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vel 2 assassin wants revenge RAW novel - Chapter 150
150화 세 가지 물음 3
* * *
“어째서 죽이지 않는 거지?”
“귀찮게 꼭 그래야 해?”
크루스가 아니라는 게 밝혀졌어도 우라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회포를 푸는 것처럼 자연스럽기까지 했다.
“후환이 될 텐데?”
그 말에 우라가 허리를 젖히며 배꼽이 빠져라 웃었다.
“크크크, 설마 네가 최초인 줄 아는 거야? 나이에 비해 성취가 나쁘지 않으니 미래가 기대되는 건 사실이야. 하지만 그것뿐이기도 해. 그러니 자만하지 마.”
제아무리 조직이라고 해도 흔적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역량의 문제가 아니라 이치의 문제였다. 살아 있는 건 반드시 자국을 남기기 마련이었으니까.
예나 지금이나 조직이 어떠한 단체인지 알고자 뒤쫓는 이들은 존재했다.
당연하지만 대부분 기득권층이었다. 그들이 고용한 실력자가 우후죽순처럼 쏟아지는 건 일상이었다.
“아직도 조직을 따라다니는 녀석들은 많아. 그중에는 너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이들이 있지.”
“하지만 실체에 닿은 사람은 극소수일 텐데.”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너 같은 녀석이 100명 있어도 변하는 건 없어. 설령 네가 거리에 나가 발가벗고 조직에 대해 설토한다 해도 말이야.”
“그건…….”
무어라 말하려던 카인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분위기에 이끌려 저도 모르게 나불거리다니.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라와 나눌 만한 대화가 아니었다.
고작 며칠 같이 지냈다고 없던 호감이라도 생긴 걸까?
아니, 이건―
‘양의 인자다.’
그제야 초월적인 감각이 우라에게서 풍기는 냄새를 인지했다.
다양한 인자를 부여받은 귀신이라도, 토대가 되는 인자는 있는 법이었다. 한꺼번에 많은 걸 다룬다고 능사는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착각했다.
막가파에 무투파라 인자 또한 그와 관련된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우라가 주로 다루는 인자는 양의 인자였다. 이성의 환심을 살 수 있는 페로몬을 연신 뿌리고 다니는 그녀는 살아 있는 인간 향수라 할 수 있을 터.
어쩌면 술을 마시는 것도 그러한 냄새를 감추기 위함일 수도 있었다. 맞든 아니든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퍽.
스스로 콧대를 부러뜨린다. 콧구멍 사이로 핏물이 흘러나왔지만 괜찮았다. 정신만 맑아질 수 있다면 이 정도 고통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었다.
“가, 갑자기 뭐 하냐.”
“너한테서 구린내가 너무 나서 말이야.”
“아무리 선머슴처럼 지내도 그런 지적을 받으면 마음이 다친다고. 그대로 넘어가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어.”
되도 않는 거짓말이었다. 고양이와 쥐가 만났는데 어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겠는가.
하나, 카인이 그렇게 생각하든 말든 가까이 다가온 우라가 나지막이 제안했다.
“내기 하나 하자.”
“내기?”
“그래, 내기. 단순히 힘겨루기로 승패를 판가름하면 내가 이기니까. 그건 너무 재미없잖아?”
약자의 시선에서는 감히 고려해 볼 것도 없는 선택지였다. 하지만 우라는 자신 있는 듯했다.
“내가 이기면 너는 죽을 때까지 내 노예가 되는 거야. 대신 네가 이기면 ‘목적’을 이룰 때까지 손도 대지 않을게.”
깔보는 듯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러나저러나 이기는 건 자신이라는 걸까. 카인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아주 자신만만하군.”
“자비를 베풀어 준 사람한테 할 소리가 아닌데?”
“자비가 아니라 유흥이겠지.”
일찍이 카인은 무료하고 따분해서 나무늘보가 된 강자를 알고 있었다.
‘무신 타나.’
그녀 또한 즉흥적인 내기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물론 같은 취향이라 해도 추구하는 바는 달랐다.
타나는 자신의 운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고자 하는 성향이 강하다면, 우라는 타인이 어디까지 발악할 수 있는지 보고자 하는 경향이 강했으니까.
