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RAW novel - Chapter 72
072. 멘토링 (1)
40년의 역사를 가진 클래식 전문 음반사, 로얄 클래식.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꼽히는 셀린 팰머 교수의 새 앨범 프로젝트를 맡은 팀(Team)이 한자리에 모였다.
“셀린 교수와 앨범 컨셉은 논의해 봤어?”
펜대를 굴리며 오늘 나눠야 할 내용을 확인하던 헤더(-팀장)가 모두 자리에 앉자 본격적으로 물었다.
이에 바로 대각선 자리에 앉은 커뮤니케이션 담당자가 끄덕인다.
“네. 이번엔 누군가의 스페셜리스트(Specialist)가 아닌 연주자 셀린의 앨범을 만들고 싶어 하시더라고요.”
클래식에서 스페셜리스트란 한 대가의 연주를 최대한 가깝게 재현해내는 이들을 일컫는다.
예를 들어 바흐의 곡을 가장 잘 연주하는 몇몇 연주자들에게 바흐 스페셜리스트라고 부르는 것처럼.
그리고 셀린 교수는 젊었을 적 모차르트 스페셜리스트였다.
“그동안 리사이틀을 해오면서 본인이 좋았던 곡들을 채우는 쪽으로 얘기하셨어요.”
“셀린 교수의 플레이리스트 같은 느낌이겠네요?”
또 다른 팀원의 말에 헤더가 주억거렸다.
“괜찮을 것 같네. 솔직히 셀린 교수 정도면 뭘 해도 상관없지.”
거장의 반열에 오른 지도 한참 된 그녀다.
듣는 이들만 듣는 이 시장에서 이름값만큼 판매량과 직결되는 건 없었기에 그녀는 걱정할 거리가 전혀 없었다.
그밖에도 쇼케이스 장소나, 얘기가 이어졌다. 이런 것들 또한 쉽게 쉽게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이미 몇 차례 로얄 클래식과 앨범을 냈었던 셀린 교수였기에 가능한 속도였다.
그렇게 쉬운 얘길 끝내고서······.
“자, 그럼 이제 어려운 얘기 좀 해볼까?”
커피 한 잔을 더 내려온 헤더가 자리에 앉으며 운을 띄웠다.
주제는 화제의 인물이었다.
클래식계 한정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의 신성(新星)이 업계에 나타난 것도 정말 오랜만이지.
가장 대중적인 두 개의 선율 악기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연주한다고 평가받는 한서호.
그의 새로운 앨범을 유통하는 것에 대한 회의가 이어졌다.
“한서호 앨범에 대한 전반적인 반응은 좀 어때?”
“확실히 자작곡들로 앨범을 채운다는 게 양날의 검이긴 해요. 앨범 소식 발표하니까 반응이 완전 극과 극이더라고요.”
“어떻게?”
헤더의 질문에 팀원들이 각각 한마디씩 덧붙였다.
“두 악기를 모두 다루는 신동이라는 이미지가 사실 일부 클래식 마니아들 사이에선 곱게 보이진 않나 보더라고요. 하나만 팠으면 더 나았을 거라느니, 욕심이 많다느니.”
“평론가들은 더 심해요. 인종 차별적인 뉘앙스도 어느 정도 깔려있어요. 동양 특유의 다 잘해야 한다는 집착의 결실이라더라고요. 저렇게 천재 메이킹하다가 훅 간 연주자들 한두 명 보냐고도 하고. 아예 차이코프스키 콩쿠르까지 같이 깎아내리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건방져 보이는 거죠. 아직 성인도 안 된 연주자가 클래식을 작곡한다는 게.”
“그래도 일반적인 반응은 기대된다는 쪽이긴 해요. 백야 축제 영상이 공개된 게 컸죠. 모스크바의 거리 연주 영상이 뜨면서 이제 데뷔한 연주자가 무슨 자작곡이냐며 불편해하던 사람들이 꽤 많이 사라졌거든요.”
그러한 반응들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애초에 예술이라는 분야에서 모두의 칭찬을 받는 경우는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헤더는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해할 수가 없네. 다들 연주 봤을 거 아냐. 결코, 그런 얘길 들은 수준이 아니었다고.”
회사가 이 프로젝트를 허락한 이유는 화제성일지 모르지만, 자신이 이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추진한 건 가능성이었다.
그런데 이제 막 태동하려는 새싹을 입맛에 안 맞는다고 밟으려는 꼴이라니.
“이래서 클래식계가······후.”
텁텁한 한숨을 뱉으며 그녀가 고개를 내저었다.
자신도 결국 이 업계에서 오랫동안 버텨왔다. 그러니 자신의 책임이라고 없을까.
“일단 곡이 다 나와서 이제 곧 녹음 작업 들어간다고 하니까, 피터는 쇼케이스할 공연장 섭외 시작하고 올리비아는 한국으로 가서 진행 상황 좀 훑어보고 와. 곡 어떤지도 확인하고.”
“네!”
힘차게 대답하는 팀원들을 보며 헤더는 생각했다.
