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vel 2 assassin wants revenge RAW novel - Chapter 149
149화 세 가지 물음 2
* * *
물론 불평불만이 터져 나오지 않는 건 아니었다. 사소한 사안이라 수면 위로 부상하지 않았을 뿐. 직접적으로 거론한 사람은 없었지만 얼마나 잘하는지 지켜보겠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애석하게도 그러한 눈초리는 의미 없는 채찍질에 불과했다.
첩보와 잠입으로 단련된 카인에게 정찰은 특기 중 하나였으니까.
2급 살귀였을 시절, 지겹도록 맡은 임무가 이러한 종류였다. 더구나 정련정심에 포함된 초월 감각은 이러한 일에 적합한 개념이었다.
확장된 오감에 월등한 육감까지 있으니, 주변 환경을 놓치려야 놓칠 수가 없었다.
거기에 시계까지 있었다.
지형지물을 완벽에 가깝게 파악할 수 있는 신기. 배터리가 제한적이라 자주 사용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언제든지 대수림의 정경을 볼 수 있다는 건 커다란 이점이라 할 수 있었다.
다리 아프게 뛰어다니지 않아도 결과물을 손에 넣을 수 있었으니까.
그래, 바로 지금처럼.
시계 위에 떠오른 홀로그램을 머릿속에 집어넣은 카인은 손목을 한 번 흔들었다. 그러자 허공 위에 떠오른 그림자는 언제 나타났냐는 듯 자취를 감추었다.
동시에 풀숲에서 우라가 튀어나왔다. 마치 산양이라도 된 듯, 높이 뛰어올라 사뿐히 착지한 그녀는 카인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네가 맡은 구역은 벌써 끝난 거야?”
“특기니까요.”
“흐응, 역시 모험가다운 실력이라고 해야 하나. 설마 나를 추월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정찰을 마치고 캠프로 돌아가자 제네갈이 두 팔 벌려 맞이해 주었다.
“예정보다 이른 시간이군. 하지만 어제처럼 많은 걸 보고 왔겠지? 그대들에게 거는 기대가 커.”
품위 있는 몸짓과 고아한 말투.
한 갈래로 묶은 금발이 찰랑거리는 게 꼭 귀공자를 보는 듯했으나 겉모습에 속으면 안 된다.
그는 이번 탐사대의 우두머리이자 사선 여단 최고의 실력자였으니까.
그리고 머지않은 미래에 광성의 뒤를 이어 차세대 십좌가 되는 이 중 한 명이었다.
하늘의 선택을 받았다는 점에서 보자면 아휀과 동류라 할 수 있었다. 강해지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굳이 거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주의해야 하는 인물인 건 틀림없었다.
제네갈이 익힌 성절은 ‘블랙 미러’.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절기에 내포된 개념을 모사하는 성절이었다. 적이 되면 이만큼 까다로운 상대도 없었다.
“아직까지 위험한 요소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마물은커녕, 마수도 보이지 않더군요.”
“그건 아마도 요란스럽게 이동한 탓일 거야.”
하긴 이동식 마법 포대와 함께 가는 배낭여행이었다. 눈이 있는 녀석들이라면 알아서 몸을 사릴 터.
카인의 입장에서는 아쉬울 따름이었다. 차라리 눈먼 놈들을 상대하는 게 나았던 것이다. 마물보다 더 위험한 여자가 곁에 붙어 있으니 좀처럼 안심이 되지 않았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나타난다고, 어느새 술병을 끼고 다가온 우라가 손을 흔들었다.
“크루스, 오늘은 해장국이야! 빨리 가서 처리하자고.”
“걸쭉하기 끓인 토마토 스튜를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우라 님밖에 없을 겁니다.”
* * *
간단하게 저녁 식사를 끝낸 모험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하루 종일 걸었으니, 이제 내일 일정을 점검해야 할 때였다.
이번 탐사는 평범하지 않았다. 정확한 목표가 있고, 그에 따라 명확한 한계선이 그어져 있었다.
테로스탄이란 난적을 상대해야 하는 만큼 될 수 있는 대로 체력을 비축해야 하는 건 말할 것도 없었다.
최대한 빠르고, 안전한 길을 골라야 하는 건 당연지사.
양탄자처럼 커다란 지도를 펼친 제네갈이 체스 말을 길목마다 하나씩 두었다. 그렇게 몇 개인가 자리를 차지하자 탐사대의 진행 경로가 한눈에 들어왔다.
