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writer who lives again RAW novel - chapter 179
“정말 좋아요. 당장 시작하고 싶어요.”
* * *
북콘서트는 장소까지 누들다웠다.
바로 누들 본사 근처, 언제 공사가 멈춘 건지 알 수 없는 공터였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버려진 땅’.
하지만 그 특유의 분위기에… 특별한 멋이 있었다.
정제된 것은 깔끔하다.
동시에 부담스럽다.
하지만 이렇게 도심 속의 자연스러운 공간은… 깔끔하진 못해도 편안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사람들이 놀라울 정도로 많이 찾아왔다.
나는 공터 구석에서 파멜라에게 물었다.
“참여 인원은 총 몇 명인가요?”
그러자 파멜라가 뭘 그런 걸 묻냐는 듯 되물었다.
“당연히 무제한이죠.”
“네?”
“좋잖아요. 마침 LJ 칼럼에 피터 한이 우리 북콘서트를 광고까지 해 줬는데. 이 공터가 터져버릴 정도로 사람이 많이 왔으니… 로큰롤 스타의 기분을 느낄 수 있을걸요?”
로큰롤 스타.
파멜라의 그 말은 괜한 비유가 아니긴 했다.
일반적인 북콘서트와는 달리 관객 의자도 없었다.
무대와 사람들, 그리고 밴드 공연을 위한 악기만 보면, 정말로 로큰롤 공연장 같은 느낌이 났다.
해가 슬슬 져가고 있었다.
펑, 하는 낮은 소리와 함께 조명이 켜지자.
“와… 분위기 끝내주네요.”
지훈이 가만히 읊조렸다.
“나가시죠.”
크리스가 시계를 확인하곤 말했다.
나는 금홍과 파멜라와 함께 무대에 올랐다.
우아한 박수 대신.
“와아아아아아!!!”
하는 함성부터 쏟아졌다.
내가 놀라서 파멜라를 보자, 이 정도는 기본이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관객들은 대부분 젊은 층이었다.
딱 봐도 누들의 책을 좋아할 것 같은 힙한 사람들.
그 사람들이 가득 채운 공터의 끝엔, 문화부 기자들이 미친 듯이 날 찍어 대고 있었다.
“자자, 다들 좀 조용히 해 보자고요. 작가님의 인사를 들어야 하지 않겠어요?”
파멜라가 능숙하게 관객들의 소란을 잠재웠다.
관객들은 그제야 좀 얌전해지며 날 보았다.
나는 ‘한국식으로’ 허리를 살짝 숙였다.
“이상입니다. 멋진 분들이 많이 오셨군요.”
내 ‘동양식 인사’에 그제야 박수가 쏟아졌다.
파멜라는 능숙하게 북콘서트를 진행했다.
대부분의 북콘서트는 책에 대한 소개를 먼저 하지만.
“우리는 그런 지루한 거 필요 없죠? 바로 작가님이 입을 열도록 하자고요!”
능구렁이 같지만 시원스러운 진행.
어느새 순서는 질의응답 시간으로 넘어가 버렸다.
관객들은 그런 누들 식의 행사에 이미 익숙한 듯, 너도나도 손을 들거나 질문을 외쳤다.
이건 정말… 미국이 아니면 겪어 보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난 직접 질문자를 골랐다.
가장 절실한 얼굴을 하고 있는 소녀를 말이다.
그녀는 유난히 키가 작아서, 발을 동동 구르며 외쳤다.
“저도 스릴러 작가가 되고 싶어요! 비법을 알려 주세요!”
그 질문에 나는 푸핫, 하고 웃고 말았다.
내가 지금까지 해 왔던 북콘서트의 질문은… 하나같이 얌전하고 우아한 것들이었다.
아무리 ‘콘서트’라지만, ‘북’이 붙는 이상 분위기는 경직되니까.
그런데 ‘비법’이라니.
이토록 날것의 질문이 날아올 줄이야.
내가 웃자, 소녀는 온 힘을 다해 외쳤다.
“웃지 마세요! 전 진심이라고요!”
내 심성이 못된 것인지, 그 말을 들으니 더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여기서 더 웃으면 소녀가 상처를 받을 테니, 난 짐짓 심각한 얼굴로 마이크를 들었다.
“실용적인 답안을 알고 싶으면 서점의 수많은 작법서를 뒤져 보세요. 다만 미래의 스릴러 작가에게 한마디 하자면, 읽는 이의 즐거움을 생각하라는 거예요.”
“….”
“장르 소설은 쓰는 사람이 아니라 읽는 사람이 즐거워야죠. 안 그래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별안간 소녀가 외쳤다.
이런 연예인이나 받을 법한 고백은 처음이었기에, 난 또 웃고 말았다.
나만 웃었겠나, 관객들 모두 낄낄거렸다.
“고백을 받았으니 답을 줘야죠, 작가님.”
파멜라가 짓궂게 물었다.
난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미안해요. 고백을 받아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아무리 장난이어도, 금홍이 옆에 있는데 그럴 순 없었다.
