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writer who lives again RAW novel - chapter 79
“음? 다른 수업이라면….”
“한국대에 다니는 작가들 강연이라거나, 젊은 작가들을 모아 독자와의 만남을 갖는 것도 좋겠죠.”
“우리 학교에 다니는 작가들… 수진아, 누구누구 있냐?”
자기 자리에 얌전히 앉아 있던 조교가 뒤를 돌았다.
“평론에는 이지운, 장호수, 송윤지 선배가 있고, 소설에는 김미소 선배 정도요. 시인은 없어요.”
역시 한국대.
창작보다 평론이 강세군.
평론가라곤 송지훈밖에 없는 인수대와 완전히 반대다.
“그 네 명한테 일단 연락해서 내 방에 좀 와 보라 해. 이번 기회에 강의 경험 쌓으면 좋지. 그럼 그렇게 진행해 보겠습니다?”
“네. 좋습니다.”
꼭 이걸 의도했던 건 아닌데.
김미소 작가, 엉겁결에 특강을 하게 되겠군.
* * *
그렇게 특강에 대해 학교 측과 합의를 하고, 나는 슬슬 프랑스에 갈 준비를 했다.
한 달 정도는 비자 없이 다녀올 수 있으니 특별히 신경 쓸 일은 없었다.
문제는 도마크 연말 작품집 원고였다.
출국일은 앞으로 이 주 후.
다녀오고 소설을 쓰면 마감까지 빠듯하다.
모든 작품을 잘 써 내고 싶은 마음이야 한결같다.
하지만 이번 원고는 좀 특별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가족인 ‘옥희’의 이야기니까.
고민 끝에 결심했다.
프랑스로 떠나기 전에 초고를 완성하리라고.
그리고 상황이 허락한다면… 프랑스에서 다른 작품을 써 보겠다고.
욕심이 있다면, ‘프랑스에서만’ 쓸 수 있는 글이 떠올랐으면 좋겠는데.
다짐을 한 날부터 작업실에 틀어박혔다.
이 주가 긴 시간은 절대 아니었다.
출국을 앞둔 정신없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오랜만에 진지한 기분으로 옥희를 떠올렸다.
하얗고 당돌한 얼굴.
우리 집안의 핏줄이라 그런가….
그 녀석도 꽤나 고집이 세고 자기 생각이 강했지.
한 마디로, 1930년대의 ‘신여성’.
옥희가 애인과 만주로 가 버린 날.
순진한 내가 서울역으로 나갔다가 바람을 맞은 날.
그 날은 비가 오고 있었다.
휴대폰도 뭣도 없던 시절.
서울역에서 우산을 들고 미련하게 서 있던 나.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그들이 이미 떠났다는 걸.
하지만 마음으로는 부정했다.
뭔가 사정이 있겠지… 아직 못 온 것이겠거니….
그러면서 좀처럼 서울역을 떠나지 못했던 것이다.
내 소설은 그 시점으로 시작된다.
옥희는 ‘희’라는 소녀로, 나는 ‘나’로 변한다.
서울역.
‘희’와 ‘희’의 애인이 내 앞에 불쑥 나타난다.
― 왔구나. 나는 네가 올 줄 알았다.
나는 ‘희’에게 말했다.
‘희’는 대뜸 애인과 어디로든 가서 살림을 차리겠다고 말한다.
어디로 가는지는 끝내 말해 주지 않는다.
‘나’가 부모에게 일러바칠지도 모른다고.
‘나’는 그들을 설득하고 ‘희’는 말을 듣지 않는다.
‘나’는 등신처럼 가만히 서 있는 ‘희’의 애인이 증오스럽다.
역 밖에는 계속 비가 온다.
‘나’는 ‘희’에게 어째서 그냥 떠나지 않고 굳이 내 허락을 받으려 하느냐 묻는다.
‘희’는 이렇게 말한다.
― 가족 중 누군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면 그것이 오빠였으면 해서요.
‘나’는 눈물이 왈칵 나려는 것을 참는다.
‘나’는 언제나 동생보다 못난 오빠였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계속 진행된다.
키보드 위에서 내 손이 춤추듯 움직인다.
‘나’는 그들을 끌어내 역 밖으로 나온다.
비가 오는 중에 어디로든 그들을 끌고 다닌다.
카페로, 식당으로, 하염없이.
‘나’는 온갖 방법으로 그들을 설득한다.
‘희’의 애인에게 욕을 해 보기도 한다.
등신 같은 ‘희’의 애인은 그저 죄송하다는 말뿐이다.
