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20-second songwriting genius, a 200,000-second monster RAW novel - Chapter 108
20초 작곡천재, 200,000초 괴물 되다 108화
망령을 부리는 여인(2)
“[그게 무슨 뜻이죠?]”
“[마, 말씀드린 그대로예요!]”
“[….]”
“[4년 전에, 앙리 씨와 함께 퀸 엘리자베스에 나갔거든요. 저, 저도 열심히 노력해서 파이널 라운드까지 올라갔는데….]”
최후의 6인에는 들지 못했다고 한다.
물론 그마저도 엄청난 성과인 것은 확실했지만.
“[앙리 씨는 분명 세미 파이널까지는 별 주목을 못 받았었거든요. 근데… 파이널 라운드에서 완전히 분위기가 뒤, 뒤바뀌었어요.]”
“….”
“[블라디미르 호루미츠의 연주가, 거의 90% 가까이 재현되었어요.]”
“…미친.”
“[네?]”
“[아닙니다.]”
무심코 한국어로 욕지거리를 내뱉어 버렸고, 솔직히 누구라도 이런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니, 상식적으로 그렇잖아.
수많은 피아니스트들이 존경해 마다치 않는, ‘피아노의 신’의 연주를 그대로 카피할 수 있다니.
보통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잖아.
“[왜 저는 이걸 몰랐죠?]”
“[그, 그건… 앙리 씨가 그 연주를 잘 안 드러내셔서 그래요. 실제로 직접 들어본 사람은 아, 아주 적거든요.]”
….
그렇구나.
하긴 뭐. 지금 열아홉인가, 스물 즈음 됐는데.
개인 리사이틀을 열기에는 아직 이르고.
전투적으로 콩쿠르에 나가지 않는 이상에야 일반인들은 연주를 듣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카피 능력이 내 예상 범위 밖이군.’
살면서 남의 능력을 잘 따라 하는 사람은 수도 없이 보아왔다.
사운드 클라이머에서 도적질을 하는 어디 엔터 스튜디오 직원 또한 비슷한 부류라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뭐랄까.
앙리는 이질적이다.
지금까지 보아온, ‘카피캣’들과는 궤 자체가 다르다고나 할까.
“[어, 어쨌든, 그래요! 정말 감사합니다.]”
“[내일 제비뽑기죠. 앞으로도 힘냅시다.]”
나와 발레리의 밀회는, 그렇게 끝마쳐졌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보자르 홀에 가서 제비뽑기를 했다.
60명에서 스물네 명으로 확 줄어든 인원들 탓일까, 꽤 빨리 끝나더라.
그리고,
“….”
“….”
마치 신이 운명으로 장난질하는 것 같이 느껴지더라.
“며칠 차냐?”
“2일 차.”
“난 1일 차다. 서울음대 선배랑 같은 날이지. 아, 발레리도 1일 차더군.”
…그렇다고 한다.
퍼스트 라운드에서 개꿀잼 연주를 보여주었던 이들과 찢겨지게 되었다.
나와 같은 날에 연주하는, ‘내가 아는’ 사람은 단 한 명.
“넌 이번에도 앙리와 같은 날이구나.”
“그러게 말이여.”
앙리 르페브.
그녀뿐.
“…참 지독한 악연이군.”
“그런가?”
“보통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너도 저 재능을 봤잖아.”
…나는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전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서도.
이틀 차에 걸린 이들은 절망을 내뱉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다행이다’라며 안도하는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모두가 1등을 노리는 건 아니니까. 그저 최대한 올라가 보고 싶다는 사람이 대다수지.”
“….”
딱히 그게 잘못된 건 아니긴 하지.
다만, 나는 다를 뿐.
“난 오히려 좋아.”
“…?”
“지금 완전히 부숴 놔야지 계획대로 진행될 거 같거든.”
“…그런 거냐? 너라면 분명… 파이널에서 앙리를 철저히 박살 내는 계획을 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뭐, 그렇지.
