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RAW novel - Chapter 307
307. 외전 – 그 스승에, 그 제자 (4)
[너, 밤에 칠렐레팔렐레 돌아다니면 안 된다?]머릿속이 또다시 복잡해졌었는데, 최겨울이 보내온 톡에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 거기 6시지? 거긴 해 늦게 지나? 어두워지기 전엔 꼭 들어가야 한다니까?]이곳 현지 시간까지 확인해가며 잔소리를 해댄다. 우리 부모님보다 더 걱정을 하네.
[지금 숙소 들어가는 중이네요. 걱정하지 마셔.]답장을 보내놓고 잰걸음으로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노을이 꼴딱꼴딱 넘어가기 직전에 세이프였다.
“왔어요? 얼른 와서 앉아요.”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맛있는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손에 두툼한 장갑을 끼고서 오븐에서 요리를 꺼내던 사장님이 날 보고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사장님의 환대를 받으며 식탁으로 향했다.
긴 테이블에 남자 사장님 말고도 앳된 얼굴의 여자아이가 앉아 있었다. 아마 음악을 하고 싶어 한다던 사장님 내외의 딸이겠지.
그들을 향해 인사하고서 손에 들고 있던 봉투를 사장님께 건넸다.
“이게 뭐예요?”
“알렉스님이 주셨어요.”
“알렉스?”
“사장님께서 추천해주신 레스토랑 사장님이요.”
“거기 사장님 이름이 알렉스였어요? 여기 저녁땐 줄 서서 기다려야 하는 곳인데. 어머, 부르스트(-독일식 소시지)네?”
“제가 게스트하우스 머문다고 하니까 양도 넉넉하게 주셨더라구요. 엄청 맛있겠죠?”
군침을 삼키며 빈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앳된 얼굴이 바로 마주 보여 그녀에게 활짝 웃어주었다.
“우리 딸이에요. 이름은 레아.”
사장님의 소개에 다시 한번 인사를 하고서, 우물쭈물하는 그녀에게 슬쩍 말을 걸었다.
“클래식 음악을 하고 싶어 한다고 들었어요.”
“아, 네, 클래식 작곡이요.”
그녀 또한 작곡에 관심이 있다는 것에 반가워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오, 누구 음악 많이 들어요?”
“지금은 한서호 지휘자님···.”
“크흐. 역시 뭘 아시네.”
괜스레 내가 흐뭇하게 웃었다. 예전만 해도 고전과 낭만에 이르는 옛 음악가들의 이름이 거론되는 게 대부분이었는데, 이제는 다른 나라의 사람들까지도 교수님의 이름을 말한다는 것에 기분이 좋아서. 그 사실이 자랑스러워서.
“언니도 한서호 지휘자님 좋아하세요?”
물어보나 마나 한 소리에 고개를 파닥였다.
“당연하죠. 싫어하는 사람이 없지 않을까요?”
“그럼, 실제로 본 적도 있으세요?”
“통 못 봐요. 요즘은.”
내 대답에 이곳 사장님의 딸, 레아가 멍한 표정이 되었다. 그녀는 눈을 껌뻑이며 무언가 생각하더니 설마 하는 눈빛으로 입을 뗐다.
“그 말은 예전엔 자주 보셨다는······.”
“그분 수업도 들었는걸요.”
“HAU 다니세요!?”
만난 이후, 가장 큰 목소리로 벌컥 물어온다.
끄덕이자, 부르스트를 접시에 옮겨 담아온 사장님도 놀란 표정으로 덧붙였다.
“어머, 거기 엄청 유명하다던데! 대단한 손님이었네~.”
“아유, 아니에요. 저희 대학이 유명한 건 순전히 교수님 덕분이거든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교수님이 오시기 전에도 물론 국내 최고의 음대이긴 했지만,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교는 아니었으니까.
“한서호 지휘자님 수업은 어땠어요?”
“음··· 서양 음악사를 가르치시는데, 되게 독특해요. 음악사가 아니라 클래식에 대해 전체를 배우는 것 같았달까.”
그 후로 저녁을 먹으면서도, 사장님들이 주신 와인을 한잔 하면서도,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이야기의 대부분이 교수님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걸 레아가 궁금해하기도 했고, 전혀 다른 주제를 이야기하다가도 어떻게든 내 이야기의 끝이 교수님으로 향했다.
······와인잔을 휘휘 흔들며 빙그레 웃었다.
