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the Machine God RAW novel - Chapter 232
기계신과 함께 – 232
“그래, 당신은 내가 차지했어야 마땅할 지위와 명예를 혼자 독식해 버렸지. 그 자리는 마땅히 나의 것이 되어야만 했어!!”
“헐······.”
무결은 고통으로 식은땀이 흐르는 와중에도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자기를 이은 최고의 헌터라는 자가 고작 이런 그릇이었다니.
심지어 리처드 아서는 전생에서는 최후의 30인에조차 이름을 못 올렸던 자였다.
아예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보니, 그 이전 어느 전장에서 죽은 헌터임에 분명했다.
그런데 무결의 회귀로 인해 발생한 나비효과로 기회를 얻은 게 분명한 자가 ‘1등 못해서 억울해요’라는 철부지 같은 소리나 하고 자빠져 있다니.
탈출한 어이가 물구나무 서기 하며 자신을 놀리는 기분이었다.
“2등! 2등!! 아무리 노력해도 난 항상 당신의 뒤였지. 모두가 날 모차르트에 가려진 살리에리라 불렀어. 넌 그 기분이 얼마나 비참했는지 알아?”
그렇게 무결의 어이를 탈출시킨 리처드는 더욱더 광기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그러다 마침내 신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지! 널 죽일 수 있게 해준다는 신의 목소리를!!”
그 순간.
그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확히는 그 녀석을 ‘뛰어넘을’ 수 있게 해준다는 소리였지.”
아무것도 없던 공간 속에, 돌연 한 사내가 서 있었다.
회색 머리카락을 길게 허리까지 늘어뜨린 그는, 리처드보다 더욱 선이 가는 미남자였다.
그러나 그 가는 선이 무색하게도, 그에게 풍기는 분위기는 미국 제일의 헌터라는 리처드가 개미로 보일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반갑군. 나는 ‘루시퍼’라고 한다.”
그가 쇠사슬에 묶인 무결을 내려다보며 무감정한 어조로 말했다.
“······!”
무결은 그의 정체를 듣고 흠칫 놀라고 말았다.
‘과연, [타천사의 쇠사슬]의 타천사는 저자를 가리키는 말이었던가.’
떨어진 샛별.
지옥의 왕.
그를 가리키는 수식어는 많았다.
하지만 역시 가장 유명한 것은 ‘타락한 천사.’
아마 리처드 아서의 스킬은 저 ‘타천사 루시퍼’로부터 비롯된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의 뒤에는 한 사람이 더 있었다.
저벅저벅.
그녀가 걸음을 옮겨 루시퍼의 뒤에서 빠져나왔다.
“······!!!”
무결은 눈이 루시퍼를 봤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치떠졌다.
얼굴을 처음 봤지만, 알 수 있었다.
“어머, 알아본 모양이구나?”
그리스의 전통 의상인 키톤(chiton)을 하늘하늘하게 늘어뜨리고 총기 넘치는 두 눈을 빛내는 아름다운 여인.
그녀는 방금 전까지도 무결의 부름에 침묵하던 신기(神器) [아이기스의 방패]에서 풍겨 나오던 마력과 같은 향기를 지닌 마력을, 있는 그대로 뿜어내고 있었다.
그렇다는 말은······.
그녀가 바로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아이기스의 방패]의 주인이자-
“······어떻게 못 알아볼 수가 있겠습니까, 아테나.”
올림포스의 12주신 가운데서도 따르는 자들이 많기로 유명한 전쟁의 여신.
아테나라는 얘기였다.
“호호, 역시 눈치가 빠르구나.”
그녀가 무결의 말을 긍정하며 웃었다.
“휴, 내가 너한테 정보 하나하나 풀 때마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몰라.”
그녀가 힘들었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나 얼굴만은 숨길 수 없는 미소로 가득했다.
“이거 하나 얻자고, 내가 응? 얼마나 고생한 줄 알아?”
그녀의 손길이 살며시 무결의 가슴께로 향했다.
그리고 그녀의 손은······.
황금빛 깃든 에메랄드빛의 목걸이.
즉, 슈리의 본체인 [에메랄드의 서]에 가 닿았다.
“슈리!!”
[마스터!!]아테나의 섬세한 손길에 의해 슈리가 무결의 목에서 분리되어 나갔다.
슈리의 다급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으나, 무결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마스터!! 이상한 마력이 저희의 연결을 끊고 있······.]그 말이 끝이었다.