그게 그림이 좋기는 하지.
내가 막 2라운드 내내 앙리한테 처발리다가, 막판에 은둔 고수한테 가르침을 받고 각성하고, 팬들이 보내준 기를 모아 최후의 일격을 날리고!
드래곤볼의 한 장면 같다.
아마 그림이 개지리게 나올 것이다.
다만,
“난 참을성이 별로 안 좋거든.”
원래 내 성격이 그렇다.
한 번 싸우고 무승부가 났으면 두 번째 결판을 지어야지.
세 번째까지 가면 질리는 타입.
속전속결을 선호하는 타입.
그러므로
“여기서 끝낸다.”
나는 다짐했다.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게, 한국어로 그리 말했다.
다만,
“…끝낸다고?”
…깜빡하고 있었네.
“네가 뭔데?”
여기에 있는 한국인이 우리 둘만이 아니었지.
“아직 세미 파이널인데, 너무 자만 부리는 거 아닌가?”
나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얼굴 연식은 나보다 한 5년 정도 오래된 거 같네.
이제 막 졸업 준비하는 학부생 느낌.
“누구냐?”
“…이영서를 몰라?”
“아, 이영서였어?”
해외 실력자는 잘 모르지만, 국내 실력자는 그럭저럭 잘 안다.
나도 일단은 대학을 나오기는 했고, 건너건너 듣는 소식도 있었으니까.
이영서는 나름 국내에서 인지도 있는 피아니스트였다. 여러 수상 경력도 있고, 스펙도 빵빵하고.
졸업 후에 개인 활동 좀 하다가 아버지가 운영하던 대형 음악학원을 물려받아 운영했던가.
돈도 꽤 만졌겠지.
왜 이렇게 자세히 알고 있냐, 전생에 알바했던 학원 바로 맞은 편의 주인장이라 그렇다.
물론 연이 있지는 않았지만.
“뭐, 그렇습니다. 미리 사죄드리죠.”
“…뭐?”
“제가 굴러들어 와서 수상 자리 하나를 뺏어버렸잖아요.”
“….”
얼굴이 찌푸려지네,
그리고 이유가 예측이 되네.
군면제다 군면제.
천연 스테로이드이자 프로포폴이자 스팀팩이라는 말이다.
괜히 더 자극해서 좋을 게 없었다.
다만,
“빠져 가지고.”
그는 내 예상보다도, 성격이 좀 꼬여 있는 모양이었다.
“넌 왜 처웃어?”
“저요?”
나한테 맞서는 것은 무서우니, 유재호에게 대신 공격을 날릴 생각인 모양이다.
“아, 아니, 전 아무 말도 안 했….”
“마음 고쳐먹어라.”
“…예?”
“지금이라도 후회하지 말고.”
“….”
“선배라서 쓴소리 해주는 거야.”
그러고서, 자기 할 말만 하고 등을 돌렸다.
“왜… 왜 X랄인 거지?”
“원래 때린 놈보다 옆에서 웃는 놈이 더 얄미운 법이거든.”
“….”
“가만히 있을 거냐?”
…솔직히 유재호는 재능 있는 놈이다.
다만, 멘탈이 강한 놈은 아니다.
회귀 전에는 좀 많이 엇나가서 진짜 약도 빨고 감옥 가니 마니 하던데.
아마, 멘탈이 더 셌다면 더 높은 위치에 오르지 않을까 싶은데.
“가만히 있을 리가.”
유재호의 눈이 활활 불타올랐다.
처음 만났을 때 보았던, 느끼한 자만감과는 완전히 다른 열기였다.
* * *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사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운이 7이고 노력이 3이라는 말이다.
물론 죽어라 노력하는 사람 앞에서 이 말을 떠든다면, 선빵을 맞아도 별 할 말이 없겠지만서도.
이영서는 그 말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아주 운 좋게, 어릴 적 좋은 스승을 만났으니까.
