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cop who beats you with wealth RAW novel - Chapter 231
“내가 뭘 잘못 들었나.”
팀장이 턱을 괸 채로 말했다. 적극적인 내 의견을 수렴하여 폰지사기 수사를 맡기로 한 특수대. 본청 측은 얼씨구나 하며 자료를 내려보내 왔다.
“분명 사건 초기라 그랬잖아.”
“저도 이사라 프로한테 그렇게 들었는데.”
팀장과 깜장은 어른 키 높이만큼 쌓인 보고서 더미를 보며 애써 외면한다. 몽두가 웃으며 그걸 부지런히 옮겼다.
“저는 사이즈가 꽤 클 거라는 말도 들었는데요.”
각 지역에 흩어져있는 피해자의 수. 어림잡아도 몇백 명은 훌쩍 넘어가는 양이었다. 이런 일을 맡자고 하다니, 깜장이 나를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째려본다.
“차라리 찌르고 뚜까 패는 걸 갖고 오란 말이야! 이런 건··· 어후 젠장. 그리고 나 숫자에 약한데.”
“그럼 브리핑 시작합니다?”
“네네. 시작하세요. 시작하자마자 바로 끝내 주세요.”
몽두의 말에 깜장이 대충 대꾸한다. 화이트보드를 가득 채운 종이. 미리 사건 일지를 읽었던 몽두가 천천히 사건 개요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일단 폰지사기이긴 한데 유형은 크게 네 가지로 분류되거든요.”
“네 가지씩이나?”
“옥장판, 정수기, 부동산, 신소재개발.”
“신소재개발은 어떤 거?”
“그때그때 다른데요, 제일 최근에 들어온 건···. 완전히 썩어 버리는 비닐류를 만드는 거래요. 요즘 환경 문제 심각하잖아요.”
“옥장판에서 환경성 신소재라.”
잠깐. 썩어 버리는 비닐? 이건 미래에 진짜 만들어지는 제품인데. 그것도 한국에서 최초로. 허나 팀원들에게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닌 듯, 빠르게 다음으로 넘어간다. 하긴, 비닐을 만들든 플라스틱을 만들든 지금은 아무 상관이 없지.
“아무튼 이런 것들을 빌미로 투자자들 유치했다가 돈 빼먹는 사기 집단이에요.”
“집단이라 하면 다들 연관되어 있다는 거네?”
“네. 본청에서 파악하기로는 그래요. 중부 지역의 정수기. 여기 다단계 매집원인 서진곤. 이 사람 명의의 통장에서 수익금 일부가 부동산 투기원인 한규익 쪽으로 들어간 게 확인되었거든요.”
몽두의 말에 맞춰 우리는 보고서를 빠르게 넘겼다. 이 둘은 이미 잡혔는지, 머그샷을 찍은 채로 남겨져 있다. 얼굴만 보면 멀끔하니 어디 회사 중역처럼 생겼군.
“잘됐네. 이놈들 잡으면 나머지는 딸려 오는 거 아니야?”
깜장의 말에 몽두가 마커를 들어 나뭇가지를 그린다. 가지를 치고, 또 가지를 치고···. 그리고 그중 하나에 동그라미를 그리며 짚는다.
“둘의 위치는 이쯤이에요.”
“잔가지다?”
“얘들 수법이 새끼치기거든요.”
다단계와 조직폭력배 몸집 불리기에 자주 쓰이는 방법. 밑에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데려오고, 그들은 또 자신의 밑에 둘 사람을 데려오고···.
“일반적인 폰지사기에서는 모집책이 주도해서 투자자를 유치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는 새끼치기 방식이 섞여 있어요. 투자자를 데려오면 투자 이율을 높여 줬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서진곤이랑 누구?”
“한규익.”
“그래. 그놈들 위로 잡는 건 가능하잖아. 그 둘도 결국 누군가의 아래에 있던 놈이니까.”
몽두가 페이지를 넘기라는 듯 손가락을 까딱거린다. 마치 합창단을 지휘하는 지휘자처럼. 종이를 넘기자마자 나온 얼굴 두 명.
