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vel 2 assassin wants revenge RAW novel - Chapter 294
294화 납치 2
* * *
힘든 점은 없었다. 한창 토벌 작업이 진행 중인지라 제법 깊은 곳까지 길이 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험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마수와 마물이 없어졌다고 해도 환경 자체는 그대로였으니까.
“조심하거라.”
그렇게 말한 타나의 팔이 코 앞까지 다가왔다가 멀어진다. 그녀의 손아귀에 잡힌 건 주먹만 한 날벌레였다. 꼬리 쪽에 붙은 독침이 퍽 위협적으로 보였다.
“이 녀석에게 한 번 쏘이면 맹수도 그 자리에서 쓰러지지. 내성이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 제법 독하단다.”
“유의하겠습니다.”
황금 씨앗을 먹고 독에 영향을 받지 않은 신체가 되었지만, 카인은 타나의 배려를 받아들였다.
“아리아, 이쪽으로 와.”
카인이 신줏단지 모시듯 아리아를 안아들자 타나가 혀를 찼다.
“그러라고 알려 준 건 아니다만.”
“그래도 우리 중에 제일 여린 건 아리아이지 않습니까.”
“반박하고 싶지만, 지금은 연장자로서 여유를 보여야 할 때인 것 같구나.”
원시림은 엄연히 적진이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마냥 시시비비를 가릴 수도 없는 법. 공과 사는 확실히 구분하는 타나였기에 짧게 혀를 차는 걸로 제 의사를 대신했다.
웃지 않으려는 듯 연신 들썩이는 아리아의 눈썹이 묘하게 거슬렸지만, 그녀는 동요하지 않고 등을 돌렸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세 사람의 눈앞에 목책이 나타났다.
그 너머에는 각국에서 모인 토벌대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복장도 휘장도 제각각이었지만, 기강은 바로 선 듯 태만해 보이는 이는 없었다.
‘신의 인형도 있으려나.’
주변을 쭉 둘러본 카인은 의심되는 이를 몇 명인가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브나 델리아처럼 특별한 개체는 없는 것 같았다. 무리도 아니었다. 조직의 세가 기울어진 지금 무엇보다 우선시되어야 하는 건 견제일 테니까.
구태여 원시림에 매달릴 이유가 없었다.
진지로 들어가기 전에 잠시 검문이 있었지만, 말 그대로 잠시일 뿐이었다. 무신이라 불리는 타나가 곁에 있었기에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음에도 쉽게 통과할 수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카인은 문제가 될 게 없다고 생각했다.
술술 잘 풀렸으니까.
명왕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에 바로 토벌에 착수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토벌대를 맡고 있는 총사령관이자 성기사장인 케네비아 드로칸과 만난 카인은 그 추측이 빗나갔음을 인정해야 했다.
이미 선객이 와 있었던 것이다.
기다란 창을 어깨에 걸친 사내는 타나가 등장했는데도 꼰 다리를 풀지 않고 고개만 까닥였다. 꾸벅 졸다가 깨어난 건지 무례하게 인사한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미묘한 움직임이었다.
“이거 누님이 아니신가. 내게 마지막 의뢰를 맡긴 이후로 처음이던가?”
“꼬라지를 보니 아직도 남의 고혈이나 빨아먹고 사는 것 같구나.”
“누님 같은 사람이 있으니 나도 먹고사는 거 아니겠어?”
카인은 힐끗 타나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사내의 정체를 알고 있는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타나의 입에서 나온 건 카인으로서도 놀라운 칭호였다.
“그래서 창성, 네놈이 왜 여기에 있는 것이지?”
“불렀으니까 왔지.”
모든 일의 시발점을 인지한 타나는 곧장 케네비아를 노려보았다.
“우리 대신에 다른 사람을 불렀다고?”
“그동안 회신이 없었으니까요. 다른 방도를 강구하는 건 총사령관인 제 의무입니다.”
“미리 전서구를 보내지 않았느냐. 성황교 측에서 연락했을 텐데?”
“원시림이 어떤 곳인지 아시지 않습니까. 아마 이곳까지 닿지 않는 거겠지요. 아니면 도중에 유실되거나.”
원시림은 바깥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이계나 다름없는 곳. 직접 들어오지 않고선 소식을 전할 방도가 없었다.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인해 기껏 연결해 놓은 연락망도 끊어지기 일쑤.
토벌이 부진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한번 가 본 곳도 심사숙고해서 지나가야 했으니까.
