 이렇게 취급하시다니······.”
내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나와라, 좀.’
속으로는 투덜거리며.
“제 이름과 신분 등은 투리마을에 가서 확인······.”
그때였다.
“죽여!!”
“으하하하하!!”
“돌격이다! 이 참새 자식들아!!”
왔다. 기다리던 것이.
제국군 타이탄이 다시금 쳐들어온 것이다.
나는 아까 이곳으로 오기 전에 제국군 타이탄 십수 기가 숲을 헤집으며 다가오는 것을 보고 스리슬쩍 도망을 쳤다.
이곳에 위치한 왕국군 주둔지는 전술적 요충지이긴 했지만 외부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길을 헤매고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거리가 가까운 만큼 주둔지가 곧 발견될 거라 보였다.
나는 그 사실을 아군에게 알리지 않았다.
왜 알리겠는가?
지금 아군의 위기는 곧 나의 기회!
나는 기회를 잡기 위해 바로 움직였다.
“알렉스!!”
“네?”
알렉스가 얼떨떨하게 물었다.
“저도 같이 태워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아, 아 예. 물론입니다. 어서 타시지요.”
알렉스가 웃는 낯으로 순수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렉스라면 날 태워줄 줄 알았다.
아까부터 통신으로 내 조종 실력에 감탄하는 소리를 지겹도록 들으면서 왔으니까.
그 말든 마지막에는 숫제 찬양처럼 바뀌어 있었고, 아까 사람들이 날 의심할 때도 한 점 의심 없이 내게 ‘믿는다!’는 눈빛을 보내왔다.
심지어 나를 자신의 생명의 은인으로 여기는 이 순수한 사람이 나를 안 태워줄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알렉스, 실례인 줄은 알겠지만, 잠시만 제가 조종하겠습니다.”
“헉.”
알렉스가 헛바람을 토했다.
역시 안 되나?
“영광입니다! 마스터의 조종 실력을 두 눈으로 보게 되다니!”
반대였다.
알렉스는 기대감으로 눈이 초롱초롱해진 상태였다.
“그럼.”
나는 조종석에 앉아 빠르게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빠르게 출격 준비를 마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갖추었다.
양팔과 양다리가 온전한 타이탄을.
“다 죽었어.”
아카리프 왕국의 전설이 될 존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로봇처럼 규칙적인 발걸음을 반복하는 다른 타이탄들과 달리, ‘그’ 푸른 라돈만은 마치 육상 선수를 방불케 하는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적들을 향해 튀어 나갔다.
혼자 무리에서 튀어나와 선두에 서버린 푸른 라돈.
“으하하! 쟤 뭐냐!”
“영웅 놀이라도 하려는 건가?”
아직 먼 곳에서 제국의 타이탄 탑승자들이 그런 푸른 라돈을 비웃어댔다.
마치 불에 뛰어드는 부나방처럼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눈썰미가 있는 사람들은 금세 이변을 알아챘다.
“야, 저 자식 심상치 않다.”
“모두 조심해! 저 타이탄, 뭔가 이상해!”
무결의 움직임에서 그의 심상찮은 실력은 이들이 주의를 주었다.
그러나 어딜 가든 꼭 말을 안 듣는 놈들이 있었다.
“뭔가 이상해 봐야 혼자인데 뭐.”
그렇게 말하며 검은 파이톤 한 기가 앞으로 나섰다.
그가 어느새 정면까지 다가온 푸른 라돈을 향해 검을 내려쳤다.
“엄마 젖이나 더 먹고 와라, 이 자식아!”
그리고 그것이 그의 유언이 되었다.
슥-
푸른 라돈이 검을 간단히 피하며 검은 파이톤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캉-
들린 것은 작은 쇳소리뿐.
털썩.
하지만 그가 지나간 직후 검은 파이톤이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대체 그가 어떻게 당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뭐, 뭐야, 어떻게 한 거야!”
“저 녀석, 왜 움직임을 멈춘 거지?”
하지만 잠시 후, 무릎 꿇은 타이탄의 겨드랑이 부분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리며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 있었다.
붉디붉은 인간의 피.
겨드랑이에서 조종석까지 이어지는 초신속의 찌르기가 눈 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지고 지나간 것이다.
모두가 경악했다.
“말도 안 돼! 타이탄이 어떻게 저렇게 움직여!!”
“푸른 라돈이라면 우리 검은 파이톤보다 0.5단계 정도 급수가 낮은 기종 아니었어?”
제국 측 타이탄 조종사 대부분이 당황으로 몸이 굳은 가운데 빠르게 상황을 파악한 자들도 있었다.
“다들 방어 태세! 빨리 진형 굳혀!!”
하지만 이미 한발 늦은 대응.
무결의 푸른 라돈은 이미 적진의 코앞에 다다라 있었다.
“으, 으아!!”
“죽어!!”
두 기의 타이탄이 비명 같은 고함을 지르며 검을 휘둘러 왔다.
그러나 푸른 라돈은 마치 곡예를 부리듯 교묘하게 두 칼의 틈을 빠져나가며 검을 놀렸다.