“어?”
한 명은 모르겠지만, 한 명은 익숙하다. 한때 언론도 장난 아니게 탄 데다 무엇보다 같은 교도소였으니까.
“조희락이.”
“뭐야. 막내 아는 놈이야?”
조희락. 희대의 사기꾼이자 한편으로는 사업가로 불렸던 놈이다. 사람들 돈을 왕창 끌어모아 외국으로 튀었다가 인터폴 수배까지 내려지면서 오랜 기간 도피 생활을 이어 갔지. 허나 결국 말년에 잡혀서 한국 감옥행.
‘진짜 개 같았는데.’
고령인 나이와 사건 발생일이 꽤 지났음을 참작. 실형 5년을 받고 수안교도소에 수감되었다. 몇천억 단위로 돈을 뽑아 먹고 해외 생활에 5년 감옥이라. 그만한 사업도 없다며 동료들과 시시콜콜하니 농담을 주고받았던 게 생각난다. 교도관에게 꿀 칠 좀 했는지, 허구한 날 응접실로 가서 밥 먹고 텔레비전 보고 마사지 받고···.
“아니요. 아는 사람이랑 닮아서.”
나는 일단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었다. 이놈이 벌써 외국에 나갔다면, 전생보다 조금 빨리 사건이 진행되고 있었다.
“피해액이 얼마 정도로 추정돼요?”
“적게는 개인당 오백만 원에서 수억까지. 추청은 백억인 것 같아.”
백억이라. 금액은 크지만 사기 단체 규모나 내가 아는 조희락의 일과 비교하면 아직이다. 아직 피해자가 더 나타나지 않은 것. 몽두와 텔레파시가 통했는지, 그가 피해자 부분을 짚어 준다.
“신고가 들어오는 것도 한 무더기씩일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이야?”
“매달 정해진 날마다 투자금에 관한 이자를 나눠줬어요. 근데 그게 안 들어오니까 뭔가 이상하다 하고 신고가 들어온 거거든요.”
“그 말인즉, 피해자가 피해자임을 자각하기까지 한 달 이상이 걸린다는 말이네?”
“그렇죠. 혹시 다른 가지에서는 이자가 잘 지급되고 있을 수 있어요. 그럼 모르는 거죠. 자기가 사기를 당했는지 어쨌는지.”
그래. 이것 때문에 피해가 더 컸다. 한 달간의 유예 기간 덕분에 우두머리를 비롯해 사기 쳤던 놈들이 죄다 흩어졌지. 불빛을 감지한 바퀴벌레처럼.
“조희락···.”
근데 뭔가 조금 이상하다. 전생에서는 이놈이 거의 우두머리 격이었는데, 어째서 입지가 분산된 거지? 그리고 분명 도피처는 유럽과 남미 쪽이었던 것 같은데··· 왜 필리핀으로 간 거지?
“일단 각 시청과 구청, 동사무소 등지에 폰지사기 경고문 부착할 거고, 자신이 피해자인 것 같다 하면 빠르게 신고하라는 안내문이 발부될 거래.”
깜장의 말에 팀장이 팔짱을 낀다. 살짝 회의적인 표정. 그렇게 해서 효과가 크겠냐는 듯,
“뭐. 그럼 좋은 생각 있어?”
“아니. 그럴 리가. 나 아무 말도 안 했다?”
“본청에서 하던 거니까 그냥 따라.”
“조희락이 부동산 쪽으로 가담되어 있는 것 같고, 정수기는 이동열이. 어후. 사람 이름이 너무 많다야.”
“둘이 같이 필리핀이야?”
“출국 기록으로는.”
“하여간 등신들. 그걸 놓쳐서.”
그렇다면 내가, 아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남은 잔가지들을 붙잡는 것. 그래서 해외에 있는 조희락의 돈줄을 끊어 버리면서 위치를 파악하는 것.
타악-
“됐네. 깔끔하니.”
