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the Machine God RAW novel - Chapter 30
기계신과 함께 – 030
“······이유가 하찮으면 각오하게.”
허락의 표시였다.
일행 모두는 조심조심 강을 건넜다.
강물이 세서 성녀가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으나, 호위무사 한 명이 무사히 잡아줘서 다행히 큰 사달은 일어나지 않았다.
일행이 무사히 강을 건너자, 나는 일행에게 말했다.
“지금부터는 제 뒤만 따라오십시오. 옆으로 조금이라도 길이 엇나갈 경우 봉변을 당할 겁니다.”
일행은 내 말에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우리는 잠시 동안 말없이 길을 걸었다.
내게 궁금함을 갖고 있을 이들조차 침묵에 잠겨 있었다.
그만큼 이 숲속은 으스스한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조금 걷자 그 으스스한 느낌의 정체가 드러났다.
붉은색 눈들이 나무 위에서 하나둘씩 나타나 우리를 지켜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반대로 한시름 놓았다.
저놈들이 바로 달려들지 않는다는 건, 한고비를 넘겼다는 의미였으니까.
여유를 찾은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까 저놈들 이름이 붉은돌원숭이라고 말씀드렸지요?”
내 물음에 내 바로 뒤에서 따라오는 공손혁 장로가 대답했다.
“······그랬지.”
“왜 이름이 붉은돌원숭이인지 아십니까?”
“음, 서식지에 붉은색 돌들이 있나?”
내가 대답하려던 그때 뒤쪽에서 난데없는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으아악!”
“뭐야, 이 돌들은!!”
“으악! 원숭이, 원숭이다!!”
우리를 추격해 온 정파인들이었다.
우리 일행이 움찔하는 게 보였다.
하지만 난 느긋한 태도로 일행으로 일행을 제지했다.
“급히 움직이지 마십시오. 저 원숭이들을 자극하면 우리도 비명을 지르게 될 겁니다.”
내 말에 일행이 살며시 굳힌 몸을 풀고 다시 조심조심 걷기 시작했다.
나는 공손혁 장로에게 하려던 말을 이어서 했다.
“저놈들의 이름이 붉은돌원숭이인 이유는, 저놈들이 돌을 사용해서입니다.”
“돌을 사용한다고?”
“예, 그들의 사냥법입니다. 그들은 마음에 드는 크고 단단한 돌을 가지고 나무 위로 올라가 비축합니다. 그리고 사냥감이 나타나면 머리 위에 그 돌을 던져서 사냥감을 잡지요.”
“그렇군. 그럼 붉은돌이라는 뜻은······?”
“네, 추측하신 바가 맞습니다.”
“······끔찍한 놈들이군.”
[마스터, 전 모르겠습니다. 왜 붉은돌이라는 건가요?]가만히 듣고 있던 슈리가 궁금한지 물어왔다.
‘슈리, 그건··· 돌에 피가 묻었기 때문이야.’
[피가요?]‘그래, 돌에 머리가 터진 사냥감들의 피가 묻어 붉은돌이 된 것이지. 그래서 붉은돌원숭이야.’
슈리가 진저리치는 게 느껴졌다.
나는 일행을 안내하며 조용히 설명을 계속했다.
“놈들은 자신의 사냥감의 피가 묻은 돌을 모으길 좋아합니다요. 특히 돌이 핏빛을 띠어갈수록 더 좋아하죠.”
“······.”
“이놈들은 매우 호전적인 놈들이라 동족끼리도 영역을 구분 짓습니다요.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의 영역을 침범하면 전쟁이 벌어지죠. 제가 지금 안내하고 있는 길은 그 영역의 경계입니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한쪽으로 넘어가게 되면 우리는 놈들의 사냥감이 될 겁니다요. 그러니 절 잘 따라오십쇼.”
“잘 알겠네만, 정파 놈들이 돌을 무시하고 달려서 우리를 추적하게 되면 어떡하나?”
공손혁 장로가 못내 걱정되는지 그렇게 물어왔다.
그런데 내가 직접 입으로 대답할 필요가 없어졌다.
뒤쪽에서 들리던 비명 소리가 어느 순간 거세어졌다.
“크아아아악!”
“이 원숭이 놈들이!!”
푸스스스-
우리를 감시하던 붉은 눈들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더니, 나무 위쪽이 흔들리며 놈들의 뒤쪽으로 이동하는 기척이 느껴졌다.
“으아악!”
뒤쪽에서 비명 소리들이 끊임없이 들려오는 가운데, 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렇게 됩니다요.”
“······어떻게 된 일인가?”