캉, 캉!
털썩, 털썩.
두 타이탄의 움직임이 정지했다.
“오, 오지 마!”
“저 자식 잡아!!”
이번에는 세 타이탄이 검을 휘둘러왔다.
그래도 오랜 시간 손발을 맞춰왔던 동료라 그런지 빈틈이 없는 합격술!
하지만.
캉!
푸른 라돈의 검이 슬쩍 움직이더니 세 검 중에 하나를 툭 쳤다.
카캉!
그러자 그 검의 경로가 미세하게 변경되며 다른 두 검의 움직임을 방해하게 되었다.
푸른 라돈은 그 틈으로 빠져나가며 두 기의 타이탄을 또다시 쓰러뜨렸다.
제국군 사이로 공포가 번져갔다.
“저, 저 저 새끼 도대체 뭐야?!”
“어떻게 저런 새끼가 왕국군에!”
“타이탄 마스터인 건가? 아니, 타이탄 마스터라면 저게 가능한 거야?”
그러는 사이에도 다들 무결을 상대하며 진영을 짜려 애를 썼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그들과 무결의 싸움은, 마치 양쪽 무릎에 관절염이 걸린 검사들과 상대의 모든 움직임을 예측하고 있는 일류검사의 싸움과 같았다.
그만큼 그들은 기동성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콰직 콰직.
푸른 라돈은 때로는 적기의 다리를 베어버리기도, 그리고 팔을 베어버리기도 하며 야금야금 적의 전력을 약화시켜 갔다.
“으악!!”
또다시 두 기의 타이탄이 쓰러졌다.
“저거······ 검술인가?”
“아니······ 그냥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것 같은데······.”
“뭐야, 저 기괴한 움직임은?”
그 모습을 관찰하던 왕국군 기사들이 의문에 빠졌다.
분명 무결이 사용하는 것은 검술이 아니었다.
모든 검술이 가지는 검술 특유의 형식과 틀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저 누구나 할 수 있는 간단한 찌르기와 막기, 베기.
그것이 푸른 라돈이 펼치고 있는 검술의 전부였다.
“저런 건 처음 봐. 기묘해······ 하지만.”
한 기사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무섭도록 효율적이야.”
다른 기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을 받았다.
그 말이 오가는 사이에 또다시 두 명의 타이탄이 쓰러지고 말았다.
“쟤, 쟤네 도망치려 그런다!”
“모두 포위해!”
얼떨떨하게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왕국군은 타이탄 조종사들은 슬금슬금 사기가 꺾여 전투 이탈의 조짐을 보이는 제국군을 밖에서부터 포위했다.
그리고 단지 포위만 하고 있었다.
그랬을 뿐인데······.
전투가 끝났다.
무결은 그날, 그 자리에 있던 왕국군 기사들로부터 ‘타이탄 마스터’의 호칭을 얻었다.
* * *
다음 날.
“그래, 자네가 바로 그 타이탄 마스터인가?”
보디빌더를 연상케 하는 강인하고 단단한 육체.
짧게 자른 하얀 머리와 수염.
60대 초반으로 접어든 것 같은 묵직한 노인네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내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투리마을의 무이켈이라고 합니다.”
내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눈앞의 이 노인네가 바로 이 지역 일대의 지휘를 맡은 만인대장 가르오네였다.
그가 나를 바라보던 눈빛을 내려 책상 위의 서류를 손으로 넘겨보았다.
“음······ 일단 투리마을 출신인 건 조사를 통해 확인되었고······.”
그가 계속해서 서류를 살폈다.
“보고서에 따르면 혼자서 20여 기의 개자식들 타이탄을 부쉈다던데, 정말인가?”
티이케 제국은 검은 개가 그려진 국기를 쓴다.
그래서 제국의 적대국들은 지휘고하 상관없이 그들을 ‘개자식들’이라고 부르고는 했다.
“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어쩌다 보니?”
그 말에 서류를 읽던 만인대장 가르오네가 다시 고개를 들어 어처구니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네, 해보니 되더군요.”
“농사꾼이라는 사람이, 그것도 타이탄을 바로 그날 처음 타본 사람이 혼자서 20여 기의 타이탄을 고철덩이로 만들어? 허, 참.”
그는 기가 막힌다는 듯 웃었다.
“하긴, 타이탄 조종의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종종 발견되어 왔으니까. 자네 정도의 천재가 나타날 수도 있지. 흠······.”
그가 턱을 짚고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나는 그가 생각을 마칠 때까지 뒷짐을 지고 가만히 기다렸다.
“하지만 역시 못 믿겠어. 내 눈으로 볼 때까진.”
그렇게 말한 그가 큰 소리로 외쳤다.
“이봐! 브록시아 불러! 타이탄 갖고 연병장으로 오라 그래!”
“예! 알겠습니다!”
천막 밖에서 복창 소리가 들려오더니 어디론가 빠르게 사라지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자네, 아직 싸울 수 있지?”
나는 씨익 웃었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