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thless Regression RAW - chapter (155)
이 숲 전역에 결계가 펼쳐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서, 이성민과 광천마의 행동은 조심스러워 질 수밖에 없었다. 나무를 때려 부수며 전진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나무의 위까지 도약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혹시나 싶어서 일정
높이의 나뭇가지를 뛰어다니며 길을 찾아보려고도 했지만, 감각을 엉키게 하는 결계의 힘은 숲 전체에 작용하고 있었다.
[이 정도의 결계를 술자 본인의 힘으로 유지하고 있는 것은 불가능해.]허주가 그를 단언했다.
[그것이 가능한 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숲 전체를 파괴할 수 있는 녀석은 얼마든지 있겠지만, 이렇게까지 공간을 엉키게 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상대가 인간이 아닐 경우에는?”
[긴 세월 살아가는 인외의 주술사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아니, 가능은 하겠지. 하지만 견고해도 너무 견고하잖아. 술자가 토지 자체의 힘을 끌어다가 결계를 형성했다고 볼 수밖에 없겠군.]방향성을 바꾸었다. 이성민은 당장 미혹의 숲에서 길을 찾는 것보다는, 미혹의 숲에 대해 먼저 알아가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네블을 통해 연결 된 것은 이전에도 본 적이 있는 주술사였다. 위지호연에게 걸린 저주를 해주하는 것을 부탁하였으나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그 주술사.
“또 보는 군.”
헝클어진 수염을 가진 주술사는 이성민을 향해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이성민은 의구심이 들어 질문했다.
“미혹의 숲에 대해 묻고 싶은 것인데, 왜 주술사인 당신이?”
“자네는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모양이군. 미혹의 숲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은 정보팔이가 아닌 주술사들이야.”
주술사가 끌끌 웃으면서 배배 꼬인 수염을 손가락으로 잡아 당겼다.
“이곳은 400년 전 대요괴 허주가 근거지로 삼았던 숲이고, 허주가 죽으면서 주인을 잃은 공포들이 숲에 깃들었지.”
[…음.]그 말에 허주가 작은 신음을 내뱉었다.
“400년 동안 숲은 받아 먹은 공포에 걸맞게, 누구에게나 공포를 전해 주는 숲으로 변이해 버린 거야. 대부분의 존재가 숲에 대해 품는 공포. 들어가면 나올 수 없고, 무엇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그런 것들로 말이야.”
[이제야 알겠군.]주술사의 말을 들으면허 허주가 중얼거렸다.
[이 어르신이 남긴 공포가 숲을 변이시켰다니. 어쩐지 요력이 너무 들끓고 있다 싶었어. 설마 이렇게 될 줄이야.]‘너도 몰랐던 거냐?’
[이 어르신이 육체를 잃은 뒤에 생긴 일이다. 아무리 그 공포의 본 주인이 이 어르신이라고 해도 알 수 있을 리가 없지.]“자체적으로 요기를 띄게 된 숲에 다른 요괴들이 기어 들어왔지. 이곳은 요괴에게 있어서는 매력적인 곳이거든. 이곳에 존재하기만 하는 것으로도 공포를 공양 받을 수 있으니 말이야. 정보팔이들이 매혹의 숲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것도 그런 이유일세. 이곳에 들어와서 살아 나가는 인간은 그리 많지 않거든.”
주술사가 껄껄 웃었다. 그는 이성민을 바라보며 말했다.
“조언을 하나 해주자면, 이곳에 너무 오래 머무르지는 말게. 아직 밤이 아니니 다행이군. 밤이 되면… 힘들어 질 거야. 숲의 밤이 컴컴하다는 것은 자네도 알겠지? 거기서 언제,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르게 되는 것일세. 그런 공포가 계속되면… 사람은 미쳐버려. 공포에 미쳐버린단 말일세. 그 뒤에는? 요기에 정신을 빼앗겨 요괴도 인간도 아닌 존재가 되어 숲을 헤매다 죽어버리겠지. 혹은 요괴의 한끼 식사가 되거나.”
“…이 숲에 있는 요괴들에 대해서는 알고 계십니까?”
“적귀赤鬼라는 요괴를 아나?”
들어 본 적이 있는 이름이었다. 이성민은 자신과 심령으로 연결되어 있는 허주를 의식했다. 허주가 놀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적귀? 적귀라면 프레데터에 있는 요괴의 왕인데?]“적귀가 이곳에 있다는 겁니까?”
“본래 적귀는 어르무리에 군림하던 요괴의 왕이었지. 하지만 몇 년 전에 어르무리에서 있던 다툼에 패배하고 잠적했었네. 그리고 지금은 이곳, 미혹의 숲에 있다더군.”
[적귀가 패배했다고?]허주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럴 리가. 400년 전에도 이 어르신만큼은 아니어도 힘 깨나 쓰던 놈이었는데. 대체 누가 적귀를 패배시켰다는 말인가?]“…누가 적귀를 패배시킨 겁니까?”
“지금 어르무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홉 꼬리를 가진 여우일세. 본명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어르무리의 요괴들은 그 여우를 두고 야나夜娜라고 부르고 있지.”