여기서도.
이렇게나 멀리서도.
교수님의 이야기라면 즐거워요.
일기에 적을 내용을 떠올리며 부르스트 한 조각을 입에 물고 수줍게 웃었다.
‘이거 무슨 꼭 고백 같잖아······.’
어째 점점 더 보낼 수 없는 편지가 되어가고 있었다.
······.
어느덧 늦은 저녁.
사장님 내외가 내일 올 투숙객을 위해 침구 정리를 하러 가신 사이, 나는 남은 와인을 홀짝이며 레아와 끝없이 이야기 꽃을 피웠다.
언뜻 무뚝뚝하고 내성적으로 보이는 그녀는 적어도 음악 얘기에서만큼은 수다스러운 여중생이었다. 사장님이 왜 클래식 공부를 하는지 너무 이해가 간다.
“언니.”
와인잔을 꺾다가 날 부르는 레아에게 시선을 던졌다. 곰 인형 젤리 하나를 입에 넣고 오물거리던 그녀에게 ‘응?’하고 되묻자, 한동안 꾸물거리다가 툭 물어온다.
“내일, 제 곡 좀 봐주실 수 있으세요?”
“내···가?”
“네. 언니가요.”
내 황당한 표정이 너무 선명했는지, 그녀가 멋쩍은 표정으로 이유를 줄줄이 늘어놓았다.
“제가 예술 학교를 다니는 것도 아니고, 항상 과외 선생님한테만 피드백을 받다 보니 아쉬운 점도 많아서요. 그렇다고 어디 올리는 건 무서워서 못 하겠고······.”
그리곤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내게 말했다.
“그래서 언니가 한번 들어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
-그랬단 말이지······.
내 이야기를 들은 최겨울이 픽 하고 웃으며 호응했다. 그러더니 침대에 드러누웠는지 앓는 소릴 내며 툭 답한다.
-그럼 봐주면 되겠네.
대수롭지 않은 대답에 내가 푹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되는지 모르겠네. 그래봤자 나도 학생인데.”
-걔 지금 가르치는 과외 선생도 우리처럼 대학생이라며.
“그건 그런데···.”
-야, 그리고 너 지금까지 나한텐 아무렇지 않게 그래왔거든? 고딩때부터 이건 이렇다, 저건 저렇다. 훈수 엄청나게 뒀으면서?
“그건 네가 와서 대뜸 연주하더니 감상을 말해달라고 했었으니까.”
-그러니까.
최겨울이 답답한 듯 말했다.
-내가 왜 해달라고 했겠어.
“음?”
-너한테 딱 한 번 1등 뺏기고 나머진 전부 1등만 했던 내가 굳이 왜 너한테 연주를 봐달라고 했겠냐고.
“그야···한 번 져서?”
-에라이. 그건 내가 그날 컨디션이 안 좋아서···! 아무튼, 네가 잘 들으니까 였어. 수행평가에서 다른 애들 문제점 짚는 거 보고 네가 정말 잘 듣는다 싶어서.
녀석의 과거 얘기에 그때 당시를 떠올린 내가 ‘어휴’하고 고갤 흔들었다.
“그때 나 욕 엄청 먹었는데.”
-그게 걔네들과 나의 차이고. 찔리면 고칠 생각을 해야지 쯧. 아무튼, 네 피드백이 엄청 도움이 된다니까?
“그런가.”
-확실해. 최근에도 내가 그걸 느끼게 된 일이 있었는데, 내가 쇼팽 콩쿠르 준비하면서 너한테도 많이 물어봤지만 교수님께도 자주 찾아갔었잖아. 그때마다 너랑 비슷한 얘길 하시더라고.
교수님이··· 나랑 비슷한 얘길?
그 말에 헤벌쭉 웃게 된다.
내가 그럴 거란 걸 뻔히 알고 있는 최겨울이 얼른 말했다.
-그런 거에 감격하지 말고.
“그치만 감격인 걸. 것도 무지. 닮고 싶은 사람과 조금은 이미 닮아있다는 거니까.”
-스토킹으로 신고할까.
“그 정돈 아니거든?”
-싹이 보이는데.
“참 내. 근데 너 왜 아직도 안 자고 있어?”
-연습하다가 마음에 안 드는 부분들이 있어서. 그래서 말인데, 내 연주도 좀 들어봐 줄래?
