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villain's infinite absorption power RAW novel - Chapter 161
162. 원래 그랬어
“신의 진명은… 니쉬코트다. 정령들이 두려움에 말이 떨리는군. 제법 큰 용기를 낸 모양이야.”
“니쉬코트… 고맙군. 정령들에게 전해. 그놈을 두 번 다시 볼 수 없게 내가 만들어 준다고.”
마르하임이 알려준 신의 진명을 수혁은 한 번 더 곱씹었다.
이제 다시 탑으로 돌아가 비비안과 함께 키프로스의 안배의 마무리를 지을 차례다.
수혁 일행이 콜로세움의 밑으로 내려가자 아직 50층에 도달하지 못한 전사들이 궁금증을 잔뜩 드러냈다.
“관리자들도 전부 사라졌어.”
“위에서 엄청나게 큰 소음이 들려는데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한 차원 높은 전투가 이루어진 것 같은데 직접 보지 못해 너무 아쉽네.”
“저자들은 위에서 내려온 것 같은데?”
“앗! 저 녀석 내가 알아. 이미 위층에 올라간 지 얼마 안 됐을 텐데?”
“쓰읍… 함부로 말 걸지 마. 우리하고 급이 달라.”
수군거리는 그들은 수혁 일행에게 쉽사리 다가오지 못했다.
층별로 전사들의 등급을 나눈 이상 그들은 거리감을 느끼는 듯 보였다.
거기에 더해 관리를 도맡던 조인족들도 사라지자 콜로세움은 혼란에 빠졌고, 전투장의 뜨거운 열기도 사라졌다.
음식을 제공해 주던 조인족도 없어지자 목표를 잃어버린 예비 전사들은 회의를 거듭하기 바빴다.
콜로세움의 1층에 도착한 수혁 일행은 엘프와 묘족의 일원을 설득하고 난 뒤 이곳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내 동료 중에 공간이동 마법 전문가가 있으니 내가 그녀와 함께 올게. 그녀라면 서로의 세계를 연결해 주는 게이트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거야.”
“고맙군. 나는 아직 남아있는 대지의 양분을 모아 세계수의 씨앗을 최대한 살려 보겠어. 그것과 함께 이주 준비를 한다면 약간의 시간이 걸릴 거야. 한… 1년 정도?”
“저도 일족들을 설득하는데 그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좋아. 다들 1년 뒤에 이곳에서 만나자고. 아참, 그리고 만약 내가 오지 않는다면….”
그들과 포옹으로 작별 인사를 하려던 수혁의 말을 마르하임이 끊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잘 아는 그들이 먼저 선수 쳤다.
“자넨 꼭 올 거라고 믿고 있네. 약속은 꼭 지키는 전사 아닌가.”
“저두요. 만약이라는 단어는 필요 없어요.”
앞으로 수혁이 어떠한 일을 할 것인지 콜로세움을 내려오면서 이야기를 들은 그들은 단호한 어투로 신뢰를 보내 주었다.
수혁을 향한 신뢰가 단단한 콘크리트처럼 굳어진 그들의 눈에는 오직 믿음뿐이었다.
그들의 믿음에 꼭 보답하기로 마음먹은 수혁은 게이트를 생성해 냈다.
탑의 준비가 전부 끝났는지 확인할 차례였다.
슈우우웅.
수혁이 게이트 너머로 사라지는 걸 보고 마르하임과 칼리아, 멜리에도 훗날을 기약하며 자신들이 지나왔던 탑으로 되돌아갔다.
* * *
“오!”
탑의 1층으로 되돌아온 수혁은 확 바뀌어버린 풍경에 감탄사를 날렸다.
너저분한 키메라의 사체와 전투의 흔적이 가득했던 대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돌을 쌓아 만든 정육각형의 거대한 기둥과 건축물이 대신했다.
기둥에 새겨진 각종 문자와 복잡하게 이어진 마법진이 바닥에 몇 겹으로 그려있는 것을 보아하니 수혁이 저 안에 들어가도 쉽사리 나올 자신이 없었다.
계단식으로 이루어진 조형물 제일 위에는 키프로스가 눈을 감은 채 얌전히 누워 있었다.
저렇게 누워있다는 얘기는 키메라의 능력을 이용해 드미트리의 육체에 연결을 완료했다는 의미.
씁쓸한 눈으로 바라보는 수혁의 옆에 작은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지 않았지만 특유의 가벼운 발자국 소리는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고생했네.”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마침 좋은 타이밍에 돌아왔네요. 완성된 지 며칠 안 됐거든요. 쉬지 않고 짓는다고 드워프들이 고생했죠.”
말을 마친 비비안은 걱정 반, 기대감 반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그녀의 예상처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완벽히 해낸 수혁이 돌아오자 이제 남은 것은 그녀의 몫이었다.
