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 Comic Genius RAW novel - Chapter 218
219. 2000년
9월.
어느새 만화에 관심 없던 이들에게마저 펜의 원작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런 저런 계약을 맺기까지 하고, 작품 제작 발표는 매일같이 이루어졌다.
최대 원작 보유 회사.
서브컬쳐 및 미디어 대기업.
펜은 어느새 그런 위치에 올라섰다.
펜을 축하하기 위한 자리로, 오랜만에 화실 식구들 모두가 모였다.
“이런 귀중한 자리에 저까지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9년 전처럼, 고준하 편집장도 함께 모였다.
고준하 편집장은 어느새 대명성의 핵심 임원자리까지 올라갔다. 를 발견한 공로, 제트 잡지들을 잘 이끌어준 공로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멤버로 한 자리에 모이니 옛날생각도 나고 그럽니다.”
물론 그때와 다르게 이정미와 박은정도 함께 모여 있었다.
“아파트에 공동화실 꾸렸을 때 말씀이시죠?”
진호 아저씨 곁에서 8년 동안 일을 해온 희원 누나. 재작년에 펜 툰에 데뷔를 하여 꿈을 이뤄냈다.
“그땐 서준이는 꼬맹이였는데. 어느 틈에 이렇게 큰 건지. 대견하다, 대견해.”
진호 아저씨는 나를 바라보며 씨익 웃는다.
를 시작으로, 회귀 전에 없던 온갖 재밌는 만화를 그려낸 박진호.
공사판을 전전하며 만화가로서 잊혀졌던 회귀 전과와 다르게 이번엔 인기작가로 대성했다.
“서준님은 한국 서브컬쳐 시장을 살리고 싶다고 하셨죠. 2000년엔 불가능으로만 보였는데, 이뤄내신 소감이 어떠세요?”
어느새 라피스도 내 어깨에 앉아 있었다,
2000년.
시대의 발전, 사회통념 등으로 인해 만화시장이 큰 간격으로 위축하기 시작한 격동의 때였다.
“서준이를 만났을 때가 딱 2000년이었죠. 90년 중기에 10만부를 팔았던 작가조차 1만부를 넘기기 힘들 때였고요.”
희원 누나가 답하자, 진호 아저씨는 매우 공감하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도저히 만화로 살 수 없던 때였어. 원고료만으로 생활을 할 수도 없고, 연재처도 이리저리 옮겨 다니고 내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때였지……. 정말 만화를 관둬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진호 아저씨는 아찔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희원 누나도 곁에서 있었기에 잘 알고 있겠지.
“제가 옆에서 지켜봤잖아요. 진호 선생님은 월세도 밀리고 가스비도 3달 동안 밀려서 통지서까지 왔을 정도라니까요.”
“맞아, 그땐 만화로 그저 밥 먹고 살아갔으면 하는 게 꿈이었을 정도였다.”
2000년은 그 정도로 만화가들에게 힘든 시기였다.
“코믹 제트도 마찬가지였고 말입니다.”
고준하가 답했다.
출판사마저 그랬다.
대여점 붐이 터졌을 때, 단기적이고 갑작스럽게 만화 출판사가 세워졌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1년조차 가지 못해 소리 소문 없이 대부분이 사업을 정리했을 정도.
‘내가 없었다면 코믹 제트나 대명성도 그런 수순을 밟았겠지.’
그리고 훗날 웹툰이 붐을 터뜨릴 때까지, 만화의 인기는 차갑게 식어갔을 것이다.
그것이 회귀전의 일이었다.
하지만 나로 인해 모든 게 바뀌었다.
“그런 암울하던 때에 기적처럼 가 나왔으니 더욱 의미가 깊은 것이었죠.”
고준하 편집장은 무척 자랑스럽단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진호 아저씨도 고준하 편집장에 가세했다.
“크으, 맞습니다! 서준이는 한국 만화계의 백마 타고 온 초인 그 자체였죠!”
“완전히 죽어가던 제트를 살린 건 여전히 전설로 남아있죠. 심지어 전세계 기록 1위를 노리면서까지 말입니다!”
뭔가 당사자인 나를 빼놓고 잔뜩 흥분해 있는 모습이었다.