슈리로부터는 더 이상 아무런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드디어, 드디어 내 것이 되었구나.”
아테나가 감개가 무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말에서 오랜 세월을 인내해, 마침내 원하는 것을 얻어낸 자의 도취감이 묻어났다.
“너 따위는 몰랐겠지. 이 목걸이의 진정한 가치를.”
아테나가 무결을 슬쩍 내려다보았다.
비웃음조차 띠지 않는 오만함.
벌레를 바라보는 인간의 무감동한 눈이 그러할까.
무결은 그 오만한 얼굴에 주먹을 박아 넣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이 모든 일의 배후에는, 지금까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았던 아테나가 있었던 것이다.
“당신······ 이 세상에 벌어진 일을 바로잡기 위해 내게 모든 걸 협력하겠다고 서약하지 않았던가?”
무결이 아테나를 노려보며 그렇게 물었다.
그러나.
“그럼, 계속 수고해 줘~”
아테나가 볼일을 끝났다는 듯, 그대로 뒤로 돌았다.
그러다가 문득 발걸음을 멈추더니, 다시 무결에게로 되돌아왔다.
“그 약속은, 물론 잊지 않았어. 나는 여전히 너희 세상에 일어난 일을 ‘바로잡으’려 지금도 노력하고 있지. 다만-”
그녀가 은근슬쩍 몸을 숙여 무결의 귓가에 입을 가져다 댔다.
부드러운 숨결이 무결의 귓가를 스쳤다.
“내 입장에서는 너희 인간이 모두 멸망하는 게, 모든 걸 ‘바로잡는’ 거란다.”
부드럽고 달콤한 숨 내음과는 다른 끔찍한 의미의 문장이 무결의 머릿속을 지나갔다.
“루시퍼, 나 카르마 포인트 엄청 많이 떠안은 것 알지?”
“안다. 뒤처리는 내가 하도록 하지. 당신은 약속대로 해석된 지식을 내게 넘기도록.”
“알았어, 그럼 부탁해~”
아테나가 뒤로 손을 내저으며 멀어져 가더니, 어느 순간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그 ‘뒤처리’라는 게 무엇일지는, 안 봐도 뻔했다.
“걱정 마. 죽이지는 않을 테니.”
리처드 아서가 싱긋 웃으며 무결에게 다가섰다.
“대신 넌 영원한 내 노예가 될 거야.”
놈이 무결에게 다가가, 그의 몸을 감싼 사슬에 손을 얹었다.
무결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차라리 죽는 게 더 나은 상황이 닥쳐오고 있었다.
‘슈리, 네가 원하던 게 이런 거였니?’
하지만 지금 그는 항상 가슴에서 느껴지던 따스한 펜던트의 빈자리가, 너무나도 슬플 뿐이었다.
리처드가 손을 얹은 곳에서부터 사슬이 까맣게 변해갔다.
“이 과정만 넘기면 넌 내게 종속될 거다.”
놈이 희열에 찬 표정으로 더욱더 마력을 전개했다.
그러자 쇠사슬이 까맣게 변해가는 속도가 가속되었다.
무결의 몸을 감싼 쇠사슬이 모조리 까맣게 물들게 되면, 그때야말로 그가 그토록 증오하던 가장 강력한 인간이, 그의 휘하에 놓이게 될 터였다.
루시퍼가 옆에서 그 모습을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특유의 포커페이스로 감정을 숨겼지만, 그는 지금 매우 만족스러운 상태였다.
그토록 올곧고 정의롭던 인간이, 또다시 자신에 의해 타락했다.
아니, 이제 곧 타락하려 한다.
저 검은 쇠사슬로 동족인 인간을 억압하는 순간 그의 힘을 계승한 ‘리처드 아서’의 타락은 완성된다.
‘그럼 그의 영혼은 이제 내 것이 되는 것이지.’
올림포스 신족답지 않게 고고하게 굴던 아테나가 이번에는 올림포스 신족답게 욕망에 가득 찬 제안을 건네왔다.
‘하긴, [그]의 유산이 걸린 일이니.’
‘제4신계’로 가버린 [그]의 유산이라면, 온갖 고상 떨던 아테나가 이처럼 ‘악’에 가까운 일을 행한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정말 좋군.’
무표정하던 그의 입가에도 마침내 미소가 그어졌다.
이 얼마나 수지가 맞는 장사란 말이던가.
고고한 인간의 영혼을 타락시켜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그것을 이용해 [그]의 유산의 일부를 얻는다.
