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RAW novel - Chapter 308
308. 외전 – 하나의 음악으로
-공연 스케줄만 아니었어도 만하임으로 날아갔을 텐데 말이지.
핸드폰 너머 니콜라이의 말에 알렉스가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풀풀 흘렸다.
“오라고 할 땐 그렇게 안 오다가, 서호 제자가 여기 있다니까 아쉬워하는 거 봐?”
-당연하지. 예전에 마에스트로 세분이 서호 학교에서 특강을 하신다고 했을 때도 얼마나 궁금했다고. 대체 서호가 어떻게 수업하려나, 애들은 어떤 애들이려나. 근데 심지어 서호가 처음으로 작곡을 가르친 학생이라며.
살짝 흥분한 니콜라이의 목소리에 웃음을 흘리던 알렉스가 작게 끄덕였다.
“그렇지. 처음으로 작곡을 가르쳤고, 심지어 그 아이에게서 많이 배웠다더라고. 며칠 보니까······알겠더라. 서호가 뭘 배웠는지.”
-뭘 배운 것 같은데?
“영혼이 밝아.”
-영혼이···뭐? 이거이거 또 노인네 같은 소리 하네.
“노인네 맞지 뭐.”
-그런 말 프랑코님 앞에서 해봐라. 자넨 바로 멱살이야.
“푸흐흐. 근데 정말 신기하긴 하더라. 우리가 서호를 처음 본 게 걔 스무 살 되기 직전이었는데, 벌써 녀석의 제자가 그 나이를 훌쩍 넘어서 콩쿠르까지 참여한다는 게.”
-시간이 빠르긴 하지만 것보다 서호가 너무 빨랐던 거야. 아직 서른도 안 됐는데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음악가잖아. 거장이란 칭호가 소박해 보이고, 위대하다는 말이 결코 촌스럽지 않은.
물론 통화를 나누는 두 사람도 이미 10대 때부터 이름을 알리고, 20대에 전세계에서 손꼽히는 연주자가 되었던 이들이었다.
하지만 거장(巨匠)이란 수식어에는 단순히 어떤 콩쿠르의 결과나 유명으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오랜 시간 한 곳에서 변함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들을 수 있는 자리.
그렇기에 그들이 진정 거장이라 불리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여 년 전의 일이었다.
그런데 한서호는 어떤가.
니콜라이의 말처럼 거장이란 칭호가 작아 보일 정도다. 위대하다는 말이 낯간지럽긴 해도 적절해 보인다.
-얼마 전에 후배들이랑 술 먹는데, 걔네가 그러더군. 서호는 게임 체인저라고.”
“게임 체인저?”
-큰 지각변동. 이전과는 분명한 경계선. 뭐 그런 거라고 하던데.
“선구자 같은 느낌이네. 그러면 서호가 맞겠네. 적어도 현대에 이르러선······서호뿐이야.”
잘게 주억거리던 알렉스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덧붙였다.
“서호 얘기만 하면 뭔가 좀 뜨거워진단 말이지.”
-오븐에 신메뉴 넣어놨다며. 그거 때문 아냐?
니콜라이의 장난스러운 농담에 피식 웃은 알렉스.
킬킬거리던 니콜라이가 말을 이었다.
-아무튼 그 유채봄이란 친구, 꼭 브리너 콩쿠르 최종 라운드까지 갔으면 좋겠네. 최종 라운드는 공개 무대라면서. 주최측에서 초대장도 보내왔더라고. 자네한테도 왔지?
“어, 왔어. 왜 은퇴한 나한테까지 보냈는진 모르겠지만.”
-우리가 그래도 나름 브리너 백작, 그 양반이 유명해지는 데 도움을 줬잖냐.
“서호가 했지. 우리가 뭐 한 게 있다고.”
그건 그렇다며 웃는 니콜라이에게 알렉스가 말을 줄였다.
“아무튼, 그때 보자. 이제 슬슬 요리 꺼내야 해.”
급하게 전화를 끊고서 접시 하나를 들고 오븐으로 향한 그.
노릇하게 익은 돼지고기를 접시에 담아 홀로 나오자, 때마침 스위스 여행에서 기념품으로 사 온 종이 우렁차게 짤랑거리며 문이 열렸다.
“저 왔어요!”
유채봄이 캐리어를 질질 끌며 안쪽으로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본 알렉스가 물었다.
“오늘 체크아웃한 거야?”
“네, 오늘부턴 주최측에서 지정해준 호텔에서 머물어요.”
“이제 여기도 못 오겠군.”