이 남자는 신기할 정도로 앞에 닥친 역경을 전부 해결했다.
‘그래서 매력적이지만, 나는….’
키프로스가 없이 그가 준비해 온 마법을 혼자서 펼치려니 그녀의 자신감과 별개로 불안감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을 살피던 수혁은 촉촉하던 전과 달리 바짝 메마른 입술을 발견했다.
스승까지 없어진 그녀가 오롯이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현재.
어떠한 말로 그녀의 긴장감을 없애주고 자신감을 올려 줘야 하나.
“모든 일이 끝나면 못 마셨던 와인이나 같이 마시자고.”
“어머? 데이트 신청? 그런 말도 할 줄 알았어요? 남자였네?”
다행히 그의 말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어 보였다.
수혁의 말이 의외였는지 눈이 별안간 커진 비비안이 연이어 배시시 눈웃음을 지었다.
내 이미지가 어땠길래 그러지?
“후훗. 덕분에 긴장이 좀 풀렸네요. 사실 스승님이 없이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제법 컸거든요.”
“넌 할 수 있어.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최고니까.”
“고마워요.”
“그리고….”
콜로세움에서 수혁이 어떻게 생활해 왔고, 전투를 치러 왔는지, 새로운 동료들을 만나 어떠한 관계를 맺었는지까지.
수혁이 하는 이야기에 맞춰 고개를 끄덕거리던 비비안의 마지막은 경악으로 뒤바뀌었다.
“그들을 지구로 데려온다구요?!”
“그래. 그들 역시 외신의 침략으로, 아니지 침식으로 인해 세계가 망가져 버렸어. 그대로라면 그들은 전부 죽어 버릴 거야. 지구도 마침 많은 인구가 죽었으니 그들에게 일정 영토를 내어 주자고. 다들 훌륭한 전사들이니 먼 훗날에 외신처럼 또 다른 존재가 침략한다면 그들은 큰 힘이 되어 줄 거야.”
“어…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동의할까요? 낯선 존재들이 와서 살아간다는데… 안 그래도 몬스터들에 의해 큰 혼란을 겪었잖아요.”
“다른 사람들의 동의가 왜 필요하지?”
“?!”
당당한 수혁의 말에 비비안은 기존의 상식이 뒤엎어진 현실을 직시했다.
기존의 질서는 전부 무너지고 일명 헌터라는 존재들이 주류가 되어 버린 세상.
그전에 가졌던 재물이나 권력은 소용이 없다.
혼란스러운 세상을 한 번에 휘어잡을 수 있는 자들은 결국 수혁과 같은 고레벨 헌터들뿐.
앞으로의 세상은 이들에게 달렸다.
“설마….”
“걱정 마. 내가 왕이 설마 왕이라도 하겠어? 난 그저 이 세상을 지키고 혼란을 잠재울 뿐이야.”
“그럼 수혁은 일이 마무리되면 그다음엔 무엇을 하려구요?”
그녀의 질문에 수혁이 망치로 두드려 맞은 것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이 모든 일이 끝나면 난 무엇을 해야 하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해답을 찾지 못하는 수혁은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내가 무얼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살아왔었던가.
처음에는 그저 돈 잘 버는 헌터가 되고 싶었지만 강제적으로 빌런 생활을 했었다.
실력을 쌓고 난 뒤에 세계가 멸망하자 이 세계를 구하고 더는 빌런이 아닌 양지의 올바른 헌터로서 살아가려 했다.
탑을 정복했고, 이 세계를 비롯해 다른 세계까지도 영향을 끼치는 외신을 잡는다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지.
혼란에 빠진 세상의 질서를 구축하는 것은 굳이 그가 아니더라도 김상중을 비롯한 다른 자들이 잘 해낼 것이다.
그것은 수혁의 특기가 아니니까.
내 특기는…….
처음으로 발견한 그의 모습에 비비안이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는 동안 생각의 정리를 마친 수혁이 입을 열었다.
“음… 우선 동료들과 그동안 고생했다는 파티를 열어야겠지. 그러고 난 뒤에는…… 여행을 좀 떠나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여행이요?”
“응. 아직 세상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종족들이 참 많더라고. 그들과 싸워 보기도 하고, 곁에 붙어서 좀 더 나은 기술이 있으면 배워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쓸 만한 것은 다시 지구로 돌아와 전사들에게 전파하고 말이지. 그렇게 사는 것도 재밌을 것 같네.”
여행이라는 것은 그간 집중해 온 일에서 벗어나 휴식과 재충전을 위한 시간의 의미도 가졌다.
지금껏 앞만 보고 달려왔던 수혁은 사실 그 누구보다도 마음의 고갈이 심했다.