“장로님 말씀처럼 정파인들이 달려서 추적해 오기 시작한 겁지요. 저렇게 붉은돌원숭이들은 동족 전체의 위험으로 보고 힘을 모아 그들에게 총공격을 가합니다. 그땐 놈들이 돌을 던지는 동시에 나무에서 뛰어내리며 육탄공격도 마다하지 않죠.”
공손혁 장로와 호위무사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것이 보였다.
붉은돌원숭이들이 정파 무인들을 막아서지는 못할 테지만 한동안 시간을 벌어줄 터였다.
그사이 그들과의 거리를 벌려야 했다.
‘내공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이곳 무인들의 수준을 감안하면, 최소한 10분은 벌었어. 그사이 거리를 더 벌려야 해.’
마물들이라 해도 고작 원숭이들이었다.
숙련된 다수의 무인들을 상대로 그리 오랜 시간을 벌어주진 못할 터였다.
나는 지체 없이 기억 속에 있는 붉은돌원숭이들의 영역 경계 사이로 일행을 안내했다.
이 길은 내 머릿속에 주입된 기억의 주인인 장삼 이외의 약초꾼은 전혀 모르는 길이었다.
아니, 장삼 외에는 그 누구도 모르는 길이었다.
애초에 이곳에 붉은돌원숭이들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조차 극소수에 불과했다.
천마신교의 총단이 있는 이곳 천마봉은 일반인들은 천마신교라는 존재로 인해 발길을 들여놓지 않는 곳이었다.
특히 산 중턱에 있는 총단을 지나, 산 위까지 가본 자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것은 천마신교의 교도들 또한 마찬가지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천마신교는 총단 위쪽 산봉우리를 교도들에게조차 금지(禁地)로 지정하고 오직 장삼같이 허가받은 자들만이 출입할 수 있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냥 그곳을 놀려두자니 천마봉에서는 영약으로 쓸 수 있는 온갖 기화이초(奇花異草)가 자생했다.
때문에 천마신교에서는 특별한 사람을 선별해서 그것들을 채취해 왔던 것이다.
장삼은 천마봉으로 발령받고 나서야 이곳이 왜 금지 구역인지 알 수 있었다.
양광(陽光)이 거셀수록 그림자가 짙어진다 했던가?
영험한 산기운 덕분인지 천마봉에는 각종 독물과 괴이한 짐승들이 가득했다.
저 붉은돌원숭이들은 약과라고 할 정도로 흉폭한 짐승들과 독을 품은 생물들이 많았는데, 보통은 그놈들을 한 번이라도 보았다면 치를 떨며 다시는 이곳으로 들어오려 하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장삼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부여받은 임무를 너무나도 훌륭히 해냈다.
오히려 흥미를 느끼고 오랜 시간 동안 놈들의 습성을 파악, 마침내 천마봉에 사는 온갖 위험한 동물들의 영역을 지나는 방법을 알아내었던 것이다.
스무 살 초반에 유능한 약초꾼으로 인정받고 천마신교로부터 금지의 출입을 허가받은 장삼은, 조심스럽고 치밀한 연구를 통해 차츰차츰 독극물들의 영역을 자유로이 오갈 수 있는 방법들을 마련해 나갔다.
그리고 삼십 세가 되어갈 즈음에는 천마봉을 비롯한 그 인근 모든 봉우리를 안전하게 오갈 수 있는 유일한 자가 되어 있었다.
던전에 들어올 때의 설명처럼 장삼은 천마신교의 말단 교도가 맞았다.
그러나 지나치게 유능하고 특별한 말단 교도였던 것이다.
나를 보는 우리 일행의 눈가에 신뢰가 깃드는 것이 보였다.
믿음을 얻은 것이다.
‘됐어, 두 번째 단추도 잘 꿰었어.’
나는 성녀를 흘끗 보고 다시 안내를 이어갔다.
내 안내로 우리는 마침내 무사히 붉은돌원숭이의 영역을 빠져나왔다.
뒤쪽 숲에서는 여전히 비명과 고함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붉은돌원숭이들과 정파인들이 사투를 벌이는 소리였다.
그 소리를 뒤로하고 우리는 다시 산길을 십여 분간을 달려 올랐다.
‘지금쯤 정파인들이 원숭이들의 영역을 벗어났겠군.’
그렇게 생각할 즈음 두 번째 목적지가 나타났다.
“잠시! 이곳부터는 이것을 품속에 넣고 달리십시오.”
나는 내가 짊어지고 있던 망태기 속에서 가죽으로 둘둘 감싼 뭔가를 꺼냈다.
