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the Machine God RAW novel - Chapter 259
기계신과 함께 – 259 (完)
무결의 부탁에 선뜻 [엘리자베스]의 조종간을 내준 강하나는, 무결이 [엘리자베스]를 조종하는 모습에 심사가 복잡했다.
일견 능숙하게 조작하는 듯했으나, 무결의 원래의 조종 실력을 알고 있던 그녀는 그의 조종 실력이 얼마나 퇴보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무결은 [기간테스]로 우주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버튼을 잘못 누르는 등 자잘한 실수를 했다.
큰 실수는 아니었지만, 덕분에 우주로 진입하는 것이 몇 초 정도 늦어졌다.
“역시 [디바이스 컨트롤]이 없으니 조금은 어렵네요.”
무결이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강하나를 바라보았다.
“[디바이스 컨트롤]은 완전히 잃은 거예요?”
“예, 그동안 몸에 익힌 기기는 그래도 어느 정도 다룰 수 있지만, 스킬 자체는 사라졌어요.”
“아······.”
강하나가 무결의 자신의 시그니처와 같았던 [디바이스 컨트롤]이 사라졌다는 모습을 담담하게 말하는 모습에서 알 수 없는 슬픔에 잠겼다.
“그래도 괜찮아요. [배틀 센스]는 무사하고······ 또 몸에 익혀놓은 무공이 많아서 전투력은 어느 정도 복구했어요. 대신 이제 스킬이 무공 위주가 되었지만.”
무결이 빙긋 웃었다.
그가 약해진 이유는 슈리를 살리며 영혼의 격이 완전히 일반적인 인간의 수준으로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카르마 포인트’로 대변되는 영혼의 격은 곧 모든 이능(異能)의 척도.
영혼의 격이 일반인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말은 그가 낼 수 있는 이능력의 힘 또한 일반인 수준의 것이란 말이었다.
사실 그 상태로 일반 오거 두 마리를 잡았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미친 듯한 수준의 헌터인지를 나타내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무결은 그 상태로는 만족할 수 없어,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재활 수행을 떠났다.
영혼의 격은 고난과 시련을 넘어 정신을 강하게 단련함으로써 상승하는 것.
이미 그 수라의 길은 전생까지 합해 십수 년간이나 걸어왔던 길이었다.
그는 이제까지 해왔듯 두 달간 다시 몬스터들과 목숨을 건 사투를 벌임으로써 영혼의 격을 빠르게 올릴 수 있었다.
그 덕에 무결은 자신조차도 예상하지 못한 속도로 빠르게 영혼의 힘을 찾아갔다.
하지만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해 아직까지 모든 힘을 되찾지는 못했다.
그가 메피스토를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아직까지 그를 주인으로 섬기는 [테베르크]가 힘을 보태준 덕이었다.
‘그나저나 [디바이스 컨트롤]이 없으니 진짜 아쉽네, 쩝. 하지만 슈리를 위해서였으니 어쩔 수 없지.’
무결은 깊은 허전함을 느끼면서도, 이내 미련을 털어 버렸다.
어설픈 무결의 조종으로, 목표 좌표까지 [엘리자베스]가 서서히 나아갔다.
-아, 도대체 어딜 갔다 오는 거야! 우리가 네 자리 커버하느라 얼마나 개고생했는지 알아?!
[엘리자베스]의 복귀를 확인하자마자 구자운이 버럭 성을 냈다.-누님, 누님이라면 뭔가 이유가 있겠지 싶지만, 그래도 오늘은 좀 심했어요.
한서후 또한 강하나의 무단이탈에 조금 실망한 듯 그렇게 말했다.
나이 차이가 많은 이진훈을 제외한 셋은 증명의 탑 이후로 서로를 편하게 대하고 있었다.
“아, 두 사람 모두 미안. 무결 씨가 혼자 15급 몬스터를 상대하러 갔다기에 나도 모르게 그만······.”
-뭐? 무결이가?!!
-보스가요? 이런 미친!!
두 사람 또한 처음의 강하나가 서동재의 말을 듣고 반응했던 것처럼 격한 반응을 토해냈다.
하지만 그들의 흥분을 잠재운 것은 강하나가 아니었다.
“두 사람 모두 오랜만. 난 괜찮아.”
무결이 통신으로 자신의 건재함을 알렸다.
-어? 신무결!
-보스, 여긴 웬일이세요!
구자운과 한서후가 [엘리자베스]에서 들려오는 신무결의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뭐야, 이제야 둘이 그렇고 그렇게 된 거야?
구자운이 이내 음흉하게 웃으며 두 사람을 놀렸다.
-뭐야, 둘이 뭐가 있었어요?
하지만 눈치 없는 한서후는 그의 장단을 맞추지 못하고 깜짝 놀랐다.