어느 쪽이든 악취미라는 건 틀림없었다.
“너는 그 유흥에 빌붙을 수밖에 없는 도박꾼이고 말이야.”
품속을 뒤적인 우라가 양피지 하나를 꺼내자 카인은 기가 찬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강제 명령 계약서?”
“노름하려면 필수품이지.”
“그래서 무슨 내기를 하자는 거지?”
“묻고, 답하기. 하지만 거짓말은 안 돼. 그리고 대답을 거절할 수 있는 기회는 세 번.”
손가락 세 개를 편 우라가 송곳니가 드러날 정도로 경쾌하게 웃었다.
“그러니까 질문 하나로 손가락 세 개를 먼저 접게 만드는 사람이 이기는 거야. 어때, 간단하지? 말을 배운 아이라도 이길 가능성이 있는 내기라고?”
‘대체 어디가.’
터져 나오는 불만을 억누른다. 정체를 감췄다는 게 들통난 마당이었다. 그 부분만 후벼 파도 대답할 수 없는 물음이 수두룩할 터.
그에 반해 카인이 우라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적었다. 그리고 묻는다 해도 그녀가 대답하지 않을 리 없었다. 위에서 말했지 않던가. 사실을 알아봤자 변하는 건 없다고.
하지만 활로가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이쪽이 외부인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약점이 있다면 저쪽에는 귀신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제한이 있었으니까.
그 점을 공략하면 된다.
“비슷한 질문은?”
“당연히 안 되지. 먼저 방향성을 잡은 사람이 승리하게 되잖아?”
그렇게 두 사람의 피가 묻은 강제 명령 계약서가 불에 타오르며 내기는 시작되었다.
“나부터 먼저 물을게. 이 내기가 성립한 것도 내가 먼저 양보해서잖아?”
틀린 말도 아닌지라, 카인은 짧게 혀를 차면서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마음대로 해라.”
허락을 맡은 우라가 개구쟁이처럼 히죽거렸다.
“무슨 목적으로 대수림에 온 거야?”
다행히 예상 범주 내에 있는 물음이었다.
일단 거시적인 시점에서 근접해야 했다. 거짓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진실도 아닌. 애매모호한 답을 내놓는 게 정석이리라.
“훈련소에 볼일이 있어서 왔다.”
어차피 이기면 저절로 밝혀질 일이니 숨기지 않고 대답한다.
“벌써 그곳까지 알아낸 거야? 칭찬해줄 만해.”
“그런데 탐사대를 그곳으로 유도했더군. 이유가 뭐지?”
순간, 우라의 손가락이 하나 접혔다.
“헤에, 머리 좀 쓰잖아. 아니지, 이제 보니 급하게 도망치려던 것도 그걸 알아서잖아. 내 쪽이 멍청했네, 크크.”
“시답잖은 소리는 됐으니까 묻기나 해라.”
“흐음, 조직에 대해 얼마나 잘 알아?”
“…….”
손가락을 하나 접는다. 대답하려면 경험자밖에 알지 못하는 정보까지 불어야 할 테니까.
사이좋게 한 손가락씩 접으니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래도 카인이 느끼고 있는 건 위압감보다는 위화감에 가까웠다.
어째서인지 우라의 목에 걸린 조직의 족쇄는 헐거운 듯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눈치채지 못하겠지만, 2급 살귀로 활동했던 카인은 단언할 수 있었다.
우라의 행동 양식은 뒤틀려 있었다. 탐사대를 훈련소에 끌고 가려고 수작을 부린 것부터 언어도단이었다.
퍼스널 네임은 모두 우라 같은 걸까.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혹시 조직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나?”
“누구에게 사용하고 싶은데?”
대답 없이 묻기만 하며 손가락을 하나씩 접는다. 서로 말하지 못할 비밀을 정확히 찔렀다.
짧은 질답이었지만, 그 안에서 카인은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최선은 아닐지라도 차선이 되는 인물이 눈앞에 있었다.
‘역시 족쇄에 대해 아는 게 많았나.’
하지만 그와 동시에 우라가 아는 방법 또한 완벽하지 않다는 걸 직감했다. 벗어날 수 있다면 스스로 끊었을 테니까.