이토록 큰 소득을 얻는 것은 근 수천 년 만에 처음인 것 같았다.
만약 리처드 아서가 신무결이라는 저 인간에게 ‘열등감’과 ‘질투’라는 감정을 느끼지 않았더라면, 시도조차 해볼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리처드 아서는 타락했다.
무결을 감싼 쇠사슬은, 이제 거의 전 부위가 검게 물들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심장이 위치한 가슴 부위만 장악하면 무결의 세뇌는 끝이 날 것이었다.
무결은 모든 것을 포기했는지 눈을 감고 아무 미동도 없었다.
모르긴 몰라도 무결의 감은 두 눈은 지금쯤 새까만 색으로 뒤덮여 있을 터였다.
이제까지 리처드가 세뇌시켰던 다른 많은 몬스터들처럼.
그렇게, 쇠사슬의 검은빛이 점차 마지막 남은 무결의 가슴부를 물들이려 했다.
그 순간.
화아아-
무결의 가슴 인근에서 옅은 빛이 일었다.
그리고.
번쩍.
무결의 눈이 번쩍 떠졌다.
그의 두 눈은 검게 물들어 있을 것이라 예상한 것과 달리 본래의 색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닛, 어떻게······!”
리처드 아서가 경악했다.
무결의 눈이 깨끗하단 것은 그의 정신침식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뜻이었다.
리처드가 원인 모를 이변에 당황할 때였다.
위잉.
갑작스럽게 무결의 팔목에 채워져 있던 스마트 워치가 낱낱이 해체되었다.
철컥철컥.
그리고 손목의 스마트 워치는 너무나 작아서 벌레 한 마리 잡을 수 없을 것 같은 총의 모습으로 재조립되었다.
“리처드 아서.”
무결이 리처드를 똑바로 직시하며 말했다.
“곧 찾아가겠다.”
까딱.
무결이 아주 작게 검지를 움직여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자-
피융!
총의 바로 앞 ‘공간’에 아주 작은 구멍을 뚫었다.
너무 작아서 그냥 먼지처럼 보일 뿐인 구멍.
“이런.”
그러나 루시퍼는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탄식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저 구멍을 메워야 했다.
그러나 지금의 그는 [로스트 에덴]에 현신하며 만들어낸 허상(虛像).
지금 자신의 모습을 유지하는 것 이외의 어떤 간섭 행위도 불가능했다.
“리처드.”
그는 깨달았다.
“아깝구나.”
모든 일이 틀어졌다는 것을.
그는 아깝다는 듯 리처드를 바라보았다.
“안 돼—!!!”
리처드는 그의 말에서 심상찮은 느낌을 받고 무결을 당장 죽이려 했다.
하지만.
파팟.
[로스트 에덴]의 ‘폭력 금지의 제약’이 그의 살수(殺手)를 막았다.그리고······.
[던전에서 퇴장됩니다.] [증명의 탑이 생성됩니다.]무결의 몸이 환한 빛에 휩싸여, 사라졌다.
* * *
거대한 철제 모양의 던전 [기계룡의 둥지] 근처.
파앗-
환한 빛이 일며 무결을 비롯한, 던전에 있던 헌터들이 나타났다.
무결은 묵묵히 툭툭 몸을 털어 몸에 묻은 리처드의 마력을 털어냈다.
[기계룡의 둥지]가 클리어되고 10분의 시간이 지나 던전 내에 있던 헌터들이 대대적으로 던전 밖으로 퇴장당한 것이다.던전에 남은 모험가들을 퇴장시키는 시스템적인 간섭 행위.
리처드의 사슬에 묶여 있던 무결이 노린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본래라면 무결과 리처드는 이 시스템 간섭 행위에 간섭을 받지 않게 되어 있었다.
리처드의 [로스트 에덴]은 [기계룡의 둥지]와는 전혀 별개 차원의 공간이니까.
하지만 무결은 공간에 작은 구멍을 뚫음으로써 리처드의 [로스트 에덴]과 던전 [기계룡의 둥지] 속 세상을 [기계룡의 둥지]와 연결시켰다.
그럼으로써 시스템적인 간섭 행위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무결은 불과 10분 전까지만 해도 모르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무결의 곁에서 사라진 슈리가 남긴 [지식]이었다.
무결이 멍하니 자신의 가슴섶을 풀어 헤쳤다.
그곳에는 펜던트의 모양이 날개 문양이 문신처럼 새겨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