결국, 앨범이 나와봐야 알게 될 일이라고.
진짜 모차르트 같은 신동의 탄생일지.
아니면, 언론이 좋아하는 먹잇감의 탄생일지는.
#
“로얄 클래식에서 담당자가 온대.”
앨범 제작에 대해 간단하게 얘기하기 위해 박 팀장과 김윤주 실장,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회의실에 모였다.
“진행 상황 보러 오는 거예요?”
김윤주 실장의 물음에 박 팀장이 끄덕였다.
“그렇겠지. 그러니 이제 슬슬 녹음 일정을 잡아야 할 것 같은데······.”
박 팀장이 살짝 들뜬 얼굴로 펜을 달깍거렸다.
얼마 전, 그가 영화 음악만 하다가 새로운 걸 하려니 뭔가 회사 첫 입사한 기분이라고 말했던 게 떠오른다. 그러자 친한 직원들이 그럼 신입이냐며 야자타임을 하려고 해 배가 찢어질 것처럼 웃었었지.
피식 웃으며 박 팀장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일단 악기군은 전부 나왔으니, 연주자들을 선정해야지. 가장 큰 규모가 어느 정도지?”
“‘가족’이란 곡에 악기가 23개 필요해요.”
“소규모 체임버 오케스트라 정도네.”
내 대답에 끄덕이며 수첩에 끄적이는 박 팀장.
김윤주 실장이 웃으며 덧붙였다.
“가족이란 뜻을 가진 두 곡이 완전 극과 극이네요. 하나는 오케스트라. 하나는 바이올린 독주.”
그러게. 의도한 건 아닌데 말이지.
어쩌다 보니 분위기부터 악기 구성, 편곡까지 확연한 차이가 생겨버렸다.
애초에 가족이란 주제는 같지만, 동기가 크게 달랐잖나.
“그러면 연주자들은 어떻게 할까? 지난번 ‘소프라노’ 때 왔던 연주자들 중에서 스무 명 정도 뽑아도 되고. 일일이 뽑기 힘들면 우리한테 데이터가 있으니까 실력 괜찮은 순으로 뽑아줄까?”
박 팀장의 말에 자연스레 그때의 연주가 떠오른다. 그것도 아주 선명하게.
내가 확실히 음악 쪽으로는 기억력이 남다른 것 같긴 하다. 하긴, 200년 전 기억까지도 음악에 관한 건 이렇게나 선명한데, 오죽할까.
나는 고갤 저으며 내가 고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협주를 단순히 실력순으로 뽑기엔 애로사항이 많을뿐더러, 어디까지나 내 곡이니까.
녹음실 테이블에 붙어 있던 좌석 번호를 떠올리며 말했다.
“그때 연주자분들 명단이랑 녹음하면서 어느 자리에 앉았었는지 좌석 번호 받을 수 있을까요? 연주는 기억이 나는데, 얼굴이랑 성함을 몰라서요.”
“당연히 줄 수 있지. 근데, 그것만으로 되겠어?”
나는 가볍게 끄덕였다.
“네.”
충분하지.
#
다음날.
곧바로 박 팀장에게 녹음에 투입될 연주자 리스트를 건넸다.
명단을 본 그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이내, 알겠다며 연주자들의 스케줄을 일일이 확인해주었다.
그렇게 앨범 작업 준비가 착착 진행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이.
아버지의 동창인 화원예고 선생님은 멘토링에 대한 설명과 강의 자료를 보내왔다.
우선, 멘토링이라고 해서 그리 대단할 건 없었다. 방학이 끝나기 전 3주에 걸쳐 세 번 진행되며, 각각 멘토마다 선착순으로 소수의 멘티를 받았다는 것.
학교 측에서 대강의 강의 내용을 미리 지정해 주었으니, 난 주제에 맞게 내 경험을 녹여 준비하면 됐다.
근데 심지어 그 주제들이······.
‘솔직히 자신 있는데?’
가뜩이나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한 일이, 심지어 잘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드니 그때부턴 의욕이 끓기 시작했다.
‘우선 강의는 PPT로 하는 게 편할 것 같고······.’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컴퓨터를 켜 PPT를 뚝딱 만들어 버렸다.
핵심만 딱 넣은 ‘사과’식 레이아웃. 군더더기 없는 폰트와 동그란 안경······은 빼고.
김윤주 실장이 슬쩍 보더니 감탄한다.
“어디 한 번 볼까? 오, 서호가 은근 미적 감각도 있는데? 깔끔하게 잘 만들었네.”
과장님의 PPT를 만들던 때의 기억을 새록새록 떠올리며 완성 시켰지. 음악 쪽은 브리너의 못 펼친 재능 덕이 크다고 생각하지만, 나 한서호도 할 줄 아는 게 있다 이거야.
“근데 서호는 멘토링 준비하는 게 아무렇지도 않은가 봐? 또래 애들한테 강의를 해야 하는데 괜찮아? 엄청 부담될 것 같은데. 그 자리에 한 살 형 누나들도 있을 거 아냐.”
이런 질문에는 그저 웃었다.