그리고 그 가죽을 펴보았다.
그곳에서 드러난 것은······.
“꽃······?”
하얗고 커다란 꽃이었다.
일행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꽃을 하나씩 꺼내 일행에게 건넸다.
일행은 어리둥절한 얼굴이었으나, 순순히 꽃을 받아 들었다.
“이곳을 지나는 동안 이 꽃이 목숨을 지켜줄 것입니다. 절대 놓치지 말고 계십시오.”
일행은 영문을 모르는 얼굴로 꽃을 들고 내가 안내하는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위잉-
조금 달려가자 모기 소리 같은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일행이 바짝 긴장했다.
“벌?”
공손혁 장로의 작은 외침이 들려왔다.
사방에서 달려드는 것의 정체가 드러났다.
거의 손바닥만큼 큰 기형 벌이었다.
그런 벌이 수백 마리도 더 넘게 사방에서 다가왔다.
일행은 크게 놀라 뒤로 도망갈 태세를 취했으나, 나는 웃으며 꽃을 벌들을 향해 내밀었다.
그러자-
위잉~
신기하게도 벌들이 꽃으로부터 멀어졌다.
“이 꽃은 이 벌들의 천적이 좋아하는 꽃입니다요. 그 때문에 품에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 벌들은 겁을 먹고 공격해 오지 않습니다. 그럼 가시지요!”
나는 그 말을 내뱉고 벌들 사이로 발을 내디뎠다.
마치 모세가 바다를 가르듯, 신기하게 우리가 가는 길의 벌들이 길을 비켜주었다.
이 꽃은 이 벌들의 천적인 대왕말벌들이 좋아하는 꽃이었다.
장삼은 항상 이 꽃을 가죽으로 밀봉한 뒤 몸에 지니고 다녔다.
이 꽃뿐만이 아니었다.
그가 지니고 있는 이 망태기 속에는 이 산길을 무사히 지나칠 열쇠들이 가득했다.
우리는 금방 기형벌들의 영역을 빠져나와 발길을 재촉했다.
정파인들이 돌에 맞고, 벌에 쏘이고, 독사에 물리고 맹수들에게 쫓기는 동안 우리 일행은 나의 안내로 유유히 산 위를 올랐다.
사달은 독충들의 영역을 지날 때 일어났다.
성녀를 업고 따라오는 과정에서 상당히 지친 호위무사 한 명이 그만 밟아서는 안 될 곳을 밟아버린 것이다.
대가는 죽음이었다.
마침 그 자리에 웅크리고 있던 독지네가 그의 다리를 물어버렸고, 그는 세 걸음을 넘기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쓰러지고 말았다.
‘이런!’
그에게 업혀 있던 성녀가 독충들이 우글거리는 길가로 떨어지려는 것이 보였다.
나는 재빨리 손을 뻗어 성녀를 내 쪽으로 잡아당겼다.
“꺅!”
작은 비명과 함께 성녀가 풀썩 내 품에 기댔다.
달콤한 배꽃 향기가 났다.
“괜찮으십니까? 어디 물린 곳은 없으신지요?”
나는 굳은 얼굴로 성녀에게 물으며 그녀가 발 디뎠던 곳의 흔적을 살폈다.
여기서 그녀가 죽으면 끝장이었다.
“없는 것 같아요.”
다행히 성녀는 무사했다.
그녀를 지키던 호위무사가 또 죽었음에도 생각보다 차분한 목소리였다.
“성녀님, 제게 업히시지요.”
내가 고개를 갸웃하는 동안 마지막 남은 호위무사가 성녀에게 등을 보였다.
어느새 세 명이 한 명으로 줄어든 것이다.
“지체할 틈이 없다. 어서 가자.”
공손혁 장로가 쓰러져 죽은 호위무사를 흘깃 살펴보고는 바로 우리를 재촉했다..
하지만 한마디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는지, 그는 성녀를 업은 마지막 호위무사에게 말했다.
“진성 호법.”
“예!”
성녀를 업고 있던 호위무사가 공손하게 대꾸했다.
“자네는 죽지 말게.”
“······예!”
우리는 벌써 독물들이 들러붙기 시작한 호위무사의 시체를 남겨두고 다시 발길을 떼었다.
* * *
절벽이 가까워져 간다.
이제는 팔부능선을 넘었다고 봐도 된다.
그때 절벽에 다다르기 전의 마지막 위기가 찾아왔다.
퓨퓨퓻!!
부지불식간에 십수 대의 화살이 날아든 것이다.