“이런 비상시에는 빠르게 사태를 수습하는 게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타나 님이라면 이해해 주리라 믿습니다.”
일방적인 강요.
말은 번듯하게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아니꼬운 듯한 기색이 가득했다. 아랑곳하지 않고 제 할 말만 내뱉는 걸 보면 성황교가 내비친 비공식적인 의견일지도 몰랐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늦장을 부려서 뿔이 난 것일 터.
‘그래도 그렇지.’
타나가 십좌라는 것도 잊은 모양이었다.
하긴 저 정도 배포가 있으니 성황교에서 믿고 토벌대의 책임자로 명한 걸 테지만.
“이번에는 누님이 물러나. 잘못이 없는 것도 아니잖아?”
“내가 자리를 비우고 싶어서 비운 게 아니라는 건 너도 알고 있을 텐데?”
대륙 회의에 황제 독살 미수, 그리고 패륜을 저지른 황자들의 뒤처리까지. 쉽사리 움직일 수 없는 사안들뿐이었다.
“그런 건 난 모르겠고, 의뢰를 받았으니 이행할 뿐이야. 그게 용병이잖아.”
“십좌란 녀석이 돈에 좌지우지되겠다는 거냐.”
“거부하기엔 너무나도 많은 돈이라 말이야. 역시 성황교라고 해야 하나. 구체적인 금액을 듣고 깜짝 놀랐다고?”
능청스럽게 답하는 모양새가 일품이었다.
카인은 타나와 사내 둘 사이에 감돌고 있는 미묘한 기류를 읽었다. 다짜고짜 누님이라고 불러서 친한 사이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일부러 친한 척하는 거였다.
왜 있지 않은가.
상대방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일단 치근덕대고 보는 사람이.
‘저런 사람이 창성이라는 거지.’
제8위 창성, 톨토드 세일런스.
그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었다. 용병 길드를 다스리는 수장이었으니까.
파티도 아니고, 용병단도 아니고, 무려 용병 길드였다.
용병들의 정점에 선 존재. 구태여 십좌가 아니더라도 톨토드는 대륙적인 명성을 구가하고 있었다. 회귀하기 전에는 격을 올려 제5위에 안착한 강자이기도 했다.
그러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저 방만한 태도는 자신의 실력에 대한 강한 신뢰의 발로일 터.
“미안하지만 이번 의뢰는 포기하거라. 내가 직접 나서야 하겠으니.”
“구질구질하네. 여태껏 그래 왔던 것처럼 모른 척하라고. 하늘에 사는 누님은 지상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든 관심 없잖아?”
“보자 보자 하니까 선을 넘는구나, 톨토드.”
“왜? 누님이 말 한마디만 하면 누구든지 고개를 조아리고 용서를 빌어야 해? 누누이 말했지만 누님은 그런 점을 고쳐야 한다니까? 내 말 들어. 그러다가 죽을 때까지 남자 손 한 번 못 잡고 가는 수가 있어.”
“톨토드.”
“다그치는 건 거기까지.”
창을 꼬나쥔 톨토드가 기세를 일으키자 급조한 막사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칫 잘못하면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
타나가 맞서기 위해 한 발자국 내디딘 순간, 케네비아가 손을 들어 두 사람을 제지했다.
“진정하시지요, 두 분에게 전부 의뢰비를 드릴 테니.”
“아니, 그러면 재미가 없지. 무엇보다 자존심이 용납 못 해. 그런 의미에서 먼저 잡는 사람이 가져가는 걸로 어때, 누님?”
“나야 괜찮지만 너는 어떻게 하려고 그러느냐.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녀석이 돈을 양보한다니.”
“하, 미안하지만 이번 건은 누님이 오판한 거야. 단순히 강한 걸로 치자면 누님이 우위에 있겠지만, 마물을 사냥하는 건 또 다른 문제거든.”
톨토드가 창을 돌리며 비릿하게 웃었다.
아무리 명왕이 제 활동 반경에서 벗어나지 않는다지만, 그게 좁은 공간을 뜻하는 건 아니었다.
인간도 한 도시에서 활동하지 않던가.
산처럼 큰 녀석에게 대입하면 말이 활동 반경이지, 원시림의 일부라고 봐도 무방했다.
사막에서 바늘 찾는 것과 하등 다를 게 없는 난이도.
하나, 톨토드는 자신 있었다.