지금은 또랜데, 사실 또래가 아니랍니다.
뭐, 이럴 순 없으니까.
그렇게 강의를 준비하며 나 스스로도 기대감을 키워갔다. 이름부터가 멘토링인만큼 단순히 강의뿐만 아니라, 서로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고 하니 좀 설렌다.
파릇파릇한 아이들의 음악에 대한 열정, 생각 같은 걸 보게 되려나.
뭐니 뭐니 해도 강연 같은 걸 할 땐 유머가 중요한데, 어떻게 썰이라도 풀어야 하나?
사실 하이든이 집에 자주 놀러 왔는데······.
그러면, ‘뭐야, 저 개드립은.’ 이러겠지.
어쨌든 앨범 녹음 준비와 연습, 강의 준비에 틈틈이 작곡까지 이어가다 보니 어김없이 멀게만 느껴졌던 날짜가 훅 앞으로 굴러왔다.
[화원 예술 고등학교.]널따란 교정.
온몸으로 예술 학교라는 걸 보여주려는 듯, 일반적인 학교와는 남다른 건물을 보며 생각했다.
역시 사립··· 아니, 최고의 예술 고등학교답네.
학교는 제법 한산했다. 그도 그럴 게 방학인 데다가 멘토링에 참여하기로 한 인원은 이미 등교해서 한 교실에 모두 모여있다고 들었다.
나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 곧장 교무실로 향했다. 교무실이 총 네 개라 좀 헤맸다. 내가 도착한 곳은 그 중 음악부 교무실.
“저 혹시 김기훈 선생님 어디 계실까요?”
문을 열고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아 있는 선생님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작은 나무 막대로 어깨를 톡톡 두드리던 그가 날 보더니 돌연 사나운 눈초릴 보내온다.
“멘토링 들으러 온 거야? 시간이 몇신데 이제 와? 옷차림은 또 그게 뭐······.”
가까워지자 확 휘어있던 눈초리가 펴지고, 신호등마냥 깜빡거린다. 얼른 자세를 고친 그가 나무 막대를 슬쩍 내려놓으며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어이쿠! 내가 몰라뵀네. 이거 미안하게 됐어요. 내가 눈이 좀 나빠서··· 하하, 콩쿠르 아주 잘 봤습니다. 멋졌어요.”
“감사합니다. 근데 김기훈 선생님은······.”
“저기 맨 끝자리예요. 김 선생님! 여기 오늘 멘토분 오셨는데?”
그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이미 교무실 안 선생님들의 눈이 모두 나를 향해 있었다. 몇몇은 신기한 듯 일어나서 날 반긴다.
그리고 그중에 눈에 띄는 콧수염이 눈에 들어왔다.
곧바로 그가 있는 자리로 다가가자, 아버지의 동창 김기훈 선생님이 웃으며 나를 반겼다.
“오랜만이야.”
“안녕하세요.”
“오는 데 불편하진 않았고? 교사 출근 시간이 조금만 늦었어도 모시러 갔을 텐데 말이야.”
“괜찮아요. 버스 한 번에 오던데요.”
“그래? 아무튼. 그때 곡 듣고 대단해질 줄은 알았는데, 이렇게 단기간일 줄이야. 역시 그때 학교 한번 오라고 약속받아 놓길 잘했지.”
흐뭇하게 웃던 그가 ‘내가 주식을 그렇게 했어야······’라고 중얼거리며 책상 위에 어지럽게 널려있던 파일을 움츠렸다.
“이건 출석부고. 네가 준 자료는 미리 띄워놨어. 불안한 건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 봤는데 진짜 잘 정리해놨더라.”
불안했구나. 이해는 간다. 박 팀장도 그랬고, 부모님도 그랬지. 또래 학생들을 멘토로서 가는 게 부담스럽진 않겠냐고.
“내가 계속 뒤에 있을 거니까. 부담 갖지 말고 준비한 대로만 해.”
“알겠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한층 더 올라가 복도 중간쯤에 있는 교실로 향했다. 몇 학년 몇 반이라는 패널이 안 보인다. 이 학교는 남는 교실도 있는 건가?
그런 생각들에 신기한 눈으로 이모저모 뜯어보는데, 김기훈 선생님이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내가 소개하면 들어와서 바로 시작하면 돼.”
그리고는 앞문을 열고 교실 안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가 교탁에 서서 애들을 집중시키고는 나를 불렀다.
대학교 강의실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잘 꾸며진 교실. 그곳에 들어서자 촘촘히 앉은 학생들의 시선이 모인다.
부담감은 없는데, 그래도 나 긴장은 좀 했나 보다. 떨리네.
방금까지만 해도 김기훈 선생님이 있던 자리에 서서 간단한 인사를 나눴다.
슬쩍 돌아보니 커다란 화면에 내가 만든 PPT가 띄워져 있었다.
큼직한 글자를 보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간다.
정말이지······ 자신 있을 수밖에 없는 주제.
나는 다시 학생들에게로 시선을 던지며 마침내 첫입을 뗐다.
“강의 시작할게요.”