뭐, 금홍도 성격상 신경도 쓰지 않을 것 같지만.
“오호~ 나쁜 남자네요. 자, 그럼 또 다른 질문 있을까요?”
파멜라의 말에 누군가가 잽싸게 손을 들었다.
뿔테 안경을 낀 히스패닉계 남자였다.
“<지팡이>를 다 쓰고 스릴러 소설을 또 쓸 건가요?!”
그건 참, 예리한 질문이었다.
내게 스릴러는… 일종의 외도였을지도 모른다.
혹은 미국 시장을 효율적으로 뚫을 방법.
나름대로 미국 시장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한 지금, 나 역시 내 스릴러 소설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야겠지.
“솔직히 말하면 모르겠어요.”
난 정말 솔직히 말했다.
내가 순문학, 그것도 대하소설인 <지팡이>를 쓰는 중이라 그런지… 그들의 얼굴에 내심 실망이 스쳤다.
“다들 알다시피, 저는 스릴러 소설로 데뷔한 작가가 아니에요. 지금 이렇게 자유롭고 멋진 곳에서 북콘서트를 하고 있지만… 지금 유럽에서는 제 소설로 품위 넘치는 낭독회를 하고, 일본에서는 제 소설을 두고 정치적으로 싸우느라 정신이 없죠.”
“….”
“지금 이런 곳에 제가 서 있는 것도, 그들에겐 굉장히 놀랍고 어색한 일일 거예요.”
“….”
“미국이건 유럽이건 일본이건 한국이건… 어느 쪽의 풍경을 맞거나 틀리다고 할 수 없어요. 세상일은 대부분 상대적이니까요. 그리고 그건 앞으로의 제 작품도 마찬가지겠죠.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어요.”
사람들은 조용히 내 말을 경청했다.
실망감은 나에 대한 이해로 서서히 바뀌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제 미래는 한 마디로 ‘미스터리’예요.”
“미스터리요?”
파멜라가 되물었다.
아마 본능적으로 ‘미스터리’란 단어에 반응했겠지.
‘미스터리’는 장르 소설의 중요한 소재니까.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네. 이토록 ‘미스터리’한 걸 보니… 앞으로 장르 소설을 놓지 못할 가능성이 크겠죠?”
결국, 나는 완곡하게 표현한 셈이었다.
앞으로도 스릴러를 쓸 ‘가능성’이 있다고.
그 말을 이해한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와아아아아!!!!”
귀가 아플 정도의 외침들.
이들의 환호는 비단 날 위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이들은 내 팬이라기보단, 누들의 팬에 가까우니까.
다만 이 멋진 곳에서 기쁜 소식을 즐길 뿐.
마치 축제를 즐기는 것처럼 말이다.
이들의 자유롭고 부담 없는 태도는, 내게도 큰 영감을 주었다.
‘문학을 즐긴다’는 것의 다른 차원을 열어 줬으니.
몇 개의 질의응답이 오고 갔다.
그리고 밤이 충분히 깊어졌을 때였다.
파멜라가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자, 질문은 충분히 받았어요. 이제 손은 그만 들라고요. 현대인들인 만큼, 나중에 메일을 이용하도록 해요.”
파멜라의 구박 아닌 구박에 사람들이 손을 내렸다.
다들 아쉬워하는 얼굴이었지만, 파멜라는 사람들을 이끄는 묘한 힘이 있었다.
“이제 북콘서트의 진가를 보여 줄 차례에요. 이번에 <그 집>이 영화로 개봉하는 거 잘 알죠? 그 OST를 녹음한 밴드를 모셔 보죠!”
또한번 함성이 쏟아졌다.
언제부터 대기하고 있던 건지, 편안한 차림의 네 남자가 무대에 올랐다.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악기를 튜닝했다.
그리고.
탁, 탁, 탁, 탁.
드럼이 스틱을 네 번 두드리자, <그 집>의 OST가 시작되었다.
178회
탁, 탁, 탁, 탁.
드러머가 스틱을 네 번 부딪쳤다.
그러자 베이스가 음을 한 번 길게 끌었고, 이어서 기타가 멜로디를 잡았다.
몽환적이고, 흔들리는 것 같은 음악이었다.
당장에라도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느낌.
“음―”
보컬이 낮게 허밍했다.
그리고 나른한 음색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금홍이 곁에서 그 뜻을 즉각 번역해 주었다.
“너는 신의 아이였어― 하지만 타락하고 말았지― 날 보고 웃음 짓네― 천사를 흉내 내며― 너의 뒤를 따라 걸어 보았지― 아마 너는 알고 있었을 거야― 네가 손가락만 움직여도― 나는 무릎을 꿇을 소녀였다는 걸― 음― 그래, 너는 신의 아이였어….”
<그 집>의 내용을 은유적으로 옮긴 가사였다.
OST로만 남기기는 아쉬울 정도로 좋은 음악.
