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cop who beats you with wealth RAW novel - Chapter 94
“돈이라. 돈···”
나는 팀장의 말을 중얼거리며 화면 속 차효재를 쳐다봤다.
링 위에서 두 주먹을 불끈 쥔 채로, 상대를 노려보는 선수.
인상이 좋은지라 위협보다는 결의에 찼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의 사정을 알아서 그런가. 마치 정의를 위해 싸운다는 느낌.
“시합이 보름 후라고 그랬죠?”
“응. 토너먼트 식으로 이뤄지는데, 아직 대전 상대는 안 떴고.”
“KOREA FC면 최대 시합일 것 같은데,”
“맞아. 상금이 10억이니, 우리나라에서는 제일 크지.”
몽두가 마우스를 딸깍거리며 대답했다.
일단 시간적 여유는 좀 있는 편이니,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를 정리했다.
“일단 최석연 사건부터 송치하고, 이 사건 한번 파헤쳐도 될까요?”
“승부조작으로?”
“네. 아무리 생각해도 찜찜해서요. 꼭 짚고 넘어가고 싶어요.”
내 말에 깜장 역식 반색하며 적극 동의했다.
“그래. 그 대표라는 놈 주머니 좀 탈탈 뒤집어 까보자! 걔 이름이 뭐라고?”
“석만우. 흔치 않은 성이라, MG.ONE랑 KILL.P가 관계있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몽두야. 그놈 얼굴은 없냐?”
“흐음. 그냥 대표일 뿐이라서 정보 같은 건 딱히 없는데요.”
“허어라. 고러면 좀 곤란한디요. 심증만 있지, 물증이 없잖아. 무턱대고 가서 캐물을 수도 없고.”
“이런 일은 원래 내부고발자가 제일 핵심적인데.”
몽두의 말이 맞았다.
승부조작같이 당사자들끼리만 아는 일은 증언, 즉 내부고발자의 역할이 중요했다.
사건이 일어난 후라면 자금 출처나 이동을 되짚으면 되지만···
그때는 이미 차선수의 신념이 바닥에 짓긴 후겠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팀원들에게 말했다.
“남은 조서만 잘 마무리해 봅시다. 그 부분은 제가 어떻게 해서든 알아볼게요.”
그리고 한 손에 든 휴대폰. 깜장이 알겠다는 듯 손가락을 튕겼다.
“너! 또 김 실장님 콜 하려는 거지? 대단한 양반이긴 한데, 이런 것까지는 못 하실 텐데.”
“하하. 아쉽게도 땡입니다.”
“엥? 땡이야?”
나는 웃으며 사무실을 나섰다. 복도 끝에서 오랜만에 누르는 번호.
신호음이 가고, 이내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사장님!
“오랜만이다. 잘 있었어?”
호운이. 이상하게 그 사이 목소리가 더 어른스러워진 것 같다. 호운이의 뒤로 친구들의 시끌벅적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바쁘냐? 나중에 전화할까?”
-아니요. 괜찮아요. 이렇게 전화 준 거 보면 의뢰일 것 같은데. 그게 더 중요하죠.
“돈 냄새는 기가 막히게 맡아요.”
-그래서, 뭔데요?
“종합격투기 단체 KILL.P라고 있어. 거기 대표 이름이 석만우거든. 이 사람이 사설 스포츠토토와 연관되어 있는지 확인해 줘. 현금 흐름 중에서 이상한 게 있으면 그것도 긁어주고.”
-그것만 하면 되나요?
“그리고 차효재라고 종합격투기 선수가 있는데, 그 선수에 대해서도 좀 알아봐 줘.”
-오케이. 알겠습니다. 언제까지 해드리면 되나요?
“맥시멈 보름. 그 안에만 처리해주면 돼.”
-넵. 연락드리죠. 제 계좌번호는 갖고 계시죠?
“그래. 어머니는 잘 계시냐?”
호운이 성인이 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그건 곧 어머니와의 이별을 뜻했다.
차마 사실대로 알려주지는 못하겠지만.
-엄마요? 잘 있죠. 갑자기 그런 걸 물으신대.