평범한 화살이 아닌, 화살 전체가 쇠로 이루어진 강전(强箭)이었다.
공손혁 장로와 호위무사 진성이 순식간에 검을 뽑아 화살들을 쳐냈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검의 그물을 뚫고 화살 몇 대가 나와 성녀를 향해 날아왔다.
“이런!”
공손혁 장로의 다급한 음성이 들려왔다.
다소간 긴장이 풀려 있던 데다 화살이 너무 무겁고 강력했기 때문에 성녀에게 향하는 화살을 그만 놓쳐버리고 만 것이다.
그가 다급하게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이 보였다.
‘하는 수 없군.’
이런 상황이 오지 않길 바랐지만, 이대로라면 성녀가 죽을 것 같은 상황.
[배틀 센스]가 알려왔다.지금은 실력을 드러내야 할 때라고.
나는 옆에 서 있던 성녀의 손을 잡아채 내 뒤로 보내는 동시에 [초마권법]을 발동시켰다.
내 몸이 자연스럽게 초마권법의 기수식을 취했다.
초마권법은 천마신교의 교도라면 누구나 배우는 기초적인 권법으로, 장삼이 잠깐이라도 익혔던 유일한 무공이자 내가 스테이지에 들어오며 특전으로 받은 무공이었다.
거기에 내 고유 스킬인 [배틀 센스]가 어우러졌다.
기이한 기운이 몸을 돌며 화살이 날아오는 속도와 각도를 순식간에 읽어들였다.
그리고-
‘지금!’
정확한 타이밍에 왼손이 난폭한 움직임을 그리며 번개처럼 움직였다.
투툭!
성녀와 나를 향해 날아오던 화살 두 대가 왼손에 튕겨 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직후에 이번에는 오른손이 공간을 할퀴었다.
타다닥!
세 대의 화살이 역시 내 양쪽으로 흘러갔다.
그대로 뒀다면 내 심장과 배에 틀어박혔을 화살들이었다.
나는 화살을 쳐내고 다시 자세를 잡았다.
얼핏 보이면 난폭을 넘어 난잡해 보이는 움직임이었지만, 무림을 떨어 울리는 천마신교의 기초 무공답게 [초마권법]은 공방(攻防)의 밸런스가 잘 갖춰진 무공이었다.
거기에 해법을 찾아내는 [배틀 센스]가 더해져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흐름을 읽어내는 눈과, 미숙하나마 그 상황을 타파할 기술, 둘 중 어느 하나만이라도 부족했더라면 화살들은 지금쯤 피맛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화살을 쳐내자마자 대략 열다섯 명쯤 되는 정파인들이 우리 일행을 향해 달려들었다.
“와아아!! 악적들! 죽어라!!”
정파인들이 벌써 따라왔다.
내가 화살을 쳐냄으로써 성녀의 안전을 확인한 공손혁 장로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놈들-!!!”
분노한 그는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며 두 명의 정파인을 순식간에 불귀의 객으로 만들어 버렸다.
“으악!”
“크억!!”
하지만 정파인들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저 둘부터 인질로 잡아라!!”
그들은 우리 중에 공손혁 장로가 지키려는 자가 있음을 알아채고는 공손혁 장로가 아닌 우리에게 필사적으로 달려들었다.
그러자 오히려 공손혁 장로가 당황해 버렸다.
“이, 이런!”
공손혁 장로와 호위무사 진성이 필사적으로 움직였으나, 중과부적이었다.
두 명만으로는 열 명이 넘는 인원을 막기는 벅찼던 것이다.
결국 나와 성녀에게 도달하는 자들이 생겨났다.
나는 차가운 눈으로 심호흡을 했다.
이제 장삼의 탈을 쓰는 것은 반쯤 글렀다.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빠르게 저들을 없애는 쪽을 택했다.
‘집중.’
기초지공인 초마권법을 수박 겉 핥기 식으로만 익힌 장삼에 비해 지금 우리에게 달려드는 정파인들은 무공을 전문적으로 익힌 무인들이었다.
그 격차를 경험과 [배틀 센스]로 메워야 했다.
저들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그들의 검이 그릴 검로가 느껴진다.
저 검로, 저 검이 그리는 선들은 죽음의 선이다.
저 선들이 내게 문을 열어주는 때를 기다려야 한다.
나는 [초마권법]의 기수식을 취한 채 때를 기다렸다.
아직은 아니다.
아직 아니다.
아직.
‘지금.’
때가 오자마자 나는 숨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진각을 밟았다.
쿵!
