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the Machine God RAW novel - Chapter 98
기계신과 함께 – 098
심상찮은 상태창에 얼굴이 굳어졌다.
‘기생숙주?’
나는 그 항목을 더 자세히 떠올려 보았다.
-[기생숙주] : 특정 몬스터에 의해 감염이 된 상태입니다.
‘음······ 설마······.’
나는 과거에 있던 악몽의 단편을 떠올렸다.
분명 나는 전생에서 저런 유형의 몬스터를 본 적이 있었다.
이탈리아 로마 시를 집어삼킨 몬스터 재해.
워낙 유명한 사건이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시작이 바티칸이었구나.’
서서히 바티칸 멸망에 대한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음······.”
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엘리스를 한번 쳐다봤다.
“왜요? 알아내셨나요?”
“······네. 엘리스, 지금부터 잘 들으세요.”
“네, 말씀하세요.”
“충격받으시면 안 됩니다.”
“이미 추기경님들의 이상은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들을 각오 되었으니, 말씀하세요.”
엘리스가 절대 충격받지 않겠다는 굳은 각오로 양 주먹을 꼭 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하신 대로 저분은 몬스터에 의해 몸을 빼앗긴 상태입니다. 그리고······.”
나는 엘리스의 눈치를 슬쩍 보고 말을 이었다.
“저분들을 원래 상태로 되돌리려면, 오랜 시간 동안 인간들로부터 축복되고 신성시되어 온 유물, 혹은 신성력이 깃든 성물들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나는 아까 내가 감탄하며 감상했던 성상 피에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런 성물들이요.”
엘리스가 살짝 얼었다.
내 말에서 뭔가 심상찮은 뉘앙스를 느낀 듯, 그녀가 침을 꼴깍 삼키고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뭐······ 성물을 저분들 몸에 닿게 하거나 하면 되는 건가요? 아니면······.”
“아니요, 성물의 기운을 뽑아내어 특별한 방법으로 응축해야 합니다. 그 응축된 기운을 몸에 심어야 비로소 몬스터가 쫓겨납니다.”
“그······ 기운을 어떻게 뽑아내는데요?”
“가루를 내야 합니다.”
“뭐, 뭘 내요?”
“가루요.”
절대 충격받지 않기로 굳은 각오를 다졌던 엘리스의 얼굴이 얼음처럼 얼어버렸다.
누가 봐도 매우 매우 충격받은 얼굴이었다.
“꼭······ 꼭 가루를 내어야 하나요?”
그녀가 절박한 얼굴로, 내 소매를 붙잡고 물어왔다.
“네, 가루를 내어야 합니다. 반드시.”
나는 안타까운 얼굴로 내 소매를 붙잡은 그녀의 손을 떼내려 하며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 소매가 무슨 동아줄이라도 되는 양 절대 놓지 않고 다시 한번 물어왔다.
“꼭 성물이어야 하나요?”
“꼭 성물일 필요는 없지만 신성력이 깃든 물건일수록 효과가 좋습니다. 아니면 사람들의 의념(疑念)이 깃든 유물들도 괜찮습니다. 되도록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로부터 귀히 여겨져 온 유물일수록 좋을 겁니다.”
“아······ 그렇군요. 얼마나 많이······ 필요할까요?”
“저도 만들어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릅니다만, 감염된 사람 수에 비례해 필요한 양이 늘어날 겁니다. 물론 유물의 질도 영향이 있겠지요.”
이는 전생에 저 추기경을 잠식하고 있는 종의 몬스터들을 상대로 전쟁을 치르며 헌터들이 개발해 낸 방법이었다.
놈들이 개체수를 많이 늘리기 전에 발견한 게 천만다행이었다.
“아, 내 소중한 유물들이······.”
엘리스의 어깨가 축 처진다.
“하지만 추기경님들과 교황 성하를 위해서라면······.”
그녀가 도리도리 고개를 젓고 다시 주먹을 꼭 쥐었다.
“그렇지만 유물들이······.”
무수한 내적 갈등이 짧은 시간 동안 그녀를 수없이 들었다 놨다 했다.
“······일단 시험 삼아 한 개만 만들어보도록 하죠.”
내가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녀는 잠시 동안 10년은 늙어버린 것 같은 얼굴로 애처롭게 나를 올려다봤다.
“시험 삼아서요? 그러려면······.”
“예.”
나는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훔쳐야죠, 유물을.”