하탄달 백작령에서 떠난 지도 벌써 사흘째.
지난 시간만 보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탐사대는 전부 숙련된 모험가로 구성되어 있었다. 수십 킬로미터나 되는 거리를 답파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때문에 탐사가 진행되는 속도도 월등했다.
탐사대는 지금 대수림의 중심에 들어와 있었다.
가장 중요한 시기. 어디로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발견할 수 있기에 모험가들은 저마다 의견을 내었다.
“이 앞에 개울물이 있다. 그곳을 건너면 평지와도 이어지니 이동식 마법 포대를 옮기는 것도 수월해질 테지.”
“중간에 마수들이 냄새를 맡고 달려들면 어떻게 할 거지? 시간을 줄이자고 위험성을 높일 수 없다는 건 너도 알 텐데?”
“지금까지 습격은 없었지 않습니까. 고려해 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대수림의 문턱이 닳아져라 오가며 승급한 이들의 설전이었다. 그들의 의견은 논리적이었으며, 하나같이 일리 있었다.
“일단 직접 정찰한 이들의 의견을 묻고 싶은데…….”
말끝을 흐린 제네갈이 고갯짓했다.
“정찰 1조. 그대들의 의견은 어떻지?”
부산스럽게 떠들던 소리가 단숨에 사그라들었다.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자 카인은 침음을 흘렸다.
분기점이었다.
테로스탄이 있을 법한 장소는 한정적이었다.
일찍이 대수림을 탐사했던 이들의 행적을 일일이 대조해 가며 계획을 짰으니까. 요 근래에 자리를 옮기지만 않았다면 가까운 시일 내에 발견할 수 있을 터.
은근슬쩍 그 경로에 훈련소를 포함시키는 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잔꾀를 부릴 수는 없었다.
옆에는 우라가 있었다. 만에 하나, 그녀가 진의를 눈치챈다면 아차 하는 사이에 목이 달아날 터.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패를 보여야 했다.
그런고로 아직은 아니었다.
조금만 더, 탐사대가 함부로 경로를 수정하지 못할 만큼 간 뒤에 밝혀야 했다.
“아, 여기를 이렇게 거쳐 가면 될 것 같아.”
하지만 그런 카인의 고심이 무색하게 우라는 체스 말을 잡아 경로를 지정했다. 마치 대수림을 전부 꿰뚫고 있는 듯한 묘수에 자리에 모인 이들은 탄성을 터트렸다.
하나, 카인만은 예외였다. 도중에 훈련소로 가는 길목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던 탓이다.
순간, 간담이 서늘해지는 듯했다.
생각해 보면 탐사대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간 우라였다. 그런 그녀가 탐사대를 훈련소로 안내한다니.
다른 이라면 몰라도 그곳을 지키는 우라가 길을 헷갈렸을 리 없었다. 따라서 이는, 다분히 의도적인 수라는 뜻.
‘설마, 과거에도 그녀가 탐사대와 훈련소를 부딪치게 한 건가?’
착각이라 생각하고 싶지만, 세상일이 그리 쉽게 돌아갈 리 없었다. 이건 악의가 가득 담긴 노림수였다.
슬쩍, 고개를 올린 순간 우라와 눈이 마주친다. 싱긋 눈웃음치는 우라를 보며 카인은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조직이 어째서 그녀를 활용하지 않고, 훈련소에 처박아 둔 건지 알 것도 같았다.
* * *
부엉이 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들리는 새벽, 카인은 슬그머니 눈을 떴다. 그리고 주저하지 않고 외투를 걸쳤다.
가만히 지켜보고 싶지만, 이번 일은 변수가 너무나 많았다.
‘탐사대가 훈련소를 발견한 게 아니라 우라가 발견하게 만든 거라니.’
미래를 알지 못했다면 단순히 탐사대를 전멸시키기 위한 전술이라 착각했을 터. 하지만 카인은 알고 있었다. 우라는 탐사대를 훈련소로 안내한 것도 모자라, 그들이 침입하는 것까지 용인했다.
무엇이 목적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 사건 때문에 훈련소의 인원이 줄어들었다는 것. 이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사안이었다.
조직의 이념과 상반되는 건 물론이고, 훈련소를 지키라는 명령까지 무시했다는 말이니까.
단언하건대, ‘임무’를 받은 귀신은 그렇게 행동할 수 없었다.
‘단순한 퍼스널 네임이 아니야, 무언가 있어.’