“서준이가 만약 없었더라면…….”
“그건 상상도 하기 싫군요. 한국 만화계는 암울 그 자체였을 겁니다.”
고준하의 말에, 소현 누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준 선생님이 없었다면 저도 꿈을 못 이뤘을 거예요.”
사이다를 홀짝이면서 답하는 소현 누나.
“소현이도 고생 참 많이 했어. 그래도 나중엔 데뷔하고 잘 나가는 만화가 됐잖아.”
“모두 도와주신 덕분이에요.”
소현 누나는 박두식의 만화 공장 출신이었다.
데뷔의 꿈을 이뤄준다는 사탕발림에 속아 무보수로 일을 했다.
‘요샌 시대가 변해 없어졌다곤 하지만, 정말 끔찍했었지. 꿈을 이뤄준다 해서 따라갔더니, 뒤통수를 맞다니.’
그 공장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지망생들을 죽였을까.
공장 만화는 대본소나 잡지에 납품을 많이 할수록 수익을 얻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공장처럼 만화를 찍어내기 위한 문하생들을 모았고.
수십 명의 문하생이 모여 공장식으로 운영하는 방식이 생기곤 했다.
“공장은 제대로 된 월급을 주는 곳이 10곳 중에 1곳이라고 들었어요.”
“그렇죠. 손에 꼽을 정도죠.”
고준하 편집장은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차며 말했다.
예나 지금이나 지망생을 중요시하는 그였다.
저작권 협회장을 맡으면서 지망생들의 인권 개선도 노력하고자 했었다.
게다가 펜툰이 떠오르면서 더 이상 악질 양아치들에게 속는 지망생들은 없어진 것이다.
“근데 그 만화가 협회장…… 박두식은 요새 뭐하고 지내시는지 아십니까?”
박진호의 말에, 고준하가 어깨를 들썩이며 입을 열었다.
“그게, 어느 웹툰 사이트에 연재하곤 계신다고 들었는데, 이름 없는 곳이라 자세한 이야기는 잘 모르겠습니다.”
만화가 협회장 박두식은 결국 몰락했다.
어느새 사람들로부터 잊혀져갔고, 이름 없는 곳으로까지 밀려나간 것이다.
‘회귀 전에는 어디 학교 교수나 하면서 칼럼을 쓰고 선하고 좋은 사람인양 위선을 떨었는데.’
이번 생의 박두식은 힘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나로 인해 그 높던 입지가 다 무너져 내린 것이겠지.
‘그 사람은 그래도 싼 사람이다.’
협회의 왕좌에 올라서 지망생들을 착취하고 약한 출판사들에게 횡포를 부리며 제멋대로 살아온 양아치가 아닌가.
아주 정당한 결과였다.
이정미는 궁금한 듯, 질문을 꺼냈다.
“그런데 펜툰 말고 다른 웹툰 사이트가 요새 남아 있었나요?”
“있긴 하지만, 의미 없을 걸. 펜툰 아니면 웹툰은 잘 안보니까.”
박은정의 대답에, 고준하 편집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펜툰이 웹툰 시장을 97%나 점유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펜툰의 독점체제는 완벽하게 이루어졌다.
웹툰 사업 성공 이후로, 한국에 잠시 동안 웹툰 사이트가 우후죽순 나오곤 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유지조차 불가능했고, 요새는 두세 곳 정도의 연재처만 살아남아 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작가를 펜이 전부 영입했으니까.’
미래에 성공할 작가들을 데려오기도 했고, 가능성이 보이는 작가들도 ‘루키도전’ 시스템을 통해 기용하기도 했다.
심지어 웹 연재의 특성상 연재권은 한정적이지 않다. 어느 작가든 계속해서 영입할 수 있던 것이다.
‘결국 다른 웹툰 사이트는 작가를 구할 수도 없고, 지분을 펜한테 빼앗기게 된 거야.’
2000년부터 기획한 선점의 효과는 확실하게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
박두식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니,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한명준 아이피 점프 편집장이라던가, 강명호라던가.’
혹시 고준하라면 잘 알고 있는 게 아닐까?
“고 편집장님, 제가 질문 드려도 될까요.”
“예, 선생님. 알고 있는 한에 뭐든지 답해드리겠습니다.”