오늘 밤, 나는 바티칸 박물관을 털기로 했다.
* * *
나는 은하그룹에서 마련해 준 안가에서 박물관을 털 준비를 시작했다.
가장 우선적인 것은 장비 점검.
“코일 건 20정 OK. 레일 건 5정 OK. 반중력 디바이스 OK, 펄스······.”
나는 [공간주머니] 속의 물품을 종류별로 꺼냈다 집어넣으며 장비 상태를 꼼꼼하게 확인했다.
“여기 있어요!”
그다음은 침입할 곳의 상황.
“여기가 바로 피오 클레멘티노 박물관이에요. 여기에 있는 이 유물들이랑 이걸······.”
이미 박물관에 대해 훤히 꿰고 있는 엘리스가 직접 만든 박물관 구조도.
그녀는 박물관 어디에 무슨 유물이 있는지까지 훤히 꿰고 있을 정도로 열렬한 유물 마니아였다.
나는 슈리의 도움을 받아 그녀가 말해주는 정보를 스캔하여 3D로 매핑하였다.
“아마 경비들은 이쪽 이쪽 루트를 타고 순찰을 돌 겁니다. 시간은 3시 45분부터······.”
엘리스가 경비들이 순찰을 도는 코스까지 정확하게 알려준다.
‘이쯤 되면 유물 덕후가 아니라 유물 스토커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순찰자 정보까지 3D 매핑 앱에 완벽하게 입력했다.
박물관이 입체적인 구조로 눈앞에 드러나자 엘리스가 와~ 하는 탄성을 터뜨렸다.
구조도에는 엘리스가 설명한 유물들의 위치가 붉은 점으로 정확하게 찍혀 있었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파란 점으로 경비의 움직임까지 나타나 있었다.
“대단하군요. 그런 건 처음 봅니다.”
“그럴 수밖에요. 개발된 지 얼마 안 된 따끈따끈한 기술이거든요.”
내가 조금 자랑스럽게 말했더니 엘리스가 웃었다.
“하지만 저희도 비슷한 게 있긴 하지요.”
이번엔 내가 놀랄 차례였다.
“오.”
엘리스가 손바닥에 작은 글씨로 마법 문자들을 몇 개 새겨 넣었다.
그러자.
위잉-
마치 입체 영상처럼 그녀의 손바닥에서 박물관 내부 정경이 드러났다.
실제로 동영상을 찍은 것처럼 선명한 정경.
“제 기억 속의 박물관을 실체화한 거예요.”
“이게 엘리스의 기억이라고요?”
나는 경악했다.
이게 엘리스의 기억이라면 엘리스는 눈으로 보이는 모든 풍경을 ‘사진 찍듯 기억한다’는 순간기억 능력자임에 분명했다.
“네, 제가 기억력이 좀 좋아서 말입니다.”
엘리스가 입을 가리고 미소 짓는다.
왠지 승리에 찬 표정이었다.
“그래요, 그럼 필요할 때 엘리스의 능력을 빌리도록 하죠.”
“얼마든지 좋습니다.”
엘리스가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나는 엘리스가 마음껏 의기양양하도록 놔두었다.
그녀는 지금, 조금 많이 의기양양할 필요가 있었다.
* * *
깊은 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엘리스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내 뒤를 잘 따라오고 있었다.
“그만해요. 그러다 걸리겠어요.”
나는 엘리스에게 주의를 주고 살며시 눈앞의 보안장치에 시계를 대었다.
‘슈리, 부탁해.’
[네, 마스터.]슈리가 내 스마트 워치에서 보안기기 쪽으로 옮겨 가, 문을 열었다.
띠릭-
작은 신호음과 함께 도어록이 해제되었고, 나는 여유롭게 걸어서 바티칸의 여러 미술관 중 하나인 ‘키아라몬티 미술관’으로 들어갔다.
미술관에 들어서자 수백 개의 석고상이 복도를 따라 늘어서 있었다.
석고상은 소형과 중형, 그리고 두상과 전신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가 전시되어 있었다.
너무나 많은 석고상들이 진열돼 있어서 하나쯤 없어진다 해도 누가 알아챌까 싶었다.
“자, 고르세요.”
하지만 나는 그 선택을 신중하게 엘리스에게 맡겼다.
이곳에 전시된 미술품들은 모두 역사를 간직한 유물들.