오직 강한 정신력만으로 스스로를 지탱해 왔던 그는 비비안의 질문에 자신의 본질적인 마음의 밑바닥을 깨달았다.
깊숙한 수혁의 진심을 전해 들은 비비안은 아까 전과 반대로 수혁을 위로해 주었다.
“그거 알아요? 여행이라는 영어 단어의 어원이 ‘고통’이라는 것을? 지금껏 수혁은 그저 기나긴 여행을 해 왔을 뿐이에요. 모든 일을 끝마치고 이제는 고난의 여행이 아닌 다른 의미의 여행을 시작할 수 있을 거예요.”
“그래야지.”
두 사람의 눈이 마주 보고 서로를 위로해 주었다.
한참 묘한 분위기가 무르익고 서로의 얼굴이 가까워질 무렵, 그들 사이로 키가 작은 드워프가 끼어들었다.
“수혁!”
“노르돌.”
눈치 없는 이 드워프의 등장에 비비안이 그를 흘겨보자 수혁이 배를 잡고 폭소했다.
“무사히 돌아왔군! 위대한 전사여-”
“그래. 아직 남아 있었네? 내가 살던 세계로 갔을 줄 알았는데.”
“으음… 키프로스님에게 이야기를 들었지. 다른 자들은 이미 자네의 세계로 가서 열심히 터전을 갈고 닦는 중이라네. 단지….”
“단지?”
“지금껏 믿던 신의 실체를 직접 보고 싶을 뿐이야. 경외의 대상을 내 두 눈에 담고 따지듯 묻고 싶은 게 있거든. 왜 우리를 이용했는지 말이야.”
노르돌은 여전히 미련이 남은 것이 분명했다.
어찌 보면 외신을 마주하고 그의 말에 홀딱 넘어가 적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수혁은 굳이 그를 말리지 않았다.
때로는 직접 눈으로 확인해 봐야 깨닫는 법도 있으니.
“그럼. 다들 마지막 피날레를 시작하자고.”
수혁의 말에 노르돌과 비비안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자신이 지은 건축물이 온전히 작동하기를 바라는 노르돌과 주문의 힘이 부족하지 않기를 믿어야 하는 비비안은 복잡한 눈으로 제단을 바라보았다.
아공간에서 꺼낸 자수정을 받은 비비안이 천천히 제단 위로 올라갔다.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키프로스의 가슴에 자수정을 올려둔 그녀가 천천히 주문을 외웠다.
드드드드드드.
제단 주변의 땅이 울리고 자수정이 연한 빛을 내뿜더니 천천히 키프로스의 가슴 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하늘의 공간을 찢고 거센 보랏빛이 키프로스의 몸을 감싸자 두둥실 육체가 떠올랐다.
비비안이 도망치듯 제단 밑으로 내려와 수혁의 앞에 마련된 마법의 발동진에 손을 갖다 대었다.
외신이 강림하자마자 바로 봉인을 할 생각이었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빛의 세기가 강렬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촛불을 입으로 분 것처럼 훅-하며 빛이 사라지고 떠올랐던 키프로스가 천천히 제단으로 가라앉았다.
“지금!”
수혁의 외침과 함께 비비안의 주문이 발동되었다.
이어서 제단을 감싼 기둥이 파지직거리더니 생겨난 빛이 기둥과 기둥을 이어 제단까지 크게 감쌌다.
키프로스의 봉인진이 성공적으로 발동하자 비비안이 환희에 찬 얼굴로 환호성을 지었다.
“성공이에요!”
제단에 누워있던 키프로스가 슬그머니 일어나더니 자신의 육체를 천천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손가락을 움직여 보고 팔을 굽혔다가도 펴보며 발을 들어 올려 킁킁 냄새도 맡았다.
쟤 뭐 하는 거야?
육체를 얻은 외신이 하는 행동에 맥이 빠지는 것도 잠시, 수혁은 궁금했던 점을 물어보았다.
“외신은 그럼 언제 죽는 거지?”
“스승님의 말에 따르면 50년 정도만 이곳에 가둬 두면 된다고 했어요. 죽어 가던 그는 제물이 없으니 이제 생명력을 잃을 거예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노르돌과 함께 주문을 보강해서 100년까지도 버틸 수 있게 해 놓았어요.”
“잠깐….”
콜로세움에서 자신이 아이나우를 붙잡아 공물 의자에 앉혔던 일이 떠올랐다.
설마….
“혹시 제물을 받았다면 얼마나 더 살 수 있지?”
“음… 못 해도 4,500년은 살지 않을까요? 왜요? 설마….”
수혁과 대화하던 비비안의 안색이 시퍼레졌다.
영리한 그녀는 이미 무슨 상황이 벌어졌는지 바로 알아차렸다.
책임은 내가 져야지.
“원래 강림하면 한 대 때려 주려고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