더욱이 훈련소가 무너지기 직전까지 갔는데도 방관한 걸 보면 보통 미친 게 아니었다.
여기에서는 리스크를 짊어지더라도 떨어지는 게 상책이었다.
조직에게 잊지 못할 상처를 남겨 주는 것도 좋지만, 일단 정신 제약과 감정 제어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게 먼저였다.
다행히 주점에서 진을 만났다. 우라의 이름을 대면 보기보다 쉽게 훈련소에 침입할 수 있을 터.
재빠르게 훑어본 뒤, 슈발체베인가로 돌아간다.
그렇게 방침을 정한 카인은 정심을 활용해 밀리미터 단위까지 몸을 조율했다. 우라에게 들키지 않으려면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까지도 조심해야 했다.
타닥, 하고 모닥불이 불티를 토해 낸 순간 바람이 부는 방향을 따라 내달린다. 휙휙 뒤바뀌는 광경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카인은 훈련소를 향해 나아갔다.
캠프에서 얼마나 멀어졌을까.
이제 다급하게 움직이지 않아도 되겠다고 안도하려던 찰나―
“어디를 그리 급하게 가는 거야?”
들려서는 안 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나 다를까,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니 우라가 서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언제나처럼 술병이 들려 있었다.
“딸꾹, 혹시 광증 때문에 그런 거야?”
“그게 무슨 소리인지요.”
“하루에 한 명씩 꼭 사람을 죽여야 한다고 들었는데 말이야.”
역시나.
은근하게 단서를 여기저기 흘릴 때부터 예상은 했다. 그녀가 크루스에 대해 알고 있으리란 걸. 아마 희귀한 장난감이 손에 들어와 여태껏 모르는 척했으리라.
‘쯧.’
위장이 들켰을 때, 불구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바로 도망쳤어야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간을 본 게 패착이었다.
“자, 밤공기가 차니까 어서 돌아가자고. 탐사대에서 한 명 해치우면 네 광증도 멎을 거 아냐. 안 그래?”
태연하게 지껄이는 소리에 카인은 쓴물이 목구멍 위로 올라오는 듯했다.
우라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거다.
끝까지 연기하면 봐준다고. 크루스는 아니지만 그처럼 행동하면 모른 척해 준다고.
카인도 자신이 당당한 인간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스스로 원해서 벌인 일이었다. 한 사람의 재미를 위해 벌인 일이 아니라.
어차피 엎어진 판이다. 광증을 앓고 있는 것처럼 발광해도 그녀의 손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할 터. 가까스로 연명한다 해도,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가지고 논 다음에 죽일 테지.
두 주먹을 말아쥐며 마력을 끌어올린 카인이 나지막이 읊조렸다.
“마침 내 눈앞에 있는 너도 탐사대 중 한 명이군.”
사실상, 자백한 셈이었다. 깔끔한 선언에 우라는 병나발을 불며 어깨를 으쓱였다.
“귀신인 것처럼 행세한 것치고는 실망인걸. 기회를 줬는데도 그 마지막 한 발자국을 내딛지 못하고 포기하다니, 정말 글러 먹었네.”
“…….”
카인의 얼굴이 일그러지자 우라는 활짝 웃었다.
“하지만 나는 글러 먹은 인간이 취향이야. 패배한 개처럼 꼬리를 말고 덜덜 떨고 있는 꼬락서니를 보고 있노라면, 적어도 나는 멀쩡하다는 게 느껴지거든. 보고 있는 것만으로 배가 불러.”
“취향 한번 특이하군.”
“너도 그렇잖아. 대체 뭐가 아쉬워서 목숨을 걸고 이쪽을 염탐하려는 거야?”
“네가 알 바 아닐 텐데?”
우라에게 득달같이 달려든 카인은 주먹을 내질렀다. 이미 한계까지 해제한 상태였기에 그가 지나간 자리엔 잔상조차 남지 않았다. 이미 성벽까지 깨부순 전력이 있는 일격이었다. 방심한다면 뼛조각도 남기지 못하고 으스러질 터.
하나, 우라는 날파리를 쫓듯이 술병을 휘둘러 카인을 걷어냈다.
쿵.
사정없이 튕겨 나가, 거목을 박살 내며 뒤로 밀려난 카인은 힘없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깜짝이야, 갑자기 달려드니까 나도 모르게 반응했잖아. 괜찮아? 죽은 건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