“평소에 어머니한테 잘 좀 하고. 그래.”
-안 그래도 이번 의뢰비로 엄마랑 고기 사 먹으려고요. 고광에서 일감 주는 거라 별말 않고 돈 받으시거든요.
나는 가볍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 잘되어가고 있구나, 싶은 마음이 불현듯 들었다.
감방에 있던 호운이가 아니라, 친구들과 노는 호운이라 좋았다.
어머니와의 관계도 나쁘지 않은 것 같고. 환생해서 다시 한 번 감사해지는 순간이다.
“고기도 좋지만, 어머니 언제 시간 내서 고광병원에 오라고 말씀드려. 건강검진 한번 받게. 공짜로 해주마.”
-하하. 한번 말해볼게요. 그런데 워낙 그런 거 없어도 건강해서. 아이고. 사장님! 저 이만 끊을게요. 친구들이 불러서.
“그래. 일 처리 잘 부탁한다.”
-네!
나는 전화를 끊고, 다시 사무실로 들어왔다.
***
그렇게 짧고도 긴 일주일이 흐르고.
사건을 마무리 짓는 동안 의식을 잃었던 청원 경찰이 깨어났다. 우리는 우리의 자리에서 할 일을 다 했고, 깜장에게서 간간히 차효재 선수에 대해들을 수 있었다.
“팬 됐다고, 음료수 사주니까 그렇게 부끄러워하더라. 얼굴이 완전 피떡인데, 어후. 안쓰러워 죽겠어.”
“형님. 그 정도면 진짜 열렬하네요. 팬클럽이라도 만드세요.”
“엥. 나 이미 가입했는데? 차차 서포터즈. 인원수가 별로 없어서, 바로 완장 찼지!”
팀장이 못 말린다는 식으로 고개를 내젓는다.
검찰로 사건을 송치한 날. 밤이 돼서야 우리는 기지개를 켜며 일어섰다.
“서포터즈고 자시고 어서 일어나서 집 가자.”
“으아! 진짜 끝났다. 끝!”
“다들 수고했어.”
팀장과 몽두가 홀가분한 표정으로 서로를 다독였다.
팀장이 차키를 챙기자, 깜장이 아쉬운 표정으로 묻는다.
“에? 한잔 안 해? 오늘 같은 날?”
“한잔은 짜식아. 들어가서 제수씨랑 해. 난 집에 가서 애들 얼굴 좀 보련다.”
“저도 여친이랑 약속 있어서.”
“우우- 다들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막내야! 여친도 없고 애도 없는 막내! 너는?”
내 목에 팔을 감싸는 깜장. 나는 웃으며 그의 팔을 빠져나왔다.
“죄송합니다. 저도 일이 있어서.”
충격 받은 깜장의 표정. 그는 투덜거리며 사무실 문을 나섰다.
오랜만에 불이 꺼지는 특별수사대 사무실.
나는 정문에서 택시를 잡고, 낯선 동네의 이름을 말했다.
“고손동으로 가주세요.”
차효재 선수가 살고 있다는 주소지.
나는 뒷좌석에 앉아 호운이 보내준 서류를 찬찬히 살폈다.
KILL.P의 대표 석만우의 계좌를 훔쳐 본 결과, 이상한 업체에서 정기적으로 거금이 입금된 것을 확인했다.
불법 스포츠 토토 사이트. 호스트 자체는 외국으로 되어 있지만, 관리자는 그의 노모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었다.
‘사이즈가 대충 나오는군,’
신생 단체에서 우승자를 배출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시합이 아닌 외부적인 걸로 콩고물을 주워 먹겠다는 속셈. 전략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만큼은 확실하다.
차효재를 비롯해 몇몇 선수들은 그저 잔치를 위해 깔아두는 돗자리 신세라는 것.
나는 빠르게 지나가는 서울의 밤거리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한참 후, 택시 기사가 차를 멈추더니 난감하게 말했다.
“손님. 여기서부터는 걸어가셔야겠는데요.”
차효재 선수가 살고 있는 동네. 화낙동처럼 달동네의 정석을 보여주는 곳이다.