내 몸이 빠르게 쏘아져 나가 달려오던 정파인들 둘의 검세(劍勢) 사이로 뛰어들었다.
“어멋!”
뒤에서 성녀의 놀람에 가득 찬 소리가 들려왔다.
무공이라고는 제대로 모르는 말단 교도이자 약초꾼인 내가 당장에라도 저들의 칼에 난도질 될 것처럼 보였으리라.
하지만 내게는 날아드는 칼날의 경로가 생생하게 그려졌다.
내 몸은 유유히 칼날들 사이를 흘러들어 그들의 몸으로 파고들었다.
“헛!”
“이런?”
정파인들이 헛숨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경악한 그들이 몸을 빼려 했다.
‘어딜.’
하지만 한번 잡은 기회를 놓칠 내가 아니었다.
나는 번개처럼 그들의 급소에 주먹을 날렸다.
퍼퍽!
놈들은 빳빳하게 굳은 채 신음도 지르지 못하고 잃고 땅바닥에 쓰러졌다.
털썩털썩.
“후우.”
나는 그들이 쓰러지고 나서야 마침내 날숨을 토해냈다.
“괜찮아요?”
성녀가 서둘러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괜찮습니다.”
정확한 순간에 파고든 덕분에 옷깃 하나 베이지 않았다.
“생각보다 실력이 대단하시네요!”
성녀가 살짝 감탄하는 기색으로 말했다.
“소인, 그래도 틈틈이 무공 연습을 했습죠.”
얼마나 믿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일단 둘러대었다.
“장삼은 약초도 지리도 잘 아는데 무공까지 뛰어나군요. 장삼이야말로 우리 교의 숨겨진 보물이었네요.”
무공을 잘 모르는 성녀는 내 말을 의심 없이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제 진짜가 다가오고 있었다.
내가 둘을 처치한 사이에 공손혁 장로와 호위무사 진성도 다른 정파인들을 모두 정리하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벌써 여기까지 따라오다니. 독한 놈들.”
공손혁 장로가 다가오며 혀를 내둘렀다.
“놈들 중에 독물과 짐승들의 습성을 잘 아는 자가 있는 모양입니다요.”
이건 나로서도 정말 의외인 상황이었다.
이곳에는 안내자인 내가 없으면 오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정파인들이 이렇게나 빨리 추적해 오다니.
“정파 놈들이 준비를 단단히 했어. 그건 그렇고······ 자네.”
올 것이 왔군.
“예?”
“자네의 움직임을 봤네.”
나는 바짝 긴장했다.
“자네······ 그 움직임은 뭐지?”
그가 실눈을 뜨고 나를 노려보았다.
잠시 그의 눈을 말없이 마주 보았다.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머릿속을 팽팽 돌리며.
최후의 방법이었지만 그가 살수를 쓰려 한다면 ‘던전 탈출’을 외칠 의향도 있었다.
“그게······.”
내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리고 말을 이으려는데, 갑자기 공손혁 장로의 입가가 호선을 그리는 것이 아닌가?
“하하하! 대단하군!”
······뭥미?
“확실히 무공은 별 볼 일 없었어. 그런데 그 움직임은······ 순식간에 적들의 허실을 파악하는 눈썰미, 그리고 휘둘러지는 검로 속으로 뛰어드는 대담함. 고작 초마권법으로 둘이나 쓰러뜨리다니. 무공을 계속했다면 뛰어난 무인이 되었겠어. 아깝군, 아까워.”
의외였다.
실력을 드러내 꼼짝없이 의심받을 줄 알았건만 오히려 감탄 깃든 칭찬을 듣고 말았다.
‘다행이군. 제대로 파악했잖아?’
둘을 처치하며 내가 사용한 것은 마교의 무공인 [초마권법]이긴 했는데, [배틀 센스]의 계산에 따라 중간중간 초마권법이 아닌 동작을 섞어서 사용했다.
그걸 보고 다른 무공을 익힌 거라고 추궁받을 줄 알았는데, 내가 사용한 무공이 [초마권법]뿐인 데다 내가 이긴 게 무공 덕이 아니란 걸 공손혁 장로가 제대로 캐치한 것이다.
내가 정파인 둘을 쓰러뜨린 것은 무공보단 전적으로 [배틀 센스] 덕이라 할 수 있었으니.
어쨌든 안목이 없는 사람에게 제대로 설명하기도 곤란한 일이었는데 예상을 웃도는 그의 눈썰미 덕분에 의심받는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대신 다른 피곤한 상황이 나를 찾아오고 있었다.
나는 공손혁 장로의 눈에 욕심이 깃드는 것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