그 말이 ‘나’를 더 미치게 한다.
그나마 ‘희’의 강단 있는 얼굴이 ‘나’를 위로하는 듯하다.
‘희’는 자신들은 괜찮을 거라고 한다.
오빠 걱정이나 하는 게 좋지 않겠냐며 농을 친다.
나는 그렇게 소설 속에서 그들을 질질 끌고 다녔다.
소설이 다 끝나 갈 때까지.
사실 답을 내리지 못했다.
그들을 보내 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누군가는 고작 소설이라 할 거다.
하지만 내게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들과 함께 다시 서울역 앞으로 온다.
두 사람이 ‘나’를 본다.
‘나’가 가지 말라 하면 정말로 안 갈 사람들마냥.
‘나’가 가라고 말만 하면 바로 사라질 사람들마냥.
…도무지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나는 결국 거기까지 쓰고 멈췄다.
하지만 조만간 마무리를 지어야겠지.
‘나’와 ‘희’라는 오누이는 과연 어떻게 될까.
…나조차도 아직은 알 수 없었다.
* * *
조인후 감독의 사무실.
그는 비서와 마주 앉아 있었다.
비서는 그에게 간단한 브리핑을 했다.
“<내외인>, 유럽이랑 미국 영화제에 모두 출품했고요. 대부분 나라에서 다 상영 대기 중입니다. 특히 유럽 쪽에서는 기대가 큰지 감독님께서 꼭 한 번은 와 주시길 바란다고 하는데요.”
“유럽 어디?”
“독일은 베를린 영화제 때문에 완전 픽스입니다. 꼭 가셔야 하고… 프랑스의 몽페르 영화제랑 이탈리아의 베니스 영화제가 겹쳤네요.”
“프랑스는 가고, 이탈리아는 패스.”
‘이상 작가님을 봐서라도 프랑스는 가야지.’
조인후 감독은 이상이 신경 쓰였다.
<내외인>이 프랑스에서 고전을 면치 못한다는 기사를 봤기 때문이었다.
“네. 그럼 그렇게 하시죠. 일정 나오면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부탁해. 프랑스 쪽은 꼭 신경 써 주고.”
그때였다.
우웅― 우웅―
조인후 감독의 휴대폰이 울려 댔다.
비서가 눈치 빠르게 사무실에서 나갔다.
조인후 감독은 수고하란 의미로 손을 한 번 들어 보였다.
“여보세요.”
― 감독님? 저 이상입니다.
“오, 작가님. 반갑습니다. 어쩐지 목소리가 별로 안 좋으신데요?”
― 아, 그게… 집필 중이라서요. 작품의 결론이 잘 안 맺어져서 고민이 많습니다.
‘이상 작가도 글 쓸 때 고통받기는 매한가지군. 일필휘지로 척척 써 내는 줄 알았더니.’
묘하게 동질감을 느끼는 조인후 감독이었다.
“그러시군요. 그런데 어쩐 일이십니까?”
이상은 리브레 독서클럽에 관해서 말했다.
얼떨결에 조인후 감독보다 더 빨리 프랑스에 가게 됐다는 것도.
“프랑스 쪽 행사가 잡히셨다는 거죠? 축하드립니다. 작가가 가면, 독자도 반응을 할 겁니다.”
― 그러길 바라야죠. 그래서… 혹시 가능하면 감독님의 일정과 맞출 수 있나 해서요.
“음… 저희 쪽에서 최대한 맞춰 보지요. 비서와 다시 얘기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찌 됐건 파리에서 만나겠군요! 하하하…!”
― 저도 그렇게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럼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조인후 감독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씨익 미소 지었다.
‘김 새는군… 모처럼 도와줄 기회가 생긴 줄 알았는데. 알아서 잘 해내고 있잖아.’
77화
프랑스로 떠나는 날, 새벽.
지훈은 나를 인천공항까지 태워다 줬다.
“역시 한 달짜리 여행이라 그런가, 짐이 많네요.”
“아무래도 그렇지. 한 달이라… 아득하네.”
차 트렁크에 들어있는 대형 캐리어.
별 거 안 챙겼다고 생각했는데도 꽤 무거웠다.
이번 여행도 나 혼자였다.
지훈까지 데려가기엔 너무 긴 일정이기도 하고.
녀석도 굳이 따라가겠다고 고집을 피우지 않았다.
“형 다녀오면 전 논문 발표 끝났을 거예요. 으… 지긋지긋한 논문.”
“드디어 송지훈 석사 탄생이냐.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그럴게요. 실시간 대기조 할 테니까 언제든 연락 주세요. 형, 도마크 연말 작품집 원고는 오셔서 주실 거예요?”