“콩쿠르 끝나면 바~로 올게요. 친구들이랑.”
“늦게 오길 바라야겠네. 그치?”
“헤헤.”
해맑은 유채봄을 보며 픽 하고 웃음을 터트린 알렉스가 손에 들고 있던 접시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얼른 와서 이것 좀 먹어 봐.”
“언제 먹어 보라고 하시나 기다렸어요. 지금 가게 안에 냄새가 미쳤거든요.”
“좀 더 달게 만들어봤는데 말이지···.”
한달음에 테이블로 달려와 앉은 유채봄이 신메뉴를 입에 넣었다.
사뭇 긴장한 눈빛으로 지켜보던 알렉스가 못 참고 물었다.
“어떤 거 같아?”
“오늘은······.”
입안에 가득한 돼지고기를 오물거리던 유채봄이 천천히 입을 뗐다.
“매콤한 게 덜해서 아쉽긴 하지만 그건 너무 한국인 취향이구···맛있어요. 어제, 그제보다 훨씬.”
“그, 그래?”
“네. 엄청 맛있어요. 지난번에 싸주신 부르스트보다도요.”
그러자 알렉스의 입꼬리가 스윽 올라간다.
“그 부르스트, 유명 쉐프한테 돈 주고 배운 레시핀데.”
“어휴, 돈 낭비 하셨네요. 이렇게 훨씬 맛있는 메뉴를 만드실 수 있었는데.”
유채봄의 능청에 웃음을 터트린 알렉스가 팔짱을 끼며 피아노를 가리켰다.
“자, 그럼 피아노 앉아봐.”
“네?”
“네가 메뉴 개발에 도움을 줬으니, 나도 뭐라도 도움 좀 줘야지. 작곡에 대해선 난 잘 모르고, 네 스승이 그 분야 최고이니 할 말도 없고······.”
벙벙해진 유채봄에게 알렉스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피아노 연주는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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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가지고, 무려 알렉스님이 제 연주에 대해 이런저런 피드백을 해주셨어요. 이것도 다 교수님 덕분 같아요. 제가 교수님 학생이라 더 신경 써주신 것 같았거든요. 물론 제가 신메뉴 맛 평가를 기가 막히게 해드리긴 했지만요.]친구들 마중을 위해 공항에 일찌감치 도착해서 편지를 쓰고 있다.
어차피 보낼 수도 없는 거, 이젠 아예 일기 같은 편지가 되어가고 있었다.
토도톡톡—.
그렇게 한참 동안 핸드폰을 두드리다가 쏟아져 나오는 인파에 고개를 들었다. 홱홱, 사람들을 살폈다. 익숙한 얼굴들이 저 멀리 스친다.
“여기야, 여기!”
과대 오빠와 동기 언니, 그 밖에도 전공은 다르지만, 더 클래식 사옥에서 친해진 학생들까지.
“여행 잘 하고 있었어?”
공항이 아니라 패션쇼에 온 듯, 챙 넓은 모자에 선글라스까지 얹은 동기 언니가 다가와 물었다.
“그럼요. 꿀잼이었어요~.”
“겨울이가 피아노도 없는 곳에 숙소를 잡았다고, 얘 진짜 여행 갔다고 기가 막혀 하던데?”
“근데 피아노 있었어요. 게스트하우스에도, 그리고 다른 곳에도.”
“다른 곳?”
“레스토랑이요.”
“여기서 연주 알바라도 한 거야?”
“그게 그렇게 되나? 음식을 공짜로 먹긴 했는데······.”
볼을 긁적이며 곰곰이 생각하자, 피식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은 동기 언니가 말했다.
“레스토랑이라고 하니까 배고프네. 얼른 호텔가서 짐 풀고 뭐라도 좀 먹자.”
“네, 얼른 가요!”
그 길로 우리는 주최 측이 정해준 호텔로 향했다.
호텔에 도착하자 이미 꽤 많은 사람들이 로비에서 북적이고 있었다. 그 중엔 우리처럼 참가자로 보이는 이들도, 그들의 가족으로 보이는 이들도, 그리고 기자로 보이는 이들도 섞여 있었다.
“뭔가 살벌하네.”
과대 오빠가 꿀꺽 침을 삼키며 말했다.
로비에 잔뜩 모여있는 참가자들을 보며 한 말이었다.
그도 그럴 게, 모든 이들이 서로를 보며 ‘저 사람이 나와 경쟁할 상대인가?’ 경계하는 느낌을 물씬 뿜어내고 있었다. 뭐 저렇게 노려보면 상대 실력이 보이기라도 하나···.