깜장이 만족스럽다는 듯 볼펜을 내려놨다. 대략적인 사건 개요와 목표를 정했으니, 만족스러운 회의라고 해야겠지. 하지만 우리에게 닥친 상황은 그리 깔끔하지 못했다.
***
“그게 어떤 돈인데에-!”
“저기, 사장님. 일단 진정하시고···.”
“형사님! 사건 접수한 지가 언제인데 왜 아직까지 연락이 없어요? 저기, 같이 접수한 옥장판 쪽은 이미 잡혔다던데. 지금 피해 금액 적다고 무시하는 거예요? 천만 원이 뉘 집 개 이름이야?”
“무시라니요. 그런 적 없고요. 옥장판 쪽도 아직 검거는 못 한 상태라, 어어! 선생님! 그거 만지면 안 되거든요.”
“이거 놔요. 세금으로 산 거니까 좀 쓸게.”
“형사님! 말하다 말고 어딜 가요? 그래서, 내 돈 떼먹은 그놈 지금 어디까지 찾았냐고요!”
난장판. 난장판 중에서도 개판. 나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려다 멈칫거렸다. 사건이 이전되자마자 피해자들은 신고하기 위해 특수대를 찾았다.
“막내야!”
나를 향해 도움의 손길을 뻗는 깜장. 나는 모른 척 다시 등을 돌려 복도로 나왔다. 뒤에서 욕을 삼키는 깜장의 외침이 들린다.
“이래서 본청 새끼들이 냅다 사건 던져 줬구먼.”
옥상에 올라가니 팀장과 몽두가 담배를 피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사무실에는 깜장 혼자서···.
“어후. 불쌍한 새끼.”
“저희도 내려가 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니. 한 놈쯤은 희생해도 된다. 그러니까 팀이야. 갈 때 과자나 좀 사서 들어가지 뭐.”
“뭔가 좀 이상한데요.”
“잔가지를 쳐내도 끝이 없으니 원.”
피해자들 바로 위에 있는 가해자를 잡았지만, 그들 역시 누군가에 의해 가담된 또 다른 피해자. 천천히 타고 올라가는 속도는 불어나는 피해자 수를 감당할 수 없었다.
“잡초 같다니까. 여기 뽑으면 저쪽에 나 있고.”
“뽑았다고 생각했는데 뿌리는 저 바닥에 박혀 있는 거요?”
“그렇지. 생각이 통하는구먼.”
몽두와 팀장은 꿍짝거리며 만담을 주고받는다. 그렇다면 아예 처음부터 녀석들의 본진을 치는 게 나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조희락의 최측근이자 한국에 남아 녀석의 뒤를 봐주는 놈.
‘젠장. 더 자세히 봐 둘걸. 노인이니까 별 관심 없이 욕만 해 댔는데.’
나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남은 사탕이 있는지 확인했다. 그때, 옥상 문이 열리며 한 남자아이가 들어온다. 그 사이 키가 좀 컸는지, 이제 애티는 확실하게 벗은 아이.
“상범아.”
“안녕하세요.”
교복을 입은 채로 꾸벅 인사하는 최상범. 그 옆에는 지혜까지 붙어 있었다. 둘은 뭔가 석연치 않은지 표정이 묘하다.
“여긴 어쩐 일이야?”
“형 보러 왔죠.”
“나? 나는 왜?”
내 물음에 상범이가 헤실헤실 웃는다. 그런 남자아이를 째려보던 지혜. 퍽하고, 녀석의 등짝을 때리며 나에게 인사한다.
“너 빨리 오빠한테 그거 보여 줘.”
“뭔데? 뭔데 이렇게 지혜가 화났어?”
나는 팀원들에게 잠시 눈짓하고, 옥상 구석에 있는 벤치로 아이들을 데려갔다. 상범이는 가방을 열더니 주섬주섬 카탈로그 따위를 꺼낸다. 애 가방에서 이런 게 왜 나와? 지혜는 꼴도 보기 싫다는 듯 빽 하고 소리쳤다.
“오빠. 얘 고등학교 안 가고 일하겠대요.”