가파른 계단과 다닥다닥 붙어있는 주택들. 판자로 덧댄 지붕도 흔하게 보였다.
나는 차에서 내려 등산하듯 동네를 올라갔다.
“이쯤인 것 같은데.”
워낙 복잡하고 세대가 얽혀있어, 찾기 쉽지 않았다.
내가 두리번거리고 있자, 판상에 앉아있던 어르신들이 나를 부른다.
“처음 보는 총각이네. 무슨 일이여?”
“차효재 선수 찾아왔는데요.”
“아아. 운동선수? 거기 맞아. 그 집.”
나는 그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주택 벽에 나 있는 불투명한 문.
창고인 줄 알았는데, 여기가 차선수의 집이었구나.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문을 두드렸다.
끼이익-
잠시 후, 머리칼이 젖은 차효재 선수가 모습을 보였다. 방금 들어와 씻은 것 같은 모습. 그가 나를 알아보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형사님?”
“시간 좀 괜찮으십니까?”
“아···네. 들어오세요.”
안쪽은 낡았지만 정갈하고 깔끔했다. 차효재는 거실 겸 안방인 마루에 나를 안내했다.
“물이라도 한잔 드릴까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이거 같이 드시죠.”
나는 사온 음료수를 까면서 그의 앞에 놓았다. 저녁인데 조용한 집안. 내 생각을 알아챈 차효재가 담담하게 말했다.
“부모님은 일 나가셨어요. 말이 좀 이상하지만, 새벽에 나가서 새벽에 들어오거든요.”
이 역시 호운이 보내 준 자료에 잘 적혀 있는 내용이었다.
‘찢어지는 가난’ 최효재 선수의 상황에 아주 잘 맞는 말이었다.
나는 음료수를 한 모금 마시며 안부를 물었다.
“훈련 준비는 잘 돼 가십니까? 앞으로 일주일 후면 시합이라고 들었는데.”
차효재의 얼굴은 채 아물지 못한 상처들로 가득했다.
그가 머리를 긁적이며 씁쓸하게 웃었다.
“열심히 한다고는 하는데, 잘 모르겠네요.”
“상대 선수 전적 보니까, 첫 판은 부드럽게 갈 것 같은데요. 아, 물론 제가 아닌 깜장 형님 말입니다.”
나는 깜장의 이야기를 꺼내며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풀었다.
차효재가 입술을 살짝 깨물며 조심스럽게 말문을 틀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혹시 최석연 사건 때문이신가요?”
“아니요. 그 사건은 오늘부로 완전히 송치됐고요, 제가 찾아온 건 이것 때문입니다.”
나는 그의 앞에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인터넷 사이트를 캡처한 사진. 그가 별생각 없이 종이를 들다가 인상을 찌푸린다.
“이게 저랑 무슨 상관이죠?”
“요즘 경기 시즌이라 그런지, 별별 사설 토토가 설치더군요. 그중에서도 이 사이트. 한번 단속을 하려 하는데···”
“저기 형사님.”
그가 다급하게 내 말을 끊는다. 그리고 내 시선을 애써 외면하며 중얼거린다.
“저는 모르는 일이라 서요. 이만 가주셨으면···”
“원래대로였으면, 바로 사이트 추적 들어가서 운영자를 잡았을 거예요. 그런데 제가 이렇게 온 이유, 궁금하지 않으세요?”
차효재 선수는 말없이 음료수병만 만지작거렸다. 나는 그에게 미끼를 살살 던졌다.
“여기 관련자 구속되면, 그쪽 KOREA FC 출전 못 할 수도 있어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에요? 전 아직 한 것도 없는···”
그는 변명하듯 내게 쏘아붙이고, 입을 손으로 막았다. 말 낚시에 제대로 걸린 것이다.
승부조작을 제안받았다는 사실을, 자신의 입으로 시인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의 눈동자가 당황스럽게 흔들렸다.
어떻게 이 상황을 빠져나가야 할지, 머리가 열심히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걱정 마세요. 저 진짜 다른 의도로 온 거니까. 그냥 듣고 싶어서 왔어요. 그쪽 사정.”