십좌가 된 김에 용병 길드를 차린 게 아니라, 용병 길드를 차리던 도중에 십좌가 된 거였으니까.
인과 관계를 혼동하면 안 되었다. 창성이기 전에 그는 대륙에서 손에 꼽히는 사냥꾼이었다.
“누님도 질 때가 있어야지.”
* * *
주먹을 말았다 편 타나가 꺼림칙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속은 것 같구나. 역시 그 자리에서 묵사발을 내놓았어야 했어.”
“그게 불가능하다는 건 타나 님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다만.”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신 타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케네비아 앞에서 흥분한 척했지만, 그건 의도된 분노에 불과했다. 톨토드와 대치한 것도 마찬가지.
대범람 때문에 희생된 사람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편성된 토벌대였다. 그런 곳에서 어찌 분란을 일으킬 수 있겠는가.
“이렇게 된 이상 철저하게 깨부수는 수밖에 없겠구나. 녀석은 평소부터 자신이 용병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만 어림도 없지.”
톨토드라는 변수가 끼어들었지만, 끝내 이기는 건 자신일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게 음흉하게 웃은 타나가 전의를 다질 때, 아리아는 공감하지 못하고 하품만 흘렸다.
칠칠치 못한 그 모습에 타나가 그녀의 뺨을 콕콕 찔렀다. 동시에 눈을 흘긴 아리아가 타나의 손등을 쳤다.
“제 몸에 손댈 수 있는 건 공작님뿐입니다.”
“어린것이 발랑 까졌구나.”
“타나 님이 늦된 건 아닐는지요.”
“이…….”
두 사람이 또 아옹다옹하기 전에 카인은 그 사이에 끼어들어 중재했다.
겨우 아리아에게서 떨어진 타나가 입꼬리를 내린 채 진지하게 경고했다.
“긴장해야 하느니라.”
“왜 그렇습니까?”
“톨토드가 먼저 토벌하면 수련이 물 건너가지 않느냐. 그렇게 적합한 상대를 또 찾는 건 쉽지 않을 터.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라.”
그건 카인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기량이 늘고, 경지가 높아질수록 상대를 찾는 게 어려워졌으니까.
더구나 정련정심의 특징 때문에 고무적인 성취를 얻으려면 사투가 이어져야 했다. 하지만 세상에 누가 목숨까지 걸고 상대해 주겠는가.
그것도 십좌에 가까운 강자가.
“결국 부담없이 마주할 수 있는 건 명왕밖에 없군요.”
“그래, 일단 토벌대가 준비한 지도부터 보고 생각해 보자꾸나.”
명왕이 목격된 지역이 빠짐없이 표시되어 있어 목적지를 가늠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중요한 건 어디를 기점으로 수색하냐는 것.
카인과 타나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사이, 아리아는 멍하니 먼 산을 바라보았다. 이내,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그녀는 카인에게 다가가 옷깃을 잡아당겼다.
“공작님.”
“왜?”
“어쩐지 저쪽에 있을 것 같습니다. 불길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가만히 보니 지도에 표시된 지역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어 카인은 침음을 삼켰다. 막연한 추측이라고 하기엔 정확했다.
“그런 게 느껴진다고?”
타나가 신기한 눈초리로 묻자 아리아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인자 때문인가.’
카인은 마음속으로 결론을 내렸다.
아리아가 지닌 재능은 조직 내부에서도 역대 최강이라 일컬어질 정도.
크롬까지 붙여가며 성장시키고자 했으니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천재는 천재를 알아본다고 했던가. 타나 또한 그런 아리아의 본질을 어렴풋이 꿰뚫어 보았다.
“평범한 아이는 아닌 듯하구나. 친구라고 하기엔 특이한 구석이 많아. 혹시 숨기는 게 있느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카인은 어색하게 웃었다. 조직이 무너지기만을 벼르고 있는 그녀에게 어찌 아리아가 귀신이라는 걸 말할 수 있을까. 사달이 나도 단단히 날 게 뻔한데.
카인이 두루뭉술하게 넘어가자 타나도 그 이상 재촉하지 않고 턱을 긁적였다. 톨토드라는 장애물까지 나온 마당에 언제까지 시답잖은 잡담을 나눌 수만도 없었던 것이다.
지도를 접은 타나는 힘차게 카인의 팔을 잡아당겼다.
“자, 어서 가자꾸나. 그 빌어먹을 톨토드 녀석보다는 빨리 찾아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