“그런 거 아니네요. 무결 씨가 여기에 볼일이 있다고 부탁해서 데리고 온 거예요.”
강하나가 속으로 구자운을 욕하며 상황을 설명했다.
-볼일? 오호라~ 요즘은 비밀 데이트를 ‘볼일’이라고 표현하는구나~
“내가 진짜 저 인간을······.”
강하나가 깐죽대는 구자운을 원한 어린 눈으로 노려보던 그때.
-으악! 저 새끼들이!!
구자운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기간테스 [어둑시니]를 그림자로 만들었다.
사악–!!
그가 [어둑시니]를 그림자화하자마자 그곳을 엄청난 속도로 무언가가 가르고 지나갔다.
구자운이 [어둑시니]를 그림자로 만들지 않았더라면 영락없이 당했을 빠른 공격이었다.
그림자를 가르고 지나간 것은 날렵하게 생긴 외계생명체였다.
사마귀의 손을 연상시키는 칼날 같은 손에 빠르게 움직이기에 적합한 날렵한 몸체.
그리고 건물을 연상시키는 엄청난 크기.
무결은 놈의 모습에서 낯익은 특성을 발견하고 놈의 종족명을 중얼거렸다.
“비자르.”
놈은 증명의 탑 97층에서 상대했던 외계포식종, 비자르였다.
-오, 공부 좀 하고 왔나 보네? 이 녀석들, 육체 능력이 엄청나서 짜증 나는 놈들이야. 조심해.
구자운이 무결에게 빠르게 충고를 건넸다.
무결이 97층에서의 경험을 굳이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무결이 비자르를 본 적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래, 땡큐.”
무결이 미소 지으며 그의 충고를 받아들였다.
언젠간 탑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해 주리라 생각하며.
그때, 강하나의 [엘리자베스]를 향해 사마귀 손을 한 비자르가 날아들었다.
“앗, 조심······!”
강하나가 조종간을 쥔 무결에게 빠르게 경고했다.
이전의 그라면 분명 가뿐하게 피했을 테지만, 지금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하나의 걱정이 무색하게-
팡!!!
무결은 멋진 [비응회선각(飛鷹回旋脚)]으로 비자르의 발길을 쳐냈다.
[엘리자베스]의 온몸에는 어느새 [테베르크]가 깃들어 있었다.‘이게 [테베르크]의 힘······!’
강하나가 [엘리자베스]에서 기존에는 느낄 수 없는 강력한 힘을 느끼며 전율했다.
‘99층의 전투에서 느꼈지만, 대단한 아티펙트다.’
하지만 무결의 힘이 아직 완전하지 않아서 그런지 [테베르크] 또한 제 능력을 백 프로 발휘하지는 못하는 듯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흉폭한 비자르 한 마리를 막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문제는-
끼익, 끼익!!
키이이이이익–!!
비자르가 한 마리가 아니었다는 것이었지만.
수백을 넘어 수천수만 마리의 비자르가 저 우주 바깥에서부터 날아오는 것이 포착되었다.
-이런 시부럴······. 이게 대체 뭔 일이야.
디스플레이에 표시된 수많은 점들을 보며 구자운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비자르가 이토록 한꺼번에 몰려온 것은 놈들의 등장 이래 처음이었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외계놈들이 무결이 널 좋아하는가 보다. 꼭 강하나 같네.
“좀 닥치세요, 구자운 씨.”
강하나가 이를 갈며 구자운이 탄 [어둑시니]를 노려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저 입을 꿰매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가 그 행위를 상상으로 옮기기도 전에, 우주사령부로부터 다급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새로운 외계 종족 발견! 새로운 외계 종족 발견!!
그런 메시지와 동시에, 그들의 디스플레이로 비자르와는 다른 색의 점들이 발견되었다.
“맙소사.”
한서후가 그것을 보며 탄식을 토했다.
비자르만으로도 힘들건만, 그 뒤로 그에 못지않은 수의 외계종이 새로이 지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외계종은 모두 우주선을 타고 있다. 비자르와는 달리 과학문명을 가진 적인 것 같다. 모두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주기 바란다. 다시 한번 말한다. 새로운 외계종은······.
우주사령부로부터의 전언에 기간테스 라이더들이 온몸을 긴장시켰다.
한데······ 진정한 이변은 그때 일어났다.
번쩍.
새로이 등장한 외계종의 우주선들에서부터, 일제히 밝은 빛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그 타깃은, 인간들이 아닌 비자르들이었다.
끼에에에엑–!!
비자르들이 엄청난 포격에 얻어맞고 순식간에 쓸려 나가기 시작했다.