뜬금없는 내 말에 차효재는 인상을 찌푸렸다.
“객관적인 사실은 이런저런 곳에서 대충 조사했는데, 정작 중요한 그쪽 심정을 제가 몰라서요. 한번 말해줄래요? 대체 왜 이렇게 됐는지. 내부고발자였던 파이터가, 어쩌다 그 소굴로 다시 들어왔는지.”
째깍째깍.
벽에 걸린 사은품 시계.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와 바깥의 어르신들이 도란도란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차효재는 잠시 고민하다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별거 없습니다. 사람 사정이라는 게, 다 어쩌다 보니 일어나는 거니까요.”
“소주라도 한잔하실래요?”
“됐습니다. 시합 앞두고 술은 절대 안 마셔요.”
“아. 그러네요. 그러면, 음료수로 기분이라도 내시죠.”
나는 음료수를 하나 더 까면서 그에게 건넸다. 차효재는 어이없이 웃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원래 가난했어요. 가난했는데, 제가 프로로 데뷔하고서는 그나마 숨 쉴 구멍이 있었거든요. 이 집, 믿기지 않겠지만 제가 프로 돼서 이사 온 집이에요. 부엌이랑 안방이랑 분리되어 있다고, 부모님이 참 좋아하셨죠.”
분리···하고 있는 건 문지방 하나가 다였지만, 그에게는 아주 소중한 기준인 것 같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겨우 기세 좀 필까 싶을 때 승부조작 사건 터지고, 증언했더니 찍혀서 이직이 안 됐어요. 그래서 까짓것 그냥 때려치우고 다른 일 하려 했는데, 안 되겠더라고요.”
“뭐가요?”
“격투기를 참는 거요. 너무 하고 싶어 죽을 것 같았어요. 링에 올라서 얻어터지고, 죽을 듯이 상대를 몰아붙이고 싶었어요. 상사병 걸린 것처럼.”
과거를 회상하는 차효재의 눈이 반짝였다. 그때의 감정이 아직 남아있는지, 듣고 있는 나에게도 애틋함이 느껴졌다. 격투기를 순수하게 사랑하는 젊은 열정.
“그때 KILL.P에서 제안이 왔어요. 석 대표가 차린 단체인 줄은 들어오고서 알았어요.”
“왜 영입했는지, 스스로도 아시나요?”
“처음엔 잘 몰랐는데, 어렴풋이 알겠더라고요. 세탁기죠 뭐. 똥칠한 이미지 빨아주는 세탁기. 그런데, 하아. 그냥 그렇게만 있어도 좋았는데.”
“다시 제안이 온 거군요.”
“···어찌 다 아는 것처럼 말하시네요.”
“제가 이래 봬도 나이가 많아서.”
내 말에 차효재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시합이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모르겠어요. 제 운명이 어떻게 될지.”
다른 단체와 싸울 때는 최선을 다하겠지만, 같은 단체인 배상현.
그때 눈치를 보아하니, 배상현 선수와 붙으면 그를 밀어줘야 하는 것 같다.
“형사님. 염치없지만,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조금만 시간을 주세요. 한 게임, 딱 한 게임만이라도 좋으니까요. 이번에 파이트머니를 받아야 저희 엄마 수술할 수 있어요. 매일 같이 동네 돌아다니며 쓰레기 줍느라 관절이 말이 아니에요. 이번에 무조건 수술해야 합니다.”
그놈의 돈, 돈, 돈. 세상만사 돈이 문제군.
차효재는 착잡하다는 듯 마른 세수를 했다. 나는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저도 힘들고 막막할 때가 있었어요. 조금 다른 경우긴 하지만.”
“···형사님은 어떻게, 잘 되신 것 같네요.”
나는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살면서 가끔 찾아오는 기적이 있더군요. All is well이라고. 모든 것이 잘될 겁니다.”
내가 주문을 외우듯이 말하자, 차 선수가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All is well. 모든 것이 잘되리라.
끝
ⓒ 배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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