아무리 작은 석고 조각 하나라도 어떤 문화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을지 몰랐기 때문에 이 방면의 전문가(?)로 보이는 엘리스에게 맡기기로 한 것이다.
“네에······.”
엘리스가 힘없이 중얼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엘리스, 기억하시죠? 뭘 고르든 상관없는데, 반드시 가치가 높은 물건 하나는 포함시켜야 해요.”
“알았어요······.”
“사람 살린다 생각하고 눈 딱 감고 고르세요!”
내 말에 엘리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신중히 미술품들을 하나하나 집어 나갔다.
미술품을 집어 드는 엘리스의 손이 바르르 떨리는 것을 보았지만, 모른 척하기로 했다.
나는 엘리스의 뒤를 따르며 그녀가 집어주는 미술품들을 받아 [아르카시아의 공간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렇게 30개 정도의 미술품을 골라냈을 즈음, 그녀는 한 전신상 앞에 멈추어 섰다.
“으으······.”
그녀가 애통한 눈빛으로 그 조각상을 올려다보았다.
로마 시대의 갑옷을 입은 사내가 전방으로 팔을 뻗은 가운데, 그의 다리 어림으로 작은 아기 천사가 조각되어 있는 대리석상.
“무슨 조각상인가요?”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느낌의 조각상인지라, 이것을 고른 그녀에게 물었다.
“포르티 포르타의 아구구스투스상이에요. 로마 초대 황제인 그가 연설하는 모습을 나타낸 조각상이죠. 거의 2천년 정도 된 유물이에요.”
“그렇군요. 자, 그럼.”
나는 무게가 수백 킬로는 나갈 것 같은 조각상을 간단히 집어 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
위이이이이잉—
시끄러운 경보음이 들리며 미술관 내부가 시끄러워졌다.
“이런, 젠장.”
“어머어머!!”
나는 황급히 조각상을 [공간주머니] 속에 집어넣고는, 엘리스와 함께 빠르게 도서관 밖을 향해 달렸다.
‘슈리, 아까 경보장치도 다 해제한 것 아니었어?’
[출입 경보 장치는 해제했습니다만 미술품들 쪽으로 연결된 경보망이 따로 있었던 것 같습니다.]슈리가 모든 경보를 해제했으리라 지레짐작하고 너무 안일하게 행동해 버린 것 같았다.
“누구냣!!”
입구 쪽에서 무장한 경비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퓨퓩-
나는 재빨리 마취총을 꺼내 쏘아 둘을 쓰러뜨려 버렸다.
“죄송합니다.”
나와 엘리스는 자신의 본분을 다한 경비원들에게 거듭 사죄하며 빠르게 미술관 내를 빠져나왔다.
“저기다!!”
일단의 경비들이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각성자인 우리를 잡을 수는 없는 법이라 경비원들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진짜로 문제가 되는 이들 또한 나타났다.
‘성당기사단······!’
강력한 마력을 품은 자가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그뿐만이 아니라 사방에서 이 일대를 지키던 네 명의 각성자가 더 몰려오고 있었다.
‘정면돌파를 해야 하나?’
코일건 등 상대에게 상해를 입힐 수 있는 무기는 당연히 사용하면 안 되고, 마취총만으로는 제압이 힘든 상대.
그렇다고 [유가선공]만 믿고 돌진하기에는 쪽수도 많고, 실력도 뛰어난 상대들인지라 망설여졌다.
상대방을 다치게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 엘리스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손잡아요!”
나는 망설임 없이 그녀의 손을 움켜쥐었다.
그녀가 나를 쥐지 않은 한 손의 검지를 세워 허공을 슥슥 휘저었다.
마치 글자를 쓰듯이.
나는 허공에 남는 희미한 마력의 잔상을 볼 수 있었다.
그녀가 몇 글자를 쓰자마자.
“어? 어어?”
“어디 갔어!!”
우리를 향해 다가오던 자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엘리스가 검지를 세워 입에 조용히 가져다 대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우리의 모습과 기척의 감추는 마법을 쓴 것이다.
우리는 당황하여 우왕좌왕하는 경비원들과 성당기사단원 사이를 고양이처럼 빠져나왔다.
* * *
우리는 바티칸 근처에 마련한 안가(安家)에 들어섰다.
이곳은 은하그룹에서 몰래 마련해 준 곳으로, 이런 준비를 하느라 2주 가까이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자, 시작해 볼까요?”
나는 바로 유물로부터 기운을 추출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