[구미호… 까다로운 요괴로군.]긴 세월 살아 요성을 띈 여우는 꼬리를 하나씩 늘려가고, 그것이 아홉이 되었을 때 막대한 요력을 가진 구미호로 화하게 된다.
“적귀만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니야. 남쪽에서 나름 이름을 날리던 요괴들도 이곳에 있지. 하지만 가장 위험한 것은 적귀가 아닐세. 이 숲에는 불사의 괴물이 있어.”
“그건 또 뭡니까?”
“말 그대로. 불사의 괴물이지. 숲에서 태어난 불사의 괴물. 이름도 모르고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지만, 그 숲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확실해. 내가 그 숲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그것이 전부일세. 다른 주술사들도 이 외의 이야기는 알지 못하겠지.”
주술사는 그렇게 말하면서 끌끌 웃었다.
“다시 말하지만, 밤을 조심하게. 아니면 그 숲을 떠나던가. 아직은 늦지 않았을테니 말이야.”
주술사와의 연결이 끊어졌다. 이성민은 입을 다물었다. 허주를 원망할 수는 없었다. 허주도 이 숲이 이렇게 되어버렸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을 테니까.
[어쩔 테냐?]허주가 물었다. 계속해서 숲을 전진하는 것은 여러모로 위험이 크다. 요력을 띄게 된 미혹의 숲을 가로지르는 것도 그렇고, 이 숲에 있다는 적귀와 불사의 괴물도 신경 쓰인다. 얽히지 않을 수 있다면 얽히고 싶지 않은 것이 솔직한 마음이었다.
‘네 보물들. 이런 위험성을 끌어안을만큼 가치가 있는 것일까?’
[물론.]허주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답했다.
[이 어르신이 모아 놓은 보물은 돈 따위가 아니다. 네가 취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네가 앞으로 살아가는 것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여기서 고민해야 하는 것은 이성민이었다. 현재 남쪽에서 이성민이 해야 할 일은 셋이다. 남쪽 부족을 찾아가 요력을 다루는 법을 익히는 것과, 권존이 은둔하고 있는 태초의 숲에 가는 것. 그 중 이성민이 가장 앞장서서 하고 싶은 것은 권존을 죽여 위지호연의 저주를 끝내는 것이었으나, 기왕 여기까지 온 김에 허주의 보물을 먼저 취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위험이야 언제든지 있었지.’
보상이 확실하다면, 위험하다고 해도 한 번 해볼만 하다. 이성민은 몸을 일으켰다. 그래도 여러 가지를 알게 되었다. 이 숲에 과거 프레데터에서 요괴의 왕으로 있던 적귀가 있다는 것과, 불사의 괴물이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숲이 다름아닌 허주가 남긴 공포로 인해 변이된 결과라는 것.
‘여기까지 와서 돌아갈 수는 없지. 그래서, 네? 보물은 어디에 있다는 거냐?’
‘400년이나 흘렀는데 저택이 그대로 있을까? 그리고, 네 보물도 다른 녀석이 훔쳐갔을 지도 모르잖아. 너도 들었겠지만 이 숲에는 다양한 요괴들이 와 있다는데?’
[아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저택이 사라졌을 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 위치에 간다면 보물은 얻을 수 있어. 다른 놈이 보물을 훔쳐가는 것도 불가능해.]허주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일단은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성민은 숲을 돌파하기로 마음먹었다. 주술사가 충고하기는 했지만, 당장은 이 숲에서 도저히 어찌 할 수 없다는 상황도 맞닥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포에 미친다고 했지. 네놈과 저 머저리는 운이 좋구나.]허주가 칭하는 머저리는 광천마였다.
[너희 둘은 이 어르신의 요력에 물들어 있다. 좋든 싫든, 이미 인간과 요괴의 경계에 서있다는 것이야. 이 숲에서 공포를 느낄망정 너희는 미치지 않을 것이다.]특히나 허주는 이성민에 대해서는 확신을 품고 있었다. 이성민의 정신력은 인간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 심약한 이들이라면 공포를 이겨내지 못하여 미쳐버릴 것이고, 이 숲의 요력이 무공 고수의 정신까지 무너트릴 수 있다고 하여도. 이성민이 미쳐버릴 일은 없을 것이다.
[네놈을 뒤따라 온 추격자들은 불행한 일을 겪겠군.]허주가 끌끌거리며 웃었다. 그것까지는 이성민이 신경써 줄 수가 없었다. 잠깐, 남궁희원의 생각이 나기는 했다. 그리 길지 않은 인연이라고는 해도 형님으로 불렀던 사람이다.
‘어쩔 수 없어.’
그 남궁희원은 이성민을 죽이기 위해 이곳에 왔다. 이성민은 남궁희원에 대한 생각을 접어 두었다. 남의 안위를 신경 쓸 처지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밤이 되었다.
귀창 쪽이 알아차릴 위험이 있기는 했지만, 알라두르가 하도 외쳐댄 탓에 제갈태령은 어쩔 수 없이 크게 불을 피웠다. 크게 피운 불은 숲의 어둠을 밝힌다. 몇 개나 피운 불씨의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 앉았다. 오십 명에 달하는 대인원이었기 때문에 불은 클 수밖에 없었다.