‘콩쿠르 참가자’라고 적힌 줄 뒤로 가서 한참 동안 눈치를 보며 멀뚱멀뚱 서 있었다.
보통의 경우였다면 호텔 측에 예약한 방을 달라고 하면 되었겠지만, 브리너 콩쿠르의 주최 측에서 숙박까지 지원을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브리너 백작이 음악가들을 후원했던 후원가라서 그런 게 아닌가 싶은데···.
그렇게 얼마나 로비에 서 있었을까.
정장 차림의 한 남자가 다가와 자신을 콩쿠르 주최 측 직원이라 소개했다. 그는 참가자들의 이름을 명단에서 확인하더니 각자 묵게 될 방의 카드키를 나눠주었다.
각자의 방이 층도 방향도 제각각이라 결국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모두 짐 풀고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서, 나도 내 방을 찾아 나섰다.
7층 복도 중간쯤에 위치한 방.
당연히 런던에서 SJ 회장님이 잡아주셨던 방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작았지만, 그럼에도 훌륭했다.
방은 깔끔하고, 높이가 있다 보니 전망도 좋았다. 게다가 무려 전자 피아노까지 미리 배치되어 있었다.
“좋아, 좋아~.”
캐리어를 침대 옆에 밀어놓고, 얼른 피아노 앞에 앉았다.
전원을 켜고 건반에서 소리가 나오는 것을 확인했다.
———.
제법 괜찮은 소리에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뭐라도 쳐보려 손을 얹는데, 묘한 감정이 깔렸다.
설렘과 두려움. 그 사이에서 우왕좌왕하게 되는 느낌이랄까.
어쩌면 당연했다. 당장 모레부터 콩쿠르가 시작되니까.
“어떤 주제가 나오려나······..”
2차는 1차와는 달리 형식이 정해져 있다고 들었다. 종이에 문제가 있고, 오선지에 그것에 대한 답을 적어내는.
말 그대로 시험.
···부담감이 엄습한다. 이럴까 봐 미리 와서 여행도 다니며 릴렉스를 하려고 했는데, 소용 없었나.
그런 생각을 하며 바짝 긴장하고 있는데 때마침 핸드폰이 울렸다. 얼른 밥 먹으러 가자는 동기 언니의 재촉일 거라 생각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핸드폰을 집어 들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이름이 떠올라 있었다.
“···교수님!”
끊어질세라 얼른 소파에 앉아 전화를 받았다. 워낙 바쁘시니까 신호음 한 두 번에 끊어버리실지도 모르잖아.
“여보세요!?”
-잘 지내고 있죠?
나긋한 목소리에 귀 옆까지 치솟았던 어깨가 천천히 내려왔다. 긴장감은 사라지고 입가에 미소가 만개한다.
“네, 무지요. 제가 사실 만하임에 일찍 와 있었거든요.”
-들었어요. 알렉스님께.
“알렉스님이 제 얘길 하셨어요?”
-네. 엄청 유쾌한 친구가 놀러 왔다면서 신기해하시던데요?
“신기···한 건 모지···?”
갸우뚱하자 교수님이 웃음을 터트렸다.
-전 알겠던데.
“···?”
-아무튼, 잘하고 와요. 콩쿠르.
“아, 넵! 교수님 이름에 부끄럽지 않도록···.”
-그런 잘하는 거 말고.
단호한 목소리 뒤로 교수님이 덧붙였다.
-결과, 경쟁. 그런 거 생각하지 말고, 하나의 음악을 만든다고 생각해요.
“하나의 음악이요?”
-네. 예를 들어 ‘유채봄의 콩쿠르’라는 제목의 곡을 만들고 온다고 생각하면 편할 거예요.
“유채봄의 콩쿠르···.”
어려운 말이었다.
콩쿠르를 각각의 경쟁으로 생각하지 말고, 그 전체가 하나의 음악인 것처럼 참여하라는 건데.
솔직히 그걸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언제나처럼, 나는 교수님의 말에서 무언가를 느낀다. 단순히 배우는 게 아니라 느낀다. 머리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영혼이 반응한달까.
-그 곡이 짧아도 돼요. 어느 부분에선 그리 좋지 못해도 돼요. 그렇게 하나의 음악. 자신만의 이야기를 완성시킨다면···.
나는 슬며시 눈을 감았다.
절대 졸려서가 아니다. 지루해서는 더더욱 아니다.
그저, 지금 교수님이 해주시는 말을 음악처럼 감상한다.
-그건 우승보다도 값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