나는 문득 장하늘과 가사를 붙였던 <은은>을 기억했다.
금홍과 아무런 관계도 아니었을 때, 그녀를 생각하며 지었던 시였다.
그게 노래가 될 줄은 꿈에도 모르고.
이윽고 밴드의 노래가 끝났다.
그리고 여타의 안내도 없이, 무대 뒤 스크린에 영상이 하나 떴다.
바로, <그 집>의 티저 영상이었다.
방금 전까지 밴드가 불렀던 노래.
그 노래가 다시금 흘러나오며… 우리의 주인공 어린 ‘수지’가 등장했다.
그녀가 올려다보는 무채색의 집.
그 집 지붕에서 날아가는 까마귀들.
까마귀 한 마리가 카메라 시야를 완전히 가리고, 흰 글자로 타이틀이 떴다.
<THE HOME>
멋진 시작이었다.
그 뒤로, 재빠르게 화면들이 전환되었다.
어린 양오빠가 그리스 신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장면.
그는 수지에게 묻는다.
― 어때?
라고.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은 수지의 실험들.
양부모의 이유 모를 냉대와 그들의 불안.
영상은 시종 우울하게 흘러가고, 수지가 밤늦게 집에 돌아온 장면으로 넘어갔다.
수지가 집 문을 열었을 때, 지금까진 본 적 없는 부모의 환한 웃음을 본다.
그들은 수지를 보며 놀란 듯 표정을 굳힌다.
그리고 그 순간.
집의 뒷문이 쾅! 하고 열리더니, 양오빠가 무표정한 얼굴을 짓고 들어온다.
당장에라도 무슨 일을 벌일 듯이.
이런 방식으로 약 삼 분가량 영상이 이어졌다.
영화에서 궁금증을 자아낼 만한 최고의 부분을 모아 놓은 것 같았다.
확실히, 조나단 감독은 감각이 좋았다.
영상이 끝나자 박수가 쏟아졌다.
“오싹오싹한 티저네요. 개봉을 하면, 다들 잊지 말고 영화관으로 달려가자고요! 알았죠?”
파멜라의 말에 긍정의 함성이 튀어나왔다.
티저에 대한 놀라움과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들이었다.
“자, 이제 남은 건 파티뿐이에요. 저기 맥주 차가 보이죠? 1달러씩 내고 맥주와 나쵸를 사 먹어요. 그리고… 여기 우리 작가님은, <그 집>의 사인본을 추첨해서 나눠 드려야죠?”
나는 마이크를 이어받았다.
“좋죠. 다들 어서 맥주를 사드세요. 추첨을 할 때마다 큰 소리로 이름을 불러 드릴 테니. 무대는 이제 신경 쓰지 않아도 좋아요.”
그렇게 말하자, 사람들은 정말로 맥주 차를 향해 갔다.
내가 아직 무대에 있건 없건 말이다.
확실히, 이들에게 북콘서트는 일종의 축제였다.
우리는 그런 무관심 아닌 무관심 속에서 추첨을 했고, 스무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그들은 즐겁게 내 사인본 <그 집>을 받아 가며, 나와 사진을 찍거나 악수를 했다.
그렇게, 북콘서트는 정말이지 즐겁게 끝났다.
무대를 내려왔을 때였다.
크리스와 숀이 우리를 맞이했다.
“고생 많았어요. 성공적인 콘서트네요.”
크리스가 그렇게 말하며 악수를 건넸다.
이제 남은 건… 숀이었다.
그는 머쓱한 듯 뭐라고 우물거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고생했어요.”
“고마워요.”
난 그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는 내 손을 낚아채듯 잡았다.
“순문학 작가들은 좀 구리다고 생각했는데… 아, 문학 박사들도요.”
그 말에 크리스가 못 말리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당신은 좀 다른 것 같네요.”
“당신이 달라진 걸지도요.”
내 말에 그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렇게 잠시 누들 쪽과 인사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어느 정도 인사를 마쳤을 즈음, 저쪽에서 대기하던 지훈이 설렁설렁 다가왔다.
언제 가져온 건지 맥주도 한 컵 들고.
난 녀석이 오기 전에 얼른 금홍에게 말했다.
“금홍 샘, <은은> 기억해요?”
“<은은>이요? 그럼요. 샘이 작사한 노래잖아요. 장하늘이 부르고.”
“그거 금홍 샘 생각하면서 지은 가산데.”
금홍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날 봤다.
그녀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지훈이 타이밍 좋게 내 앞까지 왔다.
“형, 진짜 무대 체질이던데요? 가수가 콘서트 때 토크 하는 줄 알았어요.”
“그래? 고맙다.”
“근데 금홍 샘은 왜 저래요?”
지훈이 멍한 금홍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러자 금홍은 얼른 정신을 차리고 어색하게 웃었다.
“아… 아니에요.”
“이상하네.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귀신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은 것 같아요.”
금홍은 그렇게 말하고선 쏙 가 버렸다.
맥주 차로 가는 걸 보면 속이 타는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