“뭐?”
“아니. 누가 안 간대? 검정고시 칠 거라고.”
상범은 항변하듯 말을 붙이지만, 그것도 이해가 안 간다. 멀쩡한 학교 놔두고 왜 일을 하겠다는 거야? 지혜는 쫑알쫑알, 분을 풀어 대듯 내게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무슨 미친 거 아니에요? 학교 선생님들한테 옥장판 팔아서 난리 났잖아요. 그중 뭐?”
“교장 선생님한테는 다섯 판.”
“그래! 다섯 판. 교장 선생님부터 아들딸 머시기 저시기 다 두드러기 나서 상범이 찾고 난리도 아니에요.”
나는 휘몰아치는 지혜의 말에 이마를 짚었다. 사기꾼 기질이 어디 가나 싶었는데, 여전했구나. 그나저나 재주도 좋다.
“대체 어떻게 판 거냐?”
“교장 선생님 무릎 아파서 2층에 있는 교장실을 아래층으로 내렸거든요. 이거다 싶었죠.”
“이거다 싶었죠? 너 그거 사기야, 사기!”
지혜가 기함하며 다시 상범의 등짝을 후려친다. 대충 돌아가는 꼴은 알겠는데···.
“너 근데 학교는 왜 안 다닌다고 하는 거야.”
나는 카탈로그를 잠시 치워 둔 채로 물었다. 허나 그 말을 입 밖으로 낸 순간, 잊고 있었던 상범의 처지가 떠올랐다. 아이 스스로 콩가루 집안이라 할 만큼 부모는 무책임하며, 의지할 수 있는 하나뿐인 형은 사이비 종교에 빠져 정신병원에 수감.
“일이 하고 싶어?”
나는 조심스럽게 돌려 물었다. 돈이 필요하냐고. 상범이는 우물쭈물하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솔직히 고등학교 가서 잘 다닐지도 의문이고, 뭐 이런저런 생각이 좀 많아서요.”
“어른 되면 죽어라 일할 거 뭐더러 지금부터 하냐고. 우리 때는 공부만 하면 되는 거야.”
지혜의 말에도 상범은 묘한 미소만 지을 뿐이다. 지혜처럼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다면 잘 모를 수도 있지. 허나 나는 이해된다. 어린 나이에 피자집에서 일을 해야 했던 그 상황. 상범이의 이번 생만큼은 그렇게 두고 싶지 않다.
“고등학교 가. 원한다면 대학교도.”
“하하. 형이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요.”
“농담 아니야. 풍계고라고, 고광에서 재단 세운 학교 있거든. 진학은 그쪽으로 가. 기숙사랑 지원 모두 무료로 운영하고 있으니까 부담 없을 거다.”
내 말에 지혜가 화색을 띤다.
“오빠. 저도, 저도 그쪽으로 갈래요. 상범이랑 같은 학교로 가고 싶어요.”
잠재적 사기꾼 상범이를 옆에서 잡아 줄 사람은 지혜뿐이겠지.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혜는 성적이 되니까 가능할 거다.”
상범이도 머리는 똑똑하니까 무리 없겠지. 나는 그제야 한편에 치워 둔 카탈로그를 쳐다봤다.
“그나저나 여기는 대체 뭐 하는 곳인데 애한테 이런 물건을 떼 줘?”
“제가 상호 형 민증 갖고 갔거든요.”
“잘하는 짓이다.”
“말 나온 김에 형도 하나 사 보실래요?”
“방금 교장 선생님 일가친척들 다 두드러기 났다며.”
“아 참. 괜히 말했네.”
“당장 그만두고 학교 잘 나가. 지혜한테 연락 갈 거다.”
내 말에 지혜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세차게 끄덕인다. 맡겨만 두라는 표정. 나는 멍하니 카탈로그를 계속 쳐다봤다. 근데 이거 가만 보니까···.
“몽두 형님! 팀장님!”
나는 난간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고 있는 둘을 다급하게 불렀다.
끝
ⓒ 배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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