‘조명주 피아니스트를 모르는 한국인은 없지.’
80년대 국위선양의 주인공.
세계에 대한민국 음악인의 저력을 알린 인물.
이영서는 언제나 자신의 스승을 존경했으며, 그의 가르침을 잊지 않았다.
그렇다.
그의 배운 진리, ‘깨끗한 연주’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도 깊게 이해했다는 말이다.
-모든 것에는 균형이 있단다. 세상은 음양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것은 건반 위라도 마찬가지야. 깨끗한 연주란 거기서 나오는 것이지.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자극을 찾아 날뛰는 자는 그저 우매할 뿐.
마치 자연이 가져다준 깨끗한 건강식을 두고, 욕망에 사로잡혀 인스턴트를 먹는 노동자를 보고 있는 것 같단다.
혹자는 그가 괴상한 철학과 선민사상에 심하게 심취해있다고 비난하기도 했지만, 적어도 제자인 이영서에게 그가 하는 말은 진리이자 세상의 이치였다.
…그야, 그만한 성취가 나왔으니까.
자신이 지금 여기 있다는 사실이, 그가 옳았다는 ‘증명’ 그 자체였으니까.
다만….
‘…이상한 놈이 만든 이상한 연주법이 콩쿠르를 더럽히고 있다.’
요즘 들어 상황은 점점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FDRE라는 깨끗하지 못한 기술에 정신을 빼앗겨 버린 사람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었다.
그러므로 자신이 해야 할 것은 단 하나.
자신의 스승과 같이, 사람들을 계몽시키는 것.
조화롭고 깨끗한 연주를 통해, 괜한 곳에 정신이 팔려 있는 사람들을 일깨우는 것.
물론 그 과정에서 군면제를 받으면 더 좋고.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마침내, 세미 파이널 라운드의 첫날이 되었다.
첫날에 뽑힌 것은 총 다섯 명.
그중 눈여겨볼 만한 것은 자신을 제외한 두 명.
한 명은 ‘한국 10대의 정상’이라고 불리던 유재호와,
아일랜드 출신에, 나름 리사이틀도 열며 인기를 끌던 실력자, 발레리 빈스.
‘…전자는 이미 오염되었어.’
기대가 크던 아이였다.
다만 몇 달 전인가, 김도일과의 일전을 통해 몇 달간 그로기 상태에 빠졌고, 다시금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었을 때에는 완전히 굴복한 듯한 눈빛을 내비치고 있었다.
-[지금부터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명예로운 24인을 위한 세미 파이널 라운드를 시작….]
‘참… 불쌍하군.’
이영서는 그런 유재호가 불쌍했다.
역시 주변 환경이란 게 참 중요하구나 싶었다.
그러므로,
‘내가 바꿔줘야지.’
여기서, 그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해 주면 어떨까 싶다.
후배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게 선배의 도리 아니겠는가?
물론, ‘천재를 키운 선배’라는 타이틀이 탐나는 건 비밀이고.
-[1번 참가자 유재호 씨는 두 개의 독주곡과 한 개의 협주곡을 연주해야 합니다. 독주곡에는 아직 미발표된 윈스턴 작곡가의 곡이 포함되어 있으며….]
규정이 읊어지며, 연주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유재호의 순번이 1번, 발레리가 4번.
자신은 5번. 즉, 오늘의 마지막.
‘…결정타를 날리면 딱이겠군.’
혼란을 가지는 사람이 많았다.
아무리 봐도 경박스러운 기술에 정신이 팔리는 이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었다는 말이다.
‘내가 막을 수 있어!’
아직은 유재호 한 명뿐이다.
나머지 셋은 운 좋게도 자신과 비슷하게 ‘깨끗한’ 연주를 추구하는 사람들.
힘을 합쳐 유재호와 대비되게끔 좋은 연주를 들려준다면, 아마 그를 정신을 차리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두우웅-!