그리고 죽기 전까지 조직의 족쇄를 푼 건 자신이 유일무이했다. 아리아와 함께 도주하게 된 연유도 따지고 보면 거기에서 비롯되지 않았던가.
고요한 밤하늘 아래에 침묵이 오고 간다.
접히지 않은 손가락은 하나. 회피할 수 있는 대답도 하나뿐이었다.
다행히 이쪽 차례였다. 생각을 정리한 카인은 쐐기를 박기 위해 가장 원색적인 물음을 구했다.
“네가 가장 숨기고 싶은 약점은 뭐지?”
“미남계에 약해.”
“…….”
농담이라면 웃음이라도 나오련만, 강제 명령 계약서가 잠잠한 걸 보니 진심인 듯싶었다. 한탄할 틈은 없었다. 칼 손잡이는 우라에게 돌아갔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가장 날카로운 비수를 꺼냈다.
“슬슬 끝내자고, 네 정체나 들으면서 말이야. 본명이 뭐지?”
기어코 그 물음이 나왔다. 내기가 시작될 때부터 예상했던 물음이었다. 냉정하게 보면 이것 때문에 손가락 하나는 접고 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대답하면 쫓기는 신세가 될 거고, 대답하지 않으면 노예 확정이다.
그야말로 진퇴양난―, 이라고 카인은 생각하지 않았다. 예상했으니 그에 대한 방안을 마련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한태진.”
“항태징?”
전생에서 썼던 이름도 본명은 본명이지 않던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걸 보니 강제 명령 계약서도 인정하는 듯했다.
설마 그런 이름이 나올 줄은 몰랐는지 우라는 토끼처럼 두 눈을 크게 뜬 채 앓는 소리를 연발했다.
하지만 승부의 세계는 냉정한 법.
“이제 내가 물어볼 차례인가.”
우라가 비장의 패를 숨겨 두었듯이 카인 또한 그럴듯한 물음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단지 근거를 확보하기 위해 시간을 들인 것뿐이었다.
‘처음부터 이상했어. 방랑벽이 있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으니까.
훈련소를 지키는 게 임무라면 우라는 절대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하탄달 백작령을 활보했다. 자유 시간은 허락받았다는 듯이.
이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뻔뻔하게 탐사대를 유도하면서도, 그 목적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말하지 못하는 우라를 보고 카인은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행동은 꽤 자유로울지 몰라도 직접 거론하는 건 못 해. 다른 귀신보다 선이 넓을 뿐이야.’
반평생 굴러다닌 귀신이 말하지 못하는 목적이야 뻔했다.
한때, 카인도 꿈꿨던 거니까.
“조직을 부수고 싶나?”
뜬금없는 물음이었지만, 우라는 쉬이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부정하자니 내기에서 질 게 뻔하고, 긍정하자니 몸이 뻣뻣하게 굳었으니까.
“그런가.”
말할 수 있지만 말할 수 없는 카인과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못하는 우라.
애당초 두 사람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점이 있었다.
그리고 그 차이가 승패를 갈랐다.
“접어.”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마지막 손가락을 접은 우라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네가 이길 줄은 몰랐는걸. 거기에 내 속내까지 간파하다니 아무리…….”
진작을 밟은 카인은 주저하지 않고 우라를 향해 일권을 내질렀다.
발파 육중첩.
쿠쾅!
지면이 거미줄 모양으로 갈라지며 폭음이 터진다.
그렇지 않아도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저항할 틈도 없이 지근거리에서 발파를 맞은 우라가 침음을 흘렸다. 한 박자 늦게 주먹을 잡았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볼품없이 나뒹굴 뻔했다.
“뭐 하는 짓이지? 죽고 싶어?”
우라가 으르렁거렸지만 카인은 이기죽거렸다.
“내기에서 이기면 일이 끝날 때까지 손대지 않는다. 네가 먼저 제안했을 텐데? 정말 지켜지는지 확인했을 뿐이다.”
“정도라는 게 있잖아?”
“이것도 네게는 장난의 범주일 텐데. 화내는 척하지 마라. 없어 보이니까.”
그 말에 언제 당황했냐는 듯 히죽 웃은 우라가 카인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오우, 남자다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