고준하에게로부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한명준 편집장은 속죄를 위해 만화계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일개 팬의 입장에서 응원하고 있다는 듯하다.
“서준 선생님과 한때 라이벌이었던 강명호는…… 현재 제트에서 연재 준비중입니다.”
“강명호가요?”
나는 눈을 깜빡였다.
와 대결을 펼치던 의 작가, 강명호.
“직접 회사에 투고하러왔을 때 이야기를 나누어봤습니다만, 개과천선한 모습이었습니다. 낮은 자리까지 내려와 봐야 깨우친다고 하죠. 마치 순한 양 같았습니다.”
고준하로부터 이야기를 들어보니, 강명호는 많이 달라졌다는 듯하다.
회귀 전에도 협회 적폐와 싸우는 등의 나름대로 정의로운 모습을 보이곤 했으나.
첫 작품이 워낙 대박을 쳐 자만심이 강해진 것이 문제였다. 상대를 낮잡아보고 말투가 나쁘다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나락까지 내려가서야 겨우 깨우친 걸까. 이번 기회에 단점이 고쳐진 듯하다.
“왜 그런가 했더니, 서준 선생님이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보고 깨달았다고 하더군요. 자신이 틀렸다는 걸요.”
게다가 고준하는 덧붙여 답했다.
“늦었지만 선의의 경쟁을 하고 싶다고, 과거의 무례를 용서해줬으면 한다는 말까지 했었죠,”
“기대한다고 전해주세요.”
“강명호도 기뻐할 겁니다.”
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바뀌었다.
그리고 희망을 만들어냈다.
‘나는 만화를 그렸을 뿐이지만, 어느새 사람들에게도 변화를 주었어.’
타인에게 행복이 된다.
그것만으로도 유의미한 인생이었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이다.
* * *
모두가 돌아간 뒤, 라피스와 나는 48권을 보고 있었다.
벌써 는 초판만 420만부. 일본 전체 판매부수가 2억 부를 넘어섰다. 전세계를 합친다면 3억 부가 된다.
“의 기록은 지금 기준으로 3억 5천 만부였지.”
는 역대 최단 판매 기록을 세웠지만. 아직 에 비해 5천 만부라는 차이가 남아 있다.
는 현재 48권까지 발매되어있는 상황. 반면 은 42권으로 완결이 되어있는 상태였다.
“ 권수가 많았으면 더 놀라운 기록을 세웠겠죠.”
가 권수로 몰아붙인다면 을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라피스와의 약속은 2010년까지.’
1년 안에 3억 5천부까지 팔지 못한다면 모든 것이 무로 되돌아갈지도 모른다.
‘어떻게 지금까지 쌓아 올린 건데.’
그럴 순 없었다.
반드시 3억 5천만 부를 넘어서야한다.
‘이럴 거면 하나만 집중해서 연재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란 생각도 조금씩 들긴 하는데.’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허튼 생각이었다.
다른 작품들을 연재한 건 의미 없지 않다.
다양한 작품들을 그려서 다양한 독자들을 접했다. 그리고 그들을 내 팬으로 만들었고.
그들이 향하는 건 결국 내 대표작, 다.
‘내 팬으로 만들면 결국 내 대표작 를 접하게 되어있으니까.’
2000년부터 지금까지.
내게 주어진 시간은 많았다. 그러니 한 작품에 몰두하는 것보다 다양한 작품을 그려내는 것이 옳은 판단인 것이다.
“극장판이 성공한다면 기록을 넘어설 거야.”
나는 라피스에게 미소를 보였다.
전세계적으로 공개하는 극장판 애니메이션.
단행본 판매부수를 높이기 위한 나의 마지막 전략이나 다름없었다.
“극장판은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고 있는 거 같더라고요.”
“응, 현장도 가끔 가보기도 하고, 도울 수 있는 게 있으면 적극적으로 협조하거든. 제작종료도 얼마 안 남았어.”
“사람들도 극장판에 기대를 많이 하고 있고요.”
“반드시 그 기대에 보답해야지.”
나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최고의 스태프 진으로 이루어진 극장판 애니메이션.
그것이 세상 밖으로 공개되기까지 얼마 안남은 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