“음… 모르겠어.”
사실 기내용 가방에 노트북이 있긴 하다.
언제든 소설 초고를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지만 아직 장담은 못 하겠다.
우리는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티켓을 끊고, 짐을 싣고, 지훈과 인사를 하고 입국장에 들어섰다.
정신없는 인파 속에서 파리행 비행기를 탔다.
샤를 드골 공항까지 가는 직항선.
자리도 그나마 비즈니스 클래스.
처음에 리브레 쪽이 제공한 건 이코노미였다.
하지만 내가 돈을 좀 더 지불하고 비즈니스로 바꿨다.
장기 비행인데 몸 상해서 좋을 게 뭐 있는가.
어수선한 와중에 비행기가 떴다.
파리라니….
막상 출발을 하니 기분이 묘했다.
전생의 내게 있어 가장 첨단의 세계는 일본이었다.
모든 서구 문물이 일본을 통해 들어왔으니까.
언제나 서구 세계를 동경했지만, 일본에서 살아남는 것조차 힘겨웠지.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이건 유럽이건, 한국보다 ‘첨단’은 아니다.
하지만 문학 시장만큼은… 아직은 ‘도전’이란 말이 어울린다.
나는 전생에 얻지 못한 도전의 기회를 얻은 거고.
…나아가고 있는 거다. 분명하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조선보다 더 큰 땅, 만주로 떠났던 길의 옥희.
옥희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갑갑한 조선의 규율을 벗어던지는 기분으로.
나는 옥희를 굉장히 아꼈다.
<동생 옥희 보아라>에는 애써 아닌 척했지만, 내심 녀석이 날 버리고 떠난 일에 상처를 받았다.
서운하다 못해 미웠을 정도로.
그러니 소설에서나마 붙잡아 두려 했겠지.
하지만 막상 이렇게 떠나 보니… 알 것 같다.
옥희가 어떤 기분으로 조선을 떠났는지를.
녀석이 느꼈을 설렘, 기대, 미안함….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오빠답게 녀석의 등을 떠밀어 주지 못했을까.
‘가라, 자유롭게.’
그렇게 말했다면, 난 좀 더 멋진 오빠로 기억될 수 있었을까.
* * *
파리 샤를 드골 공항.
12시간 넘는 비행으로 몸은 이미 녹초가 됐다.
파리의 시간은 겨우 오후 1시.
인천에서 오전 6시경에 출발했단 걸 떠올리면, 확실히 지구 자전의 반대 방향으로 날아왔다.
수없이 많은 서양인.
낯선 체취와 언어들.
유럽에 왔다는 느낌이 여실히 들었다.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됐다.
출국장으로 나오니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있었다.
한국인만이 알아볼 수 있는 한국인의 얼굴.
나이는 이십대 중반쯤 됐을까.
그는 내게 소리쳐 물었다.
“이상 작가님이십니까?”
“장 스테판 씨?”
“맞습니다. 어서 이쪽으로 오십시오.”
이국적인 억양의 한국어.
하지만 대화를 하는 데엔 전혀 지장이 없었다.
나는 출국장을 완전히 나서서 그와 악수했다.
“만나서 영광입니다, 작가님.”
“저야말로요. 직접 마중을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프랑스는 처음이실 테니까요. 제 차를 타고 호텔로 가시죠.”
우리는 한참을 걸어 주차장으로 갔다.
그는 내게 호텔 주소를 물었다.
나는 지훈이 적어 준 주소를 내밀었다.
그는 좀 놀란 것 같았다.
“파리 16구에 있는 호텔이군요. 꽤나 부촌인데, 좋은 호텔을 잡으셨습니다.”
“제가 아니라 매니저가 잡은 곳이라서요.”
어쩐지 호텔 숙박비가 많이 나왔다 했더니.
그의 차를 타고 한참을 달렸다.
도시 외곽 특유의 황량한 전경이 지나갔다.
이런 길은 서울과 크게 다를 게 없군.
장 스테판은 리브레 독서클럽에 대해 말해 주었다.
“사실 독서클럽에 초대하는 외국 작가님들은 대부분 유럽 분들이십니다.”
그럴 것 같았다.
한 달 동안 해야 하는 10회의 강연.
옆집 드나들 듯 국경을 넘는 유럽인들이 아니면 소화하기 힘든 일정이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내외인>을 위해서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요. 그래서 연락을 드렸습니다.”
“고맙다는 말밖에는 드릴 말씀이 없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