아직 잠들기 전이다. 각자가 아공간 포켓에서 먹을 음식과 음료를 꺼냈다. 제갈태령은 못마땅한 눈으로 알라두르를 노려보고 있었다. 제갈태령이 자신을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알라두르는 제갈태령과 떨어진 곳에 앉아 음식을 입 안에 집어 넣고 있었다.
“겁을 준 것치고는 그리 대단할 것도 없네요.”
제갈태령의 근처에 앉은 당아희가 웃으며 말했다. 그 말대로였다. 방향을 잡기 힘들고 길을 헤매고는 있었지만, 이 숲은 알라두르가 말한 것처럼 그리 위험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짐승 따위는 마주쳤어도 아직 요괴는 만나지 않았다. 사실 마주쳐도 상관은 없었다. 아무리 강력한 대요괴가 나타난다고 해도, 오십 명에 달하는 무공 고수라면 어렵잖게 사냥할 수 있을 것 이다.
“제 혼자 겁에 질려 외친 말들일 뿐이다. 신경쓸 가치도 없어.”
“하지만 귀찮은 것은 사실이잖아요? 방향을 잡기도 힘들고. 이미 몇 번이나 헤매고 있어요.”
“그것까지는 어쩔 수 없지. 이 숲에는 불길한 결계의 영향을 받고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숙부와 함께 올 것을 그랬군.”
제갈태령이 미간을 찡그리며 투덜거렸다. 제갈세가는 무공 뿐만 아니라 진법에도 능숙하다. 특히 제갈태령의 숙부인 신기자 제갈원후는 무공보다는 술법에 능숙한 위인이었다.
“이제 와서는 늦었잖아요? 그보다 오라버니. 이렇게 있으니 옛날 생각이 나네요. 기억나요? 제가 어린 시절…”
당아희가 그녀 답지 않게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떠든다. 제갈태령도 그런 당아희의 말에 가느다란 미소를 지으며 화답을 해 주었다. 제갈태령의 근처에 앉은 모용서진은 말없이 모닥불을 들여 보았다. 부부라고는 해도 애정은 이미 없고, 지금 상황에서는 그것이 더욱 부각되고 있었다. 하지만 내색 할 수는 없었다. 모용서진은 한숨을 삼키면서 몸을 일으켰다.
“어디를?”
건너 편에서 검을 끌어앉고 앉아 있던 남궁희원이 모용서진을 보았다. 제갈태령과 당아희도 대화를 멈추고 일어선 모용서진을 보았다. 이목이 집중되자, 모용서진은 짧은 헛기침을 내뱉고선 얼굴을 옆으로 돌렸다.
“…화장실에.”
“풋!”
모용서진의 대답에 당아희가 웃음을 터트린다. 제갈태령은 짜증스런 표정을 지으며 나뭇가지를 들어 모닥불을 들쑤셨다.
“빨리 다녀오시오. 숲이 어두우니까.”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겠지. 모용서진은 제갈태령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그런 감정을 느낄 시기는 이미 오래 전에 지났기 때문이다. 남궁희원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같이 가드리죠.”
“…네?”
“숲의 밤은 위험하오. 특히나 이곳은 요괴의 숲이라고 하니, 경계할 필요가 있잖소.”
“지금 여자가 화장실 가는 것을 따라가겠다는 거에요?”
당아희가 이죽거렸다. 하지만 남궁희원의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남편 되신 제갈형님이 엉덩이가 무거우신 듯 하니, 동생 된 내가 대신 가드려야 하지 않겠소?”
제갈태령의 얼굴이 싸늘하게 식었다. 모용서진은 어쩔 줄 몰라하다가 홱하고 몸을 돌렸다.
“…나도 무공을 익혔어요. 당신과 비교하면 어린아이 수준이겠지만, 그래도 내 한 몸 지킬 힘은 있어요.”
“하지만…”
“따라오지 마세요. 나를 모욕하려는 건가요?”
모용서진이 내뱉었다. 그리고선 빠른 걸음으로 불가에서 멀어진다. 그런 모용서진의 등을 힐긋 보던 당아희가 얄미운 웃음을 흘렸다.
“그러니 왜 괜한 짓을 하고 그래요?”
“마저 떠들기나 하시오.”
남궁희원은 자리에 털썩 앉으며 대답했다. 제갈태령은 남궁희원의 얼굴을 말없이 노려보았다. 이곳이 미혹의 숲만 아니고, 창천검광대가 없었다면… 그런 생각을 하다가 제갈태령은 피식 웃었다.
“희원. 자네도 이미 나이가 나이인데, 결혼할 생각은 없나?”
“그런 말은 나 말고 저기 저 당가네 아가씨한테나 하지 그러시오?”
“하긴. 서로가 짝이 없는 것은 같으니. 말이 나온 김에 둘이 짝이 되는 것도 괜찮을 것 같군.”
“오라버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하세요?”
당아희가 질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남궁희원은 반론할 가치도 느끼지 못하여 입을 다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꺄아아악!
머지 않은 곳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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