외계종의 포격은 철갑 같은 비자르의 외피를 일격에 뚫어버릴 정도로 강력하고, 한 발에 서너 마리씩의 비자르를 뚫어버릴 정도로 정확해서.
하여 포격이 멎었을 때는 엄청난 수의 비자르가 줄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번쩍.
번쩍.
포격이 연이어 이어질수록 비자르들의 수가 줄어갔다.
하지만 그럴수록 헌터들의 표정 또한 굳어갔다.
이번 적이 비자르보다 더욱 위험한 놈들이라는 것이 명백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차례의 포격이 멎었을 때.
더 이상 레이더에 포착되는 비자르는 없었다.
전멸한 것이다.
그들을 그토록 애먹였던 외계종족이.
비자르들을 전멸시킨 정체불명의 외계인들이 서서히 지구를 향해 다가왔다.
그럴수록 지구를 방어하던 헌터들의 몸도 긴장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그들이 헌터들의 포격 사정거리 내로 들어오는 순간.
-전 헌터 일제 포······ 응?
일제포격을 지시하려던 우주사령부의 사령관이 무언가를 발견하고 말을 멈추었다.
-저, 저건······ 백기?
새로 나타난 외계종의 우주선이, 모두 거대한 흰 천을 달고 이리저리 흔들고 있었다.
지구의 의미에서 볼 때, 명백한 항복의 의미.
하지만 지구인들은 섣불리 안심하지 않았다.
외계인들 사이에서 저 신호가 ‘너희를 죽여 버리겠다’는 뜻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그들은 외계인들이 정말로 무조건 항복을 하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외계인들이 우주복을 입은 모습으로 우주선을 뛰쳐나와-
서투른 한국어로 “항복합니다!!”라고 외쳤기 때문이다.
“······.”
지구인들이 당황하여 그들을 바라보았다.
무결은 녀석들이 누구인지 단숨에 알아챘다.
유치원생같이 작은 키.
그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비대한 머리.
“줄라탄.”
97층에서 싸웠던 또 다른 외계종족의 이름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하지만 아까와 달리 무결의 말에 알은척하는 헌터는 없었다.
무결을 제외한 지구인들이 얼빠진 모습으로 줄라탄들을 바라보고 있자, 줄라탄들은 안절부절못하다가 한 술 더 나아갔다.
그들은 우주 공간에 둥둥 뜬 상태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명명백백한 항복의 표시였다.
“······.”
헌터들은 어안이 벙벙해서 서로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무결은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었다.
저들의 우주선 속에서 저들에게 총구를 겨누어져 있는 각종 무기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는 떨리는 눈으로 줄라탄들의 우주선들을 바라보았다.
마치 무언가를 찾아 헤매듯.
그리고 그의 기대에 부응하듯, 가장 앞서 있던 한 우주선에서 작은 로봇 하나가 튀어나왔다.
고양이를 닮은 작고 귀여운 로봇이었다.
뾱!
그 고양이 로봇은 우주선을 앙증맞게 박찼다.
그리고 서서히 우주를 유영해 헌터들 쪽으로 날아왔다.
헌터들은 모두 그 고양이 로봇을 주목했다.
고양이 로봇은 명백하게 한 기의 기간테스로 향하고 있었다.
강하나의 [엘리자베스]였다.
헌터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긴장을 풀지 않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아직은 긴장을 풀 상황이 아니었다.
다들 여차하면 튀어 나가서 전투를 벌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무결은 천천히 [엘리자베스]를 조종해 그 고양이 로봇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고양이 로봇과 [엘리자베스]의 손이 닿는 순간-
무결이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돌아왔구나.”
담담하려 했지만, 그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려 나왔다.
마지막으로 본 희미한 예지 속에서 확신하지 못했던 오늘의 만남이었기에······.
지금의 순간이 더욱 소중했다.
무결의 말에 고양이 로봇이 입을 열었다.
그것은, 무결이 꿈에도 그리던 목소리였다.
-다녀왔습니다, 마스터······.
그 목소리는, 울음기를 담고 있었다.
오랜 시간을 넘어, 마침내 한 인간과 한 신이 만났다.
“이번에도······ 나와 함께 있어주겠니?”
무결이 [엘리자베스]의 해치를 열고 고양이 로봇을 향해 떨리는 손을 내밀었다.
고양이 로봇이 천천히 다가와, 무결의 가슴에 안겼다.
-전 영원히 마스터의 것입니다.
차가운 금속의 질감이, 따스하게 무결의 가슴을 적셨다.
* * *
신무결은 인류를 구한 영웅으로, 지구의 역사에 길이 남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몰랐지만, 그의 이야기는 훗날 신들의 역사에도 깊은 발자국을 새겼다.
그와는 실과 바늘처럼 붙어 다니던, 조금은 귀여운-
기계신과 함께.
기계신과 함께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