녀석의 부탁에 비스듬히 누웠다. 그리고 답했다.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조금 거만하게.
“그래. 어디, 흘러와 봐.”
피식 웃은 최겨울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피아노로 향했다. 곧이어 녀석이 건반을 누른다.
그렇게, 최겨울의 연주가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
다음날.
나는 아침을 먹고서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잠시 레아의 방에 들렸다.
가르친다는 말은 뭔가 너무 부담스럽고, 그저 듣고 느낀 것을 얘기해준다는 말을 하고서.
그렇게 그녀가 만든 곡들을 쭉 들었다.
그 후엔 약속했던 대로 피드백을 해주었다. 연주보단 곡에 대한 것들 위주로.
그 과정에서 나는 내심 놀랍기도 했다.
나는 스무 살이 되어서야 피아노보다 작곡을 더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그래서 그제야 곡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어린 나이부터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정확히 알고 나아간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대견했다.
“너 진짜 대단하다.”
모든 피드백을 마치고서, 내가 감탄했다.
그러자 레아가 내 이야기들을 모두 필기한 공책을 내려다보다가 홱 고개를 돌린다.
“제가요?”
“응. 멋져.”
“······.”
배시시 웃는 레아에게 이번엔 내 궁금증을 물었다.
“넌 클래식이 왜 좋아?”
불쑥 던진 물음에 레아가 고민에 빠진다. 그리고 고민 끝에 그녀는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했는지 오히려 내게 물어왔다.
“생각해본 적 없는데···언니는요?”
역질문을 당한 나는 옅게 웃었다. 그리고 툭 던지듯 답했다.
“강요 당하는 것 같지 않아서.”
“네?”
“클래식은···어느 날 문득 떠오른 꿈속 장면처럼, 그냥 흘러들어. 그렇게 여러 감각을 깨우고, 다시 흘러나가.”
평소 내가 생각했던, 클래식에 대한 인상을 그대로 말하며 덧붙였다.
“그게 너무 익숙해. 어쩌면 나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아주 오래전부터 클래식을 좋아하지 않았을까 싶어.”
그래서 궁금했다. 다른 사람들은 언제부터, 왜 클래식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나에겐 이상하게도 클래식을 좋아하게 된 계기 같은 게 마땅히 떠오르지 않으니까.
“언니 부모님이 태교를 클래식으로 하셨나.”
레아의 말에 내가 ‘오’하고 놀라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거 말 되는데?”
······그날 이후로 아침마다 잠깐씩 그녀의 방에 들려 피드백을 건넸다. 나 혼자만의 의견으로 부족하다 싶을 땐 최겨울에게 들려주어 함께 생각을 조합해 말하기도 했다.
그렇게 일주일이란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언니, 감사했어요.”
“아냐 아냐. 아침마다 좋은 곡, 좋은 연주 들을 수 있어서 내가 좋았지. 여행 내내 기분이 좋더라니까? 넌 적어도 여행객 한 명은 만족 시킨 거야. 네 곡으로.”
씩 웃으며 마지막 피드백을 말했다.
“그러니까 이제 사운드 클라우디에 올려보자. 더 많은 사람들을 만족시켜보자구.”
그러자 레아의 표정이 자연스레 살짝 겁먹은 모양으로 바뀌었다. 충분히 이해가 갔다. 나도 최겨울이 아니었더라면 내 곡에 대해 용기 내지 못했을 테니까.
“한서호 교수님도 네 나이쯤부터 사운드 클라우디에 곡 올리기 시작하셨어.”
“네, 책에서 본 적 있어요.”
“그러니, 너도 해봐. 모두에게 네가 한 것들을 보여 봐. 무서워 말고.”
그렇게 말하며 내 가슴을 툭 쳤다.
“나도 여기 그러기 위해 왔으니까.”
빈말이 아니었다. 이제, 브리너 콩쿠르가 코앞이었다. 가슴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그런 나를 바라보며 눈동자를 떨던 레아가 싱긋 웃으며 주먹을 쥐어 보였다.
“네. 해볼게요. 그리고 언니. 아니, 선생님. 콩쿠르, 응원할게요.”
“선생님?”
되물으며 피식 웃었다.
선생님이라······.
뭐, 선생님이라면 선생님이겠지.
‘비록 일주일 짜리 선생님이었지만.’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를 향해 활짝 웃었다.
“그래, 내가 한번 자랑스러운 선생님이 되어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