오늘도, 퍼스트 라운드 때와 같은 강렬한 연주가 귀를 자극했다.
관객들은 감탄을 토했고, 오케스트라와 협주를 진행할 때에는 마치 폭주 기관차처럼 날뛰었다.
반응은 커다란 호평.
…나중에는 사그라질 것이 분명한 호평.
그렇게 생각했었다.
다음 연주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어…?”
무심코, 탄성이 튀어나왔다.
유재호의 순번은 분명 방금 끝났는데.
러시아 유망주 알렉세이가 피아노에 앞에 앉자, 다시금 비슷한 느낌의 터치가 들려왔다.
-[이, 이거… 뉘앙스가 FDRE 아닙니까…?]
-[유재호 씨만큼은 아니지만요… 아니, 알렉세이 씨까지 이 기술에 도전하시다니….]
그뿐만이 아니라,
-[…지미 씨까지!]
그다음 순번도 연달아, ‘오염된’ 연주법에 손을 대고 있었다!
“이… 이 무슨….”
모든 참가자들의 연주성향에 대한 정보는 이미 머릿속에 넣어두었다.
그렇기에 머리가 멍해졌다.
저럴 인간들이 아닌데.
분명 자신과 똑같이, ‘깨끗함’을 목표로 삼고 있었는데…?
‘이런… 정신 나간 놈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애를 낳아본 적 없지만, 마치 공원에서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는 못난 아들놈을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열기가 머릿속을 잠식해 나갔고, 그것은 발레리의 등장과 함께 겨우 식혀졌다.
그렇다.
아직이다.
발리리는 ‘부드러움’에 성향이 치우쳐 있기는 하지만, 잡티 없는 깨끗함과 그리 멀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라도 제대로 된 연주를 들려준다면….
-[…평소 발레리 씨랑 느낌이 다르군요.]
-[악센트가 들어가 있어요.]
-[마치… 마치 김도일 씨의 기술 같아요.]
“아.”
탄성은, 그 한마디로 끝이 났다.
머리가 멍해졌고, 비워졌다.
그리고,
….
-식단을 바로 해야 한단다. 자연식을 가까이해야 해. 자연은 더러움이 없단다.
스승께서 매일 해주시던 ‘식단’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가 스쳐 지나갔다.
아직 초등학생이었던 자신은, 그때 ‘초코우유도 안 되나요?’라고 물었다.
자신은 초코우유를 아주 좋아했으니까.
믈론 그에 대한 스승의 반응은 한결같았었다.
-초코우유에는 설탕이 들어 있어. 설탕은 안 좋단다.
-모두가 다 먹는데요.
-탐욕만을 위한 알갱이니까. 절대 깨끗한 게 아니야. 넌 탐욕에 지배당하고 싶니?
자신은 지배당하기 싫었다.
그때부터 자신은 콜라를 끊었고, 스승님이 추천해 준 플레인 요거트를 입에 달고 살았다.
다만….
시중에 파는 플레인 요거트에 설탕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꽤나 최근의 일이었다.
“…아.”
네 명의 참가자의 연주가 끝나고, 자신의 차례가 돌아왔다.
그리고 자신은… 평소 하던 그대로의 연주를 했다.
원래라면 호평이 돌아와야 했지만,
“[…좀… 밍밍하달까.]”
지금은,
설탕이 빠진, 플레인 요거트 같다는 평가가 내려졌다.
‘…이미. 이미 퍼져 버렸어.’
스승과 같이 조화로움을 추구했다.
형형색색의 과일을 가까이하고, 자극적인 것을 멀리하고.
듣는 것만으로 정신이 깨끗해지는, 그런 연주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다만,
마치 단내가 지독히 흐르는 기류 속에서 자신은 과연,
살아남을 수가 있을까?
조화와 ‘깨끗함’을 부르짖던 자신의 스승조차,
설탕이 들어 있는 플레인 요거트를 피하지 못했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